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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 순교자 성월에...
오직 사랑 때문에...
글 : 이 클라우디아(해인) 수녀
<성 베네딕도 수녀회>
번번이 결심을 하면서도
세속적 욕망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비열한 마음
죄를 짓고도 절절히 뉘우칠 줄 모르는 무딘 마음
믿음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지 못하는 냉랭한 마음
우리의 이러한 마음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안에
피 흘리며 울고 계신 님들이여!
어서 산이 되어 일어나 말씀하소서...
고통의 높은 산을 넘어
끝내는 목숨 바칠 수 있는 믿음만이 믿음이라고
어서 굽이치는 강이 되어 소리치소서...
고통의 깊은 강을 건너 끝내는 죽을 수 있는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가파른 생명의 길 고독한 진리의 길을
그리스도와 함께 끝까지 걸어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신 님들이여!
이제 우리도 가게 하소서...
어제의 환상이 아닌 오늘의 아픔의 무게 꽃처럼
고운 꿈이 아닌 피투성이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도 님들을 따라가게 하소서...
오직 사랑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않는 용기와 지혜 주소서...
우리 마음의 어둠을 밝히시려 날마다 흰 옷을 입고 부활하는 미쁘신 님들이여!
산천이 울리도록 우리를 부르소서...
그리운 님들 안에 하나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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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9월의 하늘을 바라보며...
글 :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어느덧 9월의 초순이 흐르고 중순으로 접어든다.
엊그제까지 더위가 머물렀는데 지금은 가을이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境界)가 없듯이
우리 삶에도 시간과 세월, 젊음과 늙음의 경계선(境界線)은 없다.
9월의 하늘은 하루하루 파랗게 물들어가고
9월의 하늘을 이고 익어 가는 벼들도 조금씩 황금색 물결로 흐른다.
가로수 은행나무 열매도 노랗게 익고
시골집 마당에는 빨간 고추가 가득 널렸다.
어린 시절 싸리 대문 옆에 심어진 대추나무의 열매도 익어간다.
가을이 익어 가는 9월의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은 활동과 멈춤의 시간들로 살았다.
병원 두 곳으로 가서 미사와 방문을 하고
인근의 한 성당을 잠시 들른 후,
동생 가족들을 잠시 만나고
조금은 먼 거리를 운전하여 글라라 수도원으로 왔다.
점심은 어느 길가 작은 식당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홀로 들었다.
오후 4시에는 글라라 수도원에서 저녁기도와 성체강복에 참석하고,
수녀님들의 고백성사(告白聖事)를 도왔다.
저녁을 먹고는 로사리오 기도를 드렸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들길을 따라 묵주알 넘기며 해가 진 하루를 봉헌한다.
마음속에 머물던 어둠, 그늘도 다 드리며 ...
이른 가을저녁 풀벌레 소리가
조용한 수도원 창가에서 자연 교향곡으로 들린다.
보름이 막 지난 환한 달빛이 수도원 뜰에 곱게 내린다.
오늘 하루를 활동과 멈춤으로 살면서 9월의 하늘을 바라보며 소망한다.
우리 살아가는 인생의 삶과 길을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전주에서 금구, 김제, 익산으로 이어지는 벼들이 익어가는
호남평야를 바라보며 이른 가을의 들판에서 생각한다.
익어가는 성숙함의 길로 걸을 수 있기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절은 바꾸어지고
창조주의 뜻은 자연의 신비 속에서
철마다 아름다움으로 새롭게 비추인다.
이 이른 가을의 하루를 살면서
나는 오늘도 9월의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이는 나의 기도를 드린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하며,
끝없이 받아들이고 용서하며,
항상 미소하고 이해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게 하소서.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적게 부끄럽고 많이 성숙하며,
한없이 인내하고 들으며,
말은 절제하고 침묵을 사랑하며,
상처는 도무지 기억하지 않게 하소서.
자신을 내어주고 헌신하게 하소서.
오, 하느님,
아름다워 가는 이 9월의 산하에서
오늘도 살아가는 이 누추한 생애가 당신께로 드리는 봉헌이게 하소서.
당신으로부터 오는 희망이 되게 하소서.
- 신부님의 '영성의 물가‘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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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2015. 9. 6
마르코 7, 31 ~ 37
❊ 복음연구 자료 (코이노니아에 도움이 되고자 자료를 넣어본다. 우리나라 평신도 위치에서 복음연구가 상당히 제약 받고 있는 위치에서 이를 어느 개인의 몫으로 돌리기보다는 연구팀이 필요하다)
- 마르코 복음사가는 지역을 언급하기보다는 예수께서 다른 민족 사람들과도 접촉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예수를 12지파 중의 하나인 유다지파로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왕조의 전통 혈족임을 내세우면서, 그는 유다지파의 지역보다는 오히려 갈릴레아 지역인 나자렛 예수로 알려진다는 것에 주목을 해보게 된다. ‘치유이적 사화’ 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는 이 대목은 예수님의 행적을 기사형식으로 적고 있고, 특히 예수님의 함구령과 치유를 목격한 이들의 반응을 덧붙인다. 우리는 이 대목을 왜 복음사가는 후대에 전하려고 했는지를 잘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에 앞서 예수님은 ‘강아지’ 라고 비하하시면서 결국은 페네키아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셨지만, 이 대목은 아무 조건 없이 데리고 온 환자를 치유하십니다.
♠ 복음 연구
* 31~34절 : 이적사화 에 흔히 나오는 치유 행동이다. 침은 물, 피, 술, 기름과 더불어 액체 약품에 속한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얻으려는 것이요, 한숨을 쉬는 것은 그 기운으로 병마를 물리치려는 것이다. 소경을 고치신 이적 사화에서도 비슷한 치유 행위를 하신다. ‘에파타’ 는 아람어인데, 마르코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그리스어로 번역해 준다.
* 35~37절 : ‘에파타’ 후반부는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 시대의 구원을 예고한 것을 연상케 한다. 예수님은 구원을 이룩하시는 ‘메시아’ 라는 사상이 은근히 나타난다.
♠ 복음 요약 : 이 단원은 전형적인 ‘치유 이적사화’ 로서 상황 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 실증, 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엮어져 있다. 예수께서 함구령을 내리셨으나, 그럴수록 목격자들이 이적 사건을 더욱 더 선전했다는 것은 ‘치유 이적사화’ 양식에는 불필요한 소재로 마르코의 기독론과는 잘 어울리는 소재이다. 36절은 마르코가 만들어 삽입한 것이다.
♣ 대화 방향 : 우리는 소공동체에서나 단체활동을 할 때에 영적인 대화보다는 사회적인 일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1) 혹시 내가 사회적인 가치관으로 내가 좋아하는 영적인 부분만을 추구하고 있는지요? 그리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다른 이들을 하찮게 여기지는 않는지요?
2) 주님은 이방인지역에서 이적을 행하셨다 하는데.. 나는 주님도 아니고 이적행위는 더더구나 가능하지도 않은데, 왜 이 말씀이 나에게 떨ᆯ어졌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이 말씀을 갖고 내 이웃이나 자주 만나는 교우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 참고 문헌 : ▪ 200주년 성서주해서 ▪ 성서 여정(마르코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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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일
2015. 9. 13
마르코 8, 27 ~ 35
♠ 복음 연구
♠ 복음 연구
* 27~30절 :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도시 주위의 마을들로 가셨는데, 이곳은 벳사이다에서 북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당신의 신분에 대한 대중들의 견해를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언자들 중의 한 분이라는 견해들이 있다고 대답했다.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은 하느님의 구원약속에 대한 이스라엘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세말에 오시기로 된 ‘그리스도’ 이시라고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았다.
* 31~33절 : 예수께서는 몇 차례 예루살렘에서 지도자들과 갈등을 겪으셨는데, 이러한 대립상황이 계속되면 결국에는 대사제, 제사장들, 원로들, 율법학자들이 당신을 죽일 것이라고 예감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고백한 베드로는 그분의 고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분을 보호하려는 듯이 붙잡으면서 만류했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의 메시아 신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고백했음을 가리킨다. 그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야 그의 메시아 고백은 참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질책하셨는데,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분이 지금 가고 계신 고난과 죽음의 길을 충실히 따르라는 분부의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스승의 십자가와 부활을 거절하여 당신의 메시아 신분에 대한 그릇된 견해로, 제자 직분과 공동체를 유혹한다는 뜻으로 사탄이라고 질책하셨다. 베드로의 이러한 태도는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사람의 뜻이다.
* 34~35절 :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의 메시아 신분을 인간적 사고방식에 따라 이해한 것을 들으시고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생활원칙에 대해 교육하신다.
- 첫째,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고 예수님의 뜻과 계획을 생활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 둘째,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수반되는 난관과 박해를 감내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 결심을 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후에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을 본받는 것을 뜻한다.
- 셋째, 예수님의 제자 직분에 지속적으로 충실하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예수께서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당신 제자들의 생각을 물으셨다. 우리 각자에게 하신 질문이기도 하다. 제자들의 대답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며, 영광만을 지닌 왕이 아니라, 고통 받는 인간 그리스도임을 밝히신다. 스승의 죽음을 강하게 말리는 베드로의 태도는 그분의 진정한 정체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하느님의 계획보다 인간적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 베드로와 우리의 어리석음이다.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자기 버림’과 ‘제 십자가를 짐’이다. 자기의 생각과 바람 대신 그리스도의 생각과 바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은 누구이시고, 나에게는 어떤 분이시며, 내 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계시는 분인지 생각해 봅시다.
② 나는 진리와 구원을 원하면서도 따라오는 고통은 거부하고 싶은 인간 본능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마르코복음 해설 (성바오로출판사)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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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15. 9. 20
루카 9, 23 ~ 26
♠ 복음 연구
* 23절 :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라는 뜻은 무엇인가? 이 땅에 사는 사람 모두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으로 묵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몹시 행복하고 십자가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십자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예수님 뒤를 따라 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에 엄청난 해답이 있다. 주님께 의탁하며 주님께 맡기고 그저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을 버릴 때만이 온전하게 주님을 의탁하게 된다.
* 24-26절 :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 연결되어 진다. 무명 순교자들을 묵상할 때마다 이 구절이 강력하게 다가온다. 천안 성거산에 줄무덤을 처음 보았을 때 이 분들은 세상에서 가족들이 멸망하고 사형을 당했으며,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가혹한 운명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성인성녀로서 예수님의 품안에 영원한 자유와 안식을 누리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그분들은 이 세상에 이름조차 없이 무명으로 삶을 사형장에서 끝냈지만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첫째가 되었다. 그분들은 그들의 죽음의 순간에서까지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영광으로 알고 사신 분들이다.
* 27절 :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라는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씀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바로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착한 사람들을 통해서, 어린이의 해맑은 미소를 통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동을 통해서... 등등이다.
♠ 복음 요약 : “십자가는 당신의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십자가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이며,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성 요한 비안네) 이 복음 구절은 가장 어렵고 힘든 구절이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고통을, 십자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카푸친수도회 성인 중에 유명하신 오상의 비오 신부님과 레오나르도 신부님은 고해성사에서 신자들의 보속을 스스로 짊어지셨다. 자신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타인의 십자가까지도 지시겠다고 청하셨다. 아마도 그분들은 살아서 이미 하느님 나라를 체험한 분들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마리아쉼머의 연옥영혼과의 대화를 읽어보면, 십자가의 여정에서도 불평 없이 묵묵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직 천국을 간다고 한다. 주님께 의탁하며 주님께 맡기고 그저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을 버릴 때만이 온전하게 주님을 의탁하게 된다. ‘영화, 인디아나존스 최후의 성배’를 보고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대목들이 있다. 최후의 성배가 보관되어 있는 요르단 페트라 사원에 인디아나 일행은 도착하지만, 성배를 찾기 위해서는 3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마지막 관문은 절벽과 절벽 사이에 있는 건너편 계곡으로 가는 건데, 여기서 인디아나존스는 신에 대한 믿음, 아버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눈을 꽉 감고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몸을 맡긴다. 떨어질 것만 같던 계곡에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다리가 있었고, 인디아나존스는 무사히 이 다리를 통해서 성배가 안치된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건너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맡긴 것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만을 가지고 절벽과 절벽 사이를 건너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믿음으로 몸을 맡기고 건널 때, 우리는 하느님 도우심의 섭리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감동 받았다.
♠ 대화 방향 : ① 십자가가 너무나 무겁다고 느낄 때, 당신은 어떻게 다시 힘을 얻고 평안함을 되찾는가? 당신의 방법은 또 다른 지친 이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각자 체험을 나누어 보자.
②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만을 믿고 인생의 절벽과 절벽 사이를 건너면서 하느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받은 체험을 서로 나누어 보자.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힘이 되리라 사료된다.
♠ 참고 문헌 : ▪ 영어성경 (God’s Word 2015 Daily Reflections)
▪ 양승국신부님 마르코복음 6,30~34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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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 위
2015. 9. 27
루카 12, 15 ~ 21
☞ 개괄적 이해 : 추석이면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뵙고 효도하는 날, 오랜만에 형제들을 만나 정을 나누고, 첫 수확한 좋은 것들을 조상들의 차례 상에 올려놓고 차례를 지내며,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며, 햇볕으로 곡식을 영글게 하고 어둠을 밝혀주는 달님을 환호하며, 빛으로 오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큰 명절에 루카 복음 12장 13~14절에서 유산문제로 다투는 형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도 ‘돈’ 이 빈번히 화자가 된다.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늘의 우리에게 도전을 받고 있다.
♠ 복음 연구
* 15~16절 :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루카복음에 만 기록되어 있다. 이 예화의 주제는 15절의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 의 말씀으로 돈에 대한 ‘물신주의’로 심각한 탐욕이 어리석음을 좌초하는 인간학적 위기로 전락시키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탐욕을 경계하여라.” (15) 탐욕은 자신의 분수에 넘치도록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pleoneksias. greed. covetousness)으로 12장 5절에서 과도하게 욕심 부리는 세상에 대해 언급하고 이들은 어리석은 자들로 apron은 ‘무분별한’ ‘지혜가 없음’을 뜻하며,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지 못한 데 있다. 풍요로움의 최고 가치가 바로 5절에 나오는 탐욕의 노예가 된 사람이다.
* 17~18절 : 1. 어리석은 부자는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곳간도 곡식도 필요하다. 물질(돈)이 필요하고 사업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돈을 버는 것은 삶의 전 목적이 아니라,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 18~19절 : 2. 어리석은 부자는 이기적(세속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수확한 것, 내 모든 곡식과 재물, 내 자신.... 이 부자는 자기 자신(영혼)까지도 자기 소유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의 목적이 ’실컷 먹고 마시며 즐기자’ 는 극심한 소비주의와 더불어 인간을 인간욕구의 하나로만, 곧 소비욕의 향락주의로 전락시키고 있다.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 가난한 이들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 20~21절 : 3.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 재물만 믿고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이 부자는 미래를 위해 재물과 곡식을 가득히 채우고, 그 동안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웠던 한을 흐뭇함으로 채우던 그날 밤 죽고 말았다. 오늘 밤에(this night), 여러 해 동안(for many years)(19절) 대조를 이룬다. 이 표현은 부자가 앞으로 여생을 (여러 해)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길 계획을 세우던 바로 그날 밤을 말한다. 이것은 부자의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재물에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재화를 사용하라는 경종이다...
♠ 복음 요약 : 오늘 복음의 부자는 자본의 속성인 돈은 돈을 낳고 투자는 더 큰 이득을 가져 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수완이 있는 사람으로 미래의 생활이 보장될 창고를 짓는다. 재물과 곡물을 창고에 가득 채우고 이제부터 한생 맘껏 즐길 희망에 가득 차 있던 그날 밤, 죽을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부자’ 를 예수님께서 비유하여 ‘우리가 살아가는데 물질(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 는 생각으로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모으는 사람의 부질없는 노력을 일깨우고,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아가기를 고집한다면 그 사람은 내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뜰 수 없을지 모르니 ‘각오하라.’ 하신다. 하느님께서 데려가시면 재산은 남의 처지가 되고, 하느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재산보다 생명이 중요하다. 즉, 소유보다 존재가 문제다. 어리석게 살지 않고 지혜롭게 살라는 가르침이다. 실로 재물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자기 자신만 잘 먹고 잘 살자.’ 는 문화로부터 탈피하여 ‘돈의 우상은 안 된다.’고 일깨우면서 우리가 부딪히는 구체적인 곤경에 대처하는 연대성의 작은 이상적 행위를 촉구하신다.
♠ 대화 방향 : ① 살아계실 때 부모님을 공경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억하면서 보내는 추석 명절을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보내고 있으며, 어떤 마음으로 보내야 할까요?
② ‘돈의 우상화 시대’ 에 내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 참고 문헌 : ▪ 복음의 기쁨 ▪ 성서 어휘 사전 (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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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가난함을 주옵소서...
수원지구 FB 회원
한 바오로 (민희)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내 안의 깊은 구석구석을 바라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
두 갈래의 길에서 어느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바라봅니다.
그 분께로 가는 이 짧은 삶의 여정에서 무엇을 어깨에 지며 가고 있는지,
어느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조용히 내 온 몸과 영혼의 눈을 감고
그 분의 맑고 한없는 자비의 바다를 통해 똑바로 바라보게 해 주소서.
불필요한 많은 것들을 어깨에 힘겨웁게 지고 불평하며 매 순간 주어지는 두 갈래의 길을
교만과 욕심으로 왔다갔다하며 걸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따뜻하고 원하는 먼 나라로 날아가는 기러기가 무거운 짐을 메고 갈 수 없듯이
이 세상 것들은 그 분의 나라로 가기 위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으며
오로지 그 분이 주신 사랑을 나눈 것만 가져갈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순간순간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과 슬픔은
그 분께로 가는데 불필요한 무거운 교만과 욕심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죄인이며, 내 모든 것을 작은 어린아이처럼
그 분의 뜻에 온전히 맡겨드리는 ‘가난’의 값진 선물임을 깨닫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가난한 마음으로 작은 흰 구름처럼 살아가려함에도 매 순간 거친 비바람과 먹구름이 휘감아
내가 가야할 길을 가로막는다하여도 모든 것의 주인이신 그 분의 한없는 자비와 사랑을
결코 이길 수 없음을 의심 없이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분께서 나의 귓가에 조용히 들려주십니다.
“바오로야, 가난한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 걸어오너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너에게 줄 것이다.
그 거룩한 천상은총과 자비와 사랑으로
네 주위의 헤매이다 쓰러져 슬피 우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라.
그것은 나에게 올수 있는 긴 강을 건너는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 하시는 말씀을
내 영혼 깊은깊은 심령으로 받아들여봅니다.
* 진심으로 사랑하는 F,B가족 여러분!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저에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끊임없이 주시는 분들에게 부족하고 게으름으로 응답해 드리지 못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고 담아 보내 드립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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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연수회 스케치 >
연수회 파편들...
- 저희는 어쩔 수 없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기록원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금년 여름은 유달리 뜨거웠다.
37~8도를 오르내리는 혹서 속에서도 어떤 곳은 무려 39도를 지나치기도 했다. 2박3일의 연수회…….
유달리 일찍이 도착하여 드러나지 않게 준비를 한 당산동 팀의 숨은 노력이 엿보이고, 연수회 시간을 떼서 몇몇 사람들의 헌신적인 수도원 봉사가 언젠가는 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2박3일의 첫날 참석자가 불과 14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박 요한 수녀님의 프로그램이 달라진다. 수녀님의 열정적인 강의는 다소 분량이 많아서 이를 정리하기가 벅차기도 했지만, 기간 내에 쭉 맥락이 이어오고 있었다. 이런 일은 이를 준비하신 수녀님 탓도 아니고, 이를 45년이 넘도록 이런 프로그램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로 인하여서 일 것이다.
요한 수녀님의 화려한 강의는 별도로 기회를 내어서 그 강좌의 진면목을 보고하게 될 것이라 여기면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필자의 마음 가는대로 그려본다.
첫날 강좌인 ‘내 안의 요나’ 와 둘째 날 첫 시간, 요한복음 6장을 근간으로 하는 ‘하느님과의 친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먹이려고 진행자와 수녀님과의 조정으로 그 일정을 서로 바꾸기로 하였다. 첫날 저녁 강의는 요한복음 6장을 중심으로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파견미사 때의 복음이기도 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 에 주목하게 된다.
‘예수님과 일치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한 현존체험’ 이 주요 단어로 떠오른다. 수녀님은 이에 대한 설명 부분은 다음 날 강의로 이어진다고 하셨다.
응답으로 '쪼개는 일', 즉 '나눔' 나를 필요한 곳에 봉사하는 사람을 말씀하신다. ‘불평하면 쪼개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고 하셨고, 이에 ‘나눔과 섬김의 자세는 우리의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 시며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부터 사랑해야한다.’ 고 하신다...
평소부터 아주 빠른 시각인 초저녁 10시 무렵에 소등되고 하루가 넘어간다...
유달리 밝은 밖인 까닭에 이른 아침 4시경에 잠이 깨어서 밖에 나가서 서성거리다가 남들이 일어나는 시각에 다시 들어와서 아침을 깨끗이 하고 아주 여유 있게 아침기도에 참석한다... 기도 후 약간의 여유 후에 아침식사를 한다.
둘째 날 첫 번째 강의 즉 수련회 두 번째 강의인 '내 안의 요나'에 대한 이야기가 영어를 텍스트로 재빠르게 자연을 배경으로 슬라이드는 흘러가고, 이를 정리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빠진 저를 약간 당황스럽게 하고, 필자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많은 체력의 소모를 가져온다. 첫 날의 여유는 사라지고 수많은 슬라이드는 평소에 아는 상식수준만 남아있게 된다. 하느님은 요나에게 뭔가 하길 바라지만, 요나는 이를 피해 도망가다가 큰 물고기에 갇히게 되고, 어떤 계기로 배속에서 나와 큰 도시를 구했다는 그런 얘기가 내 머리 안에서 상상으로 그려본다. 이 대목의 진정한 모습은 아마도 그 슬라이드를 몇 번 되풀이해 본 후에 필자가 들어낼지는 오리무중이 되고 만다.
중식 이후 레크레이션이 이어진다.
풍선게임은 바빠진 필자의 머리를 정리하기에 단비와 같은 것이니, 그냥 구경하는 데는 또 다른 의미인 이인일조 풍선게임이 두 조의 경쟁으로 일사분란에게 이어진다. 격렬한 행동과 소음이 뒤따른 레크레이션이 갑자기 불참한 박 아폴로니아 자매님을 대신해서 이 효주아녜스(원주) 자매님이 진행하게 되는데, 이 흥겨운 시간 이후에는 모든 이들에게 다가오는 강의는 평소에 맛보지 못한 고급 음식인 줄은 차마 알아 챌 수가 없었으니, 관상에 대한 내용이 쏟아진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 수도원에서 해온 방식인 관상, 예수회의 묵상법인 이나시오방식이 소개된 것 같았다. 이들을 위해 약간의 도움이 되고자 화이트보드에 적힌 주요 단어를 명기해보면,
1.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 마음의 준비인 기도에 따른 하느님과의 친교 방법은 다양하다고 한다.
2. 예수님을 바라봄(관상) 사랑을 통한 인식 신실감 자유 단순함이라 되어있다.
3. 관상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고, 집중기도와 관상과 신령한 언어은사라고 한다.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은 낯선 음식으로 필자의 대장은 큰소리를 내더니만 이른 아침에 다를 기다리기에 잠시 밖에 머물 수 없는 작은집에서 이를 처리하기에 급급하였다네.
복잡한 머리 안에서의 5분 강의 관상실습을 소화하지 못하고, 필자의 경우 좋은 열매를 내지 못하누나... 나중에 내 노트에 남겨진 흔적들 아무리 살펴봐도 내가 먹은 맛과 멋을 도저히 분간을 못하며 요리 이름을 내 마음대로 적어본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상태에서 이를 표출하는 저녁 성극 예약을 받고 보니, 필자가 소속된 2조는 원곡성당과 서울 당산동성당 팀의 연합체로 분명히 주제에 따른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지만, 이를 잘 정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닌 것 같지만, 그런대로 어린이집에 있는 소품을 이용해서 순발력을 발휘해 본다.
이를 억지로 생각하려니, 내일이면 사또 생일날에 죽을 터이지만 옥중에서 한양으로 떠나보내는 춘향이의 몰골과 진한 사랑의 애정고백서인 옥중가 '쑥대머리'가 자꾸 반복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연민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나면 문밖에서 혼자 넋을 잃은 사람처럼 오며가며 춘향이의 고백을 판소리로 읊조린다. '쑥대머리'로 시작하는데 마치 내 머리 속이 그러 된 것 같았다. 그 짧은 시간에 내 머리를 스쳐간 영상은 아내를 사귈 적에 하루 종일 직접 보면 나눈 애틋함을 깨닫지 못하는데, 떨어져 있으며 그녀가 마치 내 앞에 나타난 듯, 그리고 애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주님이 파도 속에 다가오는 모습에 겹쳐서 너무나도 어지러운 파도만이 나에게 강하게 다가오니 그분을 만나는 두려움이 사그라지지 않기에 도저히 말을 건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저녁 봉사자모임을 통하여 어떤 이는 레크레이션의 영향으로 이 대목에 마음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사진으로 남기면서도 그런 다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3시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가 늦은 시각인 4시경에 되었고,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만 간다.
이어서 제4강의는 초기 회원에 의한 공동체의 정신과 오래 전 모습이 그려지고,
우리의 또 다른 전통적인 표현인 성극이 저녁으로 다가서기에 거기에 마음이 갔기에 성서형제회의 교본의 한 부분인 듯 준비된 인쇄물이 낭독되고, 자주 들은 듯한 1970년대 모습을 드러낸다. 1970년에 시작한 성서형제회, 그리고 1973년도에 출발한 청년성서모임 두 줄기가 그려지고, 주님의 또 다른 방식으로 쓰이고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된다. 다들 준비한 것을 열악한 환경에서 함축적으로 보이는 노력들이 보인다. 다만 강의 내용과 연결고리가 아닌 일반적인 내용이 대부분인 것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아있음이 필자만의 작은 소견일까? 일과를 마친 후 따로 모인 봉사자회의의 내용은 따로 전국조정이 보고할 것이라 생략한다.
첫날과 달리 아침에 깨어보니, 6시30분. 허겁지겁 얼굴을 훔치고 대장청소를 하고 보니, 기도 시작이라 서둘러서 아침 성무일과에 참여한다. 아침식사 후 제5강의 ‘영신 식별’ 로 이어진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를 성령쇄신기도회에서 부터 얻은 것이라, 약간의 틈이 있고, 강의 후 수녀님과 확인을 해본다. 다른 개념이라고 하신다. 천주교에서 가장 알려진 ‘악의 존재’와 ‘구마의식’ 에 대해 말씀하신다. 칠판에는 ‘식별 영적투쟁’, 그리고 ‘속임수’ 라는 제목에 ‘시작 중간 끝이 선한가?’ 에 대한 질의가 이어진다. 결정 사람을 통한 결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식별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와 ‘정리’ 가 이어진다. 앞선 강의인 ‘관상’이 영신식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저녁 봉사자 모임에서는 이들 강의를 통한 성서형제회의 중심인 코이노니아의 모습을 새롭게 해보려는 의지가 보이기도 한다. 역시 이 부분에서도 제 노트에는 분명히 수많은 문장과 단어가 나열되지만, 지금 이글을 정리하는 시각에 도무지 연결이 안 되기도 한다.
점심 식사 후 3일간 사용한 공간을 정리하고 숨 가쁘게 미사 준비와 몇 사람의 성사를 배려한 움직임 이후에 원로 신부님의 주례로 파견미사는 이어지고 신부님은 말씀하신다. '휴가철에 우리들의 현명한 선택' 이 강하게 들리고 미사 후에 기념사진과 신부님을 배웅하고, 나머지 성경암송에 여러 사람이 여유를 얻어 참석하게 되고 그 향기를 우리들에게 퍼뜨린다. 특별한 파견의식 없이 떠나는 이들을 인사하면서 자기 생활터전으로 돌아간다. 9월 월례회의 장소인 서울 당산동성당을 기대해보면서... 돌아와서 피곤함을 주체하지 못한 필자는 저녁을 거르면서 8시경에 일어나서 잘 알지도 못한 작성노트를 보면서 열심히 나열해보면서 눈 빠지게 기다릴 전주팀을 그리워하면서 긴 호흡을 보낸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왜 저를 이 어려운 일을 맡기셨는지... 알아듣는 것이 많지 않은 저를 말입니다. 주님께서 분명코 다른 이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해야 할 일 깨우쳐주셨듯이 ‘저를 어디에나 무엇이든지 들어 쓰실 것이 있었나?’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하는 일에 비해 너무나도 과분한 관심을 받고 보고 이글을 조금이라도 차분하게 정리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서 그 다음날 한양 당산동성당 공동체의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의 코이노니아 힘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주님의 은총이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빌어본다... 아멘!
영육 간의 벅찬 양식을 주시려고 애를 쓰신 수녀님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그리고 듣기에는 다소 무리가 들었지만, 이를 풀어서 행하기란 더 더욱 어려움을 말하나, 이를 위해 다음 연수회인 1년 동안, 아니면 가능하다면 남은 평생을 두고 과실을 위해 숱한 넘어짐을 다짐하면서 펜을 놓는다...
“ 주님 제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행하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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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F·B 하계 연수회를 다녀와서...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오 스테파노(광근)
+ 찬미예수님!!
유난히도 더운 날씨에 우리 F.B회원들은 강했다. 찜통 같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주, 수원, 서울, 안산 등지에서 삼삼오오 모여 든 횐님들. 그렇게 모인 우리 회원 한 분, 한 분의 영적 갈증에 대한 거룩한 모습들에서(?) 우리 성서형제회의 밝은 희망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번 연수회 진행에 있어서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전국 봉사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기대 이하의 참석인원, 더운 날씨에 대한 짜증, 여러 열악한 환경 조건에서도 묵묵히 연수에 협조해 주신 각 회원님들은 작지만 강한 우리 F.B의 진정한 모습 같아 가슴 뿌듯하다.
이번 연수회에서 아쉬웠던 것들은 다음 모임에서 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회원님들의 많은 기도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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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넘친 하계 연수회
서울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이 안셀모(기대)
주님을 더 알기 위해 일을 마치고 바지런히 사강을 향해 지하철 &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어둠이 깔린 사강시장 하차, 21:03 밤길에 동행이 있어서 행복 & 김 효주아녜스 봉사자님과 간혹 오는 사강수녀원이지만 늘 풍기는 향기는 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줍니다.
첫 날의 강의는 주변분들에게 듣고 좋은 강의였던 것으로 느낌을 받았습니다.
둘째 날 수녀님의 강의로 하루를 시작 주님과 친교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무 느슨하게 주님을 향하여 살아 온 것 같습니다. 관상기도를 꾸준히 해야 만이 주님을 영접 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음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주님의 선물이 성경을 통해서 이렇게 많은데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참으로 마음이 저며 옵니다.
셋째 날 주님을 향한 마음을 오로지 굳힐 수 있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나태함은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씀에 저는 매우 부끄럼을 느꼈습니다. 영적투쟁으로 무장함과 동시에 사랑스러움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내가 겪지 못한 내용을 들으므로 오판을 줄일 수 있는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의 배려에 강의를 집중할 수 있어서 알찬 하계 연수회가 된 것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봉사자님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제 자신도 F.B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뛸 것을 주님 앞에서 다짐합니다.
막바지 무더위에 건강들 챙기세요. 수녀님& 형제자매님들......
아침기도에 성무일도가 이렇게 제 마음에 잔잔히 파고듦을 느끼며......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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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5년 7월 입출금 내역 (FB 연수회 회계내용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