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밤처럼 주운 행복
두자리 수에서 두어날 머물던 돌림병이 다시 세자리수로 껑충 올라가 서민을 불안케 한다. 구월도 거침없이 하순으로 치달으니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은 어느새 코앞에 이른다. 집안에서 내내 머무르다가 행여 집밖을 나가면 숨막히는 마스크를 귀에 걸어야 한다.
오늘 아침이다. 강원도민일보에 문화부 김기자를 만나고 나오다가 갑자기 오랫동안 외면한 소양로 번개시장이 마음을 동하게 한다. 벌려놓은 문화재생사업이 절반은 넘어서 제법 골목이 환해지며 재생의 의미를 되새긴다.
터줏대감처럼 골목에서 트럭위에 반찬을 팔던 번개시장 산증인 아주머님을 만나 인사를 하고 건강을 서로 염려하고, 되돌아오던 길이었다.
-매운 순대국 집
13년전 울림으로 선물한 시화가 아직 걸려있는지 퍼뜩 생각나서 뜬금없이 발길을 향했다.
돌림병으로 손님이 없다.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니 누군지 사장님은 통 모르신다.
-아! 아직 제 그림이 걸려있군요.
-네-, 선생님이시군요. 오래간만이시네요. 그 땐 헤어스타일도 퍼머를 안하셨는데-,
-색이 많이 바래졌군요. 다시 작품을 새로 갈아드릴까요?
- 아닙니다. 이 그림이 너무 좋아요. 노오랗게 바랜 종이가 세월을 말해주니 더 차원높게 보이지요?
깜짝 놀랐다. 오히려 내가 쑥스러웠다. 새것이 아닌 오래된 것이 더 가치있다고 하시면서 13년전이 개업하고 며칠 되어 카드기도 준비가 안되었을 당시라고 회고하시며, 가게를 접어도 이 그림은 영원히 가보로 보존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연일 마스크를 썻다 벗었다를 하며 예민한 날들을 보내던 나의 하루가 갑자기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고마웠다. 진실된 사장님의 눈빛에 감동이었다. 점심때 까지는 두어시간 전이지만 나는 순대국밥을 시켰다.
아니 아내 1인분을 더 주문하고 잘 보존한 감사를 반찬으로 맛있게 점심을 당겨 먹었다.
다 마치고 현찰을 드렸더니 겸손히 받으시며 이젠 카드도 되는데 -하며 웃으셨다.
정오가 되면서 조용했던 식당에 축하라도 하듯 계속 손님이 줄을 잇는게 아닌가!
갑자기 날개라도 달은 듯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내 작품을 칭찬해 주는 분이 진정 고맙다.
사노라면 이런 날도 있다. 마치 윤기나는 왕알밤을 주운 기분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