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수필동화】
‘산유화’를 ‘들유화’로 고쳐 부르며
― 산책길 풍경 ‘수필작가의 역할’은?
윤승원 수필가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 시비와 마주치는 산책길. 사람들은 올려보기만 하지 내려보지 않습니다.
시비 앞 잔디밭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알 수 없는 무심함이여.
▲ 산책길에 만나는 배재학당 소월각 ‘산유화’ 시비(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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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피는 꽃은 아름답다 노래를 해도 잔디 마당에 핀 작은 꽃에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의 산야(山野)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꽃. 오늘따라 예쁘고 귀하게 보입니다.
노란 꽃은 아마도 씀바귀꽃 계열의 야생화로 보입니다. 민들레보다 훨씬 작고 가냘프게 생겼습니다.
▲ 산책길에 만난 예쁜 노란 꽃, 선씀바귀꽃이라고도 한다.(사진=필자, 202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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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사이에 별처럼 흩어져 피는 꽃이지요. 그렇습니다. 별처럼 생긴 예쁜 꽃.
같은 자리 흰 꽃은 토끼풀꽃입니다. 클로버꽃이라고도 하지요.
어린 시절 손 목걸이 만들던 흰 토끼풀. 네 잎 클로버를 찾던 기억까지 함께 떠오르네요.
▲ 잔디밭에서 만난 클로버꽃, ‘토끼풀’이라고도 한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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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꽃도 “날 좀 보세요” 손을 흔듭니다. 개망초라는 이름 대신 ‘달걀 꽃’이라고 불러달랍니다.
▲ 개망초꽃, 일명 ‘달걀 꽃’이라고 한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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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 연못에서는 왕두꺼비가 떼를 지어 노래합니다. 비가 오고 난 뒤 쾌청한 날씨 덕분인가요?
▲ 왕두꺼비 합창단(자료그림=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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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이한 풍경은 처음입니다. 수필동화를 써온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봄철 내내 소월각 아래 진달래와 철쭉이 사이좋게 바통을 주고받더니, 아카시아 향기가 사라지니 누가 바통을 이어받습니까?
바통을 넘겨줄 대상이 없다고요?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 작은 들꽃들은 안 보이나요?
잔디밭에서 조용히 계절의 시계를 움직이고 있는 존재. 그 작은 존재들은 시야에 안 들어오지요?
바로 위 연못에서는 왕두꺼비들이 왜 요란한가요? 왜 떼를 지어 합창하듯 울고 있나요?
그 풍경이 이미 한 편의 수필동화입니다.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를 ‘들유화’로 고쳐 부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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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유화》 - 윤승원
들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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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 변화와 함께 달라지는 풍경을 노래하다.(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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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 선생님,
선생님도 ‘유명한 꽃’만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산 어디에서나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들의 존재를 바라보셨잖아요.
제가 발견한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들판 어디에서나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들.
그 존재를 바라보는 겁니다.
그 작은 존재를 바라보면 참 기특합니다.
큰 꽃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지만,
작은 들꽃은 스스로 계절을 지킵니다.
저 연못의 왕두꺼비 떼 울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들으면 우스꽝스럽고 기이합니다.
가만히 경청하면 그것 역시 계절을 찬미하는 가곡 합창입니다.
들꽃이 피고, 두꺼비도 울고, 바람은 살랑거리며 지나가고.
수필작가는 그들 곁을 천천히 걷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마음의 노트에 이렇게 수필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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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가치는 크기로 따지지 않는다』
― 화려한 외모가 아니어도 저마다 귀한 존재!
윤승원
산유화 시비 아래 잔디밭에는 손톱만 한 노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 있었다. 눈길 한번 달라고 성화도 부리지 않는다.
아무도 이름 불러주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계절을 완성하고 있었다.
좀 더 오르면 연못에서 왕두꺼비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는 시끄럽다 할 것이다.
수필작가의 귀에는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늦봄 향연을 즐기는 풍물패 소리처럼 들린다.
진달래가 물러간 자리 철쭉이 지키고, 철쭉이 떠난 숲길 아카시아 향기가 번지더니, 이제는 작은 들꽃들이 계절의 마지막 시계를 붙들고 있었다.
수필작가는 소월 시비를 올려다본다.
“산에는 꽃 피네~” 그 짧은 시 한 줄이 “들에도 꽃 피네~”로 바뀐다.
두꺼비도 추임새를 넣듯 마구마구 울어 대는구나.
“작고 흔한 존재들의 아름다움”, “이름 없는 것들의 계절 계승”
수필 주제는 이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므로 수필작가의 역할은 막중하다.
‘봄의 마지막 북소리를 맡은 악사’니까.
‘봄의 폐막식을 중계하는 아나운서’니까. ♣
2026. 5월
윤승원, 작은 들꽃들을 응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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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이번 《수필동화》는 단순히 “들꽃이 예쁘다”는 감상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다시 보게 만드는 문학적 시선’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만의 독창성이 살아납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김소월의 김소월 《산유화》를 단순 감상 대상으로 두지 않고, 현대 산책길 풍경 속에서 새롭게 ‘재창조’했다는 점입니다.
“산유화”를 “들유화”로 바꾸는 순간, 작품은 오마주를 넘어 창조적 변용이 됩니다.
유명한 산꽃만 바라보던 시선을 잔디밭의 작은 야생화로 이동시키면서, 시의 무대를 ‘높은 산’에서 ‘발아래 들꽃’으로 끌어내립니다. 이 발상의 전환이 매우 문학적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작가의 ‘관찰 방식’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시비를 올려다보지만, 작가는 시비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바로 여기에서 수필가 특유의 창작기법이 드러납니다. 세상이 주목하는 대상을 따라가는 대신,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잔디 사이 작은 씀바귀꽃, 토끼풀꽃, 개망초, 왕두꺼비 울음까지 모두 작품 속에서는 하나의 ‘등장인물’이 됩니다.
이러한 기법은 윤승원 수필가 특유의 ‘의인화 서정’으로 이어집니다.
개망초는 “날 좀 보세요” 손을 흔들고,
들꽃은 “계절의 시계를 움직이며,”
왕두꺼비 떼는 “합창단”이 되고,
수필가는 “봄의 폐막식을 중계하는 아나운서”가 됩니다.
자연 풍경을 단순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고 살아 있는 존재들의 공동 무대로 전환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산문이면서도 동화적 상상력이 강하게 살아 있습니다. 현실 풍경인데도 읽다 보면 숲 전체가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입니다.
또 하나 돋보이는 특징은 ‘명명(命名)의 문학’입니다.
작가는 개망초를 ‘달걀꽃’이라 불러 달라고 하고, 산유화를 들유화로 바꾸며, 평범한 들꽃에 새로운 이름의 온기를 입힙니다.
이것은 단순한 별칭 놀이가 아닙니다. 이름을 새롭게 부른다는 것은 존재를 새롭게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문학이 가진 가장 오래된 역할 중 하나이지요.
특히 아래 문장은 작품의 철학을 압축합니다.
“존재의 가치는 크기로 따지지 않는다.”
이 문장은 들꽃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사람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름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들,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들에 대한 따뜻한 존중이 작품 전체에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들꽃을 읽다가 어느 순간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청각적 수필’의 요소입니다. 윤승원 수필가의 작품은 풍경만 보여주지 않고 계속 소리를 들려줍니다.
“왕두꺼비 떼의 합창”
“봄날은 간다”
“풍물패 소리”
“봄의 마지막 북소리”
이런 표현 덕분에 작품은 정적인 자연 관찰문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무대예술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두꺼비 울음을 “계절 찬미 가곡”으로 해석하는 대목은 작가 특유의 유머와 서정이 동시에 살아 있는 부분입니다.
남들은 소음이라 여기는 것을 계절의 음악으로 번역하는 능력, 바로 그것이 수필가의 감수성이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따뜻한 겸손’입니다. 거창한 철학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작은 꽃 앞에 허리를 낮추고,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응원하며, 수필가 자신도 그 곁을 “천천히 걷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자연을 지배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함께 걷고 귀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독자도 산책길에서 발밑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이전에는 지나쳤던 작은 들꽃 하나가 갑자기 귀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것이 윤승원 수필가 수필동화의 힘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대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높이를 바꾸어 주는 문학입니다.
◆ 덧붙이는 말
이번 《들유화》 수필동화에는 윤승원 수필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특히 깊게 살아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잔디밭의 작은 꽃들과 연못의 왕두꺼비 울음을, 작가는 “계절의 마지막 합창”으로 받아들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문학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산유화”를 “들유화”로 바꾸는 발상입니다.
이 한 글자 변화 속에 작품의 철학이 모두 담겨 있지요.
높은 산의 이름난 꽃만이 아니라
발아래 작은 들꽃도 계절의 주인공이며,
존재의 가치는 크기와 유명세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메시지.
그 메시지가 매우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스며듭니다.
무엇보다 윤승원 수필가의 작품에는 늘 ‘사람 냄새’가 있습니다.
들꽃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사람 이야기이고, 두꺼비 합창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세상을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에 대한 응원처럼 읽힙니다.
그래서 독자는 작품을 읽고 나면 단순히 자연을 감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기 주변의 평범한 존재들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이 좋은 수필의 힘이지요.
그리고 이번 작품에는 수필·동화·시가 함께 어우러지는 독특한 결도 느껴집니다.
수필의 관찰력,
동화의 의인화,
시의 운율과 반복,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현장감,
그리고 생활 철학까지.
이 여러 요소가 부드럽게 섞이며 윤승원 수필가만의 독창적인 “수필동화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
“2026. 5월
윤승원, 작은 들꽃들을 응원하다.”
이 대목은 단순한 끝맺음이 아니라, 작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 선언처럼 느껴집니다.
유명한 꽃보다 이름 없는 들꽃 곁에 서려는 마음.
그 따뜻한 시선이 독자의 마음까지 조용히 밝히고 있습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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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산에서 네이버 독자 소감
정구복 교수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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