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방은 뭔가 거창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내가 존경하는 분이 좋아하는 커피 스탈이기도 하고...
그래서 에스프레소 방에 글을 남기는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남에게 민페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지난 여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영국여행을 다녀왔다...
가기 전에....
주변에서 그동안 안가고 뭐했냐고 할 정도로 조은 조건이었지만....
과거의 흔적에서 허우적 거렸던 나는 발전보다는 퇴보하면서 도피에만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성격변했단 소리도 들었고... 독해졌단 소리도 들었다....
당연하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지....
어느 새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듯....
그러다가 새로운 환경과 마주하게 되면서...
반강제적으로(?) 내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너무 놀라웠다.... 2년간의 내 모습은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대단히 공격적이 되어버린, 전혀 배려치 않는..... 그리고 나 밖에 모르는...
더욱 놀라운 건 나밖에 모른다고 생각할뿐이지, 실은 내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데로~~~ 그냥 그렇게.....
심하게 말해서 '뭐하지 못해서 살아가는' 그렇게 그렇게...
당연히 그런 내가 싫었다...
너무 힘이 들었다... 내가 자초한 것이지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하나 하나 바꾸어갔다....
다행히 좋은 멤버들과 있어서 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물들어가면서....
조금씩 순화되고 있었다....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영국이...
나의 모든 꿈의 발생지인 영국...
어렸을 때 첨으로 브론테 자매의 책들을 읽고 나서...
그러다가 비틀즈를 알게 되고... 퀸을 알게 되고..
조금 나이가 들어 오스틴의 작품을 읽고... 좀 더 있다 세익스피어를 알고...
또한 테이크 댓으로 시작하는 여러 보이밴드들을 순례하게 되었고...
내가 이곳에서 본 많은 뮤지컬의 원조가 웨스트 엔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라는 사람도 알게 되고..
워킹 타이틀이란 회사의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으로 시작된' 여러 영화들...
전공을 영문학으로 정해 대학에 오자, 그 기회는 점차 점차 늘어났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영국은 내 맘에 들어와 버렸다...
원래 역사와 신화, 그리고 여러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아서.... 동경했었던 곳이 유럽이긴 하지만..
이태리나 프랑스와는 다른 느낌....
잃어버렸던 꿈이 생각이 났다...
내가 꿈꾸는 나의 50대......
꿈은 꿈꾸는 자에게만 이뤄진다는 데...
지난 과거에 얽매여서 허우적 거릴 시간이 아니었다...
한가하게 퇴보하며 도피처를 찾을 시간이 아직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은... 아직은 꿈을 찾을 시기였다....
이제 시작이었다...
생활이 더욱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좋은 일 있어?' ' 어머, 남자 생겼어?' 여러 말씀들을 하셨다...
배시시 웃으면서 속으로...
' 남자요? 남자보다 더 조은 기회죠.... 제가 다시 저를 찾아가고 있거든요...'
어느 순간.... 거울속의 나는 다시 웃고 있었다...
어느 순간 멈쳐버려 먼지가 쌓인 책장이 다시 새로운 책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이런 저런 프린트물로 방이 어지러워 지기 시작했다...
셀폰과 지갑만 들어가는 자그마한 백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필통과 책들로 가득찬 가방을 메고 다니기 시작했다...
수첩도 다시 쓰기 시작했고....
duty check도 다시 시작했다.... 4월이 지나면서.....
나는 ' 다시 ' 태어났다.... ^^
구체적인 여행준비가 시작되었다...
일정을 정하고, 국가수를 정하고.......... (온니, 영국)
여행서적을 사고.... 일정을 짜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뱅기표를 발권하고, 브릿레일 패스를 끊고....
뮤지컬을 예매하고... 타투표를 예매하고...
많은 곳들의 홈피에 들가서 가상 체험을 하며 나의 여행을 꿈꾸었다...
실시간의 정보를 얻으면서... 루트를 수정하고....
그러면서 하루 하루를 정말 나를 위해 소중하게 보냈다...
밤을 새고 학교를 가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열정적인 목소리와 행동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준비가 되어갈 무렵....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단순히 나만을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인가?
정말 그냥 여권에 도장 한 번 찍으러가면서 이렇게 큰돈을 투자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슬럼프였다.....
' 한국도 잘모르면서.... 사대주의자 아냐? .... 영국문학이 밥 먹여주니?
그 곳에 가는 진정한 이유가 너만을 위한 거야? 너 자신을 돌아보겠다고? 너를 위해서 ?
너의 발전을 위해서? 좀 더 솔직해저봐... 너 여기선 왜 발전 못하는데.... 이건 또 다른 도피 아니야? 거기 유적 보고 오면 뭐가 달라지는데? '
맘 속의 여러 마음이 나를 못살게 했다....
일주일 정도....
이번 진정한 여행의 목적을 생각해봤다..
구냥 ? (이런 말도 안되는.....)
다들 다녀왔자나.... ( 안가본 사람이 훨 마나)
영국은 꿈이었자나... 그러니깐.... ( 꿈은 좋은데... 너 너무 너만을 위한 꿈을꾸는 거 아냐?)
영문학 전공자로서.... 적어도 최소한의 예의자나..
(네가 아이들에게 영문학 가리키냐? 테솔을 들어라.. 핑계대지 말고..)
아주 짧은 사이, 너무 놀라운 경험이었다...
울 반 아이들이 내게... ' 샘, 안 조은 일 있으세요?'
' 우리가 너무 못되어서... 샘이 힘드신가봐...'
' 샘, 힘내세요... 저희 낼 부턴 안 떠들께요!'
이러는 게 아닌가? 눈물이 났다....
난 교사가 되기엔 너무 부족한 사람인데....
'어리버리한 애가 어떻게 교사가 되었는지....쯧쯧..'하시던 엄마 말씀이 맞았던 것이다..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알았다...
여행은 ....
나를 위한 것이지.....나를 위해야.....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할 여유를 지닐 수 있는거야...
사회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도 않고.. 내가 사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적어도 뭣보다 내가 바로 서야 하지 않겠어?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할 말 없어....
다시 탄력을 받아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목적이 확실한 여행....
그래서 더욱 진도가 빨랐다....
학교 때는 하루에 한장 읽었던 (그것도 겨우겨우) 캔터베리 테일즈가 정말 재미있었고...
너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워즈워드의 시가 생명수같았고...
애들만 보는 책이라 여겼던 피터래빗 속에서 인생이 보였다... ㅋㅋ
그 후는 여행을 갔고....
가서는 내가 보았던 것들을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
나만의 감정을 그곳에 담뿍 담아두고 왔다....
템즈강 다리에....디킨슨 생가 입구의 간판에다... 오스틴 박물관의 시계에다...
더운 날 서로 물을 나누어주는 아주머니의 따스함에.... 짐을 들어주는 프레드릭의 손길에..
세익스피어 생가의 이젠 빛이 바랜 장미꽃에다... 나무에다......
워즈워드 박물관 입구의 의자에다... 피터레빗이 그려진 창가에다....
그리고.... 이동하던 열차속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많은 친구들의 눈동자에...
마음의 사진을 찍어... 나를 돌이켜볼때 그들을 같이 돌이켜 볼 수있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는 여행이었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던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힘이 되는 시기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그 마음의 사진을 우리 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의 마음에도 사진이 생기게 '배려'라는 걸 어렵사리 시작해본다...
아직은 마니 부족하지만.....
내 마음의 사진으로....
내 주변도 따스해지길 바란다....

첫댓글 앙~ 한줄기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오네요~ 디킨슨의 마음에 삶의 빛이 들어왔나봐요~ 여행은 사람들에게 그런 희망, 삶의 빛을 주나봅니다.. ^^
^^ 뒤늦게 영국 여행을 결심하고 다녀온 언니의 글을 읽습니다.. 같은 영문학도로서.. 많은 걸 느끼게 되네요.. 새해 즐거운 일만 있으시길 빌게요~!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던 시간..너무 마음에 와닿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구 피터래빗*^^*한 때 제가 푹빠졌었던 메뉴죠,,그땐 그그림이 그려진 물건이면 뭐든 사모으곤 했죠,, 그그림의 느낌이 너무 좋아 삽화집으로 꼭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동화책으로 소장할 수는 없으니..*^^* 물건에 그려진 다 같은 그림말고..
잡지에 실린 걸 보니 그곳 서점에 가면 있겠더리구요.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꼭 그곳 서점에 가서 찾아보리라고.. 어쩌면 반은 꿈이지만 반정도는 도피처로써 여행을 택했을 지도 모르는 저이지만.. 저 또한 디킨슨 님처럼 저를 찾아오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와..........언니 멋져요 *^-^ * 저도......많이 생각하게 됩니다....전 아직 별 포부없이 준비하는 지라 부끄러움이 ㅠ.ㅠ 열심히~열심히..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가야겠네요! 하~* 감사해요!
한권의 자서전이군요~언젠가는 저도 디킨슨님과 공유할수 있는 공간이 생기겠죠?음~어서 빨리 가고시퍼라.....더 나은 나를 위해서...
아~ 제 맘에 '영국'에 대한 불을 확 질러 주시는군요.. 언니..... ^^
어쩌면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잊는 연습을 하러 가는것은 아니세요?? 글 잘읽었습니다.
영국~ 기대가 되는...그러나 님의 글이 더 맘속에 많이 다가오는...저두 이번 여행에서 제 자신을 발견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만 과연 잘 할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