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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5년 원불교 안암교당 고원회 청년 여름 정기훈련
8월 14일(토) 오전 원철스님 강연
□ 젠 스타일
서양에서 zen 스타일이 호평을 얻고 있다. 아주 심플한데 그 중에 파격이 하나 있는 것. 그런 것을 젠 스타일이라고 한다.
□ 문화적 배경에 관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유교 신자를 조사하면 1%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유교가 우리의 문화적인 배경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종교는 다 유교적으로 해석되어 있다. 즉 기독교도 유교적 기독교, 유교적 불교, 유교적 원불교이다.
□ 동문서답, 횡설수설
우리는 선문답을 보면 마치 동문서답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동문서답, 횡설수설의 본래 의미는 전달하는 사람은 맞게 전달하는데, 전달받는 사람이 잘못 이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횡설수설도, 원래는 한 사람이 경전을 완전히 외워서, 횡으로도 읽고, 종으로도 읽고, 대각선으로도 읽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렇게 읽는 와중에 들어와 보면, 경을 완전히 아는 그 사람이 마치 엉터리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므로 듣는 사람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바로 횡설수설이라고 한다.
□ 부처님의 마지막 법문 세가지
1. 게으르지 말아라.
2. 공동체 내부규율을 지켜라
3. 법등명 자등명 : 법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등불로 삼아라.
여기에서 ‘자등명’이라는 말은 자신을 믿으라는 말이다.
자수자오, 불교는 내가 수행하고, 내가 깨닫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어지간한 것은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임. 나 스스로 공부하다가, 스승님께 물어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수자오 정신에 입각해서 내가 하는 것이다.
□ 선불교의 한자어가 최근에야 번역된 이유
시중에 나가보면 禪(선)에 대한 책들이 수도 없다. 경률론 삼장이 다 불교 이론이다.
그런데 선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체계가 확립된 것이 당, 송 시대이다 보니 전부가 한문으로 된 경우가 많다.
며칠 전에 목사님 한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스님, 불교의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신지 이제 삼십년 되셨지요?”라고 하더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끼리면 이야기는데 목사가 이야기를 하니 내가 ‘무슨 의도로 저 말을 묻는가’ 하고 조금 긴장이 되더라. (웃음) 그러나 목사님은 “경전이 일찍 번역되었으면 일반 대중들에게 더 좋았을 텐데요”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실은 한문과 한글이 일반 글자처럼 같이 쓰이는 것이 일백년전만 해도 그랬으니 딱히 한문을 번역해야 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다.
본격적으로 한글 세대가 늘어나서 불경을 번역해야 겠다고 생각된 것이 삼십년 된 것이다.
현재는 번역이 많이 되어서 현재는 한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선을 공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한문을 포함한 중국어와 친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 선 의두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1) : 역사적 배경, 문화적 배경이 달라져서
그런데 선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송나라 그 이후에, 오래 되다 보니 뜻을 알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 때는 일상용어였지만, 지금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이지?싶고, 매우 어렵고 동문서답인 것이 많게 느껴진다.
동산수초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어느 젊은 사람이 와서 “불교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였다. 불교는 무엇이며 원불교는 무엇인가? 그러면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하겠는가?
그런데, 당대에는 “불교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는 질문으로 했다는 것 뿐이다. (그러한 질문방식이 당대에는 일상적인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특이한 방식이라는 뜻)
동산수초라는 스님은, 여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삼 세근” 즉, 마 세근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현대에 있는 우리들은, 정말 뜽금없는 소리 아닌가? 뭔가 거창한 것이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뭐가 녹아있는가. 동산스님 살던 곳에 마가 많은데, 마밭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추측을 우리는 해 볼 수 있다. 즉, 마밭에서 물어봤을 때 마를 가리키면서 “이 안에 들어있다”라고 한 것 뿐이다. 다만 왜 세근이라 했는지는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것 자체가, 동산수초 스님과 제자들 사이에서는 삼이 많은 지역에서 살고 있었기 떄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도라는 것은 뭐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소박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일상이다”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당대에 “마가 주변에 있는 곳에 살고 있었겠구나”하는 것을 이해해야, 이 의두를 이해할 때 쉽다.이것이 문화풍토이다. 그런데 문화가 대단히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중국에서 유명한 쌀 생산지가 있다. 그곳에는 청원스님이라는 분이 살고 계셨다.
어느 사람이 청원스님이게 “선이 무엇입니까” 물었다. 그런데 스님은 “여름 지방의 쌀값입니다”라고 하더라.
쌀값은 풍년이 들면 내려가고, 흉년이 들면 올라간다. 불교란 그것이라고 한다.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상황인 것이다, 하는 뜻을 담아서 하신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 때가 서기 800년 전후이다. 약 1200년 전 이야기이다.
이처럼, 그 이야기가 지금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면 대단히 뜬금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상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다. 다. 이것을 모르고 그냥 읽으면 선이야기에 대단히 흥미가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알고 읽으면, 동문서답이 아니라 제대로 한 답변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선불장(選佛場)”이라는 말이 있었다.
“부처를 뽑는 장소”이라는 말이다.
중국에서 당시에는 과거제도가 문란해져서, 두보도 두 번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에 떨어진 사람들이 선을 하러 오기도 했다.
당시에 선을 이끌었던 두 분의 대표적인 스님은 마조 스님, 석두 스님 이었다. 난다 긴다 하는 청년들이 문란한 과거제도 대신, 불교에서 참선 공부를 하려는 트렌드가 있었다. 과거를 보는 과거장이 아니라, 부처님을 뽑는 절로 가겠다, 하여 대단한 출가 트렌드가 있었다. 선불장이라는 말 안에 과거 제도가 문란했던 사회적 분위기, 시대적 분위기가 녹아있는 언어이다.
당대에,,
마조스님은 강서성에서,
석두스님은 호남성에서 제자를 길러내셨다.
그래서 강호제일이라는 말이 강서성, 호남성을 따서 나온 말이다.
마조스님 밑, 석두스님 밑 똑똑한 젊은이들이라는 것이다.
강호제일은 사실은 무협지에 나오는 ‘무림의 고수’가 아니다. 이처럼 제대로 알고 보면, 언어 하나하나 속에 당시의 시대적 배경, 습관, 분위기가 들어있다.
□ 선 의두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2) : 구어체를 사용
말에는 문어와 구어체가 있다.
대종사님은 전라도 사람이니, 전라도 사투리로 설법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받아적는 사람은 그것을 표준어로 적는다. 이것이 문어이다.
나는 나주에 심양사라는 절에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나주는 복어가 유명하다.
그런데 문어는 하회마을 안동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 한다. 제사지낼 때 많이 쓴다고 한다.
양반이라고 글 좀 아는 생선(文魚,문어) 먹겠다고..
(웃음)
그런데 선어록을 적는 사람은 문어를 채택하지 않고 구어를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밑에 제자가 “나는 우리 스승님이 향기를 그대로 적고 싶다” 싶어서 그대로 적었다.
만약 밑에 제자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면 시대적 상황까지 적을 것이다. 이를테면 ‘선불장’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당시 일반 사람들 중에서 똑똑한 젊은 사람들이 과거제도에 대한 회의로 출가를 했다’라는 설명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람들이 대개 문어보다는 구어에 다 익숙하다. 초창기의 종교인들이 대개 다 그런 편이다.
그리고 오바(?)한 제자들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스승님의 말씀을 그대로 살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말 그대로 쓴 것이다.
선어록 안에는 구어가 많다. 그런데 당시에는 자연스러웠지만, 구어는 대단히 문제가 되었다.
우리 훈민정음 국어 선생님이 토를 달아주지 않으면 모르지 않는가. “어여삐 여기어”라는 말을 그 때와 지금은 의미가 다른 것처럼, 선어록 안의 말도 누가 해석해 주지 않으면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어록 안에 한문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 그러므로 선어록 안에 독특한 말들을 이제는 외워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공부하다 보니 대단히 재미있는 오해가 있게 된다.
“자마생”을 번역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로 번역함.
“소유중생”이라는 말 해석도 “모든”이라는 뜻으로 해야 한다. “소유”를 모든 중생이라 하여야지, 있는 바의 모든 중생이라 하면 안 된다. “소유”라는 단어는 문어일 때와 구어일 때 뜻이 다르다. 구어는 ‘모든’으로만 해석하면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불경을 한문으로 읽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영어로 읽으니 더 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남천으로 쓰고 읽을 때는 남전으로 읽으라 한다.
(이 모든 것은 보통 번역물과 한문을 같이 대조해 놓고 읽을 때 헷갈리기 쉬운 것이다)
“끽다거”라는 말이 있다.
(조계사에 찻집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끽다거이다.)
담배 피우는 것을 끽연이라고 하는 것처럼,
현재는 “끽다거”를 현재 번역은 차나 드시고 가시오“라고 번역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러나 당시의 본래 뜻은 “냉수먹고 속차려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라” 라는 이야기였다.
당송 시대에 정말 손님을 대접하라는 뜻으로 “차나 드시고 가시오”라는 것은 “자좌끽다”였다고 한다.
중국어는 표음문자를 쓴다.
커피는 “가배”
코카콜라는 “가구가락”
펩시콜라는 “백사가락”이라고 한다. (펩시가 잘된 번역이라 생각하심. 백가지 일이 다 좋다)
선문답도 그런 것이 많다.
우리는 이러한 번역을 정확하게 보지 않으면 말씀하신 분의 의도를 착각하기 쉽다.
□ 달마대사에 대하여
달마를 아시는가?
달마도가 수맥방지에 좋다는 것으로 아시는가?
여러분 달마대사가 우리나라까지 와서 수맥방지까지 해야 하는가?
달마대사가 들으면 기겁할 이야기이다.
(웃음)
달마대사는 침묵을 9년간 하였다.
9년동안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왜 9년동안 그랬을까?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달마다 처음에 인도에서 건너와서 중국에서 보니 선 수준이 말이 아니었다.
양무제도 나름대로 불교적인 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을 이해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다 싶어서 기다린 것이다.
그래서 양자강을 건너갈 때도 가랑잎을 타고 건너갔다고 한
불가능할까?
홍길동은 물위를 착착 걸어다녔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가랑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넜다’라는 말이 신통이고 특이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 원불교 경전은 이제 70년 정도 되었으니 이해하는 데 어려운 점이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 500년 후에는 그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시각이, 당시의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다시, 달마대사는 왜 면벽을 했을까.
경전에 “달마대사 결치노호”라는 말이 있다.
달마대사는 앞니가 하나 없었다고 한다.
달마대사 별명 “ 이빨이 없는 인도에서 온 노인네”이다.
중국에서는 “노”자를 굉장힌 존칭으로 쓰기도 한다.
그래서 면벽을 했다고도 한다.
달마대사 9년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이빨 사이에 모...곰팡이가 났다.
이를 한자로 하면 “판치생모”가 됨. 판때기 같은 이빨에 털이 났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한테는 무슨 말인지를 모르게 된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치과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이를 잘 닦지 않아서 입안에 곰팡이가 난 겁니다”라고 대답하시더라.
이것은 “판치생모”에 대한 치과의사식 해결이 아닐까? (웃음)
당시 달마스님의 신체적 열등감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을 찾아내면, 그 때부터 선어록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 선어록과 경전인용
초창기의 선어록들은 경전의 인용 빈도수가 굉장히 많다. 그러나 점점 발전하면서 선어록의 경전 인용 빈도수는 떨어지게 되었다.
왜 그럴까?
이러한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느 스님이, 청운의 꿈을 안고 도시에 나와서 포교당을 열었다. 그런데 도시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느 낯선 스님이 건물을 빌려 “무슨사”라고 간판을 걸고 있으니, 믿을 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 스님은 ‘아, 내가 아직 유명하지 않고 우리 절이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나랑 만나서 이야기하기를 그냥 ‘무슨 사’가 아니라 “해인사 포교당 00사”라고 쓰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삼년후 그 절이 잘 있나 가봤더니 “해인사 포교당”이라는 말이 없어졌더라. 이제는 해인사 이름을 걸지 않고도 사람들이 잘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인사” 밑에 소속되어 있으면, 일만 있으면 회의있으니 나오라고 하지, 불편한 점이 더 많아서 독립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 불교도, 그 체계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경전 인용을 많이 했지만 그 이후에는 인용할 것이 없었다.
육조단경은 경전 인용이 대단히 많지만 점점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을 통해서 우리는 선불교가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정각을 얻으신 다음 “참 외롭다”라고 하셨다.
내가 지혜를 얻었는데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섯 비구를 찾아다녔고, 제자로 맞았다. 그 제자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바로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때 부처님은 너무 기뻐서
“콘탄자가 깨달았다.
콘탄자가 깨달았다.
콘탄자가 깨달았다.“ 라고 세 번을 말한 후
“이제 여섯명의 아라한이 생겼다”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일불 사상이 아닌 다불사상이 생기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님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불”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이 때부터는 나도 깨달았으므로ㅡ 굳이 경전에 인용하여 말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선종이 발전하면서는 이제는 이전의 불교에 대한 인용 빈도가 떨어지게 되었다.
□ 대승불교와 선종의 관계 : 원칙주의자 석두와 융통성있는 마조.
대승불교와 선종은 이미지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승불교도 선종의 족보에 포함된다.
그것은 선종이 단순한 선종이 아니라, 종래의 모든 종파를 종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체교용”이라는 말에는, 선을 주체로 하여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자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선불교가 기존의 모든 것들을 융합하는 형태로 팔게 된다.
양고기 머리 걸어놓고 뒤에는 개고기도 판다는 것이다. (양두구육)
그런데 여기에 마조스님과 석두스님의 기조가 약간 달랐다.
마조스님은 선을 중심으로 하되 다른 것에도 융통성을 갖자는 것이었고,
석두스님은 선으로 제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선 근본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래서 석두스님이 있던 곳을 징검포라고 했다(수건만 파는 가게).
마조스님은 잡화. 명품도 있어야 하지만 사람들을 위해서는 가지 가지를 다 갖다놓는 가게이다.
그래서 당대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조스님에게 많이 갔다. 현실주의.
마조스님은 불교 선불교 역사에 금자탑을 쌓으신 분이다.
육조혜능은 선불교의 이론을 만드신 분이고
마조스님은 종파를 만드신 분이다.
□ 우리의 선불교
한국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주역은 공자가 편집해서 완성한 것. 거기에 태극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중국 국기가 되지 않고, 한국 국기가 되었다.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는 육조스님의 머리가 동쪽으로 갔다. (핵심수행방법이 한국으로 갔다) 라는 말을 지금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우리의 화두집은 고려 말에 진각 혜심이라는 스님이 다 모았는데
총 1700개 되는데 그 중 400개는 내용이 없고 제목만 있다.
그런데 중국의 화두집은 100개 밖에 안 모아놓았다.
직지심경은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활자이다. 이것은 다 알 것이다.
그러나 “직지의 내용이 뭡니까”라고 물어보면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웃음)
직지란, 한국 선종의 족보이다.
하고 싶은 말은.
최초의 금속활자라면 무엇을 제일 먼저 찍고 싶었겠는가.
당시 유교사회이므로, 유교 경전을 찍어야 할 것 같지만 불교 경전을 찍은 것이다.
조당집은 불교의 유명한 책이다. 세계에서 제일 유일한 판본이 해인사에 있다.
중국의 유명한 책이 중국에서는 없어지고, 한국에 옮겨와 있다.
이러한 토양이 전해오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내공인 것이다.
□ 선어록의 해설
무시선 무처선이 선의 핵심이다.
선어록이 모르고 보면 동문서답인데, 알고보면 동문동답이더라 하는 것을
사례를 하나씩 들어가면서 알려줄 예정이다.
선어록은
중국 사람은 중국식
인도 사람은 인도식
한국 사람은 한국식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ㅇ 해설 1
문수의 머리는 검고-문수는 지혜의 상징이요
보현의 머리는 희다 -보현은 행의 상징이다.
문수-보현
검다-희다
여기에서 댓구를 이루는 것에 유의하자.
양면을 같이 보는 것을 중도라고 한다.
이를테면..
절름발이 자라요, 눈먼 거북이라.
라는 화두는 법문에 자주 나오고, 잘 인용된다.
발은 밑에 있고 눈은 위에 있다.
이렇게 짜여져 있으면 일단 이해하기 쉽고,
전달이 잘 된다. 그래서 선어록의 문체들이 이렇게 되어있다.
ㅇ 해설 2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면 북산에 구름이 일어난다.
술은 장서방이 마셨는데 취하기는 이서방이 취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연기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모기지 돈을 빌린 적이 없다. 그래도 그게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당 송 때는 연기의 표현을 이렇게 했다.
아랫집 소에 배탈이 났는데 윗집 돼지 허벅지에 뜸질을 했다.
눈이 잘 안보이면 양의원에 가면 눈을 치료해 주는데,
한의원에 가면 간이 나쁘면 눈이 침침하니 간을 치료하라고 한다. 이게 몸을 연기로 보는 것이다.
당송 때의 문학적 표현기법이다.
그런데 이것이 세월이 지나고 보면 우스운 것이다.
시원하다
섭섭하다
시원섭섭하다 - 중도적으로 표현한 것. 이렇게 표현하면, 나의 교양을 남에게 의심받지 않는다. 시원섭섭하다는 말 안에, 댓구가 되며 중도가 된다.
이를테면, 요즘 우리가 유행가 가사 안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한 말을,
이것을 당시에는 “장공이 술을 마시면 이공이 취한다”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당대에 쓰는 말로 업데이트 되는 것이다.
ㅇ 해설 3
법정스님에게 재미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하루는 한 분이 책을 들고 와서 좋은 말씀 하나 써달라고 하더라.
그랬더니 “이거 말고 더 좋은 말씀 없습니까” 하고 묻더라.
그 이유는, 법정스님이 그 책에 “좋은 말씀”이라고 썼기 때문이다.
절에서도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뜬금없이 와서 “좋은 말씀 해 주세요” 하면 난감하다.
어떤 스님이 탁발을 하러 갔다. 그런데 집에서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은 과연 그 스님이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스님 무엇을 바라세요”
그랬더니 스님 왈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풀을 준 것이다.
여기에 한마디 더 한다.
“답변할 수 있다면 공양 더 주겠고, 아니면 그냥 가십시오”
여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 것인가.
스님은 어떻게 해야 풀이 밥으로 바뀌겠는가.
여기에서 잔머리를 굴리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은 탁발의 상황이 아니다.
재가자이든, 출가자이든 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동등한 입장에서 문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탁발승은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그래서 그것을 동산스님에게 물어본 것이다. 동산스님이 뭐라 하셨을까.
먼저 “넌 그것도 대답못했냐” 하고 호통쳤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먼저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생각을 일으키기 전에 주려고 했던 것을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선어이다.
선을 하다 보면 이런 능력이 생긴다.
우리가 친구랑 대화를 하다 보면 말이 막힐 때가 있는데
선을 하면 반야지혜가 열려서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다.
ㅇ 해설 4
대구 이야기도 있다.
“스님께서는 이름이 대구인데 입이 얼마나 큽니까?”
여기에 스님이 “어쩌다 보니 이게 이름이 된거지 입이 크겠습니까”하면
생활문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스님이 “나는 온몸이 입입니다” 한 것이다.
삼평스님 “똥은 어디로 누는데요?”
여기에 말문이 막혔다.
그랬다면 걸려들어서 져버린 것이다. 질문으로 봐서 대구스님보다는 삼평스님이 선지가 높은 것이다.
이런 것이 생활문답으로 떨어져 버리면 중생인 것이다.
일반 법문을 선법문, 수행법문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한 스님이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그랬더니 한 스님이 청소를 하고 있더라. 평소에 그 스님을 눈여겨 보았다가, 아마도 법을 테스트하고 싶었을 것이다.
“뭐하고 있니”하고 물었따.
“보면 몰라요 청소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대답하면 생활문답이다.
이게 그냥 던지는 말이 아닌 것을 간파해야 한다.
“부처님 몸에 먼지를 털고 있고 있습니다”
“이미 부처인데 무슨 먼지가 끼었다는 것인가”
선어록에는 그 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생활 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생활법문이 선법문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두 사람의 수준이다.
이렇게 되면 무시선이다. 때를 정해놓고, 장소를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무시선 무처선이 된다. 선의 장점은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선이 되어야 한다. 오롯하게 관세음보살, 화두, 좌선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개에게는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했더니 “없다”고 했다. 유명한 무자 화두이다.
어떤 사람이 이 화두를 들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따만한 개가 잡아먹으러 오더라.
이상하다 싶어서 놀라 깨고, 다음에 또 이 화두를 들었더니 개가 또 오더라.
방장스님께 이걸 여쭤봤더니 “다음에도 또 그러면 개를 피하지 말고, 그 입에 머리를 넣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리했더니 그 사람 머리가 쌀 궤짝에 들어가 있더라. 다 망상이다.
이처럼 선문답 중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그것을 모아서 낸 책이 바로 내 책이다.
□ 질문과 답변
- 김 명 선 :
좌선하는 데 음악이 계속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원철스님 :
화두로 오랑캐를 쳐 버린다. 음악몰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화두가 좋다. 화두 역사가 1400년이다. 육조 혜능스님 살아계시던 때가 서기 600년 경임. 그만한 힘이 있다는 뜻이다.
- 문 혜 은 :
무시선 무처선, 생활 속에서의 작은 깨달음이 중요한데 왜 화두를 붙잡고 고민해야 하는지
- 원철스님 :
깨달음은 목표가 될 수 없다. 깨달음은 현실을 잘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오게 된 것이다.
“대오병”이라는 것이 있다. 깨달음 때문에 생긴 병으로 현실생활에 불충실한 것. 이것을 대단히 경계한다. 깨달음이란 생활 속에 수행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우리들은 현실중시주의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 김 혜 민 :
화두선, 앉아서 좌선하다 보면 호흡이 막혀서 기체가 되는 경우가 있다. 기체를 푸는 방법은?
- 원철스님 :
수식관, 초창기의 참선수행방법이다. 화두선에서는 화두를 잘 들면
수식관을 제대로 하는 것에 집중하라. 수식관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리에 집중하라.
- 오선허 :
선 문화가 동양에서 더 발전해 왔다. 이것이 우월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양에도 선문화가 있는지?
- 원철스님 :
이름만 다를 뿐이지 다 있다. 기독교에서는 관상이라 하여 성모 마리아나 예수님을 생각하는 체계가 있더라.
수행은 그 사람에게 알맞은 수행방법이 중요하다. 동앙의 서양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동양에서 선이라는 우수한 문화가 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서양에도 이미 다 하고 있었다.
- 김명선 :
달마대사는 9년간 면벽수행. 오히려 현실을 회피한 것 아닌지.
또, 스님은 무엇을 구하기 위해 출가하셨고 지금 그것을 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원철스님 :
화계사로 출가. 행자조실에 들어갔더니 “왜 출가했어요?”라고 하더라.
내 대답은 “책 마음대로 보려구요” 그랬더니 특이한 행자라 하더라. 시작은 누구나 사소한 것이다. 스님이라고 드라마틱한 출가 동기를 가진 것은 아니다. 나는 출가 후 10년 동안 아무것도 아니고 책만 봤다. 그러다 보니 전달을 해야 겠다. 어떻게 하는가. 글로 써야겠다. 좀 쉽게 써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 박원허 :
“부처님 먼지털이” 법문. 나는 그게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성리품 백학명선사는 앞으로는 격외설이 아니라 일반인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법 정도를 인증하게 될것이라고 했다.
- 원철스님 :
경론소초로 법문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것을 습득하는 데만도 엄청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데 대종사님 은 대단하신 사람이심. 경론소초가 이해된 상태에서 자기 말씀을 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산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도시에 왜 살지”싶더라. 산은 수행하기에 도시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다. 산에 있는 사람은 현실생활에서 해결책을 내놓기 어려우나, 도시에 나와있으니 현실을 알 수 있고,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