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철계단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돌아 돌아 내려오니
계곡 맞은편에 고즈넉히 회운각 대피소가 보였다 3년전인가 덕유산 산행때
영각사에서 출발하여 삿갓재봉을 지날 때 눈내리는 컴컴한 밤길을 헤메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눈길을 헤메다가 산아래 고즈넉히 보이던 삿갓재 대피소
눈쌓인 산속을 헤멜때마다 시 한구절을 읊어본다.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Whose woods tho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이 숲이 누구 숲인지 알 것도 같다.
허나 그의 집은 마을에 있으니
내가 자기 숲에 눈 쌓이는 걸 보려고
여기 서 있음을 알지 못하리.
다른 소리라곤 스치고 지나는
바람소리와 솜털 같은 눈송이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갈길이 멀다.
회운이라는 사람이 산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것이 회운각이라고 회식이가 이야기해 주었다.
회식이와 회운이는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일까?
대피소마당에는 떠날 채비를 하는 등산객들로
분주하였다. 한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명상을
하는데 회식이가 오고 또 한참만에 흔식이, 유식이가
같이 왔다. 흔식이, 유식이는 무슨 할말이 그리 많은지
토끼와 개가 온산을 뛰어 다니며 붙었다가 떨어지고
떨어졌다가 붙고 하는 고사성어가 연상되었다.
모두 모여 대피소안을 기웃거리다 별볼일이 없는 것
같아 대피소를 출발하였다. 앞에 펼쳐진 깎아지른 산들이
멋있다고 전망대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내려 오는데 자세히
보니 전망대가 아니고 응급환자수송 헬기장으로 출입금지
펫말이 붙어 있었다. 제대로 펫말을 붙여 놓지 않았다고
관리소에 불평을 해대고 몇발자국 내려오니 세갈레길이다.
왼쪽으로는 마등령,공룡능선길, 오른쪽으로는 천불동계곡길
왼쪽은 생각하기도 싫어 천불동으로 접어 들었다.
천불동계곡에는 천개의 佛像이 있다고 들었는데 흔불쌍,
유불쌍,회불쌍, 막불쌍도 그중에 있을까? 마음을 잠시나마
깨끗이 하여 걷다 양폭대피소에 들러 잠시 쉬고 지루한 하산을
계속하였다. 몇년전만 해도 양폭에서는 막걸리를 팔아 잠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흥청대던 흔적은 찾아 볼수가
없었다. 오전인데도 태양은 산봉우리꼭대기에 걸려 있어 침침하고
차가운 기운만 대피소를 감싸고 있고 인적도 드물어 을씨년스러웠다.
회식이의 노골적인 눈총속에서도 담배 한대씩을 피고
계곡길을 내려 오며 쓰잘데 없는 이야기들로 지루함을 달래었다.
군데 군데 만들어 진 빙판길은 온도가 낮아서인지 너무나 미끄럽고
단단하여 아이젠을 착용했는데도 중심을 잡을수가 없었다.
뒤따라 오던 젊은이는 앞서 가려다가 미끄러자빠지기도 하였다.
겁에 질려 정신이 나갔는지 유식이는 스틱을 계곡아래로 떨어뜨려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포기하였다. 유식이가 고생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유순네로부터 안부전화가 왔는데 유식이는 아무일 없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핸드폰에는 어제 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흔식이로부터 아름다운 문자메세지가 왔다. 흔식이한테 왜 메세지는
보내냐고 물었더니 흔순네가 보낸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폭포는 두꺼운 얼음으로 덮혀 거대한 여근조각상처럼 변했고
계곡밑에서 올라 오는 찬바람에 손이 너무나 시려워 걸음을
빨리하여 비선대 휴게소로 들어 갔다. 난로위 주전자에서 끓는 물울
주문하여 들이키니 열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뒤따라 들어 온 친구들도
한잔씩 마셔 몸을 녹이고 정신을 차려 막걸리와 파전을 주문하였다.
열기가 있고 인간들이 시끌거리고 음식냄새가 나고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 온 기분이다. 막걸리 한통을 더 주문하여 마시자
고행은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는 기분이 되었다. 적당히 마시고 다시
지루한길을 내려 오다 아이젠을 벗고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여자들은 왜 피부를 부들부들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는가?"라는
주제로 침을 튀기다가 얄팍한 생화학지식이 바닥나 그만두고
신흥사 불상에게 이틀간 불경했던 일들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넓고 넓은 신흥사구역을 빠져 나왔다. 예정보다 한시간 빠른 1시였다.
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한계령으로 갈것이냐 버스를 타고
대포항에 가서 점심을 먹고 한계령으로 갈것이냐
점심을 무엇을 먹을 것이냐등으로 시끄럽게 떠들다가 가장 강력하게
밀어 붙인 흔식이의 뜻을 따르기로 하였다. 찬바람이 세게 부는
정류장에서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유식이를 찾아 버스에 태우고
해돋이 공원을 지나 쪽빛바닷물이 출렁이는 대포항으로 들어 갔다.
손님부르는 아줌마들과 몇번 흥정을 하다가 값도 적당하고 분위기도
괜찮은 집으로 들어가 아줌마의 지시대로 배낭을 한곳에 모아 놓고
자리를 잡았디. 바다에는 갈매기들이 떠다니고 겨울이라 냄새도
나지 않아 그런대로 정취가 있었다.광어, 우럭, 모치, 오징어등으로
만든 모듬회에 소주를 시켜 잔뜩 먹고 회비 20,000원을 회식이에게
건네주고 횟집을 나왔다. 입구에 서있는 택시에 가격을 물었더니
30,000원이라 하여 두말않고 한계령으로 향하였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얼른 택시비를 주고 회식이차에 짐을 옮겨 싣고
회식이가 운전하여 고갯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날씨는 말고
추운 전형적인 겨울날씨였다. 오늘도 회식이는 습관대로 횟집에
스틱인지 모자인지를 두고 왔다고 하며 지금 생각났다고 하였다.
나이팃이라 생각하고 빨리 잊어 먹기로 하고 술기운과 피로때문에
습관대로 잘사람은 자고 떠들사람은 떠들면서 온길을 그대로
돌아와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였다.그래도 아쉬웠던지 커피를 마시고
헤어졌다. 주차비 20,000원을 지불하고 외곽순환도로를 달려 오는데
흔식이가 주차비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유식이를 산본에서 내려 주고
집에 도착하니 여덟시다. 1층가계에 있던 집사람에게 신고를 하고
차레준비에 바쁜 집사람과 가계일을 교대하여 11시에 일을 끝내고
3층에 있는 집으로 올라가 대충 닦고 이틀간의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에필로그}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계설악산산행을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산행을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도 다음에는 꼭 함께
하기를 기대해본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실명을 쓰지 않은것을 양해해주기 바라며
어디까지나 픽션이므로 사실과 상위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2011년 2월 9일 부천신사
첫댓글 수고했다! 어디까지나 픽션이라니! 픽션이 뭔지 모르겠네.
중늙은이 산에 갔다고, 유순이랑 흔순이는 모니터링 하는데,
회순이, 아니 들숙이는 전화도 없었던 거야 ?
아님, 몰래 숨어서 쏘쇄쏘쇄 한기여 ?
근데, 부르스 리, 마님은 전화 한번 안한기여 ?
사랑이 식었나 ? 원래 사랑이 없었나 ?
하기사, 각자 살고, 어디 가냐 ? 물으면, 뒤진다며 ?
난 아침에 눈뜨면 마누라 눈치보고 알아서 청소하니까.
삼식이 시끼, 밥 얻어 먹으려면 눈 내리깔고 조신해야지.
야 ~ 근데, 산숙이 눈치 보느라 못갔는데,
지금 도치찜이 뒤지게 맛있는 계절인디.....
그냥, 쇠주 다섯병인디.....
맛없는 회만 먹고 왔어 ?
작년에도 이야기 했는디, 겨울 속초에만 나는 빨판달린 도치 !
그거 먹으면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