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자 수필 ‘외로움이 사는 곳’
엊저녁, 욕실에서 비누칠을 하다가 우연찮게 그의 은신처를 알아냈다. 무심코 돌아본 벽 거울 속, 뭉게구름 화창한 등판 한가운데에 어스름한 그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만져지지 않는 견갑골 등성이 아래 후미진 골짜기, 허리를 구부려도 어깨를 젖혀 봐도 내 손이 닿지 않는 비탈진 벼랑 외진 그늘막에, 출구를 찾지 못한 한마리 짐승처럼 그곳에 외로움이 산다. 나 아닌 타자만이, 오직 그대만이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한 조각 쓸쓸한 가려움이 산다.
-최민자 <손바닥 수필> ‘외로움이 사는 곳’ 중에서(연암서가)
최민자의 지성은 언제나 허를 찌른다. 놓치고 사는 그 무엇을 틈새에서 찾아내 아, 그런 게 있었지! 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내게 있어 글쓰기란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호시탐탐 가격해 들어오는, 정체불명의 허무에 대한 전면전 같은 것”이라 했다.
“내 안의 나를 뒤집어 햇살 아래 펼쳐 놓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 전면전에서 발각된 최민자의 외로움은 그 뒤 어찌 되었을까? 더는 거기 살지 못하고 달아났을까?
내 외로움의 근원은 부재에 있다. 기댈 곳의 부재, 기대고 조금 울 수 있는 어깨, 누구에게 상처받고 속상했을 때 판단하지 말고,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인내심 있게 내 말을 들어줄 어깨의 부재에 내 외로움이 산다.
‘무조건 내 편’ 없는 나를 위해 친구들은 멀쩡한 자기 남편을 흉잡는다. 내 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라 남편이라고. 하, 근데 이게 묘하게 위로된다. 정말 외로움은 타자만이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쓸쓸함인 걸까?
△이명지 주요 약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졸업. 수필집 '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헤이, 하고 네가 나를 부를 때' 등 다수. 제32회 동국문학상, 제6회 창작수필문학상 수상.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교수
첫댓글 아, 이명지 수필가의 '나를 사로 잡은 문장''이 올라와 있었네요.
최민자 작가의 수필을 저도 참 좋아합니다.
'나를 사로 잡은 문장' 코너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현재 33회까지 진행 중입니다.
이명지 수필가가 친한 분이어서 늘 폰에 저장하여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