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진순 교수 / 창원대 사학과>
지금가지 남북간의 여러 가지 합의가 있지 않습니까?
정부간의 합의도 있고, 공동성명서,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평양에서 김대중과 김정일의 남북공동성명도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 큰 흐르는 큰정신이 자주, 평화, 남북대단결 이런개념입니다.
이런 개념에 실제 원 성명서적인 뿌리가 어디있냐하면
대체로 남북지도자회의, 4김회담 바로 4월 30일날 공동선언의 그대로 그 정신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단독정부수립
남북협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8월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북쪽도 단독정부를 세운다 (9월)
김규식은 단독정부 불참선언을 지키며 통일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통일독립촉진회결성 1948년 7월 21일
(남과북 모두 단독정부가 수립한 상황에서 남북연석회의 및 4김회담의 정신을 계승하여 통일운동의 초석을 만들었음)


김규식 곁은 김구가 있었다.
김구와는 노선이 달라 다른길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분단을 막는 길에는 함께 했다.
김규식은 김구와 함께 최초의 통일운동단체인 통일독립촉진회를 결성한다.

*백범 김 구 선생 암살
그러나 김구가 안두희의 총탄에 암살된다.

1년뒤 4월 당대의 정치인들과 중도우파 젊은이들로 북적이던 삼청장은 적막이 갇혀 있었다.
좌우를 묶고 남북을 잇는데 바친 지난날을 되돌아 보며 한통의 편지를 썼다.


DR. Phlip Jaisohn, M.D
330 W State Steat
Media, Penn, U.S.A
Dear Dr. Jaisohn
미국유학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서재필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남북협상이후 좌익으로 오해받는데 대한 원망과 회한이 절절했다.
-중략
Why Should we bother about what other people or person think about us sp long as God and we ourselves know just what we are?
That has been my own experience, even when people brand me as red, -중략-
우리가 누구인지 하느님과우리가 아는데, 왜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근심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저를 보고 빨갱이라 부른곤 합니다.

*한국전쟁 발발 (1950년 6월 25일)
그로부터 두달 후 그가 그토록 막으려 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에 의해 납북된다.
1950년 12월 10일 압록강변 만포진에서 서거.
독립투쟁과 해방정국내내 민족의 살 길을 찾아내려 했던 김규식.
결국 전쟁중 북녘땅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는다.
(57:00)
김규식은 한평생 오직 한 길을 달려왔다.

-가혹한 일제와 맞섰던 독립투쟁의 시절에도.

-해방후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이 분열했을때에도.

-민족이 하나되는 소망을 온 몸으로 실천해왔다.

해방 60년 우사 김규식이 이루지 못한 소망은 여전히 우리들의 희망이어야 한다.
첫댓글 여운형선생과 김규식박사의 다큐에서 사진이 누락되어 다시 사진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요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책으로 만들어도 될거 같네요
^_^ 학습게시판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지금도 간절히 외치고 싶습니다... 좋은 글 고맙구요. 잘 활용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_^ 행복하십시요 별밤님 ~~~
잘 보았어요
^_^
요즘 이 부분 수업하고 있는데.. 참 마니 눈물이 나네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해방후 3년이 가장 안타깝고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나라가 분열되고 동족상잔이 일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은 여운형선생 김규식선생 그리고 백범 김구선생님 조소앙선생님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ㅜ_ㅜ 너무 슬퍼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