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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2일(주일) 주일설교 시편 20:1~18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새찬송가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간단히 살펴보면 시인은 교만하고 포악한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가련한 자를 잡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일어나셔서 손을 들어 악인을 벌해주시고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시길 간청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왕이심을 확신하면서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악인이 판치는 세상에서 의인은 마음이 상합니다. 여기서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 의인은 악인의 교만과 포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의지할 곳은 하나님 밖에는 없음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시편 73:26~28에서 모든 의인을 대표하는 시편기자가 고통받는 세상에서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이것이 하나나님을 믿는 의인의 고백입니다. 그러면 ‘의인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챗GPT에 물어보니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성경에서 "의인"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올바른 길로 행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잠언 1:7). 그들은 옳은 길에 서 있으며, 불의한 길을 걷지 않습니다(잠언 4:18) 그들은 마음이 청결하며, 진실하고 정직하게 행동합니다(시편 15:2). 그들은 자비롭고 인자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돕습니다(잠언 11:25).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삶에 적용합니다(시편 1:2).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시편 121:1-2). 그들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사함을 구합니다(시편 32:5).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지 않으며, 언제나 진실하고 정직하게 말합니다(에베소서 4:25). 그들은 자신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고린도전서 10:31). 마지막으로 그들의 행동과 말씀이 주위 사람들에게 축복과 은혜를 가져다 줍니다(잠언 10:6). 그러므로 이러한 의인의 특징을 갖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며, 그들의 삶은 영적으로 풍성하고 의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는 세상에서 고난받으면서, 악인의 교만과 포악을 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의인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의인으로서 의인의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의인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1. 악인의 특징(1~11절)
먼저 시편기자는 오늘 본문 1~11절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악인의 특징’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악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이고 더 나아가서 ‘실제적인 무신론자’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4절 하반절에 시인은 ‘그의 모든 사상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실제적인 무신론자인 이들은 하나님이 ‘있을 수 있다’, 또는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어떤 종교에 귀의해서 종교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종교적인 교리와 전통, 인간의 권리와 자유, 이성적인 탐구 등을 기반으로 무신론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생각 속에서 그들은 무신론자입니다. 일부 무신론자는 과학적 방법론과 논리적 사고를 중요시하며 무신론을 지지하며 또한, 다른 무신론자는 비극적인 개인 경험이나 존재론적인 문제를 바탕으로 무신론을 지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는 듯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며 잘 살고 있습니다. 또한 악인의 특징은 3,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악인은 그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리는 자를 축복하면서 여호와를 부인합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악인들은 자기 욕심을 자랑하고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축복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자신과 관계없다고 여기며,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찬양하게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 43:21)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자랑하고 찬양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은 모두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충분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5, 6절에서 악인들의 특징을 하나 더 열거합니다. 그들의 고백입니다.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5,6절). 우리는 그들이 패망하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은 그들의 성공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그저 하나님 없이 성공한 자신들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흔들리지 않고 환란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마치 전능한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말합니다. 7절부터는 악인들의 언어와 행위에 대해 묘사합니다.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7절). 예수님은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의 마음을 드러낸다고 하셨습니다. 악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저주, 거짓, 포악, 잔혹한 말, 죄악된 말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이 죄악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그들의 행동은 어떠합니까? 8절에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8절). 이들은 죄를 매우 은밀한 곳에서 범합니다. 사냥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가련한 사람을 잡아 이용하는 것입니다(9,10절). 그들이 이와 같은 생각과 말,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1절에 힌트를 줍니다.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11절). 이것이 그들이 내린 하나님에 대한 결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어 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위장전술이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면에 있는 사상은 바로 4절 하반절에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입니다. 그들의 생각 속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일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삶에 하나님이 있든 없든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땅의 일에, 특히 나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에는 그들의 교만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겸손을 삶 속에 이렇게 적용하라고 권면합니다. 어려울 때 전문가를 찾는 것, 항상 배운다는 마음을 가질 것, 그리고 인정할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교만한 사람은 잘 모르면서도 알아서 대충 해결하다 더 큰 문제를 유발시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교만한 태도로 “거 뭐 들을 것 없나?, 배울 것 없어“라는 태도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겸손한 의인은, ”나는 항상 배운다“는 마음을 유지합니다. 그 마음이 깨지면 이미 교만한 마음입니다. 설교를 듣는데도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들을 것도 배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은혜가 되고,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세상에서 악인들을 보고 우리는 그들의 포악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들의 생각과 사상과 삶에 하나님이 없기에 저렇게 행동하는 구나 하고 그들을 미워하고 정죄하고 마음 상해 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의인의 출발점이 되겠지요.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9장 36절에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고 했습니다. 직장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사람을 무시하고 자신을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그들을 말씀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고 그들을 주의 이름으로 더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적용해보세요) 나는 세상에서 교만한 얼굴과 포악한 말로 성공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악인(무신론자)가 부럽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없이 사는 그들이 불쌍해 보입니까?
2. 의인의 간구 시편기자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크게 두가지로 기도하는 데요. 첫째는 12~15절에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둘째는 16~18절에 ‘여호와여 귀 기울여 들으소서’의 기도를 합니다.
1) 여호와여 일어나소서(12~15절) 먼저 시편기자는 12절에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보이는 대로 사는 무신론자들과는 다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 여기고 살아가는 세상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14절에 시편기자는 “주께서는 보셨나이다”라고 합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셨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멀리 계시지 않고 숨어 계시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믿음의 눈이 없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은밀하게 행하는 죄를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손으로 이 악행과 교만을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계속해서 14절 말씀입니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이것이 믿음을 가진 자들이 가질 수 있는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인 성도들은 주의 감찰과 주의 손으로 이루어질 심판을 믿고 내 손으로 보복하려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내 안팎의 악을 찾으시고 진멸하시기 까지 주를 의지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빨리 성취하려는 조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나를 괴롭히면서도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시에 내 상황은 점점 힘들어져간다고 할지라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적용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나의 모든 것을 보셨음을 믿고 주를 의지하면서 기다리고 인내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참지 못하고 분을 발하거나 조급함으로 견디지 못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2) 여호와여 귀 기울여 들으소서(16~18절) 시편기자는 17절 말씀에서 두 번째 기도인 ‘여호와여 귀 기울여 들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를 올려드립니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주님은 보고 계실 뿐 아니라 다 듣고 계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18절에 이런 확신을 고백합니다.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시편기자에게 이런 확신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시편 기자는 1절에서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라고 물었던 사람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 시편 기자는 끝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편기자의 그 확신은 하나님 자체에 있습니다. 16절에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왕’이심을 믿기에 그분이 하실 일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이 나의 어려움이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이든 참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믿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바로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합 1:2-4). 하박국 선지자가 보는 이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께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것으로 인해 하박국 선지자의 삶의 태도가 정반대로 바뀌게 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합 3:17). 뭔가 당연한 것이 당연시 되지 않는 상황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들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라고 말합니다. 하박국 3장은 선지자의 찬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의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들입니다. 그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온 세상의 주관자이시고 긍휼 많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것을 알았을 때 네가 처하고 느끼고 보는 상황에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초월하여 믿음으로 그 하나님 앞에서 기뻐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가 고백하듯이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왕이십니다’ 이런 깨달음 속에서 그는 악인의 교만과 포악에도 불평하지 않고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여호와여 귀 기울여 들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이런 분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며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또한 하나님은 긍휼 많으신 자비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의인의 기도는 곧 나의 악을 회개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구원과 거룩을 위해 악인의 역할을 하는 가족과 지체를 구원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큐티인 간증 ‘나의 시편’ 윤새품자매님의 친정어머님 가게의 화재로 말미암은 회복의 간증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시인은 고아와 가련한 자를 압제하고 위협하며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악인의 번성을 보며 ‘여호와여 숨지 마시고, 일어나셔서 의인의 간구에 귀 기울여 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악인의 인생의 목적은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입니다. 구석지고 은밀한 곳에서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은 모르신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런 악인의 죄에 대해 침묵하시고 그들이 세상에서 형통한 것을 보고 답답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옆의 악인은 하나님이 먼저 나의 악을 깨닫고 회개하라고 붙여주신 거룩의 통로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귀를 닫으신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은 내가 나의 가족과 지체의 죄를 탓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인의 기도는 곧 나의 악을 회개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구원과 거룩을 위해 악인의 역할을 하는 가족과 지체를 구원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일어나셔서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입니다. 개인적인 기도입니다. 함께 따라해보시길 바랍니다. 주님, 내 가족만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던 교만한 인생입니다. 나보다 강한 자에게는 굽신거리고 약한 자는 멸시하던 악인입니다. 악하지만 세상에서 성공한자를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던 저를 용서해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공동체 기도입니다. 함께 따라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나라에 악을 감찰해주시길 간구하는 지도자들을 세워주옵소서. 도울 사람이 없는 고아와 가련하고 외로운 자를 품어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의 악에서 내 악을 보고 부르짖어 회개하는 의인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