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응답의 비결”答えを得る秘訣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일본에는 연말에 복권이 年末ジャンボ宝くじ 연말점보복권이라고 해서 판매가 됩니다. 작년에는 당첨금이 1등이 5억엔, 그리고 1등
당첨번호와 끝자리가 앞뒤인 경우, 예를 들어서 1등 끝자리가 5번이었다고 하면 끝자리가 4번과 6번은 각각 1억엔, 그런데 보통
연속된 번호로 사니까 1등 당첨자는 앞뒤번호까지 모두 갖고 있다면 최고 7억엔이라고 합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지나 11월 25일부터 年末ジャンボ宝くじ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매년 그렇지만 1등이 많이 나오는 곳에는 판매되는
날에는 장사진을 이룹니다. 그 곳이 바로 동경 긴자에 있는 한 판매창구라고 하는데, 판매되는 첫 날에는 1000명 가까이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하고, 또 거기는 워낙 소문이 많이 나서인지 그 매장에서 복권을 사기 위해서 동경뿐만이 아니라 일본 전국에서
몰려올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나 올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린 이유가, 이 당첨금이 올해는 앞뒤번호를 합쳐서 사상최대금액인 10억엔이라고
합니다.
10억엔. 한국 돈으로는 100억원입니다. 아, 10억엔. 세금을 내고 이것저것 다 빼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5억엔. 50억원입니다. 자, 이제 머리가 팍팍 돌아갑니다. 이 10억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 이 돈이 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그것도 하고……자세하게 말씀을 드리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이 많은 문제들이 한번에 해결되고, 정말 목회 한 번 멋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매우 구체적인 생각이 들 때까지 불과 10초도 안 걸렸습니다. 어디 그 뿐이에요? 성경구절까지 생각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로마서 8장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37節
「しかし、私たちは、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方によって、これらすべてのことの中にあっても、圧倒的な勝利者となるのです。」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10억엔! 절반이라 해도 5억엔! 이 얼마나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까. 자, 머릿속에 계획도 세워졌습니다.
성경말씀도 떠올랐습니다. 이제 1 장에 300엔. 앞뒤번호까지 다 사려면 최소한 3장을 사야 하니까 900엔. 1000엔짜리 1장
내면 100엔이 남습니다. 사야 되요? 말아야 되요?
여기서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에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第一 コリント人への手紙 8章6節
「私たちには、父なる唯一の神がおられるだけで、すべてのものはこの神から出ており、私たちもこの神のために存在しているのです。また、唯一の主なるイエス・キリストがおられるだけで、すべてのものはこの主によって存在し、私たちもこの主によって存在するのです。」
욥기 41장 11절에 보면,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ヨブ記41章11節
「だれがわたしにささげたのか、わたしが報い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に。天の下にあるものはみな、わたしのものだ。」
성경에는 온 천하 만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온 천하가 하나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0억엔을 얻기 위해서 뭐요? 300엔짜리 3장
900엔을 낸다? 아니요.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10억엔이 아니라 온 천하까지도 돈 한푼 한 들이고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인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한테는 이것저것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돈 문제입니다. 다급할 때는, 정말 돈만 많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요. 너무나 행복해질 것만 같습니다. 그 심정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아는데 하나님은 왜
모르시겠습니까. 당연히 아시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를 미워해서요? 아니요.
제가 아까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第一ヨハネの手紙4章16節
「私たちは、私たちに対する神の愛を知り、また信じています。神は愛です。愛のうちにいる者は神のうちにおり、神もその人のうちにおられます。」
말라기 1장 2절 전반부에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マラキ書
「「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愛している。」と主は仰せられる。あなたがたは言う。「どのように、あなたが私たちを愛されたのですか。」と。・・・・・・」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에게는 시련이 닥쳐오고 문제가 쌓입니까?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옥에서 마귀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실족시킬까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한 젊은
마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단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잡아서 가둬버려요.” 라고 하니까 늙은 마귀가 하는 말이, “소용없다.
그 놈들을 가둬놓으니까 감옥에서 전도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많이 늘어버리고 말았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젊은 마귀가, “그럼 가둬놓고 먹을 것도 주지 말고 쫄쫄 굶게 해버리면 기운도 없어서 전도도 안 할 거잖아요?”
그러니까 늙은 마귀가 “그러면 금식한다고 해서 믿음만 좋아지고 효과도 없더라.”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젊은 마귀가, “그럼 잡아서 매로 때리고 혼을 내주면 안 그럴 거잖아요?” 그랬더니 늙은 마귀가 혀를 차면서 “쯧쯧쯧.
옛날에 나도 그 방법을 써서 기독교인들을 많이 괴롭혀봤지만, 오히려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한다고 기뻐하더라.”라고 하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또 다른 젊은 마귀가 “그러면 독방에 가둬버려요. 그러면 사람도 못 만나니까 전도도 못할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늙은 마귀가, “소용 없다. 독방에 가두니까 밤이고 낮이고 기도를 얼마나 하는지 얼굴에 희색이 돌더라”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다른 젊은 마귀가 “아, 그렇다면 다 잡아다가 죽여버려요. 그게 제일 완벽하잖아요?” 그랬더니 이 늙은 마귀가
인상을 찌푸리고 덜컥 화를 내면서 “무슨 허튼 소리! 그랬다가는 순교한다고 얼마나 기뻐하는 줄 알아? 응? 누가 순교 한 번 해봐.
그랬다가는 신자들이 백 배 천 배 늘어난단 말이야!” 라고 아주 불쾌해합니다.
이렇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독교인들을 실족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또 하나의 마귀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돈도 아주 넉넉하게 줘버려요. 그렇다면 분명히 그들은 믿음을 버릴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늙은 마귀가, 그거 좋다. 라고 해서 실제로 해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모든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버리고 타락해버렸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에 있는 내용도 아닙니다만, 이 일화는 우리에게 많은 부분을 시사해줍니다. 과거 기독교가 탄압 받을 때, 사람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300년 동안이나 지하동굴에서 몰래 숨어 살았습니다. 3년도 30년도 아닌 300년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곧
생명이자 인생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공인되고 안락해지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과거에는 어떤 시련과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감사와 찬양으로 살았던 삶이 어느새 그저 한낱 종교, 취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서 왜 이렇게 우리한테 여러 문제들을 주시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물이 있는 것이 나쁜 것인가요? 그렇다면 가난한 것이 축복입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잠언 10장 15절에는,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箴言10章15節
「富(と)む者(もの)の財産(ざいさん)はその堅固(けんご)な城(しろ)。貧民(ひんみん)の滅(ほろ)びは彼(かれ)らの貧困(ひんこん)。」
가난과 궁핍은 결코 축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시련이 닥치는지에 대한 힌트가 잠언서 다른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잠언 14장 24절에는,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箴言14章24節
「知恵(ちえ)のある者(もの)の冠(かん)はその知恵(ちえ)。愚(おろ)かな者(もの)のかぶり物(もの)はその愚(おろ)かさ。」
지혜로운 자에게는 재물이 그의 면류관이고 미련한 자의 소유는 그저 미련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한테 있어서 재물이 있으면
매우 유용하고 큰 도움이 되겠지만, 미련한 사람한테 있어서는 그 재물이 오히려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물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지혜로워져야겠습니까, 미련해져야겠습니까. 그렇죠.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꼭 재물에 대한 축복만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혜로워질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나요? 그러면 지혜로워지나요?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잠언 1장 7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箴言1章7節
「主(しゅ)を恐(おそ)れることは知識(ちしき)の初(はじ)めである。愚(おろ)か者(もの)は知恵(ちえ)と訓戒(くんかい)をさげすむ。」
잠언 9장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箴言9章10節
「 主(しゅ)を恐(おそ)れることは知恵(ちえ)の初(はじ)め、聖(せい)なる方(かた)を知(し)ることは悟(さと)りである。」
시편 111편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詩篇111篇10節
「主(しゅ)を恐(おそ)れることは、知恵(ちえ)の初(はじ)め。これを行(おこ)なう人(ひと)はみな、良(よ)い明察(めいさつ)を得(え)る。主(しゅ)の誉(ほま)れは永遠(えいえん)に堅(かた)く
立(た)つ。」
그리고 호세아 6장 3절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ホセア書6章3節
「私(わたし)たちは、知(し)ろう。主(しゅ)を知(し)ることを切(きり)に追(お)い求(もと)めよう。主(しゅ)は暁(あかつき)の光(ひかり)のように、確(たし)かに現(あら)われ、大雨(おおあめ)のように、私(わたし)たちのところに
来(き)、後(のち)の雨(あめ)のように、地(ち)を潤(うるお)される。」」
우리가 지혜로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자고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 지혜로워지는 것이요, 지혜로워지면 드디어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에 거꾸로 접근하면 쉽게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그 돈을 가지고 차를 살까 집을 살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집을 사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어디에 얼마나 하는 집을 사기로 계획을 합니다. 그리고 그 집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얼마를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1년에 얼마를 저금해야 하고……이렇게 계산을 하면 그 집을 언제쯤 살 수 있을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무작정 열심히 공부하고 장례 꿈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서 의사가 되고 싶다, 라고 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의과대학에 진학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학교를 목표로 하고, 그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느 정도 공부해야 하고…이런
식으로 거꾸로 계산을 하면 의외로 명확하게 답을 얻을 수 있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 응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무조건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닥쳐왔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누가 아시겠습니까.
그렇죠.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12장 2절에는,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イザヤ書12章2節
「見よ。神は私の救い。私は信頼して恐れることはない。ヤハ、主は、私の力、私のほめ歌。私のために救いとなられた。」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왜 나한테 이런 문제가 생기냔 말이야.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게
맞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이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문제를 나에게 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이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최대의 힌트는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マルコの福音書16章15節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こう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ふくいん)を宣(の)べ伝(つた)えなさい。」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使徒行伝1章8節
「しかし、聖霊があなたがたの上(うえ)に臨(のぞ)まれるとき、あなたがたは力
を受けます。そして、エルサレム、ユダヤとサマリヤの全土、および地の果てにまで、わたしの証人となります。」」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복음이라는 것은 정말 성경책을 읽어주면서 전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한테 이런 문제가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를 하시고 이렇게 응답을 해주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증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면 복음의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 받음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제가 복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10억엔이 당첨되었어요. 그렇다면 이 이야기로 인해서 하나님이 드러나겠어요, 복권이
드러나겠어요? 복권이 드러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는커녕 죽어라고 복권만 사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아까 떠올린 성경구절은 어떻게 된 거죠? 성경이 거짓말을 한 건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8章37節
「しかし、私たちは、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方によって、これらすべてのことの中にあっても、圧倒的な勝利者となるのです。」
이 성경구절을 몇 번 읽어봐도 <복권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고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로 말미암아 이겨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가
누구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자기 아들까지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피 한 방울 남김 없이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가 잘 안 되기를 바랄 리가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와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싶으시겠으나, 이 일로 인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기 때문에 이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가 응답 받았을 때에 그 일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이 하나님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너무 어려우신가요? 그렇다면 쉬운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하나 문제를 내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실제로 뼈저리게 겪은 일입니다.
제가 어딘가를 운전하면서 갈 때, 하루는 출발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갔고, 하루는 기도를 안 하고 갔습니다. 어느 쪽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갔을까요? 두 번째 문제를 내겠습니다.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기도 없이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쪽이 보람되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까요? 이 두 문제에 대한 답을 여러분들은 다 아실 수 있으십니다.
운전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갔더니, 항상 다니는 길이지만 그날 따라 뒤를 바짝 따라붙는 차도 없고, 길도 막히지 않고 얼마나 편했는지
모릅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니 그 날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유익하고 보람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은혜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기도를 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예, 맞습니다. 기도를 하고 싶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어지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전해지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고 시련이 닥쳐올 때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기도로써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시련을 겪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것이 목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이처럼 하나님을 나타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온 천하에
전해지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구할 때에 모든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 안에서 넉넉히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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