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3일, 일요일...
우리부부는 경남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를 찾아갔답니다....
그곳은 내가 국민학교 2학년까지
왕복 2십리를 걸어서 다녔던 시골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산에서 진주쪽으로 기차를 타고 가면 함안을 지나서 군북역이 있답니다.
군북역 광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함께 간 고종누나와 여동생 내외와 애인을 세우고 찰칵......

역 광장을 나와 오곡리를 향해서 약 삼십리 길을 걸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군북역에서 내가 다녔던 사촌국민학교까지 약 십오리길....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군북장에 따라가 기차를 처음 보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저멀리 산봉우리가 절벽으로 깍아진 곳이 우리가 살았던 오곡리 뒷산 [갓뎀바위] 혹은 [각데미바위]입니다...
6.25때 미군과 괴뢰군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으로
미군들이 [갓뎀, 갓뎀]하며 총알을 퍼부어서 [갓뎀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오곡리는 아버지께서 고향 진양군 이반성을 떠나
고개넘어 고모부께서 사셨던 곳으로 이사하여 살았던 제 2의 고향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 국민(초등)학교 2학년 때 까지 살다가 함안군 가야면으로 또 이사를 갔기에
오곡리는 살아오면서 어렴풋이 추억속에서 되새기던 그리운 곳이랍니다.....

도로가에 서 있는 느티나무는 55년전에 얼마만한 크기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서촌 마을의 숲은 그때도 유명하여 소풍을 가기도 했던 곳입니다....
옛추억을 되새기며 잠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서촌마을의 오래된 시무나무입니다....

수령이 약 600년 된다는 팻말이 있었습니다.....

길가에는 못자리 판도 보이고....

아직 익지않은 보리논도 보였습니다.....
보리논 너머로 보이는 산 모퉁이를 돌아야 오곡리입니다.
저 산모퉁이를 그땐 [나랭이모텡이]라고 불렀답니다....

길가에 장작을 곱게 켜어서 정돈해 둔모습이 .....

사촌 마을에 이르자 [이상대 절 원효암]으로 가는 길과 얼음골이 있는 오곡리 쪽으로 가는 두갈래 길로 나뉘었습니다...

조금 더 가자 드디어 [사촌 국민학교] 정문이 나타났습니다.
학교 정문을 가리키며 추억에 젖는 고종 누나.....

학교 문 앞에는 예전처럼 고추밭과 모를 심을 무논이 보이고....

학교는 폐교가 되었고 정문은 열쇠가 채워져 굳게 닫혀있어 담장 옆으로 해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당시엔 목조건물이었는데 중간에 벽돌건물로 바뀌었던 모양이나 그도 낡아서 퇴색하였고
운동장엔 잡초만 무성한 채 고목이 된 느티나무만 기억에 아련했습니다...

추억을 나누며 고종누나도 한커트......

운동장에 무성한 클로버도 한커트....

우리는 학교를 나와 다시 오곡리를 향했습니다.....

애인과 여동생 내외는 이 시골길에 대한 추억이 있을리 없지만 함께 걷는 고종누나와 나의 추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때처럼 길가엔 클로버가 피어있어 꽃시계를 만들고 목도리를 만들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였고.....

빨간색의 자운영도 길가에 보였습니다.
거름으로 쓰이는 자운영이 논 가득히 피어있던 모습은 빨간 융단을 펼쳐놓은듯 했었지요.....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그땐 엄청 멀기도 하였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봄에는 진달래 따 먹고 삐삐를 뽑아 먹고, 찔레와 송구를 꺽어먹기도 하였고....
벼가 익어갈 즈음에 맨 먼저익은 벼이삭을 꺽어서 까 먹으며 이 길을 다녔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길에서 조금 떨어진 [사촌저수지]로 갔습니다...

저수지 속에 비친 풍경이 하도 아름다워 한커트.....

점심을 먹으며 바라 본 둑아래 사촌리 마을의 모습이 몹시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나랭이모텡이]를 돌아 오곡리 입구에 이르자 [각데미바위]가 조금 더 가깝게 보였습니다....

오곡리입구엔 그때 구리광산이 있었는데 폐광이 된 후에 굴입구에 시원한 바람이 나와
그곳에 집을 지어 음식점을 열고 [얼음골휴양지]라 부르고 있답니다....

[각데미바위]가 더 가까이 보이는 농장을 지나가는데......

철장속에 갇혀 지나가는 우리들을 보는 강아지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가 살았던 집 뒤의 언덕길입니다.
그땐 자갈이 깔려있었고 몹시 가파른 언덕길이어서 소 달구지를 몰고 갈때엔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말끔한 아스팔트라서 그런지 그렇게 가파른 느낌이 없군요....

저어기 언덕아래에 우리가 살았던 집이 있었는데.....
우리가 이사간 후 얼마 뒤 허물고.... 그뒤 경지정리가 되어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곳을 떠난뒤 거의 50여년만에 왔으니.....

[각데미바위]가 더욱 더 가까이 보이고.....

이윽고,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계신 고종 사촌 형님댁 앞에 왔습니다.....

칠순을 넘긴 형님은 아직도 내외가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외양간에는 각각 새끼를 낳은 소가 두마리 한가로히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미리 연락받고 기다리고 계시다 반갑게 맞은 고종 형님 내외와
차 한잔 나누며 한 삼십분 애기를 나누고 작별을 고했습니다...

또 놀러오라는 당부를 잊지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다시 [나랭이모텡이]를 향해 걸었습니다....

사촌리 마을 담장에 장미꽃이 참 예뻣습니다.....
구경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첫댓글 반백년만에 찾아 본 추억의 고향이야기 즐겁게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