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사는 www.bookeditor.org에서 퍼온 것입니다. 게시판에 게재하기에는 다소 길지만 주목할 글이라 여겨 올려 놓습니다. 참고로 11월 14일자 <한겨레> '김영사 박은주 대표와의 인터뷰'도 함께 보시길.
“궁극적으로 상업적인 책은 소비자가 다양한 가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판인과 소비자가 머리를 맞대고 도서정가제가 출판계 발전에 유효한가를 시급히 검토해야할 때입니다”
전문경영인으로 국내 최대서점인 교보문고 최고 경영자가 된 김년태(54) 대표이사는 취임 일주일만에 가진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도서 가격의 다양화는 세계적인 대세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출판은 더 이상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공급자 시장이 아닙니다.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단계적으로 책 가격을 다양화시켜야 합니다. 정가제가 무너지면 출판사가 죽는다고들 하지만 좋은 책은 시장에서 높은 이익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김대표는 사견임을 전제로 미국의 대표적인 서점 체인인 ‘반즈앤노블’처럼 온-오프라인 서점을 연동한 다양한 마케팅으로 독자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교보문고와 출판계가 공생하는 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당장 도서정가제를 없앤다면 덤핑 등 큰 혼란이 초래되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책이 마련되기까지는 이를 유지하자는 것이 회사의 공식 입장이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서점에 대해서 그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인터넷 서점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자 고객의 요구”라고 강조하고 “<인터넷 교보문고>도 ‘합리적인 할인가격’으로 이용자를 늘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김대표는 “그동안 교보문고가 출판사에 장기어음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등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것도 차차 시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강남 등 서울 일원에 신규 점포를 마련해 고객을 분산시키고, 광주 부산 등 전국 대도시 진출을 서두르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김 대표 인터뷰 내용중 도서정가제와 인터넷 서점 관련 일문일답>
안녕하십니까. <책의향기>팀 윤정훈 기자입니다. 저는 8일 점심 식사를 겸해 김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아직 업무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한 뒤, 올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배우고 느꼈던 세계 경제의 흐름을 중심으로 출판산업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했습니다.
사견이라 할지라도, 전문경영인으로 출판계에 입성한 CEO의 생각은 앞으로 교보문고의 향배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리라고 생각합니다.
프로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김대표는 원유사업 개척으로 일찍이 국제적으로 감각을 익혔고, 현재 국내 제일의 이동통신회사로 오른 SK 그룹의 사업 런칭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김대표와의 첫 만남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을 말씀드리자면, 의중을 숨기지 않는 괄괄한 성품에다 열린 자세,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전문경영인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온화한 대화법을 구사하면서도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는데 상당한 추진력을 보여주리란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음은 1시간30분에 걸친 인터뷰 중, 도서정가제와 인터넷서점 할인 등 뜨거운 감자에 대한 개인적 입장을 밝힌 대목입니다. 똑 떨어지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행간을 잘 파악하시면 향후 교보문고의 향배에 중요한 단서들을 포착하실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Q.정가제 유지 문제로 온 출판계가 시끄럽다. 출판사가 도서를 할인 판매하는 인터넷 서점에 납품을 거부하는 단체행동에 교보문고도 어느 정도 영향 혹은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정가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
A: 내가 취임하기전의 일이지만, 정가제에 대한 교보문고의 공식입장은 ‘유지해야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당장은’이란 단서를 달고 싶다.
온라인서점, 오프라인 서점, 출판사 각각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걸린 문제다. 그리고 각 부문별로도 미료한 입장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난 이 같은 혼선을 책이란 상품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는데서 본다.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책이 있고, 당장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필요한 책이 있다. 후자의 겨우에는 이를 구입해줄 도서관 시스템 등 다른 지원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크게 구분되는 두 개의 시장을 한꺼번에 놓고 정가제 혹은 할인을 하자는 데서 발생한다. 처음에는 이 점부터 해결해야 한다.
지금처럼 서로 밥그릇 싸움처럼 아등바등거리는 것은 서로를 죽이는 일이다. 이런 상태는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교보는 그 해결책을 내는 위치에 있지 않다. 정부든, 시민단체든 누군가 나서서 심판을 봐야 한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논리를 만들어야 할 때다.
Q : 그렇다면 교보는 굳이 정가제를 유지해야한다는 단호한 입장은 아니다는 것인가?
A : 현재는 정가제를 유지하자는 것은 회사의 공식 입장이다. 아무런 대안 없이 이 제도를 깨는 것은 혼란만 야기하기 때문에, 어떤 합리적인 뒷받침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정가제를 하는게 낫겠다는 것이다.
물론 교보가 정가제 지지를 출판계와 고객에게 선언했지만 실은 교보는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고객들이 볼 때 ‘너희가 뭔데 책을 비싸게 파는데 총대를 매는가’면서 교보에 나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정가제편에 선 것은, 서둘러 머리를 맏대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가제가 영원히 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흑백논리 식으로 어느 입장에 설 것인가를 강요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교보는 정가제 유지편에 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 일본도 그렇지만 출판산업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로서의 정가제는 더 이상 유효한 모델이아니라고 보여지는데.
A : 그렇다. 정가제의 결론은 누가 가격 결정권을 갖는가다. 공급자인가 소비자인가. 현재는 공급자가 결정해왔다. 하지만 더 이상 출판이 공급자 마켓이 아니라면 프로듀서와 커스터머가 만나서 결정해야 한다.어떤 룰에 의해서 누가 가격을 정할 것인지 논의가 시급한 실정이다.
이론적으로 가격은 코스트(cost) 플러스 마진(margin)으로 구성된다. 코스트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산출되어야 하며, 마진은 시장에서 평가받는 것이다. 공급자 맘대로 가격과 마진을 결정하는 시대는 지금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까지 1만원짜리 책이라고 정하면 고객은 1만원 주고 사면 그만이고 왜 1만원이란 가격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가겠는가.
정가제가 무너지면 출판사들이 죽는다고들 하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장에서 마진을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좋은 책을 낸다면 정가제가 아니어도 살 수 있다. 즉 독자에게 인기가 높은 책이라면 마진을 높게 해도 잘 팔린다.
Q : 할인을 내세운 온라인 서점에 대한 대표의 소견은?
A : 책 뿐만 아니라 사이버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 온라인 서점의 책 값은 당연히 싸야 한다.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반면 오프라인 서점은 책을 고르고 들춰보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고객은 필요에 따라 온-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교보문고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양자를 통합한 마케팅을 개발해야 한다.
Q. 온라인 서점의 할인이 정가제의 주적으로 몰려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A : 가격을 후려치는 것으로 경쟁하는 것은 가장 멍청한 짓이다. 비용 감소만큼 단계적으로 내릴 만큼만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덤핑시장밖에 더 되겠나. 어떻게 알맹이 있게 가격을 매길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엔 아마존닷컴과 반즈앤노블이 있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는 브랜드 파워가 좌우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적자를 보건말건 책 이외의 상품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사업확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맞는 말이다. 온라인서점에 뒤늦게 뛰어든 반즈앤노블은 책만 위주로 온-오프를 병용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면서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 양자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반즈앤노블’ 사례가 성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교보문고도 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대표는 현재 책값이 3-5% 상당의 포인트제를 실시하는 ‘인터넷 교보문고’의 체재를 대폭 바꿔서 12월중 재오픈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용자를 늘릴 구체적인 방법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Q. 교보문고가 책 유통에서는 최대이긴 하지만 최고는 아니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기 명성에 흠을 낸 경우도 많은데…
A : 그간 교보가 우쭐해져서 건방진 행위를 했다면 잘못이다. 인정해야 한다. 자기는 공정하게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지만 1등이란 함정에 빠진 것일 수 있다. 독점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온 것은 경쟁시대가 되면 다 드러난다. 교보도 구습을 철저하게 까부시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체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3월이 넘는 어음을 출판사에 지급하는 문제가 영세출판사의 운영에 큰 타격을 준다는 기자의 지적하자) 영업 파트는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그랬다면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이라고 돈주고 사와서 고객에서 파는 상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카르푸나 월마트 처럼 바로 대금을 결재해 주는 시스템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Q.향후 교보문고가 해야 될 가장 큰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A.교보는 책을 사다가 파는, 즉 출판사와 독자 사이에서 책을 ‘쓰루(through)’ 해주는 중간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다른 역할도 필요하다고 본다. 전체 출판계와 고객의 레벨 전체를 올리는 작업을 교보가 해야한다. 출판사와 고객 사이에 ‘쓰루’되는 양을 많아져야 결국 교보가 남기는 것도 많아지지 않겠나. 이게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이밖에도 김대표는 여러가지 소견을 피력했습니다. 그중 핵심적인 내용은, 교보문고가 책 유통만이 아닌 이벤트 등 문화사업으로 역할을 확대해나가야 한다는 것, 대구점에 이서 부산이나 광주 등 전국 대도시와 강남 등 서울 주요 지점에 새 매장을 서둘러 여는 것 등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약 일주일 후 업무파악이 끝나는데로 발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