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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생태계의 보고(寶庫) 우포늪
우포늪은 뭍(陸)도 아니고 물(水)도 아닌 습지늪이다. 여름 홍수철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수심이 한 길 안팎의 깊이를 유지하여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사는 자연 생태계의 보물 창고같은 그런 곳이다. 1998년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고, 이듬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습지로 자리매김하였다. 더욱이 2008년 람사르 총회가 국내 창원에서 열리면서 우포늪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몇 번의 발길에도 우포의 일부만 대충 훑어보고 돌아오기 일쑤였는데, 이번 기회에 구석구석 온전한 모습을 둘러보리라 이틀간의 충분한 일정을 잡았다. ‘우포늪 생태관’이 위치한 세진리 주차장을 출발, 늪쪽으로 내려가면 길이 좌우로 갈라진다. 오른편 길은 대대제방을 거쳐 사지포로 연결되고, 왼편 길은 전망대를 지나 우포늪을 끼고 쪽지벌과 목포 방향으로 이어진다. 흔히들 우포늪으로 통칭하거니와 4개의 크고 작은 늪이 창녕군의 유어면 세진리와 대대리, 이방면 옥천리와 안리, 대합면의 주매리 등, 3개면에 걸쳐 총 70여만 평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늪이다. 소벌(우포)를 중심으로 동북향에 모래벌(사지포)이, 서남쪽엔 쪽지벌, 서북향에 나무벌(목포)이 위치하여 실로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억새꽃이 만발한 대대제방
첫 출발을 우포의 동쪽편과 대대제방을 거쳐 사지포까지 살펴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대대제방을 따라서 걷는 길은 우포늪의 경관이 가장 잘 보이는 코스다. 오른편으로 화왕산의 연맥과 창녕의 너른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왼편으로는 우포의 호수면이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장쾌한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애초엔 들판의 상당 부분이 모두 늪지대였던 것을 일제 때 둑을 높게 쌓고 매립하여 농경지로 바꾸어 버렸다. 코스모스와 억새로 이어진 2km 남짓의 둑방길에서 바라보는 우포는 온통 철새의 무리들로 가득하다. 논병아리, 쇠백로, 중대백로, 왜가리, 큰고니, 청둥오리 등 62종의 조류가 이곳을 찾고 서식한다니 이쯤이면 철새의 낙원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몇 마리씩 아니 수십 마리씩 어울려 놀기도 하고 연거푸 자맥질도 하면서 한적한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망원경이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어 새떼들의 노는 모습을 조망하기에 더없이 좋다.
온갖 철새들의 안식처 우포늪
우포늪 위쪽 대대제방이 끝나는 지점은 화왕산에서 시작되는 토평천이 흘러드는 입구가 된다. 우포 둘레길을 자전거로 돌아보는 이들이 여기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지점이다. 둑을 내려서면 이 일대가 온통 억새, 갈대, 부들, 왕버들 등, 온갖 수변식물들이 빽빽이 우거져 밀림을 이루고 있다. 우포늪 전지역에서 수생식물의 종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구간이다. 현재까지 조사된 우포늪의 서식 동식물 종류만도 대략 700여 종이나 된다. 가시연꽃을 비롯한 식물류 480여 종, 조류 62종, 어류 28종, 수서곤충류 55종, 포유류 12종, 파충류 7종, 양서류 5종, 패류 5종이라 하니 가히 자연 생태계의 보고라 할 만하다.
토평천 잠수교를 건너 이어지는 한적한 풀숲길
대대제방을 내려서면 낮으막한 잠수교. 여름 장마철 토평천이 불어나면 일대가 완전히 물에 잠겨 통행이 막힌다. 다리를 건너서면 바로 두 갈래길. 왼편이 사지포제방으로 가는 길이다. 사지포는 둘레를 돌아볼 수 있는 길이 없어 그 북쪽 끝을 보기 위해 오른편 길로 에둘러 간다. 토평천 물을 거슬러 한적한 숲길을 걷는가 했더니 고개를 넘고 양어장 쯤에서 그나마 길이 끝나 버린다.
우포늪을 가득하게 덮은 연꽃들
여기서 갈림길로 되돌아오기 위해 억새밭을 그냥 헤치며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니 이내 우포와 사지포를 가르는 사지포제방. 사지포는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오솔길조차 없어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원시의 저층늪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수면은 연꽃과 수초들로 잔뜩 덮혀 있고, 그 너머로 미루나무 숲이 총총이 둘러쳐 유년시절의 고향 풍경 속으로 돌아온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대대제방 끝머리 수문쯤에서 2코스 일정의 점을 찍고 다시 우포늪 전망대로 발길을 되돌린다. 전망대를 올랐다가 둔터 외딴집을 지나 ‘따오기 복원 센터’에 이르는 제1코스는 우포늪을 다녀가는 이들이 걷는 대표적 코스다. 천연기념물 198호인 따오기가 이 땅에서 사라진 지도 수십 년. 초등시절 배웠던 동요 '따오기‘의 구슬픈 선율이 아직도 입가에서 맴도는데, 내 어릴 적만 해도 드물지 않던 새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땅에서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의 정서가 깃들어 있는 대표적인 새로서 이름마저 정겹게 느껴지는 따오기를 우포늪에서 다시 살 수 있도록 복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몇 해 전 중국의 저장성에서 한 쌍을 들여와 생태 환경이 가장 적합한 이곳에서 따오기의 개체수를 늘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50여 마리 이상으로 번식이 되면 우포늪에서 깃을 틀 수 있도록 방사하겠다는 계획이란다.
우포늪 곳곳에 발달해 있는 수로(水路)의 모습
우포와 쪽지발의 경계는 인공으로 쌓아둔 둑이 아니라 키를 훨씬 넘는 갈대와 억새, 그리고 훤칠한 왕버드나무가 자생하는 뭍으로 되어 있다. 억새밭을 헤치며 앞으로 나가니 늪에서 쉬고 있던 청둥오리 떼가 줄줄이 날아간다. 우포의 물이 쪽지벌로 넘어가는 수로의 징검다리를 건너뛰면 목포에서 쪽지벌로 내려가는 제4코스 신작로 흙길이다. 옛 시절 책보를 어깨에 걸머메고 학교 다니던 추억의 길이다. 쪽지벌은 이곳 4개의 늪 중에서 가장 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토평천의 물이 우포로 들어왔다가 쪽지벌을 거쳐 낙동강으로 빠져나간다. 낙동강의 퇴적물들이 자연제방을 만들어 토평천의 물이 흘러나가지 못하고 수심 1~2m의 호수를 만든 것이 바로 우포늪이다.
화왕산 너머로 떠오른 아침해가 우포의 수면에 금빛으로 반사되는 모습
습지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생물학적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지구 생명의 신비와 질서를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각종 동식물과 미생물들이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어 자연 생태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습지가 스폰지 역할을 하여 물을 많이 흡수하고 있는 관계로 우기나 가뭄에 훌륭한 자연댐의 역할을 한다. 또한 오염물질을 정화시키고 대기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까지 하는 것이다. 이렇듯 습지의 가치는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늪이나 갯벌을 버려진 땅으로 그릇 인식하여 툭하면 개발을 떠들어대는 것은 무지의 소치로 그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잠어실마을까지 내려갔다가 발길을 돌려 토평마을의 목포제방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먼 산의 중허리가 아직까지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화왕산에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이 수면에 금빛 줄기로 비쳐 오른다. 제방을 건너 우항산(牛項山)을 올라서니 한 눈에 들어오는 우포의 전모가 광대무변의 절경으로 펼쳐진다. 목포를 한 바퀴 안고 돌아 장재골을 지나고 소목마을에 이르면 거룻배를 타고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모습이 눈에 띈다. 거룻배는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긴 장대로 바닥을 밀면서 가는 작은 쪽배를 가리킨다. 소목은 우항산이 소(牛)의 목(項)을 닮았다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우포 주변에서 가장 큰 마을이 바로 소목. 매점도 있고 붕어를 다려주는 집이 여럿 있다. 몇 가구 안되는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물고기와 논고동을 잡아 생계를 보탠다. 자연환경보호구역이기에 허가받은 사람이 아니면 고기잡이가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다.
거룻배를 타고 고기를 낚는 우포의 평화로운 풍경
소목에서 사지포를 가야 우포늪 일대를 완전히 일주하는 코스가 된다. 소목제방에서 큰 도로가 있는 주매마을로 나갔다가 다시 사지마을로 돌아와야 하지만 굳이 갈대밭을 헤치고 나간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흔적을 알아보기 어려운 오솔길이 갈대밭 사이로 겨우겨우 이어진다. 키가 묻힐 정도의 풀숲을 뚫고 가는 여유와 즐거움을 어디서 경험해 보겠는가. 우포늪의 특징과 낭만이 어우러진 멋진 코스다. 우포늪은 늪이 뭍으로 변화해 가는 생태적 천이(遷移) 단계를 나타내 주는 이 땅의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순천만이 해변습지로 각광을 받고 있듯, 우포늪은 내륙습지로 관심있는 많은 이들의 발길과 향수를 끌어들일 것임에 틀림없다.
우포늪 곳곳에 펼져진 억새와 갈대밭
7할을 훨씬 넘는 면적이 산지로 이루어진 국토이지만, 수려한 산세와 팔방으로 흘러내리는 강과 하천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땅의 산하들. 돌아보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쳐져 곳곳에 갯벌이 펼쳐지고 강줄기 따라 크고 작은 호소(湖沼)와 늪이 위치하여 천혜의 자연을 두루 갖추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내 나라 내 땅이더냐. 더욱이 태고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우포와 같은 자연늪이 있다는 것은 여간 고맙고 다행한 일이 아니다. (2009년 10월 정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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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멋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