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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기도(욥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아멘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증가함에 따라, 그리 멀지 않는 날에, 마스크를 벗고, 평범한 일상생활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코로나 19의 4차 대유행이 시작됨으로, 이전보다도 더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은 내일부터, 오후 6시부터는 2인 이상이 모일 수 없다고 합니다.
어제와 오늘, 청주대에서 미스터 트롯 공연이 4차례 진행됨으로 인하여,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에, 청주에 사는 우리들은 더욱더 조심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사는 것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한 단면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마도, 욥처럼 고난과 시련을 당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쫄딱 망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갑절의 복을 받았다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 연단을 받고, 갑절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갑절의 복을 받은 욥의 신앙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오늘 읽은 말씀이 바로 정답입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아멘.
여러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스런 일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를 가리지 않습니다. 편한 삶이기 보다는 하루하루가 고된 날들의 연속일 때가 많습니다.
어찌되었건, 고통이나 고난의 문제는 참으로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도 종종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섬기는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이렇게 잠자코 계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신앙을 가진 내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뒷짐만 지고 계십니까?”
이사야 48: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택함 받은 사람들에게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난이 비켜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편안한 자리보다는 고난이 따르는 자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길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길이기에, 이 길을 벗어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책임으로부터 파생되어지는 고난이든,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고난이든, 어떤 고난이든지간에,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한 고난이라고 한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나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하나님이 주신 고난이라고 한다면,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하여야 할 것입니다.
잠언 21:16절을 보면,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요?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할까요? 아니면, 사망의 길을 걸어야 할까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귀한 생명을 누리며, 더 나아가,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힘쓰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가진 욥은 하루아침에, 그 모든 삶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며, 따른다고, 힘쓰고, 애썼지만, 하루 아침에, 이유도 모른 채, 폭삭 망해 버렸습니다. 모든 삶의 기반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 욥은 그의 인생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어떻게 해서든지, 이해해 보려고,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욥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비참한 실패뿐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생각조타도 할 수 없는 망연자실한 상태였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져 버렸습니다. 움직일 힘도 없었습니다. 울려고 해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리쳐 보고 싶어도,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욥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욥은 갑작스럽게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그 어떤 말로, 그의 아픔과 슬픔을 표현해낼 수가 있겠습니까?
욥은 힘없이, 겨우 일어나, 그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다시 땅에 엎드렸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아픔과 슬픔이 그대로 배어 나오고 있습니다. 크게 소리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크게 소리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눈물조차 없었지만, 그는 마음을 찢으며, 크게 울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는 차분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그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욥은 땅에 엎드린 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하나님을 원망할 법도 한데,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 이제,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지금껏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섬기며, 충성했는데, 이렇게 응답하십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면, 이러실 수가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라고 울부짖을 법한데, 오히려, 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어쩌면, 이 슬픔과 아픔을 믿음으로 버터 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이 믿음마저 놓아버리면, 그는 나락으로 떨어질까봐, 겁이 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요. 내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을 그냥 받아들이겠습니다.”
여러분! 겨우겨우, 그렇게 아픔과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데, 욥, 그 자신의 몸에,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났습니다. 욥은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었습니다. 이제는 슬픔이 아니라,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아픔과 슬픔, 고통이 뒤범벅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그의 아내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고 말했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욥을 보고 있노라니, 무슨 말이라도 해 주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없습니다. 욥의 아내라고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욥이 당하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함께 맛보았을 것이고, 그리고, 욥이 당하는 고통을 옆에서 지켜 보고 있노라니, 그의 마음도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 말처럼, 어쩌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 같다고 하는 생각이 욥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도, 욥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욥의 마음을 위로해주기보다는 아픈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했습니다.
같이 있다고 해서,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해 주었다고 해서, 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시 돋힌 말은 더욱더 아프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아내의 말에,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욥은 모든 일에 있어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과연 어떤 이유로 인하여, 일어나는 일인지, 정확하게 그 이유를 모른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그 모든 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욥은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상한 마음을 안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아마도, 욥은 그 순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가 당하고 있는 고통의 이유를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문제 해결의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아굴의 기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욥은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그는 배불렀을 때, 하나님을 모른다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욥은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그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욥의 친구들이 욥의 이야기를 듣고, 욥을 찾아왔습니다.
욥이 큰 재앙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바쁜 모든 일들을 팽개치고, 욥을 찾아왔습니다.
세 친구들이, 옷을 찢고, 재 가운데 앉아 있는 욥을 보았을 때, 그들이 알고 있던 욥이 아니었습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욥의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소리 지르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 일 동안, 욥과 함께, 재 가운데 앉아 있었습니다. 욥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그에게 한 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마땅히 위로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사정을 듣고서, 멀리서, 그를 위로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욥이 당하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보고서,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욥의 곁에서, 그와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자, 욥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친구 중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에게,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욥 3:7-9)고 말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둔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욥이 당하는 모든 아픔과 고통은 욥의 잘못으로 인하여 생긴 결과라는 것입니다.
“너의 잘못으로 인하여, 자녀들에게 재앙이 임하였고, 너의 죄악으로 인하여, 너의 재물들이 사라졌고, 너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너의 몸에 종기가 났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욥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어떤가요?
어떤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난 것은 그의 잘못 때문인가요?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그의 잘못으로 인하여 일어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고, 욥의 친구들처럼, 무조건 “너의 잘못 때문이다”라고 쏘아붙일 때가 많습니다.
“너 때문이야. 너가 잘못했어. 빨리 잘못했다고 해.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어쩌면, 그의 잘못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의 잘못이 아니라, 혹시, 내 잘못으로 인하여, 그가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어떤 일들에 대하여, 섣불리 판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 욥기서는 길고 긴 책입니다. 4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자리에 앉아, 한 번에 읽기에, 버거운 내용입니다. 내용도, 그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욥에 대하여 알고 있는 내용은 1장과 2장만 읽으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무려, 3장에서 37장까지는 욥과 그의 세 친구들간의 길고 긴 논쟁입니다.
38장에서 42장까지는 욥에게 직접 나타난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욥과 그의 세 친구들간의 길고 긴 논쟁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논쟁한다고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논쟁은 때로는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그런데, 직접 나타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욥은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2-3)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욥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어찌, 우리가 모든 사정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때로는 내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할 때가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속마음과 사정들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모든 문제의 해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예배시간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 다 들어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욥은 세 친구들간의 길고 긴 논쟁을 통해서는 깨닫고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많이 안다고, 말은 했지만, 무지하다고 하는 것만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는 금방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말할 뿐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욥기 42:5-6절을 보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 있다고 해서, 회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다고 해서, 완벽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장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어리석은 일을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무조건 나만이 옳다고 하는 주장을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내 뜻대로 모든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는 것을 무리하게 관철시키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미워해서도 안됩니다. 증오해서도 안됩니다.
세 친구들이 욥을 위로한다고 찾아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욥에게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지금껏, 가장 친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긴 논쟁을 통하여,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좋았던 관계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위로가 되어 주려다가,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아멘.
욥은 주님께, 자기 친구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를 대적했던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분노를 돌이키시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풍성한 복을 내려 주옵소서.”
그러자, 주님께서 욥의 기도를 들으시고 친구들을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덤으로, 보너스로, 욥의 재산을 회복시켜 주셨는데, 욥이 이전에 가졌던 모든 것보다 배나 더 돌려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한 욥의 기도를 들으시고,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욥의 말년에 이전보다 더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욥은 오래오래 살면서, 자손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며 살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참 아름다운 결말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결말이 좋은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만약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범죄했다면, 그의 결말이 좋았을까요?
만약 욥이 친구들을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그의 결말이 좋았을까요?
더 나아가, 만약 욥이 하나님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욥의 결말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설령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미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풍성한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맡기오니, 책임져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오니,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