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TRA>와 <구룡사> 그리고 그 이웃 <포이동 성당>
구룡산( 306 m)은 대모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龍들이 지상의 일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 갔으나 꾸물럭대던 막내 龍 한마리
만이 하늘로 오르지 못했다.
아홉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간 산. 열개의 계곡이 있었고 각 계곡에는 하나의
우물이 있었다. 남은 막내 용은 양재천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용의 승천 좌절 모티브인셈이다.
아마도 구룡산에서 양재천을 내려다 보면 그 모습이 용의 형상일 듯 싶다.
평소에 나는 잠을 자면서 꿈을 많이 꾼다고 말을 한적이 있다.
뿐만아니라, 어쩌다가 잠에서 깨어나 조금 서럽고 억울했던 어떤일이 떠오르면 눈만
말똥말똥해지고 잠을 못 이룰 때가 더러 있다.
이럴때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꼬물락거리거나, 작은 베낭을 메고 뒷산으로 움직인다.
밤 두시이건 세시이건 시간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대모산은 산 기슭에서 정상까지 가로등을 설치해 놓아서 그냥 쉽게 걸으면 된다.
대모산 정상에서 서쪽방향으로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은 어둡다.
그리고 그길은 <구룡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어두움에 조금 익숙해진 야행 산길은 무서움보다는 때론, 외로움이 있다.
<구룡산>에 올라 펼쳐진 도시의 실루엣은 별안간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쓸쓸하다. 잠 못이룬 밤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나온 자의 독백이다.
젊은 시절 회사에서 해외출장 보내주는 것을 큰 특혜를 받은것으로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또한 왠만한 도시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개선장군처럼 으시대며 출장선물로 나체볼펜이나 양담배를 나누기도 했다.
그 시절, 출장 명령을 받고 호주의 시드니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 다녀 온적이 있다.
실로 70년대 말에 내가 도착해서 본 정경은 황홀 그 자체 였다.
(그때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라)
나는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곳 문을 두드렸고, 그곳
관장들의 정감어린 서비스를 받았다.
잠시 스쳐가는,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에게 하루종일 운전하여 동행해주고,
다음날의 스케줄을 묻던 그들의 모습이 선하다.
그래서 그 분들은 기억도 안 나겠지만 나는 또렸이 기억한다. 이ㅇ재와김ㅇ중 관장.
나의 상상은 한국인 별로 없는 해외생활에 외롭고 정에 굶주려 있었을게라고 짐작
하고 있다. 잠 못이룬밤 산속으로 뛰어든 자의 독백처럼......
KOTRA는 회현동, 삼성동 <코엑스>시대를 거쳐서 지금 내가 내려다 보고 있는 <구룡산>
기슭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 동기생들은 6-7명 정도 코트라에 입사한 걸로 알고 있다.
경제과 한영길은 일찍 떠나서 한국타이어 首長이 되었고, 언론사 공부 같이 하던
재사(材士) 불문과 윤광덕 그리고 경제과 정해수가 부사장으로 영예를 누렸다.
한영길형과 정해수형은 나를 매화산 멤버로 받아들여줘서 일주일에 한번정도
같이 걷고 있다.
또한 구룡산 기슭에는 <능인선원>이 있는데 아주 큰 "석가여래상>이 금빛으로 치장
되어 빛나고 있다.
이곳의 首長은 지광(智光)스님으로 속명은 이정섭이다.
이력이 독특한 분이다. 한국일보 기자에서 해직되고 수배자 신세로 절에 숨어들어
카톨릭신자(세례명 아우구스티노)에서 불교로 개종하였다.
고졸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서울대학교 종교학 박사이다.
<법륜스님>이전에는 과감한 법문으로 유명세의 값을 치뤘다.
그곳에서 한 블럭쯤 떨어진 곳에 <구룡사>가 구룡공원을 맞대고 <포이동성당>과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다.
<구룡사>는 <통도사>의 서울 포교당이다. 구룡산 자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구룡사는 <통도사>의 원 위치에서 온 또다른 용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
원래 가회동에 있던 포교당이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지장율사>가 <통도사>를 지으려 할 때 아홉마리의 용이 사는 큰 연못이 있었다.
<지장율사>가 주문과 경을 읽으며 자리에서 떠나주기를 청하였으나, 용들은 거절을
하였다.
이에 <지장율사>는 종이에 火자를 써서 하늘에 날려버리고 법장으로 연못의 물을
저은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세마리의 용은 죽게되고 피의 흔적이 바위에 남아있다는 것이
<용혈암>이다.
다섯마리는 <통도사> 서남쪽 산너머 골짜기로 도망쳐서 <오룡곡>으로 불리운다.
한마리는 눈이 멀어 이 절을 지키는 수호전사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웃>이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으니 가족처럼 가깝고 친밀한 의미일 수도 있겠다. 문학에서는
갈등,우정,사랑,협력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기도 한다.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불편하고, 때론,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느껴진다면 등을 맞대고
있다고 하더라도 머나먼 他者일 뿐이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의 긴 비유를 들어 대답했다.
<포이동성당>과 <구룡사>는 공원을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이다. 적어도 거리상으로는
아주 지척에 있다.
<포이동성당>도 크고 <구룡사>건물도 우람하다. 성당 외벽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상은
브라질 상파울루의 예수상을 연상 시킨다. <구룡사>의 외관도 화려하다.
신학자 <한스 큉>은 "이웃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가 없으면 종교간의 대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간의 대화가 없으면 종교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간의 평화가 없으면
사회는 기쁨을 잃게된다."고 했다.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근본주의> 구룹은 실제로 살인을 하지 않고
실제로 누군가를 치지도 않지만 그 자체로 폭력이다.
자기가 속한 성직자에게 들은 종교밖에 아는 것이 없는 종교인은 "종교문맹"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의 비교종교학자 오감남교수는 ["미국 전체를 놓고 보면 신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전국 인구의 50퍼센트를 밑돈다.
미국 교도소에 갇힌 수감자 가운데 무신론자는 0.5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나머지 99.5퍼센트는
모두 신을 믿는 사람들이다."고 말하면서 이제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형국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 교인이 불교 사찰에 들어가 기물을 파손한 것을 보상하기 위해 모금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서울기독대>의 손원영교수 이야기는 예수가 말하는 "자유", 부처의 가르침
"해탈", 공자가 언급한 "불유구(不踰矩)"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경지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존 레넌>의 Imagine의 노랫말 처럼, ^천국(극락세계)도 지옥도 종교도 없으면 싸울일도
목숨을 받칠 일도 없고 세상에 평화가 온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고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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