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도의 성립과 함께 일어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상황은 아마도 지방분권이었을 것이다.
지방분권적 봉건제도는 비록 개별적인 사적 관계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중앙집권적 질서가 붕괴
되는 대혼락 속에서 오히려 그 사회의 기능을 유지하는 기본적 골격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봉건제도의 지방분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바로 불수불입권의 적용이었다.
불수불입권이란 것은 원래 로마 때에는 황제령과 같은 특별한 영지에 대한 면세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봉건제도가 발전하면서 행정, 사법을 포함하는 자치적 통치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
대되었다.
이것은 까롤랭 왕조의 왕과 황제가 자신에게 봉건서약을 한 대가로 교회와 수도원에 양여토지를
기증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교회는 이 토지들을 관리하고 왕에게 일정량의 조세를 바쳤다.
메로뱅 왕조 때 부터는 엄청난 규모의 토지 재산을 교회가 소유했으며, 특히 까롤랭 왕조와 그 이
후에는 중세 유럽에 산재한 토지의 30~40%가 불수불입권의 특권을 누렸다.
교회는 이러한 불수불입권을 통해 봉건 귀족화 되었으며, 중세 유럽사회의 지배집단으로 자리잡
았으나, 이렇게 교회의 특권이었던 불수불입권은 세습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불수불입권의 토지
를 가진 소유주들은 교회의 선거로 선출되었다.
(참고문헌 : 서양사의 이해, 서양중세의 삶과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