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를 정리 하면서 올해"무자년"을 맞이하여 동문여러분의 가정에 행복과 행운이 가득 하시길 빕니다.
200년1월12일(토) 소백산 등반을 하려고 하오니 참석 가능 하신분들은 오전 7시까지 풍기역앞 인천식당으로 오세요
정시07:00에 출발 예정 입니다.
등산 코스는 비로사~비로봉 (3시간정도)~천문대(2시간정도)~희방사(2시간정도) 합이 7시간 하산일정은 오후3시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등산하고나서 풍기온천에 들러서 온천 하고 저녁에는 복돌이 순대집에서 저녁을 드시고 시간 되시는 분은 2차 피로연 있습니다/
많이들 참석 하세요..궁금하신분은 연락 주세요 김창규 017-755-8134 목요일 까지 연락 주셈
1. 날 짜 : 2008.01.12(토)
2. 내 용 : 신년 등반
3. 장 소 : 소백산
4. 대 상 : 누구나 다
5. 출발지 : 2008.1.12 오전 7시 풍기역앞 인천식당(아침묵고)출발
6. 등산코스: 풍기~비로사~비로봉~천문대~희방사~온천~풍기(약10시간 정도)
7. 준비물 : 등산 아이젠 필히 착용.방풍옷, 물,약간의 간식(귤,사탕,쵸콜렛,점심(김밥 및 주먹밥)김치 꼭 가지고 오세요
남자들은 빽알 1병 안주는 치즈가 딱이야...삼겹살 구워 먹으면 죽이는데 요건 않되겠지(ㅋㅋㅋ)
8. 회 비 : 별도 들것은 없는디 차비 300원,온천비 4,500원 저녁값 10,000정도 2차는 알아서 計 30,000정도
* 소백산 *
열여덟 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되었고 풍기읍 수철리에 소재하는데,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영남지방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태백산에서 서남으로 갈린 산맥이 구름위에 솟아 경상도·강원도·충청도 3도의 경계를 지으면서 서남쪽으로 구불구불 백여리를 내려 뻗어 일으킨 소백산은 영주·예천·단양·영월 네 고을의 배경이 되어 고장의 평화와 행복을 수호하며, 기품있는 선비의 풍모처럼 맑고 수려한 기상의 영기靈氣어린 성산聖山이며, 또한 지맥의 흐름으로는 한반도의 척추 부분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소백산 허리를 감돌아 오르는 아흔아홉 굽이의 죽령(竹嶺)은 영남의 3대 관문중 하나로서, 그 옛날 과거길 선비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봉인 비로봉毘盧峰(1,439m)에는 천연기념물인 주목朱木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이 고장 선비들이 한양의 궁궐을 향해 임금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였다는 국망봉國望峰(1,421m)과, 소백산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蓮花峰(1,394m), 그 옛날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솔봉(1,315m) 등많은 산봉우리들이 연이어져 있으며, 소백산 중턱에는 신라시대 고찰 희방사喜方寺와 비로사毘盧寺가 있고, 희방사 입구에는 영남 제일의 희방폭포(28m)가 있습니다.
국망봉(1,420m)
국망봉(1420m)은 북으로 신선봉과 형제봉 동으로는 문수산. 선달산의 능선이 아련히 밀려오고 남으로는 연화봉.도솔봉이 바다의 파도처럼 시야를 파고드는 한편 가까이 비로봉으로 부터 산능들이 해일을 동반하고 밀려 오는듯 하는 파노라마는 일대 장관이다.
비로봉(1,439m)
소백산의 주봉으로서 희귀식물인 에델 바이스와 예로부터 왕실 가구제로 쓰여 졌던 주목(정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더욱 유명하다.
바람이 거세어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 정상부의 넓은 초원은 봄.여름에는 미 국 서부영화의 한장면을 연상케 하며 겨울철 아침햇살에 비치는 무지개빛 눈 보라와 눈꽃 그리고 백색평원은 겨울산 행의 극치를 이룬다.
조선의 유명한 실학자 남사고는 죽령을 지나다가 이산을 바라보고 「사람 살리 는 산」이라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고 지나갔다 한다.
연화봉(1,394m)
철쭉군락이 뒤덮여 있어 매년「소백 산철쭉제」가 열리고 있으며 철쭉여왕 선발과 산신제등 다채로운 행사가 거행 되며 연분홍 철쭉과 울긋불긋한 등산객 들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곤 한다.
이곳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국 립천문대와 공군 통신대가 자리잡고 있어 우리나라 천문공학의 요람이며 소백 산의 여러줄기에서 오르는 등산로의 합 류지점이다.
흰구름 무리에 들게되면 신선이 되어 구름을 타고 날아 다니는 환상에 빠져 들곤한다.
신선봉(1,389m)
강원도 영월과 경계를 이루는 남한 강 상류를 북으로 바라보며 동에서 부 터 시작한 삼봉과 수리봉이 우뚝섰고 형제봉과 마당고개를 지나 신선봉에 이 르면 신선들의 바둑판이 있고 넘기힘들 며 오르기 힘들어 신선들이나 다니는곳 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바둑판이 있는 바위에 두사람이 앉으면 구름위에 떠있는 기분을 준다.
형제봉(1,177m)
산의 정상 보우리가 마주보고 있다하 여 형제봉이라 불리고 있으며 풍수지리 학상 옥녀직금 형극( 선녀가 내려와 비 단을 짜는 형극)이라 하여 조선시대에 많은 풍수가들이 운집했다 한다.
일제시대에 변장술에 능하고 축지를 하 며 백발백중의 명사수로서 독립군의 군 자금을 만주로 보내던 김용제 선생과 김수배 선생이 매복중이던 악명높은 일 본경찰 평석에 의하여 1923년 9월9일 오전 9시9분에 29세의 나이로 돌아가시 니 모두 9자와 일치되는 기이한 일이 있었다는 유래가 전한다
특히, 해마다 5월이면 철쭉꽃의 장관과 상수리나무 숲 터널은 소백산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으며, 년중 6개월 정도 백설로 뒤덮혀 있는 비로봉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워져 오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치고 쫓기고 엎치락 뒤치락 불꽃튀는 격전장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서기 470년경)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 왕이 거칠부(居漆夫) 등 여덟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 40년뒤인 영양왕 1년(서기 590년) 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등의 기록(삼국사기)으로 당시 죽령이 얼마나 막중한 요충이었음을 짐작할 만한 하다.
서기 1910년대까지도 경상도 동북지방 여러고을이 서울 왕래에 모두 이길을 이용했기에, 청운의 뜻을 품은 과거선비, 공무를 띈 관원들이며, 온갖 물산을 유통하는 장사꾼들로 사시장철 번잡했던 이 고갯길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 마방들이 목목이 늘어 있었다.
첫댓글 멋진 계획이야~~무자년을 맞이하여~~체력단련도 하고~~맑은 공기도 마시고~~친구들 얼굴도 보고~~일석삼?사?오?조~~~?
온다는거여 않온다는거여 확실하게 답을 줘야지
조오타~~가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