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의 마스터스 마라톤은 지역 클럽 중심으로 움직인다. 줄잡아 300~4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마라톤 인구 중 70% 이상이 클럽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럽은 ‘구’나 ‘동’ 단위 지역을 커버하는 것이 보통이며 규모는 대략 20~80명 정도다. 전국에 점조직처럼 퍼져있는 셈이다.
이 수많은 클럽들은 공통적인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바로 젊은 회원의 부재다. 최근 몇 년간 20~30대 러너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도 지역클럽엔 여전히 젊은 회원이 없다. 회비 면제 등 특전을 내걸고 대인홍보도 해보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다. 이유가 뭘까? 실제 20~30대 젊은 러너들이 털어놓은 이유를 들어보자.
“부장님처럼 어려워서 같이 운동하기 거북해요”
강민경(가명. 24세. 여)
솔직히 일주일에 두세 번 스트레스 풀려고 운동 하는 건데, 동호회들 보면 연세 많은 분들만 있어서 같이 운동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다 과장님, 부장님 뻘이고 아버지 연배인 분도 계시잖아요. 아무래도 어렵죠. 전에 몇 번 OO마라톤클럽 훈련에 참석해봤는데 회사 수련회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불편했어요. 또래 회원들이 열 명쯤 있는 동호회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가입할 생각 없어요. 회사에서도 막내인데 마라톤클럽에서도 막내 하기는 싫어요.
“훈련방식 강요하는 게 싫어서 참가 안해요”
김민호(가명. 29세. 남)
지역에서 꽤 유명한 클럽에 가입해서 회비까지 내고 활동했는데요, 한 달쯤 나가다가 그만 뒀습니다. 친절하고 챙겨주시고 하는 건 좋은데 훈련을 딱 정해진 방식대로 강요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매달 훈련스케줄 프린트해서 나눠주시고, 합동훈련 때도 전체가 같은 훈련을 해요. 물론 기록대에 따라서 두세 그룹으로 나누기는 하지만 저는 더 자율적으로 하고 싶거든요. 줄 서서 뛰고 이런 거는 정말 답답해서 싫고요, 훈련부장님도 그냥 경험이 많은 동호인이지 전문 코치가 아니잖아요. 감독처럼 막 몰아붙이고 하면 못 견디겠어요.
“규모가 너무 크고 행사가 많아서 부담스러워요”
최영준(가명. 33세. 남)
다른 건 다 괜찮은데요, (모임의)덩치가 너무 큰 클럽은 부담이 되더라고요. 적게는 40~50명, 많으면 100명 가까이 나오니까 텐트 치고 물 준비하고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아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은 그런 일을 나서서 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시간은 많이 뺏기는데 훈련에는 집중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 외적인 행사가 너무 많아요. 연말 회식 정도만 하면 좋겠는데 월례회의다 야유회다 출정식이다 별의별 행사가 다 있어요. 제 또래 직장인들은 훈련시간 맞춰서 퇴근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거든요. 연세가 있으신 분들하고는 입장이 다른 부분이 있어요.
“유니폼이나 단체 술자리 등이 적응하기 어려워요”
이영미(가명. 30세. 여)
단체 유니폼을 왜 입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같은 옷을 입는 것도 모자라서 클럽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쓰고 등에는 자기 이름까지 프린트했더라고요. 단합하려면 꼭 그렇게 맞춰 입어야 하는 건가요? 가뜩이나 대회 나갈 때는 나중에 사진으로 남는데 이쁜 걸로 차려입고 싶어요. 그리고 훈련 끝나고 밥 먹으러 가면 으레 술자리로 이어지는 게 부담스러워요. 저도 술은 잘 먹는데요, 수십 명이 회식 분위기처럼 마시는 건 적응 안돼요. 낮술인 경우도 많고, 듣기 거북한 성인 유머도 많이 듣게 되고… 그분들이 싫다기보다는 내가 낄 자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아무래도 세대차이란 게 무시할 수가 없으니까요.
이처럼 기존 동호회들의 문화나 운영방식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젊은 마라토너들은 나름의 대안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20~30대 러너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클럽에 가입하거나, 대회 참가 말고는 별도의 오프라인 모임이 없는 온라인 클럽에서 활동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친구, 지인 혹은 직장동료들끼리 10명 내외의 소모임을 구성하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 카페를 비공개로 하고 신규회원을 받지 않는 등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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