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교회샬롬기악부탄생과정
친구인 목사가 있는데 아주 오래된 묵은 포도주 같은 사람이다. 소신도 있고 실력도 갖추고 당연하겠지만 목사로서 품위도 있다. 나와는 신학교동기였기도 하지만 20년이 훨씬 넘도록 우정을 이어오고 때로는 그 우정을 확인도 하면서 목사와 집사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고저 서로 격려하고 노력하고 있다.
빈 말일런지는 몰라도 내가 목사가 안되고 집사가 되었어도 아주 보기좋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집사친구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유일하게 목사에게 반말치고 잘못되면 잘못되었다고 야단(?)치는 집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잘못을 별로 발견 못했으니 그 친구에 그 친구이다.
“현석이 좋은 목사님 소개할터이니 시간 잠깐만 좀 내소” 그렇게 전화가 왔는데 없는 시간이라도 내야하지 무엇인가 좋은 일을 도모하려는 것이겠지 싶었다. 늘 그렇게 좋은 일만 내게 안겨주는 흥부에게 있어 제비 같은 친구이다.
우리집에 모시고 온 목사님 두 분이셨는데 한 분은 광주서현 교회 담임목사님 이었고 다른 한 분은 화순보월교회 김정렬 목사님 이셨다. 특히 김정렬 목사님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그동안 사역에 대한 이야길 들었을때 남의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화순군 이서면이면 지금이라도 호랑이가 나올것 같은 벽촌이다. 그곳에서 목회하면서 시골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를 지도해 악기연주를 제법하여 연주회도 하고 방송에까지 소개 되었다고 하니 목사님의 열정이 한 없이 커 보여 나역시 가까이 지내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친구인 박목사가 알았던것이다. 자기보다 더 친하게 지내도 된다고 양보하면서 생색 을 내는것이었다.
일의 시작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교회 아이들에게도 그런 교육의 기회를 주고싶었다. 보월교회 아이들이 했다면 우리교회도 가능하지 않겠는가,그런일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음악에 대한 열의를 갖게하고 나아가서 악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교회나 개인에게 얼마나 유익할까 를 생각하니 괜이 혼자 가슴이 설레이며 뛰기 시작했다.
문화에대한 이해의 폭이 넓으신 목사님은 곧바로 협력자가 되어주시고 보월교회를 직접 방문해 주시기 까지 해 주셨다. 오후예배시 초청하여 설교와 아이들 공연까지 함께 듣고 보는 것으로 허락을 해 주시어 그렇게 추진되었고 감사하게도 예배와 찬양은 큰 은혜를 끼쳤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셨고 결국은 이루실것이라는 확신이 들긴 했지만 악기를 사야하는 부담과 그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여러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어서 나 역시 한 발을 빼고 기회만 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여러가지 일로 인하여 정신이 없는데 합주반까지 내가 관여하면 사실 잘해야 본전인것을 내가 왜 십자가를 지랴 하는 심정이 앞섰던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한 의도를 아신 하나님이 그냥 그대로 두지 않으신 사건이 생겼다.
목사님께서 나를 청년부 부장으로 내정하여 임명하신것이다. 청년예배를 참석해 보니 게나 고동도 하는 기타하나 연주하는 청년이 없었다. ‘ 아아 통제라 ’ 이렇게 우리교회문화 가 폐쇄적이었다. 악기하나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데 그 흔한 기타하나도 연주하지 못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처럼 서서 찬양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내가 예수님 영접했던 30년 전 모습의 분위기 였다. 물론 피아노는 있었지만...
그래서 청년부 부장으로서 인사말을 하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기타를 배우고 싶은 사람 은 명단을 제출 하라고 했더니 다섯명정도 적어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나역시 혼자 터득한 기타솜씨라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역부족이라 두려웠다.
하여 보월교회 로 전화를 했다. “김목사님 내가 사고를 쳤습니다.” “집사님 무슨사고요” “다름이 아니라 실력도 없으면서 기타 가르쳐 준다고 학생들에게 약속을 했으니 목사님이 지도해 주셔야 겠습니다.” “그러면 기타말고 실내악으로 갑시다” 할렐루야 그것을 주님은 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기타를 할 정도의 의욕이면 다른 악기 충분합니다.” 라는 것이 목사님 답변이었다.
우리교회의 합주반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악기가 없으니 우리가 보월교회로 가야만 했다. 그 때가 2월 초이니 정확히 한 달전이었다. 놀라지 마시라 그 때 지원자가 스므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어떨까? 역시 그 정도의 숫자가 유지되고 있고 지난주 까지 악기도 모두 준비가 되고 3월4일 오후에는 서툴지만 초연에 성공까지 했으니 음악에 대한 열의가 얼마나 대단하고 한편으로는 목 말라 했는지 가늠해 볼만도 하다. 아!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할 일인가!
그림으로 만 보고 방송매체를 통해서 보았던 여러악기들을 우리가 직접사서 우리손으로 연주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우리앞에 현실로 서있는것이다.
집사람은 성가대 지휘자로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조규삼장로님 사모님 이애자 집사님은 초연하기전 연습할 때 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하니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눈길을 마다않고 매일 무등산을 가로질러 화순보월까지 연습을 하러갔고 그곳 학생들에게 지도받으며 함께 라면을 끓여먹기도 했다. 지도해 주시던 목사님이스므날 정도 해외에 나가시고 아니계실땐 사모님과 그 교회 학생들이 직접 우리교회로 방문하여 지도해 준 그 모든 사랑이 결정체가 되어 남의일로 만 알고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던 일이 우리의 일이 되고있는것이다.
이 일에는 헌신된 여러사람이 있었다. 나종주 장로님께서는 직접운전을 해 주셨고 본인이 함께 클라레넷을 배우기도 했고 청년들에게 일일이 연습장소와 시간을 알으켜 주기 위해 전화해 준 이름모를 형제자매들, 그리고 보월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학생들 특히 우리교회 목사님, 사모님, 성도님 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만 배나 넘치길 바란다.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사역에 쓰임받은 기쁨을 갑절이나 누리시기 바란다. 무에서 유가 되는것은 창조의 과정이다. 이렇듯 우리교회 샬-롬 기악부는 은혜로 탄생이 되었고 앞으로도 은혜로 자라갈 것이다.
우리학생들과 청년들이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 안에 거 할 수 만 있다면 우리모두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것이라 확신한다.
우리교회 기악부는 어린아이에서 부터 장로님에 이르기 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그러기에 소망이 있다. 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는 것이다. 계속하여 주일 오후에 합주를 통하여 연주실력을 쌓아가며 실력이 향상되면 예배시 함께 찬양을 하려고 한다. 그 날이 어서와 우리마음이 잘 기경된 땅이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모든 교우가 되길 참으로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첫댓글 교회를,,섬기며,,아끼는맘하나님을,,사랑하는,,맘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