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손을 놓는 순간, 우리 집사람은.."
오늘 법회에서 들이 이야기.. (유정스님)
스님께서 계신 절에.. 어떤 50대 부부가 매일같이 절에 오는데
부부가 항상 손을 꼬옥~ 잡고 오더랍니다.
한두 달고 아니고 1년 이상을 늘 한결같이..
그것도 하루에 한 번 오는 것도 아니고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스님께서 보시기에도 너무나도 보기 좋고..
'만약 내가 결혼을 했다면 저 나이에 저렇게 손잡고 다닐 수 있을까?'
정말 스님이 보기에도 부러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남편한테 조용히 물어봤대요.
그 비결이 뭐냐고..
그랬더니 남편이 뭐라고 했을까요?
"제가 이 손을 놓는 순간, 우리 집사람은.. 백화점으로 갑니다."
ㅎㅎ 쇼핑중독이었던 것이죠.. 옷 사러..
그래서 백화점 못 가게 하려고 그렇게 손을 꼭 잡고 다녔던 것이죠.
대 반전이었습니다,~~ ㅎㅎ
그런데 그렇게 쇼핑중독 걸린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백화점도 안 가고 그냥 집에서.. 온라인쇼핑으로 중독되어서..
그 집 아이는 늘 상 바쁜 아빠얼굴은 잘 몰라도
택배아저씨 얼굴은 잘 안다고 하시더군요.
아파트 앞에서 봐도 "이야, 택배아저씨다~~" ㅎㅎ
저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틱낫한 스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셨을 때
어떤 30대 초반 아가씨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좀 바보 같은 질문일 수 있겠지만, 저는 일단 종교가 없어요.
저는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한데..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무척 좋아하고요,
술도 많이 마셔요..
그리고 백화점 가서 쇼핑하는 것도 너무너무 사랑해요.
저는 그러면서 어느 정도 만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이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안 좋은 건지..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대중들 폭소, 스님과 법사단만 조용 ^^)
스님의 답변입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행복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이해와 사랑에 의해서 측정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내면의 외로움이나 고통을 무언가로 감추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 사회의 특성입니다.
우리 안에는 깊은 외로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고통을 보고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 안에 있는 고통을 보지만
그것을 달래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낍니다.
그것이 일빙(ill-being, 아픈 존재)의 깊은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빙(ill-being)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우리 안에 있는 고통이나 외로움을 소비로써 감추려고 합니다.
술이나 마약이나 인터넷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고 잊게 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제게 행복한 사람이란, 그 안에 많은 이해(understanding)와
많은 연민(compassion)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고
다른 인간 또는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답변이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가?'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죽은 후에 내가 어디로 갈지를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행위,
그러니까 몸으로 짓는 행위, 말로 하는 행위,
생각, 뜻으로 하는 행위는 우리가 지은 업(業)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 우리가 하는 모든 말,
우리가 짓는 모든 생각은 우리의 업의 연속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보면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화와 미움을 일으키고 있다면 우리는 지옥으로 갑니다.
화가 나서 말을 하고, 그것 때문에 누군가가 목숨을 끊는다면
우리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들을 해치거나 환경에 상처를 준다면
죽은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지옥에 갑니다.
이해와 연민의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 생각이 이미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세상을 치유합니다.
그와 같은 바른 생각으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정토로 갑니다.
정토로 가기 위해서 이 몸이 다 흩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을 덜 겪도록
무슨 말인가를 할 수 있고
그 사람 안에 믿음과 기쁨을 일으킬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여기에서 정토로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으로, 말로, 뜻으로 짓는 행위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지옥으로 갈 것인지 정토로 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많은 이해와 사랑으로 정토에 갈 수 있다면
이 몸이 산산이 흩어진 뒤에도 정토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우리 자신과 사람들에게 지옥을 일으키고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 지옥에 가는 것이고
이 몸이 다 흩어진 후에도 여전히 지옥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죽은 후에 내가 어디로 갑니까?' 라는 질문은
지금 여기에서 과학적으로 답변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옥을 만든다면
미래 정토를 기약할 수는 없습니다."
출처: 불교는 행복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