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琺寶壇經 25 <參請(참정)>뵙고 청하다.
時有一僧 名智常 來曹溪山 禮拜和尙
問四乘法義 智常 問和尙曰 佛說三乘 又言最上乘 弟子不解 望爲敎示 惠能大師曰 汝自身心見 莫著外法相 元無四乘法 人心自有四等 法有四乘 見聞讀誦 是小乘 悟法解義 是中乘 依法修行 是大乘 萬法 盡通 萬行俱備 一切無離 但離法相 作無所得 是最上乘 乘是行義 不在口諍 汝修自修 莫問吾也
시유일승 명지상 래조계산 예배화상 문사승법의 지상 문화상왈 불설삼승 우언최상승 제자불해 망위교시 혜능대사왈 여자신심견 막착외법상 원무사상법 인심자유사등 법유사승 견문독송 시소승 오법해의시중승 의법수행 시대승 만법 진통 만행구비 일체무리 다리법상 작무소득 시최상승 시최상승 승시행의 부재구쟁 여수자수 막문오야
그 무렵 지상이라고 하는 한 스님이 (그때 한 중이 있었으니 이름이 지상이라,) 조계산에 와서 큰 스님께(화상에게) 예배하고 사승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큰 스님께 여쭈었다(화상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삼승을 말씀하시고(말하고) 또 최상승을 말씀하시었습니다(말했습니다). 제자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말하였다).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현재하는) 법에 사승이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이며, 법에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 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은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이니라(일체를 떠나지 않되 오직 법상을 떠나서 지어도 아무런 얻은 게 없음이 최상승이니라). 승은 행한다는 뜻이요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송계 소주
* 이 장의 핵심은 '만법진통만행구비 일체무리 단리법상 작무소득 시최상승'이고, 이 중에서도 '일체무리 단리법상 작무소득'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중요하다.
성철은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는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이라고 해석한다.
'일체무리'까지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뒷부분은 이해가 어렵다.
'단 법상을 떠나되'까지는 쉽다. 그런데 '작'이 앞에 붙느냐 뒤에 붙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본문에서는 뒤에 붙었다. 그런데 성철은 해석에서 '떠나고 짓되'라 하며 앞으로 붙였다.
뒤에 붙여 해석해도 '법상을 떠나서 짓더라도 소득이 없는 것을 최상승이라고 한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법상은 오직 한 가지 모양 뿐이라는 선언이다. 그러니 입으로 법상의 모양이 이러니저러니 중구난방하지 말라는 경계이다.
정리한다면, 만법진통 만행구비 일체무리, 즉 모든 법을 통달하고 모든 행위를 구비하여도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만상 일체에서 떠나지 않되, 단리법상 작무소득, 단 법상을 떠나 작위하여도 얻는 바가 없음이 곧 최상승이다.
즉 일체를 떠나지 않되 단 법상을 떠나 따로 짓는 것이 없음이 최상승이다 ㅡ 법상은 오직 한가지 똑같다. 그런데도 이러니저러니 법상에 대해 자기 개인의 견해를 표시하며 논쟁하지 않아야 한다 ㅡ 아집과 편견, 개인적 의견에 빠지지 말고 찬연한 법상 본연의 모습을 봐야 한다 ㅡ 일체만유가 공통으로 갖는 법사에 대한 해석의 다양화 방지 ㅡ 불교의 분파 걱정 ㅡ 口諍에 빠져 법상을 왜곡하지 말라.
*과거 한 시대의 고승 성철스님의 해석에 조그마한 토를 달아보았다. 성철의 국역이 적확한지 나의 국역이 적확한지는 후세를 기다릴 일이다.
26. 參請 (2)
又有一僧 名神會 南陽人也 至曹溪山 禮拜問言 和尙坐禪 見 亦不見 大師起打神會三下 却問神會 吾打汝 痛 (亦)不痛 神會答言 亦痛亦不痛 六祖言曰 吾亦見亦不見 神會又問 大師 何以亦見亦不見 大師言 吾亦見 常見自過患 故云亦見 亦不見者 不見天地人過罪 所以亦見亦不見 汝 亦痛亦不痛 如何 神會答曰 若不痛 卽同無情木石 若痛 卽同凡夫 卽起於恨 大師言 神會 向前 見不見 是兩邊 痛不痛 是生滅 汝自性 且不見 敢來弄人 神會禮拜 更不言 大師言 汝心迷不見 問善知識覓路 以心悟自見 依法修行 汝自迷 不見自心 却來問惠能見否 吾見自知 代汝迷不得 汝若自見 代得吾迷 何不自修 問吾見否 神會作禮 便爲門人 不離曹溪山中 常在左右
우유일승 명신회 남양인야 지조계산 예배문언 화상좌선 견 역불견 대사타기신회삼하 각문신회 오타여 통 (역)불통 신회답언 역통역불통 육조언왈 오역견역불견 신회우문 대사 하이역견역불견 대사언 오역견 상견자과환 고운역견 역불견자 불견천지인과죄 소이역견역불견 여 역통역불통 여하 신회답왈 약불통 즉동무정목석 약통 즉동범부 즉기어한 대사언 신회 향전 견불견 시양변 통불통 시생멸 여자성 차불견 감래농인 신회예배 갱불언 대사언 여심미불견 문선지식멱로 이심오자견 의법수행 여자미 불견자심 각래문혜능견부 오견자지 대여미부득 여약자견 대득오미 하불자수 문오견부 신회작례 편위문인 불리조계산중 상재좌우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신회라고 하였으며 남양 사람이다. 조계산에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큰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아래로)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다.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곧 무정인 나무와 돌과 같고, 아프다 하며 곧 범부와 같아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회야, 앞에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양변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드는가?"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라.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라.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느니라.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신회가 절하고 바로 문인이 되어 조계산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 모시었다.
♧ 성철 역
* 최상승(最上乘) : 삼승(三乘)을 초월한 최존최상제일(最尊最上第一)의 선문(禪門)이다.
♤ 송계 소주
혜능은 637~713년이고 신회는 670~762년이다. 혜능이 5조 홍인의 의발을 받았으나 사망 때까지 남종선을 크게 떨치지 못했고, 홍인의 상좌였던 신수의 북종선이 중국선불교의 주류였다.
신회는 옥천사에서 신수에게서 3년 동안 수행하다가 조계산에 혜능을 찾아뵙고 수행하여 밀인을 받았다.
신수는 하택종의 시조로서 안사의 난 때 향수전을 모아 황실의 재정을 도와 황제의 신임을 받았다. 그 힘을 이용하여 스승 혜능이 육조대사임을 황제로부터 공인받았다. 이후 신수 계의 북종선은 쇠락하고 혜능 계의 남종선이 선불교의 주류가 되었다.
인간은 혼자 있어도 마음이 갈등한다. 그러니 둘, 셋, 넷 ....., 수가 늘어날수록 갈등이 폭증한다. 평화스럽고 안정된 가정도 눈에 안 보이는 갈등이 내면에 뒤엉켜 흐르니, 이웃, 학교, 직장, 모임, 단체, 조직 등 작은 사회와 정당, 군대, 국가 등 큰 사회 모두 거대한 갈등의 뒤엉킴 속에서 각 인간들이 활동하고 있다.
삶의 진리를 탐구하는 종교계에는 갈등이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서기 700년 전후 50년 동안 북종선과 남종선의 갈등과 알력이 극심했다고 중국불교사는 증언한다. 비록 의발은 받지 못했지만, 신수와 제자들은 의발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면서 절치부심한 결과, 선불교단의 주류가 되었다. 혜능 사후 남종선은 더욱 미약해졌다.
그러나 하택신회가 안사의 난 후에 궁핍해진 황실 재정에 신도들에게서 거둔 거금을 보탬으로써 일약 황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신회가 한 일은 스승인 혜능이 육조대사임을 황제로부터 공인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인은 황제로부터, 즉 권력과 금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민중신도들로부터 받는 것이다. 북종선이 주류가 된 까닭은 민중신도들로부터 환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제로부터 육조혜능이 공인을 받자 남종선이 수직 급상승을 하였다. 황제가 신자가 되니 신하들 모두, 귀족들 다수가 우루루 신도가 되었다. 백성들도 그 바람에 휩싸여 남종선을 신봉하게 되었다.
이것을 보면 남종선이 권력에 의해 과대포장 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기성종교 모두에 해당한다. 그 대표적 현상이 대형교회, 웅장한 미사, 십일조와 헌금, 중건에 중건을 거듭하는 사찰과 고액의 시주, 일탈과 방탕 등이다.
혜능이 가르치는 요점은 '心悟自見 依法修行'이다. 8자로 아주 간단하다. 그런데 그 8자 위에 후인들은 왜 그토록 많은 옷을 입히는가. 몇 십겹의 옷을 벗기면 달랑 8자만 있다. 혜능이 길을 잘못 들었나 신회가 이정표를 잘못 세웠나. 자기 근량도 제대로 모르는 입만 살아있는 경박한 신회가 괜한 자만심에 혜능의 근수를 달아보려다가 패하여 문도가 된 게 득이었나 실이었나 혜능에게는.
그런데, 인간과 인생의 본질 자체가 과대포장인 모양이다. 남자가 1회 사정을 하면 약 2~3억 분의 정자 님들이 자궁을 향해 질주한다. 그중에서 난자에 진입 성공은 단 한 분이다. 눈에도 안 보이는 그 작디작은 씨앗이 트고 자라 60킬로 성인이 되면, 도대체 몇 조분의 1이 되는가?
공수래공수거인줄 뻔히 알면서도 만수래만수거에 연연하는 인간들. 이런 말 하는 나 역시 후자에 속하는 범부이다.
하여튼 가장 침묵하는 종교라는 선불교에서 공이니 무니 선이니 오도니 말이 무성하고 있다.
그 무렵 지상이라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큰 스님께 예배하고 사승법四乘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큰 스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삼승을 말씀 하시고, 또 최상 승을 말씀하시었습니다, 제자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혜능대사가 말씀 하셨다,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 사승법이란 없다,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이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이며, 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 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는 바가 없는 것이 최상 승이다, 승乘은 행한다는 뜻이요,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時有一僧 名智常 來曹溪山 禮拜和尙 問四乘法義 智常問和尙曰 佛說三乘 又言最上乘 弟子不解 望爲敎示 惠能大師曰 汝自身心見 莫著外法相 元無四乘法 人心自有四等 法有四乘 見聞讀誦是小乘 悟法解義是中乘 依法修行是大乘 萬法盡通 萬行俱備 一切無離 但離法相 作無所得 是最上乘 乘是最上行義 不在口諍 汝須自修 莫問吾也>
<*법달 스님이 법화경에 대해서 의심 가는 곳을 묻고 난 후에 조계산에서 온 지상스님이 와서 햬능 대사께 사승 법四乘法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삼승 법을 말씀 하시고 또 최상승법을 말씀 하셨는데, 자세하게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혜능대사께서는 말씀 하시되 너는 자기 마음을 볼 것이지 밖으로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가 사승법이라는 것은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눈 법일 뿐이다, 보고 듣고 욈은 소승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아는 것은 중승中乘이고, 법의 의지하여 수행하는 것은 대승이요, 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만 가지 행을 다 구족하는 것은 최 상승이라고 한다, 승乘이라는 것은 행行한다는 뜻이지, 입으로 다투는데 있지를 않다 그러니, 네 마음을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불교 수행은 자력신행입니다, 수행하는 것도 자기가 체득해야지, 남에게 의존 해봐야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은 신회라고 하였으며 남양 사람이다, 조계산에서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큰 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습니까?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느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 신회가 또 물었다, 큰 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 하셨다, 내가 본다고 한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 것이다,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신회기 대답하였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무정인 나무와 돌과 같고, 아프다고 하면 곧 범부와 같아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 하셨다, 신회야! 앞으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양변兩邊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하는구나? 신회기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라,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다,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신회가 절하고 바로 문인이 되어 조계산 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서 모시었다,
<又有一僧 名神會 南陽人也 至曹溪山 禮拜問言 和尙坐禪 見亦不見 大師起打神會三下 却問神會 吾打汝 痛不痛 神會答言 亦痛亦不痛 六祖言曰 吾亦見亦不見 神會又問 大師 何以亦見亦不見 大師言 吾亦見 常見自過患 故云亦見 亦不見者 不見天地人過罪 所以亦見亦不見也 汝亦痛亦不痛 如何 神會答曰 若不痛 卽同無情木石 若痛卽同凡夫 卽起於恨 大師言 神會向前 見不見 是兩邊 痛不痛 是生滅 汝自性 且不見 敢來弄人 神會禮拜 更不言 大師言 汝心迷不見 問善知識覓路 以心悟自見 依法修行 汝自迷名 不見自心 却來問惠能見否 吾見不自知 代汝迷下 何不自修 問吾見否 神會作禮 便爲門人 不離曹溪山中 常在左右>
<또 한 스님이 와서 물었는데 신해스님이었다, 신해스님은 남양 사람으로 조계산에서 왔다, 혜능대사께 예배하고 묻기를 큰 스님께서는 좌선 할 때 봅니까? 보지 않습니까? 묻는 신해스님을 혜능 대사께서 세 번 때리고 묻기를 네가 너를 때렸는데, 아프냐? 아프지 않느냐? 신해가 말하기를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혜능 대사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도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 중국 조사님들은 후참 자가 물으면 물은 질문을 타고 묻기도 합니다, 그 만큼 실 참 실구를 중요 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큰 스님께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본다고 한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기 때문이고,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세상 사람들의 허물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신해가 대답하기를 아프다고 하면 무정물인 목석과 같을 것이고, 아프다고 하면 범부와 같아서 때린 사람에게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신회스님은 영리하기는 해도 법의 이치에 맞는 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혜능 대사께서 말씀을 하셨다, 신해야! 본다는 것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양변兩邊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것도 마음의 생멸심이다, 그런데 너는 자성을 깨달지도 못하고서 와서 법을 희롱하느냐? 꾸짖으니 신해스님이 꿀 먹는 벙어리가 되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혜능 대사께서 말씀 하시기를 불법 수행은 네가 스스로 미혹함을 내가 대신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스스로 닦아 깨쳐야 한다, 라고 말씀하심을 듣고 신해스님도 육조 혜능스님을 모시고 제자가 되었다는 일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