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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도(偸盜)
박 태 원
큰 달로 한 달을 꼭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하늘은 우리에게 해 구경을 시켜 주었다. 생각하여 보면 참말이지 지루한 장마이었다. 이제는, 설혹, 앞으로 석 달을 비가 아니 내리는 한이 있다더라도, 나는 결코 하늘을 원망하든 그러지 않으리라.
새벽에 잠이 깨자, 뜻밖에도 창 밖에 빗소리가 없이, 처마 끝에 참새 소리가 재미스러운 것을 들은 어린것들은 나와 아내에게 번갈아,
“아빠아, 비 끄쳤수?”
“엄마아, 인제 비 안 와?”
이렇게 묻고, 그리고 그 새까만 눈동자들을 번득거리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내가 어서 들어와 세수를 하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결코 들어오려 안 하였다. 한 달 동안을 낱이면 날마다 방구석에서만 지지볶던 어린것들에게 자유는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전차도 자동차도, 또 자전거도 다니지 않는 이곳 넓은 터전은, 그들에게는, 이를테면, 자유의 천지이었던 것이다.
나도 오래간만에 아내와 더불어 뜰로 내려갔다.
“온, 참, 그게 무슨 장마야.”
나는 담 너머로 벌겋게 익어 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한마디 하였다.
“아이, 그러게 말이지. 인젠 산 것 같구먼.”
아내는 일영(一英)이를 번쩍 치켜들고 ‘등게둥게’를 하며, 정말 살아난 듯싶은 가만한 한숨조차 토하였다.
“설마 또 오지 않겠지?”
“그러엄. 온다온다 허기루, 그런 비가 어딨수?”
참으로 그러한 비는 없었다. 이제 나의 마음은, 이처럼 다 늦게나마 그래도 볕을 보여 준 하늘에 대하여, 감사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얼마 있다, 아내는 생각난 듯이 나를 돌아보았다.
“어서 지붕을 고쳐야 안 해?”
“이제 차차 고치지.”
“차차, 언제?”
“언제구 뭐구, 기와나 말러야지.”
“깨지까?”
“깨지구말구. 지봉에 그렇게 마구 뭇 올러가는 거야.”
“그럼 언제?”
“아마 한 댓새 있어야 헐걸.”
“그 안에 비나 호옥 오면 어쩌누?”
“와두 헐 수 없지. 으떻든 기와가 말르기 전에는 어쩌는 수 없는 노릇이니…….”
그러나 지금 같아서는 닷새는 고사하고, 열흘, 보름이라도 하늘은 늘 맑을 듯싶었다. 횐 구름이 두어 덩이 한가롭게 떠 있을 뿐으로, 어디까지든 푸르른 하늘을 우러러보며, 나논 바로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가만한 충동을 마음 한구석에 느끼기조차 하였다.
그로서 사홀 뒤, 나는 오래간만에 거리로 나갔다. 기와장이를 만나는 것이 이날의 용무이었으나, 그 용무 아니라도, 장마 치르는 동안, 한때 인연이 끊기었던 거리가 그리웠던 까닭이다.
그러나 거리는 너무 더웠다. 더운 거리를 나는 싫어한다. 그래 용무만 마치고 나는 곧 집으로 돌아왔다. 시내에 있어서도, 대개의 경우에, 자기의 집이 그중 시원한 법이거니와, 허물어져 가는 성 밑에 송림을 등지고서, 앞으로 골짜구니를 내려다보는 위치에가 있는 나의 집은, 참말 뉘 집보다도 시원하였다.
나는 곧 옷을 훌훌 벗어 팽개치고, 잠방이 바람으로 뜰로 내려가 세수를 하였다.
“이 땀 좀 봐아.”
아내는 물초가 된 샤쓰를 집어 들며, 다음에 물었다.
“그래, 기와장인 만나 보셨어요?”
“응.”
나는 우리집에서도 그중 바람이 잘 드는 대청에가 자리를 잡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온, 무슨 날이 이래? 너무 더워두 못 살겠군.”
“집이 들앉었으면 안 더워요. 그런 수리 말우. 난, 정말이지 더운 것쯤은 암만이든 참을 테야. 비라면, 인젠, 아주―”
“진절머리야……? 그건 나두 동감!”
“그래, 언제 온대요?”
“누구? 기와장이?”
“네에, 낼이래두 곧 오라지…….”
“아무리 급해두 움물에 가서 승늉이야 청헐 수 있나? 기와장이 말두, 역시 날들어 댓샌 있어야 지봉엘 올러간다구…… 그래 글피나 그글피쯤 오겠다드군.”
“오늘이 사홀짼가? 그만허면 말렀을걸 그래.”
“그래두 그렇지 않게 그러지? 역시 전문가의 의견은 존중허기루 헙시다그려.”
“또 비가 와두 허는 순 없는 노릇이지만, 그저, 우리 기와 고를 동안만 참어 줬으면…….”
그러나 하늘은, 내 아내의 이 조그만 원이나마 들어주지는 않았다. 그는 바로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이날 저녁부터 다시 줄기찬 비를 내렸다. 정마는 결코 아주 걷히었던 것이 아니다. 한 사흘 쉬었을 뿐으로, 이제 두 차례째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 두 차례째의 장마와 함께, 우리 가족들의 마음속에는 다시 불쾌와 우울이 깃들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곧 신경을 날카로이 하였고, 아내는 아내대로 조그만 일에도 곧잘 언성을 높이어 아이들을 나무랐고, 아이들은 또 아이들끼리, 그 좁은 가슴에도 불평은 많아…… 이리하여 우리의 생활은 다시 불행하였다.
그러한 어느 날 밤― 담을 넘어 우리집에 도적이 들어왔다…….
이제니 말이지만, 우리집 담은, 도적이 넘어 들어오기에는, 아주 십상이라 할 만치 얕았다.
내가 애초에 이 집을, 이아무개라 일컫는 청부업자에게 도급 맡겨 지을 때, 나는 담높이를 육 척으로 지정하여 주었다. 높이 여섯 자의 담이면, 보통 상태로는 남이 우리집 안을 엿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족하다. 만약 도적을 막기 위하여서라면, 여섯 자의 갑절, 열두 자라도 결코 안전하다고는 못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정작 되어 놓고 보니, 담은 그나마, 온전한 여섯 자도 아니었다. 그야 집 안에서 보자면 삥 불러 여섯 자가 분명하였으나, 밖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우리집 동쪽으로, 언덕을 오르내리는 길이 있어, 사랑 모퉁이는 우리 지대가 길보다 두어 자 높았고, 건넌방 모퉁이는 길이 지대보다 자 가웃 가량 높았으므로, 이 방면으로서 따진다면 담은 겨우 넉 자 남짓밖에 안 되었다. 넉 자면, 부녀자라도 용이하게 타고 넘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반이한 뒤, 집 구경을 나온 사람들은 대개 그 점을 지적하여, 나의 주의를 환기하려 하였다. 그 중에는 얕으면 얕은 대로, 그 위에다 유릿조각이라도 박지 그랬느냐고 의견을 제출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유릿조각을 박아 놓은 담에 대하여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한 담들은, 오직, 밤의 어둠을 타서 집 안을 노리려는 도적에게 대하여서만 방어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악의도 가지지 않은 대낮의 통행인에게 향하여서까지 적개심을 품고 있는 듯싶게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지나치게 높은 담에 대하여서도 나의 생각은 일반이다. 그래, 나는, 그 부분만 담을 높일 생각도 없었고, 더구나 유릿조각을 그 위에 심어 볼 의사 같은 것은 내려고도 안 하였다.
누구는, 그럼, 개라도 한 마리 기르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나는 본래 개라는 짐승에게 호의를 가질 수가 없었다. 저를 돌보아 주는 주인 한 사람에게만 긴하게 보이려 애쓰고, 그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혐의와 적개심을 품고 있는 이 동물을, 나는 거의 증오하기조차 한다. 따라서 나는 개를 둔 집에 대하여도 좋은 감정을 못 가졌다. 그들은 자기 가족 이외의 모든 사람을, 한 번씩은 도적이나 그러한 수상한 인물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두라는 훈련을 개에게 내리기에 골몰이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약간의 재물이, 그들에게는 행복보다도 오히려 그처럼 불안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나는 그러한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기조차 하였다. 저렇게 불안하여 가지고야 어찌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 나는 결코 개도 기르려고는 안 하였던 것이나, 나와 나의 가족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처럼 우리집의 담이 얕은 것을 염려하고, 개 한 마리 두지 않은 것을 불안스러이 여기는 것은, 구경, 우리집이 문 밖 외따른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이었다.
버스정류소에서 천천히 결어서 오 분이면 능히 이를 수 있는 곳에 우리집은 있으면서도, 그곳은 이를테면 산 속이었다. 허물어져 가는 옛 성 밑에 울창한 송림을 등지고서, 작은 몇 개의 언덕과 골짜구니를 눈 아래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우리집은 도회의 모든 소음과 격절되어 있었다. 거리의 온갖 잡음이 이곳에는 전혀 없고, 아침 저녁으로 들리느니 맑은 새소리뿐이다. 우리는 다시 두 번, 붉은 티끌 속에 몸과 마음이 함께 더럽혀질 것을 염려할 필요 없이, 송림 사이를 자유스러이 불어 왕래하는 깨끗한 바람만을 사랑할 수 있었다.
이웃은―이웃도 이를테면 없었다. 새로이 닦아 놓은 십여 필 대지 가운데, 팔린 것은 세 필밖에 없었고, 그 세 필 속에서 우리집 하나가 섰을 뿐, 나머지 두 필은 언제 건축에 착수할지 까마아득하였다. 이리하여, 동과 남은 길로 면하고, 서와 북은 이웃 기지와 곁한 채로, 우리집은 명예의 고립상태를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우리에게 있어서, 언덕으로 오르내리는 길 하나를 격하여 서 있는 지주의 소실의 집은, 이를테면 유일한 이웃집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별 왕래가 없었고, 그 집에서 기르는, 지극히 우둔하여 보이는 두 마리 조선개는, 이사 온 뒤, 이미 여러 달이 경과된 우리 가족을 향하여서도, 심심만 하면 시끄러이 짖고, 짖고 하였다,
그러나 지주 소실의 집은 외롭지 않았다. 그 뒤로 격장하여 지주 아우의 집이 있었고, 또 골목 하나를 격하여 지주의 집이 서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일곽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일가친척 이외에, 무슨 때 음식이라도 나눌 집을 한이웃이라 부를 수 있다 하면, 이상의 세 집말고도 이웃이라 할 이웃은 있었다, 우리집에서 오륙십 미터 떨어진 곳에 다섯 채의 집이 서 있다. 고독한 우리는, 때로 그들까지를 이웃인 듯싶게 착각하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그들끼리 한데 몰려 격장하여 살고 있는 터이었으므로, 그렇게 삼십 칸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 외따른 우리집을, 구태여, 그들의 ‘이웃’으로 삼지 않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정말, 우리 이웃 기지에 집이라도 서기 전까지는, 역시 언제든 외로운 위치에 가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이니 그렇지, 좀 있으면 그리 쓸쓸헐 것두 없을 게야.”
이사 온 당초에 나는 몇 번인가 아내에게, 그러한 의미의 말을 하였다. 무어 아내가, 자꾸 쓸쓸하다든, 외롭다든, 그러한 의사표시가 있었던 까닭은 아니다. 그는 입 밖에 내어 그러한 의미의 말을 한 번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가 결코 이렇게 외따른 집에서 고독을 느끼지 않았던 까닭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나, 입에 올려 말하면, 더욱 마음이 외롭기만 할 것 같아서, 그래, 굳이 무관심한 체하는 듯싶게, 나에게는 느껴졌다. 그러한 아내의 모양이 나에게는 가없기조차 하였다. 그래, 나는 저도 모르게, 몇 번씩이나 그러한 말로 그를 위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집에 살며 외롭기는 나도 일반이었다. 우리는 결코 우리 가족들끼리만으로 행복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비록 왕래는 않는다하더라도, 이웃끼리 서로 담과 벽을 곁하여 살며, 그 사이를 웃음 소리 울음소리가 넘나들고, 때로는 비밀을 서로 엇들어, 이웃집 칭찬, 이웃집 험담으로 마음을 수고로이 하여야 행복일 수 있나 보다. 행복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이 곧 ‘생활’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기쁨이 없었다.
낮은―낮은 그래도 오히려 좋았다. 밖에 볼일을 가질 때, 나는 집에 없었고, 집 안에 들어앉았는 날은, 또 그런대로 바빴다. 이미 오래 전에 마감이 지난 원고를 쓰는 경우만이 아니었다. 일이 없을 때면, 또 한가로운 대로, 나는 설영(雪英)이, 소영(小英)이, 혹은 일영이를 상대로 철없이 노느라고 골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밤이 되어, 어둠이 완전히 우리집을 휩쌀 때, 나는 아내나 똑같이 외롭고 또 불안하였다.
불안―내가 견디어 내기 어려웠던 것은, 고독보다도 오히려 이 감정이라 할 수 있었다. 태고 적에 우리 조상의 머릿속에 뿌리를 깊이 박은 ‘어둠’으로부터의 공포관념은, 이십세기에 이르러서도 의연히 나의 마음에 불안을 준다. 나는 가뜩이나 외따로 떨어진 집 속에서, 이 어둠을 극도로 불안하게, 또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내가 남달리 어둠을 싫어하는 것은, 다만 내가 남보다 겁이 많은 까닭만이 아니다. 나는 또 밤눈이 어두웠다.
밤눈이 어두웠던 까닭에, 나는 어둠 속에서 늘 자신이 없었고, 불안하였고, 또 막연한 공포를 느끼기조차 하였다. 그래, 나는 연제든 어둠 속에서 행동하기를 꺼리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러한 까닭에, 나는 으레 불쾌하였다.
어둠 속에서 나는 곧잘 돌부리를 차고, 허방을 빠지고, 남과 부딪고, 그럴 뿐이 아니라, 실루 몇 번인가, 개새끼 하나 없는 거리 위에서 사람을 피하느라 노력하고, 잘 닦아 놓은 한길 위에서 물구덩이와 돌부리를 비키느라 골몰인 것이다. 누구의 눈에든 보이지 않는 물건을 내가 못 본 경우에도, 나는 나의 밤눈이 어둔 것을 스스로 비웃고, 스스로 한탄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나는 늘 불쾌할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는, 분명히, 나를 조소하고,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 책동하는 무엇이 있었다. 나는 막연한 불안, 막연한 공포 속에서 늘 그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곳 문 밖으로 나온 뒤, 밤마다 불안하였던 것은 아내보다도, 할멈보다도, 오히려 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할멈까지 넣어서 식구 여섯 명 중에, 남자는 단 두 명 ―그러나 돌도 지나지 않은 일영이를 이 경우에, 남자 수효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 남자란 오직 나 하나이었다.
집안에서 단 한 사람의 남자이었던 까닭에, 그들은, 나에게 닭 한 마리 잡을 기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만을 믿고 의지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대체 누구를 의지하고, 믿어야 옳을 것이냐? 식구가 모두 잠든 밤중에, 호옥 부엌에서라도 무슨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것이 쥐나 고양이의 장난이려니 하면서도, 자기의 생리적 결함으로 하여, 나가 보기 전부터 벌써 흥분하고, 근심하고, 애태우고 그랬다.
그러나 설혹, 그러한 불안이나 공포가 없다 하더라도, 문은 잘 신칙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어두우면 벌써 대문 중문을 닫아걸고, 자리에 들기 전에, 열두 짝 유리창 분합에다 일일이 비녀장을 찔렀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집에 한한 노릇이 아니다. 이 동리 일반의 풍습이었다. 이 동리의 주민들은, 특별한 용무라도 있기 전에는 밤출입을 삼가고, 큰길에서 결어 오 분이면 이를 수 있어도 마치 산 속 같은 이곳을, 밤 들어서는 일부러 찾는 이도 드물어, 그래, 이 동리에서는 저녁만 해치우면 각기 문들을 닫아건다. 그리고는 별로 라디오라든 그런 것을 들으려고도 않고, 그들은 한결같이 잠을 청하기에만 바쁜 듯싶었다.
이 동리 일대의 이러한 ‘정적’은 도심 지대의 ‘훤소’ 속에서만 자라난 우리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소리를 죽이고, 모든 것이 잠들었으면 오히려 나을 것을, 사람들은 더러 밤에도 볼일을 가져 어둠 속에 동하였고, 그들의 가만한 발자취에도 동리 개들은 그악스레 짖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한층 더 불길한 느낌을 준다.
이 동리에서 개를 기르지 않는 집은 오직 우리뿐이었다. 남들은, 하다못해, 삽살개 한 마리라도 모두 기르고 있었다. 보아야 똑똑한 놈, 영악한 놈, 잘생긴 놈은 하나 없었으나, 그래도 짖는 것 한 가지는 참으로 그악스러웠다. 한 놈이 짖으면 이것을 받아 온 동리의 개들이 모두 짖었다.
무어 밤마다 그렇게 수상한 인물이 이 동리를 배회할 까닭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개는 개들도 조석으로 대하는 이 동리의 주민들인 것이나, 그래도 어둠 속에 어디서 버썩만 하면, 개는 짖고, 다른 개가 짖으니 저도 덩달아 짖어, 결국, 그것들은 저희 주인도 몰라보고, 언제든 그렇게 수상쩍게 겁 집어먹은 소리를 내는 결과조차 가져온다.
워낙이 인가가 많지 않은 산 속에서, 가뜩이나 잠든 동리에, 집집의 개들이 그처럼 기가 나서 짖는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에 언짢은 느낌을 아니 주고는 못 배긴다. 사실, 우리는 이곳우로 나온 뒤, 얼마 동안, 개 짖는 소리에 잠을 편히 못 잤다.
물론, 아마 저 위, 벽돌집에 주인을 잡고 있는 학생이, 문안엘 들어갔다 오나 보다―라든지, 우리도 발소리를 들으면, 대개 짐작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들이 그처럼 기가 나서 날뛰면, 마음이 역시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번이 속으면서도 번번이 불안하였다. 그래, 나는, 그것이 역시 선량한 이 동리의 주민인 줄 알면서도, 어찌하여 그는 집에 붙어 있지 않고 별 볼일도 없으련만 이렇게 깊은 밤중에 싸댕기는 것일까?―하고 구를 미워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은 역시, 환경에 순응하여 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차차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깊은 밤에 개가 짖어도, 이미, 처음처럼 불안하지 않았고, 문 신칙도 자연히 허술하여, 아침에 유리창 분합을 열기에 미처, 더러, 간밤에 비녀장을 찌르지 않고 잤던 것을 알기도 하였다,
그러자 어느 틈엔가 여름이 오고, 그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악스러운 동리의 개들이 짖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개들은 장마통이라 결코 근신하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이미 그러한 것을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새집의 기와 이은 것이 부실하여 방마다 반자가 새고, 그 중에도 건넌방은 그 위를 덮은 용마루가 그대로 매어져, 바람벽 위를 빗물이 줄을 지어 흘러내리고 있었으므로, 그래, 나와 아내는 잠을 사로자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방만 새는 것이 아니다. 건넌방 앞마루 위로도 도리를 통하여 빗물은 끊임없이 유리창 분합 위에 떨어졌으므로, 우리는 분합을 한편으로 몰고, 그곳에다 이남박을 갖다 놓는 밖에 수가 없었다. 억수장마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 우리는 밤에도 건넌방 앞마루의 유리창 분합은 열어 놓은 채로 잤다. 그러면서도, 이미, 환경에 그만치 익숙하여진 우리는, 전처럼 불안하여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나중에 동리 사람들의 일러 주는 말을 들으면, 그날 밤 열한시경에, 우리 길 건너, 지주 소실의 집 개가 유난스레도 짖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그때 잠이 한창 깊었다. 도적은 용하게도 그때를 타서, 양복장과 머릿장이 놓여 있을 뿐으로 사람이 자지 않는 건넌방에 들어왔던 것이다.
생각하여 보면, 도적은 이곳 지리에 밝고, 더욱이 우리 집안 사정에 통효한 자이었었던지도 모른다. 담은 얕고, 안채의 찌는 높아서, 건넌방 앞마루의 유리창 분합이 열려 있는 것쯤은 길에 서서도 알 수 있는 노릇이었으나, 건넌방에 사람이 자지 않는 것을 모르고서야 그처럼 대담키가 용이할 듯싶지 않았다. 할멈은, 아무래도 먼 데서 온 것 같지는 않다고,
“저어, 아래, 토막 짓구 사는 애꾸가 수상해요, 며칠 전에두 댁 앞에 와서 오락가락허던데…… 우중에, 글쎄, 무슨 천착으루 일두 없이 예까지 올러와 헤맵니까?”
그러한 말을 아내에게 하는 모양이었으나, 우리는 섣불리 남을 의심하여서는 옳지 않을 것이요, 또 할멈의 추측이 과연 옳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무런 물적 증거 없이 그를 어찌하는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전혀 처음인 이 경험은, 지극히 우울하고 불쾌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광경이 눈앞에 선하거니와, 처음에는 잠이 설깬 채로,
“아이, 이를 으째애?”
하고, 건넌방에서 아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도 과히 놀라거나
그러지 않았다.
‘새루, ’또, 어디가 새기래두 해서…….’
하고,
‘에이, 빌어먹을! 천장이 아주 통째루 떨어져두 놀랄 내 아니다…….’
하고, 눈을 비비려니까, 다음에 또 들려 온 아내의,
“어유, 어유, 이를, 그래, 으쩌면 좋아?”
소리에는, 거의 울음조차 섞여 있어,
“아아니, 왜 그래?”
하고 저도 모르게 소리쳐 풀어 보니,
“깨셨수? 좀 건너와 봐요.”
하고, 아내는, 다음에, 안타까운 한숨조차 쉬는 모양이다.
“아니, 왜?”
나는 다시 물으며, 자리옷바람으로 곧, 건넌방으로 건너갔던 것이나, 그 즉시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도 옷가지를 넣어 양복장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던 여섯 개의 양복상자가, 전부 뚜껑이 열려있는 채로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고, 양복장은 장문이 활짝 열린 채로, 텅 빈 그 속에는 오직 헌 넥타이가 대여섯 개 걸려 있올 뿐이었다.
“아아니, 그래…….”
나는 짐작이 가면서도 말끝을 못 맺고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아내는 반은 얼빠진 사람 같은 얼굴을 하여 가지고 나를 쳐다보며, 아까부터 하던 말을 되풀이하여,
“이를, 그래, 으쩌면 좋우?”
하고, 반은 울음이었는데, 빈 상자들 틈에가 간신히 발을 들여놓고 서 있던 할멈 이 딱한 표정으로,
“도적이 들왔에요.”
하고, 일러 준다.
“그래, 뭘 …….”
하고, 내가 할멈을 돌아보려니까, 이번에는 아내가,
“뭐는 다아 뭐야? 하나 안 냄기구 다 가져갔지.”
하고, 대답하기에,
“아, 다아 가져가다니?”
하고, 잼처 물어 보니, 아내는 그 말에는 대답을 않고,
“어떤 망헌 녀석이, 그래, 요렇게 알알 샅샅이…….”
하고, 이제는 아주 말부다도 울음이 더 많아, 나는 적지않이 황겁하여,
“그만두우, 당허려면 허는 수 없는 게지. 분해허면 뭘 허구, 아까워 허면 뭘 허겠수.”
우선 그렇게 아내를 위로하고, 다음에, 할멉에게 안방에 건너가서 담배를 가져오라 명하고서, 나는 아내의 맞은편에가 앉았다.
“대체 어찌 된 일이유? 얘길 좀 허우.”
그러나 아내의 입으로서는 별로 들을 만한 이야기도 없었다. 그는 나보다 이십 분이나 그 가량밖에는 일찍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요, 일어나자,
‘참, 밤새루 한 번두 건너가 보지 않었으니, 대체 어찌나 되었을꾸……?“
하고, 오직 반자 새는 것만 염려하며 부리나케 건넌방으로 가보니, 방 안의 광경이, 바로 지금 내가 본 이 광경이었다 한다.
“그래, 잃어버린 건, 뭐 뭐요?”
나는 양복장 속이 텅 빈 것으로 대개 추측은 있었으나, 나마저 섣불리 흥분하든 그래서는 안 될 것을 생각하고, 짐짓 태연한 태도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당신 양복.”
“어떤 거?”
“어떤 게 뭐유? 뭐 남은 줄 아우?”
“아, 그럼, 모두?”
“응…… 온, 어떤 망헌 녀석이…….”
“아, 한 벌 안 냉기구?”
“냄기는 게 뭐유……? 왜, 빨어서 뒀더니 누우렇게 결었다구 안 입는 백세루바지 있지 않수?”
“응, 아, 그거까지?”
“그리구 내, 연습과 적에 입던 외투. 당신 와이샤쓰.”
“아아니, 와이샤쓰까지?”
“글쎄 모조리 집어 갔다니까…….”
참말, 도적은 이 방 안에서 훔칠 수 있는 것은 남기지 않고 훔쳐갔다고 할밖에 없었다. 양복장 속에 넣어 두고 먹던 피존 한 상자가 어제 낮에 볼 때, 분명히 대여섯 갑은 남았었는데, 그것마저 없는 것을 보면, 넥타이를 남겨 두고 간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래, 내 양복은 다아 잃어버렸다 허구, 당신 거나 아이들 건…….”
“글쎄, 연습과 적에 입던…….:’
“그래, 외투허구, 또…….”
그러나 아내는 내 말에는 대답을 않고, 분륵, 할멈을 돌아보고,
“그 녀석이 필시 양복에만 결신이 들린 게야. 그렇지 않어? 내 것두 외투 한 벌뿐이지. 옷은 도무지 건데리질 않었으니…….”
“글쎄 말이유. 아이들 것두 고대루 다아 있으니…….”
“아이들 것은, 정말 다아 있어?”
나는 아이들 양복을 넣어 두는 머릿장을 돌아보고 아내에게 물었다.
“네에, 그건 그대루 있어요.”
“아아니, 도무지 뒤져 본 흔적두 없어?”
“뒤진 흔적은 없구…… 그 위에 덮어 놨던 일영이 타오루(타월)― 왜, 그, 커단 거 말이야. 그것 하나만 없어졌구먼.”
아내 말에, 할멈이 바로 눈을 꿈벅거리며,
“오오라, 그 큰 수건으로 훔친 걸 싸가주 갔구먼요. 구런 게지 뭐예요?”
하는 것에는 대꾸를 않고, 아내는 갑자기 생각난 듯이,
“참, 양복 주머니엔 뭐 들지 않었수?”
하고 나의 얼굴을 빠안히 쳐다본다.
“어떤 양복?”
“아, 요새 입구 댕기시던 거 말예요.”
“거기 뭬 들었던가……?”
“지갑.”
“지갑은 책상 서랍 속에 있구…….”
“있는지 알어요? 나가 보세요.”
마루에 놓인 물건들은 완전히 무사하였다. 본래 건넌방에 있을 물건이, 반자가 새는 통에 마루로 나와 있는 책장과 책상들은, 본래가 도적에게는 인연이 먼 것이니 말할 것이 못 되었으나, 건넌방 앞마루에 놓여 있는 새것, 헌것, 두 켤레의 구두가, 어제 보던 그대로 제자리에 놓여 있는 것은, 이를테면, 한 개의 기적이라 할밖에 없었다. 그렇기로 말하면, 우중이니 우산도 집어 갈 법하련만, 그것도 건넌방 앞창 미닫이 덧문짝 위에 고대로 걸려 있었다.
“또 뭬 들었어요?”
마루는 무사하였다 판명이 되자, 아내는 다시 나의 잃어버린 양복주머니의 내용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샤프 펜슬.”
“또.”
“수첩.”
“수첩.”
“손수건.”
“손수건.”
“그리구…… 구두주걱.”
“또요.”
“그리군…… 오오라, 회수권.”
“전차요? 많이 남지나 않었수?”
“산 지 을마 되나? 아마 여나문 장 남었을걸.”
“아이, 어떤 녀석인지, 그 녀석 존 일만 했네. 그러군 없어요?”
“그러군…… 앗차!”
나는 깨닫지 못하고 소리쳤다.
“왜?”
설명을 듣기도 전에 얼귤에 놀라움이 가득한 아내를 보고는, 나는 얼른 이야기할 용기가 안 났으나, 그래도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술 먹어 버린 심만 잡지.”
“돈이 들었었구려?”
“응.”
“아아니, 지갑은 책상 서랍에 있다며?”
“그건 잔전이지? 지전은 따루 양복조구리 안주머니에다 너뒀으니까…….”
“아이, 그런 데다 왜 너두우? 글쎄…… 그래 얼마나 되게?”
“저어, 삼십 원…….”
“삼십 원이나?”
“아아니, 가만있어.”
나는 할멈을 돌아보고 물었다.
“어제 아침이지? 할멈 예지동 간 게?”
“네에, 어제 낮이죠.”
“가서 술 좀 구해 보내시라구, 내가 오 환 줬지?”
“네에, 오 원요.”
“십 환짜리라, 술 한 병 사구 거슬렀겟다?”
“네에, 내가 칠 원 오십 전 갖다 드리니까, 게서 오 원 주셨죠.”
나는 아내를 보고 말하였다.
“그럼, 틀림없어. 이십 이 원 오십 전이로구먼.”
아내는 잠시 말도 없이, 나의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다.
“잔전은 지갑에다 넜다며, 오십 전은 웬 오십 전이야?”
“그게 칠 전이 아니라 오십 전짜리 지전이거든. 그래 일 원짜리 두 장허구 한테 겹쳐 접어선, 그냥, 주머니 속에다 넜지.”
“술 사오기 전에 삼십 원 있든 건 분명해요?”
“틀림 없어.”
아내는 가만한 한숨을 토하고 말하였다.
“수가 사나우려니까, 나중엔 참…….”
수가 사나워 그랬든, 어쨌든, 당한 노릇은 어쩌는 수 없으니, 깨끗이 단념을 하더라도, ‘도난계’만은 제출하여 두어야 마땅할 것이다.
“아암요, 신곤 꼭 해야죠.”
할멈은 즉석에서 찬동하고, 자기가 시골 있을 때, 자기 당질녀의 시삼촌댁이라나 누가, 가락지와 비녀 등, 은붙이 몇 가지와 광목 한 필을 도적맞은 일이 있었는데, 신고를 안 하고 내버려두었다가, 그 뒤에 도적이 잡혀서 부는 통에, 그 사실이 드러나서, 왜 그 즉시 신고를 하지 않고 그랬느냐고, 순사한테 야단을 톡톡히 만났다고, 한바탕을 늘어놓았다.
할멈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내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 물건두 나왔대애?”
“웬 게 나와요? 도적맞은 지 일년이나 돼서 잡힌결. 도적질헌 물건이 세 대리만 넘으면, 알어두 못 찾는 법이라는군요.”
“세 대릴 넘다니?”
“아, 도적놈이 훔쳐 냈죠? 그놈이, 가령, 서방님한테 그 물건을, 금시계면 금시곌 팔었단 말예요. 그걸, 또 서방님이 아씨한테 팔죠? 그렇게 세 대리만 넘으면, 알어두 못 찾는다는군요.”
“그럼, 우린, 곧 그 녀석이 잡히기만 헌다면, 물건은 나오겠구먼. 지가 고물상에다 팔든, 전당국에다 집어넣든, 그 수밖에 더 있겠어?”
“아암, 빨리만 잡으면야, 찾구말구요. 돈은 곧 써버릴 테니 어렵지만, 양복이야 판 데만 알면 찾구말구요. 세 대리만 안 넘으면 영락없이 찾는다는 게니까…….”
아내는 약간 원기를 회복한 듯싶었다. 그는 나를 보고, 즉시 파출소에를 가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노랗게 결어서 입지 않고 두었던 세루바지마저 잃었던 것이므로, 나가려면 지금 이대로 자리옷 바람일밖에 없었다. 아무리 긴한 볼일이라도 우중에 이 꼴을 하고 나가기는 우울한 노릇이다.
나는 할멈을 보내기로 하였다.
“파출소 알지?”
“그거야 알지만요…….”
“아, 어딘데?”
“동소문 네거리에 있지 않어요?”
“거긴 아마 안 될 게야. 혜화정이니까…… 필경, 돈암정 파출소루 가서 말을 해야 될 테지.”
“그게 어디 게요?”
“나두 자세 모르지만, 하여튼 큰 행길 나가 물어 보구려.”
분명히 가고 싶지 않아하는 할멈을 파출소로 보낸 뒤, 나는, 그저 곤히 자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미 나의 마음속의 흥분은 가라앉고, 잃은 물건에 대한 애착도 이제는 그다지 절실하지 않다. 당장 입을 옷이 한 벌도 없는 것은 적지않이 곤란한 노릇이었으나, 그리 된 일을 이제 어찌하겠느냐? 깨끗이 단념하여 버릴밖에 없는 노릇이었고, 그것이, 결국은, 이 경우에 있어 우리가 취할, 가장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좀처럼 단념을 하여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마침, 잠이 깨서 우는 일영이에게로 돌아와, 젖꼭지를 물리고서도 얼마 동안, 그 이름도 성도 알 길 없는 도적을 욕하더니, 도적이 들어온 것도, 결국은, 지붕이 새어서 유리창 분합을 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마침내는 청부업자와 기와장이까지를 원망하였다.
“에이, 망헌 녀석들, 으쩌면 돈 받구 허는 일을 그따우루 해논담, 지붕만 안 새두 분합을 열어 놨을 리 없지 않어? 분합만 잠거 노면 제 따우가 어디루 으떻게 들어와?”
“그, 생각허면 뭘 허우?”
“그래두 분허니 으떡해애? 그래, 아무리 도적놈 심사기루, 당장 입을 것 하나 냄기지 않구, 고렇게 모조리 가져간담?”
“하, 하, 하…… 도적놈이 언제 남의 사정 봐가며 도적질헌답디까?”
“온, 지금은 해입을래야 해입을 수두 없는 양복인데…… 온, 고런 벼락을 맞을…….”
“그만 해애 두우. 아마 하늘이 날더러 새 양복 맞춰 입으란 뜻인가 보우.”
“아이, 듣기 싫여요, 해입긴 무슨 돈으루 해입수……? 지가, 그래, 갖다 팔면 을마나 받겠다구…….”
사실, 우리집에 들어온 도적은 훔친 가짓수의 분수로는, 그 소득이 결코 많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의 입던 의복이란, 그것을 의복대로 이용하여야만 값이 나가는 것이지, 금전으로 바꿀 때, 그것은 실로 멫 푼이 못 될 것이다.
나는, 문득, 그 도적이 그나마 돈으로 바꾸어 보지도 못하구, 내 양복을 싼 보퉁이를 들고 거리를 헤매다가, 마침내, 경관에게 붙잡히는 장면을 생각하여 보았다.
그는, 혹은, 아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망한 녀석’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둠을 타서, 그처럼 죄를 범한 것이, 실상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것도 굶주리는 처자의 애처로운 모양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던 데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눈에 당연히 띄었어야 옳을 구두를, 그대로 곱게 버려두고 간 것을 보면, 전과가 있는 자의 범행 같지는 않은 듯만 싶었다.
잠깐 말이 없던 아내가, 또 갑자기 입을 열었다. ’
“이 바본, 가더니 뭘 해애? 파출솔 그저 못 찾었나……? 아마 전당포는 아직 안 열었을 텐데…….”
아내는 경찰에 말만 하면, 곧, 각처로 수배를 하고, 그러면 반드시 도적은 잡히고, 우리 물건은 돌아올 것같이만 여기는 모양이었다.
세상 일이란 결코 그렇게 안성맞춤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되려 든다면, 또 얼마든지 공교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문득, 지금이라도 그 도적이 경관에게 붙잡힌 바 되어, 우리에게서 훔친 물건을 한보따리 들고, 우리 문간에 와서 고개 숙이고 서는 장면을 눈앞에 그려 보았다. 경관은 그 보따리를 우리에게 내어보이며, 이것들이 과연 당신네가 도적맞은 물건이오?―하고 묻는다. 그 물음에 대하여, 나는 자애 깊은 웃음조차 입가에 띄우고, 아니오, 도적맞은 것이 아니라 내가 저 사람에게 준 것이오―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우리가 도난을 당하였다고, 이미, 할멈을 파출소로 보내고 난 뒤였으니까, 그처럼 억지로, 내가 ‘미리엘 승정(僧正)'이 되고 싶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밖에 없었다. 나는, 우리의 ‘짬발장’이 도저히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잠깐 동안, 진정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며, 될 수만 있는 노릇이라면, 나의 헌 양복 나부랭이는 영구히 나의 수중에 돌아오지 않더라도 좋으니, 부디 가엾은 그의 몸에 형벌이 내려지지 말라고 빌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쓰디쓴 웃음을 웃으며, 나의 이 ‘엄칭난 생각’은 대체, 어디로서부터 말미암아 온 것일까?―하고, 스스로 의심하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나의 이 조그만 감상(感傷)을 업신여김으로써 물리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처럼 양복을 모조리 잃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게 살림살이가 넉넉한 선비는 결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고만한 손실이 곧 우리 생활에 큰 위협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한 개의 작은 ‘재난’으로 돌려 버리고, 나논 역시 나의 옷을 몇 벌 장만하려 노력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가엾은 도적은 그렇지 못하였다. 값으로 따질 때, 결코 대단하지도 못한 물건을 내 집에서 홈쳐 냈기 때문에, 그는 한평생을 불안과 불행 속에 지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는 그가 저지른 조그만 죄로 하여, 그 분수보다도 엄청나게 큰 형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
내가 속으로 은근히, 파출소로 할멈을 보낸 것은 크게 옳지 않은 일이었다고― 뉘우치기조차 하였을 때, 마침내 할멈은 돌아왔다.
그의 발소리가 뜰 안에 들리자, 마침 일영이를 다시 재워 놓고 난 아내는, 부리나케 마루로 뛰어나가며,
“갔다 왔―어? 그래, 순사가 곧 온대?”
하고, 빠른 어조로 물었다.
그러나 할멈의 대답은 아내에게 실망을 주고, 나에게 미소를 가져왔다. 가보니까, 파출소는 잠겨 있더라 한다.
“아아니, 파출소가 잠겼다니?”
“밖으루 자물쇨 채워 놓구 안에는 아무두 없에요.”
“딴 텔 가본 게지, 파출소에 순사가 없으면 어디 순사가 있어?”
“그래도 없는걸요……? 이웃집 사람더러 물어 보니까, 아직 출근헐 때 안 됐다구― 여덟점이나 넘어야 나온다구, 그러는군.”
“아이, 벨일두 다 있어. 그럼, 밤에 무슨 일이 나면 으떡허누?”
“모르죠…… 아마, 문 밖이니까 그런 게야.”
“문 밖은, 왜, 문 밖이야? 예두 어엿한 경성 시낸데…….”
아내는 적지않이 불평인 모양이었으나, 이것은, 어쩌면, ‘도난계’ 같은 것은 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일지 모르겠다― 나는 생각하였다. 우리집에 들어왔던 도적이, 설혹, 가증한 상습범이라 하더라도, 그가 잡히는 날에는 그의 처자를 먹여 살릴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는 나만 경찰에 알리지 않으면 그는 영구히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짓만 같은 어림도 없는 착각을 느끼며,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할멈에게 향하여,
“여덟시면 출근헌다구……? 그럼, 진지 얼른 제놓구 다시 한번 가 봐아.”
이렇게 명하였을 때, 그를 지극히 인색하고 동정 없는 여자인 것같이, 은근히 미워하고 싶은 생각조차 드는 것을, 나는 어찌할 수 없었다…….
비는 한결같이 쏟아졌다. 할멈은, 아내가 밥만 지어 놓고는 다시 갔다 오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설거지까지 다 마치고도 부엌에서 쉽사리 나오려 들지 않았다. 그는 가뜩이나 우중에, 그러한 종류의 심부름은 되도록 기피하고 싶은 눈치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러한 것을, 이루,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뭘 그렇게 꾸물거려어? 다아 체껀 어서 다시 한번 갔다 오우, 어채피 갈 바엔 한시래두 빠른 게 좋지 않어?”
그래, 할멈을 두 번째 파출소로 보내 놓고, 아내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자기도 우산을 받고 밖으로 나가더니, 얼마 있다 들어와서,
“역시, 거는방 모퉁이, 그중 얕은 데루 넘어왔구먼, 나가 보니까 발자국이 두 개가 아주 뚜렷하게 남아 있는데?”
하고, 자못 흥분된 어조로 나에게 말하였다.
“발자국이 있으면 더 있구, 없으면 아주 없을 테지. 으째서 단 두 개만 남어 있단 말이야.”
“온, 참…… 그리루 넘어서 홱 뛔내리려니까 움푹허게 두 발이 들어갔을 게 아니야? 모래 바닥이니…….”
“아아니, 발자국이 어디가 있게?”:
“담이 거는방 모퉁이가 그중 얕지 않수? 바루, 그 담 밖에가 있구먼.”
“그럼, 그리루 해서 나간 게지, 어디 들어온 게야?”
“들어온 데루 도루 나갔지, 딴 데루 나갔겠수…… 그래, 그 망헌 녀석이 그리루 넘어와 가지구, 분합 열린 데루 살쩍 올라서서, 거는방엘 들어간 게지, 벨수없어.”
“…….”
나는 그 말에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으나, 그때까지 곁에가 앉아서, 우리의 얼굴만 번갈아 보고 있던 설영이가, 갑자기 말참견을 하여,
“아빠아, 누가, 들어왔수? 담을 넘어 들어왔수?”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넌, 어서 소영이 데리구 마루에 나가서 소꼽질이나 허구 놀아라. 아빠가, 자아, 과자 주께.”
어린 마음에도, 그래도 궁금하게 여기는 듯싶은 설영이를, 나는 가까스로 마루로 내어보내고,
“고토모노 마에데 손나 로쿠데모 나이 고토, 아마리 샤베루나(애 앞에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 너무 지껄이지 마).”
한마디 아내를 타일렀으나, 아내는 언성을 좀 낮추었을 뿐으로 결코 화제를 고치려고는 안 하였다.
“그런데, 마루나 방에 도무지 발자국이 없는 건, 참, 이상해애. 신발을 벗구 올러왔을까……? 신구 올러왔다면, 천해 없어두 흙발자국이 남을 덴데…….”
“그럼, 벗구 올론 게지.”
“글쎄 벗구 올러왔게 아무 자국이 안 난 거겠지만, 도둑놈이 우리 마루 버리까 봐 사정 볼 리두 없는 게구…….”
“사정을 본 게 아니라 발소리가 날까 봐 그런 게지. 물초가 된 신발째, 마루루 방으루 돌아댕길려면 소리가 주움 날 게야?”
“망헐 놈의 비는, 왜, 기가 나서 오는 게야? 제아무리 신발을 벗구 올러오기루, 빗소리만 아니면, 자다가도 인기척 몰랐으까? 똑 운수가 사나우려니까…… 아이, 애들이 극성스러 늦두룩 안 자니까 그렇지. 딴 때 겉으면 초저녁 잠, 한잠 달게 자구, 열한시나 그때면 깰 땐데…….”
“열한점에 들어왔는지는 으떻게 아우?”
“옆집에서 그러던데? 그 시간에 자기 집 개가 여간 짖지 않었다구…… 집이두, 참, 개나 한 마리 길렀더면 이런 일 당허지 않었을지두 모를걸…… 똑, 당신이 개를 싫여허니까…….”,
“남의 말은 잘 허네. 자기는 은제 개를 주와했나?”
“나두 좋아는 않지만, 집 에서 길르는 개면야…….”
“아이, 듣기 싫소. 그버덤두, 뭐어 장헌 일이라구 도적맞은 얘길, 동네방네 떠들구 다뉴?”
“뗘들구 댕기긴, 누가 떠들구 댕겨?”
“그럼, 옆집에서 으떻게 알구 허는 말이야?”
“할멈한테 들은 게지.”
“온, 참…… 늙은 사람이, 그게, 입이 개벼워 못쓰겠어.”
내가 불쾌하게 몇 번인가 혀를 차는 것을 보고, 아내는 잠깐 입을 봉하고 있었으나, 다시,
“그래 인제 으떡허우? 옷두 옷이려니와 당장 용 쓸 것두 없으니…….”
하고, 아랫니로 윗입술을 가만히 깨물어 본다.
“당신한텐 을마나 남었수?”
“삼 원두 못 될 게야.”
“내 지갑에 잔전이 일 원 남짓 허니까, 그럼 사 원…….”
그러나 나는 이 경우에 그러한 이야기를 아내와 더불어 더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마루로 나가,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골라 들고 돌아왔다.
“오오, 참, 그게 허종(許琮)의 얘기였구먼.”
나는 책을 펴서 아내 앞에다 놓아 주고 말하였다.
“허종이락구 성묘조 때 어른인데, 그가 소년 시절에 우리처럼 도적을 맞었더란 말이야. 유적(有賊)이 투의혜이거(偸衣鞋而去)라―도적이 옷과 신을 훔쳐 갔다구…… 그러니까 우리버덤 피해가 더 많은 셈이지. 우린, 구두는 안 잃어버렸으니…… 헌데두 워낙 마음이 활달한 양반이라, 와이랑음왈(臥而朗吟曰)―드러누워 글을 읊어 가로되, 기오의지투거혜(旣吾衣之偸去兮)여, 우호위호도혜(又胡爲乎盜鞋)오, 기투의우도혜혜(旣偸衣又盜鞋兮)여, 절위도선생불취야(竊爲盜先生不取也)라― 이왕 내 옷을 훔치려거든 신발이나 두구 갈 게지, 옷두 훔치구 신발마저 집어 가니, 그건 여보 잘못허는 짓이오…… 그, 도량이 넓지 않소? 우린 옷만 도적맞었으니, 남들 듣기에 과히 꼴사너운 말은 맙시다.”
그리고 내가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을 때, 마침 할멈이 돌아왔다.
“순사가, 그래, 언제 온대?”
아내는, 그가 채 마루로 올라서기도 전에 부리나케 물었다.
“오긴, 누가 와요.”
할멈은 방으로 들어오며,
“가니까 순사가 왜 왔느냐구 그러는군요. 그래, 간밤에 도적이 들어왔다구 그랬더니, 요새 장마통에 벌이들은 없구…… 그래, 좀도적이 바짝 성했다구…… 도난계를 써서 내라구 그러더군요.”
아내는, 경관이 현장을 보러 오지도 않는 것이, 마음에 제법 불만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다른 별말은 없이,
“그럼, 어서 도난겔 좀 쓰우. 헐 건 해야지.”
하고 나를 돌아본다.
“글쎄― 서식이 으떤지…….”
나는 떠름한 얼굴을 하였던 것이나, 할멈은,
“서식이라니, 쓰는 법 말예요?”
하고, 치마를 걷어 올리더니 엽낭 끈을 풀며,
“그러지 않어두 순사한테 그랬지. 쓰는 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구― 그랬더니, 종이쪽에다 써주는군요.”
걸음을 한 번이라도 덜 걸으려니까 꾀가 난 모양이다. 꺼내 주는 종잇조각을 보니, 연필로, 주소(住所), 씨명(氏名), 직업(職業), 피해 일시, 피해 장소, 피해 상황…… 그러한 문구들이 기입되어 있었다.
“이거 아무 종이에다 써선 안 될 텐데…….”
“저어, 인찰지에다 써오라더군요.”
“인찰지가 어딨나?”
“아이, 이럴 줄 알었더면 오는 길에 가게서 사가주 들어올 걸 그랬지?”
“꼭 인찰지래야 헌다구 그래?”
아내가 잼처 묻는 말에,
“글쎄 인찰지에다 쓰라더군요…… 에이, 아무 종이에나 하나 쓰시지. 가주 가봐서, 안 된다거든 인찰질 사다 쓰더래두…….”
“참, 그게 좋겠구먼.”
아내는 마루로 나가서 한참 책상 서랍을 뒤지는 모양이더니,
“웬 인찰지가 마침 있어서…… 오오, 내가 참 전에 이력서 쓰구 남은 게로구먼.”
이력서 쓰고 남은 인찰지―아내는 소학교 교원 자리를 내어놓고 나와 결혼하였던 것이나, 가난한 내가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그처럼 곤한 것을 보자, 그는 이미 두 어린것의 어머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교원으로 나서려 하였다. 그것을, 나는, 극력 만류하였다. 자존심으로서가 아니다. 역시 나의 조그만 감상으로서이었다…….
“어서 쓰시지 않구, 뭘 생각허우?”
“응.”
나는 서투른 솜씨로 붓을 찹아, 익숙지 않은 먹글씨를 썼다. 그러나 ‘피해 가격’이라는 대문에 이르러, 나는, 대체, 어떻게 써야만 옳을 지를 몰라 잠시 망설거렸다. 그래도 마침내 아내와 상의한 끝에, 도난 당한 물목을 주욱 차례로 쓰고, 그 밑에다 괄호를 한 다음, 가격을 기입하기로 하였다.
“가만있어, 그러니까 양복이 모두 몇 벌이란 말이야?”
“우선, 요새 입으시던 하복이죠? 또 하복 한 벌이죠? 동복이…… 헌 것허구, 따불허구, 동복이 또 두 벌이죠? 거기다 백세루바지가 하나…….”
“그까짓 결어 빠진 세루바지야 으떻게 됐든…… 그럼 동복이 두 벌, 하복이 두 벌. 양복이라군 모두 그밖엔 없었나?”
“헌 거 두 벌은 작년에 남 주지 않으셨수? 한 벌은 데렌님이 가져가구…….”
“가져간 거야 문제가 아니구…… 춘추복이 한 벌두 없으니 웬일이야?”
“참 춘추복두…….”
아내는, 그러나 말을 하다 말고, 눈을 잠깐 깜박거리더니,
“오오, 춘추복 한 벌만 안 잃어버렸구먼. 저어번에 크리닝을 보내구, 여태 안 찾어와서…….”
하고, 그는 역시 약간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 말에,
할멈이,
“아이, 안 찾어오길 잘했지. 그것두 찾어다 뒀더면 도적놈 존 일만 헐 뻔했죠?”
그것은, 미상불, 나로서도 다행한 노릇이었다. 그래, 나도 한마디 하였다.
“그럼 당장 입을 여름옷은 없어두 가을옷 한 벌은 있는 심인가? 이왕이면, 춘추복말구, 동복두 미리 좀 세탁을 주지 않구…….”
“세탁을 왜 안 줘요? 모두 말갛게 크리닝을 해다 위해 둔 겐데…… 에이, 똑 망헌 녀석 존 일 헐려구, 돈을 처들여 크리닝을 해서, 아이롱을 가케루해서 …….”
“그까짓 소린, 자꾸 해애 뭘 해……? 가격이나 어서 대애. 하복이, 그게, 얼마에 맞춘 거더라?”
“요새 입구 댕기시든 거 말이죠? 그게, 아마, 오십팔 원이지.”
아내는 내게 일러 주고는 또 즉시 곁에 앉았는 할멈을 돌아보고,
“지금, 그런 거 하나 맞출려면 일백칠팔십 원이나 줘야 헌다우. 그나마 감 구허기가 어디 쉰가? 그저 흔헌 게 맨 모두 스프 섹인 거지. 온, 그런 거, 돈 주구두 어디 가 구해 볼 수나 있나?”
생각하면 할수록에, 아내는 분해서 못 견디겠는 모양이었다.
“또, 그, 헌건 을마 줬더라? 하복 말이야, 하복.”
“그건 오십 원이죠, 아마…….”
결국, 이처럼 하여 잃어버린 물건의 값을 쳐보았더니, 모두 삼백이십사 원 칠십 전. 양복주머니에 들었던 현금 이십이 원 오십 전까지 합하여 삼백사십칠 원 이십 전의 피해이었다.
나는 도난계를 접어서 봉투에다 넣어 할멈에게 다시 한번 파출소로 가라 이르고, 문득, 생각이 나서 또 한마디 하였다.
“참, 도적이 들어왔었다구, 뭐, 아무나보구 말헐 건 없수. 남 보기에 어리석 기만 허니…….”
그러나 할멈은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어리석긴, 왜, 어리석어요? 제아무리 문단속 잘 해두 당허려면 헐 수 없는 겐데우. 아, 도적맞으려면 개두 안 짖는단 말이 다 있지 않어요? 이런 일일수룩에, 동네다가 소문을 펴뜨려 놔야만 허죠. 그래야 서루 조심들을 해서 도적이 얼씬을 못 헐 게 아네요?”
나는 아무 대꾸 안 하였으나, 아내는 즉석에서 그 말에 찬동하였다.
“그두 그래. 우리만 단속을 잘 허더래두, 동네에 도적이 들었다면 역시 불안헐 게니까…….”
“아, 불안허다마다요.”
“옆집에단 벌써 얘길 헌 모양이더군?”
“아까 그 집 밥짓는 이보구 얘길 했죠.”
“아주, 저 위에 사는 사람들한테두 말을 해두지.”
“다아, 했죠. 우물에서 얘길 했으니까 다아들 알죠. 그런 건 소문을 내야만 헙늰다.”
할멈은 딴때 없이 수다스러이 떠들고는, 다시 우산을 널}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얼마 동안 서로 말이 없었으나, 한참 있다가 다시 입을 연 것은, 역시 아내이었다.
“도난계가 경찰서로 들어가면, 경찰에선 즉시 각처루 수배를 허나?”
“글쎄--― 좀도적이니까…….”
“아무리 좀도적 이기루 그냥 내버려두는 법이 어딨어?”
“그냥 내버려야 두겠소? 무슨 적당헌 조처가 있겠지.”
“하여튼 오늘 밤버터는 유리창 분합을 꼭꼭 닫어야만…….”
“소 잃구 오양깐 고치나?”
“다아 늦게래두 고쳐야지 으쩌우?”
“뭐어, 또 들어올라구?”
“또 들어오지 말란 법은 어딨수?”
우리가 이런 수작을 주고받았을 때, 어느 틈엔가 다시 방으로 들어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설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도둑놈이 들어오우? 유리창 분합 열구 들어오우?”
나는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았다.
“아니야, 들어오긴 누가 들어와. 왜 소영이허구 소꿉질 안 허구 이러니?”
“뭘루 해애?”
“과자 다 먹었니……? 자아, 또 주께 마루에서 놀아라. 니가 엄마 허구, 소영이는 학생 허구…… 소영이가 학교 가늑데, 니가 엄마니까 벤또 싸주구 모두 그러는 거야.”
설영이는 과자를 받아 들고, 다시 마루로 나갔으나, 당장은 소꿉질을 하려고도 않고,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너 도둑놈이 들어왔어.”
“어디?”
“어디는 무슨 어디야? 거는방으루 들어왔지.”
“거는방으루 왜 들어와?”
“왜 들어오겠니? 아빠 양복 가질러 들어왔지.”
“아빠 양복 가질러?”
“응―. ”
“어떤 양복?”
“어떤 양복이 뭐야? 아빠 양복 말이지, 아빠 양복 죄다 말이지.”
“죄다……? 그럼, 아빠 양복 옰게?'’
이제 네 살 먹은 소영이는 그제야 비로소 사태의 중대함을 깨달은 듯싶어, 갑자기 눈을 등잔만하게 뜨고 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아빠아, 아빠, 양복 없수? 도둑놈이 죄다 가져갔수?”
하고 묻는 것을, 우리가 미처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기 전에, 설영이가,
“소영아, 소영아.”
하고, 아우를 급히 밖으로 불러내어, 줌더 작은 목소리로,
“아빠한테 그런 말 말어. 엄마한테두 말구…….”
수군거리니까,
“말허면 야단허니?”
소영이도 갑자기 말소리가 작아지더니, 다음에 어린것들은 우리에게 들리지 않게, 얼마 동안, 공론이 많은 모양이다.
나는 쓰디쓴 침을 한 덩어리 꿀떡 삼키고, 아내를 돌아보고 볼멘소리를 하였다.
“모오, 도로보노 하나시와 요소오(더 이상 도둑놈 얘기는 하지 마).”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어린것들의 교육을 위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입을 삼가려 하였어도 그것은 막무가내이었다. 낮이 되니까, 우물가에서 할멈한테 이야기를 들은 동네 여편네가, 한 사람 두 사람씩 찾아와서는,
“댁에 도적이 들었다죠?”
“아이, 그런 변이 어딨에요?”
“양복을 모두 잃으셨다죠?”
“온, 세상에…….”
“아이, 분합을 꼭 닫으셨더면 아무 일 없을 걸 그랬군요.”
무어니무어니 한참을 떠들다가는 갔다.
나는 사랑으로 내려가 안마당으로 향한 쌍창미닫이를 닫고 누웠다. 그러나 여편네들의 시끄러운 잔소리는 그곳까지 들려 왔다.
그들은, 으레, 나의 아내와 집의 할멈에게, 피해의 상황을 소상하게 청취한 다음, 이번에는 자기들의 도난에 관한 경험을 피로하기에 열심이었다. 남들이 모두 도둑을 맞았을 때, 자기만 그 귀중한 경험을 갖지 않았다는 것은,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이겠느냐? 그래, 어느 여편네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엇사둥둥’ 구경 가느라 밖으로 문을 채우고, 집안 식구가 모두 나간 사이에 누가 담을 넘어 들어와, 고추장올 반항아리나 실하게 퍼갔다는 사실을 들어, 말참례를 하기에 골몰이었고, 고만한 피해나마도 없는 사람은, 옛 기억을 짜내어, 남이 당한 이야기를 소개하느라 입이 아픈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껄일 만큼 지껄이고 나서는, 돌아가기에 미쳐,
“오늘 밤버텀이래두, 문 신칙 잘 허세요. 아이, 온, 그런 변이 어딨어.”
으레, 그러한 말을 한마디씩 하였다. 나는 그들의 잔소리에 적지 않이 불쾌를 느꼈던 까닭에, 결코, 그들의 의견을 좇지는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닫는다면 벌써 오래 전에 닫았어야만 마땅할 것이다. 도리로 하여서 끊임없이 줄줄이 떨어지는 낙수를 받기 위하여 열어 놓았던 분합을, 이제 와서 새삼스러이 닫는다는 것은, 누가 생각하여도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더구나 이처럼, 동네 안에, 우리집 도적 든 소문이 퍼졌으니, 경계가 필시 엄중하리라 하여, 적어도 당분간은 도적이 노리지 못할 것이 아니겠느냐? 비록, 아내가 무어라든, 나는 결코 그쪽 분합을 닫지는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이제야말로, 무슨 불안이 있을까 보냐―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밤이 다시 찾아와, 어듐이 완전히 외따른 우리집을 휩싸고, 집 안팎에 줄기찬 빗소리만이 소란할 때, 나는, 아무리 편안하게 가지려 하여도 도저히 그래지지가 않는 나의 마음을, 스스로 어찌하는 도리가 없었다.
저녁을 치르고 나자마자, 아내는 곧 건넌방 앞마루의, 그 문제 붙은 유리창 분합을 닫으려 하였던 것이나, 나는 물론, 그러한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고, 불쾌하게 언성조차 높였던 것이다. 그러나 밤이 차차 깊어 감에 따라, 나의 마음속에는, 닫으려면 닫게, 가만 내버려들 것을 공연히 그랬다고, 새삼스러운 뉘우침 이 일어났다.
대체, 누가 이 비 오는 밤중에 밖에 볼일을 가졌는지, 쿵, 쿵, 킁, 쿵 하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발소리가, 이따금, 들렸다. 하기야, 밤중에 발소리를 듣는 것은 오늘 밤에 한한 일이 아니다. 어제도, 그저께도, 그끄저께도― 아무리 인가가 드문 이 동네이었어도, 밤마다 발소리는 이 비탈길을 오르고 또 내렸다. 그러나 오늘 밤에 듣는 발소리만이, 유독, 심상치 않게 생각되는 것을 어찌하랴?
발소리와 함께, 집집이 개가 또 짖는다. 어제도, 그저께도, 그끄저께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툭하면 짖고, 짖고, 그러는 개들이기는 하다. 그러나 오늘 밤에 한하여, 그 짖는 소리에 중대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듯싶게만 생각되어 견딜 수 없었다.
바람이 분다. 어디서 털거덕 소리가 난다. 반자 위에서 흙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또 누가 언덕길을 내려오는 모양이다. 개가 시끄러이 짖는다.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쏟아진다.
나는, 자기 전에, 으레, 자리 속에서 읽는 유머 소설을, 그냥 손에다 건성 들었을 뿐으로, 그곳에서 오락을 구하려고는 안 하고, 우리집 안팎에 들리는 온갖 음향에만 신경질인 나 자신을 문득 깨닫고, 저 모르게 스스로를 비웃는 웃음을 웃었다.
어리석은 노릇이다. 그만 자리라― 그러나 책을 놓고, 베개를 고쳐 베었을 때, 뜰에 가만한 인기척을 느꼈다. 분명히 사람들의 발소리이었다. 그것도 지극히 조심스러운 발소리이었다. 그 증거로는, 두어번 들렸나 하였더니, 그만 뒤가 없다.
유리창 분합은, 물론, 열어 놓은 채다. 도적은 이미 마루로 올라섰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불을 끈 대청 위에, 사람이 자지 않는 건넌방 안에, 어둠 속을 더듬는 꺼멓게 빛나는 두 눈과, 긴 손톱에 잔뜩 때가 낀, 굼틀거리는 열 손가락을 느꼈다.
나는, 문득, 몸을 뒤쳐 돌아눔는 소영이 편을,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지켜보며, 어떠한 가만한 소리라도 결코 놓치지 않으려 모든 신경을 귀에다 모았다. 마루에서도, 건넌방에서도, 아무 소리가 없다. 그래도 나는 분명히 아까 뜰 안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도적은, 어쩌면, 아직도 불이 켜 있는 우리 안방이 께름칙하여; 지금 미닫이 밖에 붙어 서서,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한 겹의 삼첩지를 사이에 두었을 뿐으로, 흉악한 도적과 서로 대하여 있는 나와 나의 처자의 위험을 절실하게 느꼈다. 저모르게 방안을 둘러보았으나, 반일의 경우에 손에 잡을, 몽치 하나 없었다. 과도 같은 것은, 급한 경우에 아무짝의 소용이 없을 것이다.
‘도적은 흉기를 가졌을까……?’
강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도적에게는 무슨 준비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설혹, 맨손이라 하더라도, 나보다는 체력이 우수할 게 아니겠느냐?
내가, 목전에 절박한 위험에 대하여 아무러한 대책도 강구할 수 있기 전에, 또 갑자기 조심스러운 발소리를 안마당에 들었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저도 모를 사이에 상반신을 자리 위에 일으키며, 소리쳤다.
“누구요오―”
그리고 다음에 나는 어떠한 행동을 취하여야 할 것일까?―잠방잇 바람으로 쌍창미닫이를 열어제치고 마당으로 뛰어나가야 할 것인가? 또는 방 속에 있은 채, 소리만 질러 도적을 튀길 것인가……? 그러한 것을 황망히 생각하여 보았던 것이나, 그 즉시 마당에서 들려 온 것은, 의외에도, 할멈의 음성으로, 그는 지금 마악 변소에를 다녀나오는 길이었다.
“여태, 안 주무셨군요. 왜, 놀라셨어요?”
제딴에는 인사성 있이 하는 말일지 몰랐으나, 나는 여지없이 손상된 나의 자존심을 생각하고 불쾌하였다.
‘자라 보구 놀란 가슴, 소댕 보구두 놀란다더니…….’
지금쯤 저의 방으로 내려가, 그렇게도. 겁 많은 젊은 주인을 비웃고 있을, 괘씸한 할멈의 뻔뻔한 얼굴을 눈앞에 그려 보며, 얼마 동안을,
나는 쓰디쓴 입맛만 다셨던 것이나, 이러한 상태로는, 할멈이 배탈이라도 난 경우에, 혹은 나까지 잠을 못 자고 머리를 앓을 것은 뻐언한 노릇이라,
‘역시 분합문을 잠그리라…….’
하고, 새삼스러이 아내 편을 돌아보니, 아내는 잠이 깊이 든 모양으로, 조금 전의 나의 ‘누구요?’ 소리에도 깨는 일 없이, 저편을 향하여 아까나 한모양으로 누워 있다.
나는, 역시, 잠깐 또 망설거렸다. 그러나, 마침내 뜻을 결하고, 소리 안 나게 미닫이를 열고 마루로 나갔다. 유리창 분합만 꼭 닫고, 비녀장을 찌르고 그러면, 아무런 불안도 없을 것이다. 만약 안방 창문들마저, 덧문짝까지 닫고 볼 말이면, 우리 안채만은 절대로 안전일 것이나, 오뉴월 복중에, 더구나 간밤에 도적을 맞은 뒤라, 덧문까지야 닫는다는 수가 없었다.
‘안 닫어두 좋다. 뻐언히 사람이 자구 있는 걸 알면서두 달려든다면, 그건 강도다. 강도야 으떻게 막어 낼 도리가 있겠느냐……?’
그래, 나는 건넌방 앞마루로 향하여 아내가 잠을 깨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기어 놓았던 것이나, 아내는 그 동안 자지 않고 나의 동정이라도 살피고 있었던 것인지, 또렷한 목소리로,
“염녜 말구 어서 주무시기나 해요. 분합은 아까 내가 닫쳐 놨으니…….”
적지않이 빈정거림이 섞인 수작을 한다. 나는 한충더 불쾌한 속에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지주의 집 개가 또 갑자기 짖는다. 뒤이어 지주의 소실의 집 개가 또 짖는다. 그러나 얼마 동안 귀를 기울여 보아도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 몇 점이에요?”
아내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묻는다. 그가 자지 않고 있었던 것은, 설마 내가 잠 못 자고 불안하여 하는 꼴을 보기 위하여서가 아닐 것이다. 저도 마음의 불안을 어찌할 길 없어, 자려도 잠이 안 오는 모양이었다.
“새루 한점 이십분.”
종시 사람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건만, 개들은 그저 짖기를 그치지 않는다. 나와 아내는 기약하지 않고 자리에 누운 채, 서로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이 밤중에 나댕길 사람이 누구야?”
아내가, 마침내, 입을 먼저 열었다. ’
“글쎄― 어디서 술이나 먹구 들어오는 겔까……? 허지만 술집은 열한시면 닫는데…….”
“그래두 무얼 봤게 개가 저렇게 짖지?”
“…….”
“간밤에 재밀 보구, 그 망헌 녀석이 또 이 근철 스을슬 헤매나 보우.”
“…….”
“할멈더러, 아까, 혼자 행랑에서 자는 게 무섭지 않으냐구― 거는방에 들어와서 자랬더니, 싫다는군. 외따루 떨어져두 행 랑이 좋다구…….”
“…….”
“아이, 벌써 주무슈?”
“…….“
나는 조금 전부터 눈을 감고 있었으나, 결코 잠이 든 것도, 잠올 청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까 저녁때까지도, 어림도 없이 도적에게 동정을 가지려 하였던 것을 차차 뉘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증한 도적놈에게 우리가 빼앗긴 것은 약간의 물질이요, 그 물질은, 이를테면, 우리에게보다도 그 도적놈에게 좀더 요긴하게 이용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나는 오히려 그에게 분수에 넘치는 형벌이 내릴까 염려조차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 괘씸한 도적놈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은, 결코 약간의 물질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 하면, 나는 잃은 헌 양복 대신에 새 양복을 장만하면 그만인 것이요, 이십이 원 오십 전쯤, 아무리 내가 가난하다 하더라도 그리 많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그 천참만륙을 내어도 시원치 않은 도적놈은 우리에게서, 동시에 마음의 평화를 훔쳐 간 것이다. 대체 우리는 앞으로 얼마 동안을 이 불안과 공포 속에 살아가야만 할 것이냐? 혹은, 우리에게는 영원히 마음의 평화가 돌아오는 일 없이, 선량한 주정꾼의 발소리에도 곧잘 놀라고, 무심한 통행인의 기침 소리에도 의혹을 품을지 모르는 일이다.
더구나 우리 철없는 어린것들에게, 지극히 좋지 않은 지식을 준 것을 생각하면, 참말이지, 이조차 갈린다. 천진한 설영이로 하여금, 열리어진 분합으로 도적이 들어올 것을 염려하게 하고, 그보다도 어린 소영이로 하여금, 아빠 양복 잃은 것을 안타까워하게 만든 도적놈을, 나는 대체 어디서 붙잡아다가, 버릇을 가르쳐 주어야 하나?
‘다시 들어와만 봐라……!’
나는 저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불범정이라니, 내가 정말 용기만 낸다면, 그까짓 좀도적 하나 못 당하랴.
‘그러나 그놈이 무기를 가졌다면……?’
설혹, 제놈이 갖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편에서는 준비하고 있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준빌 한다 치구, 대체 으떤걸……?’
역시 몽둥이 같은 것이 적당할 것이다. 나는 형의 집 다락에, 아마 지금도 어느 구석에 처박혔을 육모방치를 번개같이 생각해 내었다. 나는 어렸을 때, 그것을 꺼내 가지고는 곧잘 동네 집 강아지를 쫓았던 것이나, 우리 인류에 있어, 실로 개새끼 같은 존재인 도적놈을 잡기에, 이만치 적당한 무기도 없을 것이다.
‘그게 박달나무라, 맞으면 무척 아프렷다…….’
아프기커녕은 당장 다리 뼈다귀가 부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잠깐, 잔인한 듯싶어, 나는 속으로 망설거렸으나, 그처럼 사정을 두어 가지고서는, 도적놈을 잡기는 고사하고, 어쩌면 나의 생명이 도리어 위태로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금이래두 사정을 둘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이냐……?’
나는 내일이라도 곧 형에게 들러서, 그 박달나무 육모방치를 집에다 갖다 두고, 모레라도 그 육시를 할 도적놈이 들어오거든, 그대로 사정없이 두골을 파쇄해 버리리라고, 나는 그만 잠을 자야 할 것도 잊고, 언제까지든지 흥분한 속에 있었다…….
(《조광》, 194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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