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이신남
엄마의 향기 외
길의 끝에는 무덤이 있고
무덤을 지나는 길에는
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백 살 노인이
꽃을 보면서 한참을 침묵하다가
불쑥
나도 꽃시절이 있었지 하신다
그랬을 거다
달맞이꽃만큼이나 환하게
꽃대궁속 물이 차올라 선연하게 뽐냈던 시절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처연하게 말라 버석 일 줄
아름다웠던 한 생이
눈 깜짝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 인간사
꽃 웃음인지 꽃 울음인지
목울대가 그물맥처럼 쭈글거리더니
합죽한 입에서 퍼져 나오는 말
‘야야 니도 떨어지지 마래이
나도 떨어지기 싫다‘
당신의 꽃향기
참 깨끗한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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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을 품고
바다에는
푸른 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평선 끝 아득한 거리에서
파도가 써 내리는 문장이 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오롯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파도소리와 사분음표 사이에서
제 몸을 때려가며
수신인도 없는 편지를 보내는데
두꺼운 마분지에 천천히 스미는
물처럼
침묵으로 읽어 내리는 심중의 말
그 꽃 참 붉어서 좋다!
절제할 수 없는 어제의 시간에서
발신인도 없는 사진 한 장을 품고
나는 지금
그리움을 달래는 중이다
이신남
2005년 《문학세계》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바다 네가 그리우면』, 『가슴에 달 하나는 품고 살아야지』, 『울지마라 잘 살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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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신남-엄마의 향기 외
사이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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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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