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6.月. 서울의 맑음
정초 초사흘부터 초아흐레까지.
초사흘 이야기.
지난 연말에 남쪽나라 화순 모후산母后山 은거암隱居庵 스님께 스님 뭐 하세요. 새해맞이 정초 기도합니까? 하는 문자를 보냈더니 한참 후에 짤막한 답 문자가 들어왔다. 설 쇠고 초사흘부터 칠일 기도합니다. 그래서 설 쇠고 음력 초사흘이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월30일인 월요일이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모후산母后山을 향해 집을 나섰다. 아침6시35분이었다. 잘하면 11경에는 모후산에 도착할 수 있어서 늦은 대로 초사흘 사시마지 불공 겸 정초 칠일기도 입재入齋에 참석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따라가며 차를 열심히 몰아 달려갔다. 마침 설 연휴 마지막 날인 4일째인데다 남으로 향하는 귀향길이라 도로 상태는 한가하고 편안했다. 차창 밖의 하늘은 금세 밝아졌고 산등성이 위로 올라서서 어설프게 구름 사이를 드나들며 숨바꼭질하는 해였지만 가끔씩 날려 보내는 찰랑한 햇살 덕택에 기온은 부쩍부쩍 올라갔다. 경부선에서 빠져나간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지나고 호남고속도로에 들어선 뒤 이서휴게소로 들어갔다. 대개 서울에서 이서휴게소까지는 2시간 반가량 걸리지만 언젠가 귀향길에 들렸던 이서휴게소의 착한 기름가격과 순박함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어서 웬만하면 이곳에 들려서 기름도 넣고 잠시 체조도 한 뒤에 다시 목적지를 향하고는 했다. 오늘도 그랬다. 그런 까닭에 이소휴게소에서는 자동차에 기름만 넣을 뿐 무엇 하나 먹거나 사주지를 안 해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릴 때마다 들었다. 그래서 칠일기도가 끝나고 올라오는 길에는 건너편 상행선 이서휴게소에 들려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은 뒤에 프림 커피 한잔을 빼 먹었다. 모후산에서 서울을 향해 출발을 하고부터 줄곧 하품이 나오면서 졸리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이서휴게소에서 무어라도 하나 팔아주어 작은 도움이 되고 싶기도 했으니까. 500원짜리 프림 커피 한 잔에 얼마만큼의 경제적 효용이 발생할까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지속적인 호감과 관심이 어떤 계기를 만나서 더 큰 도움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경제적 효용 말고도 감정적 친밀함이라는 정신적 효용 내지는 추상적 효용의 가치는 구체적 수치로 표현되는 경제적 가치보다 오히려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이 훨씬 좋아지고 편안해졌다.
화순을 지나 지방 국도를 한참 따라가다가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꿔 하천이 흐르고 인가가 드문드문 서있는 마을길로 들어섰다. 하천이 자그마한 개천으로 바뀌는 길에 이르러서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길이 구겨진 넥타이처럼 산속으로 이어져있는데 이럴 때 맞은편에서 차라도 달려 나오면 잠시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차피 둘 중 한 대는 슬슬 뒷걸음질 쳐서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가 길을 비켜줘야만 다른 한 대가 길을 지나갈 수 있어서였다. 작은 계곡을 흐르는 솰솰~ 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산굽이를 돌아 산속으로 들어 가다보니 산기슭에 임시 길을 내어 산판山坂이 벌어지고 있었다. 벌목伐木을 해놓은 나무 둥치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었고, 벌목한 나무를 실어내리는 무거운 트럭의 바퀴자국이 길바닥에 깊은 고랑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며칠 전에 제법 호복하게 내렸다는 하얀 눈들은 대부분 녹아 있었지만 서너 굽이를 돌아 들어간 산 안쪽 길에는 아직도 얼음이 길바닥에 그대로 남아있어서 언젠가 일주문이 세워질 절 경계를 넘어서서 20m가량의 경사 길을 오르는 데는 두세 번 정도 자동차 뒷바퀴가 헛돌기를 하고나서야 장독대가 있는 절 마당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장독대 옆에서부터 창고를 지나 샘에 이르기까지 벌써 자동차가 다섯 대나 세워져있었다. 오전11시였다. 아하, 오늘이 초사흘인데다 정초기도 입재라고 신도님들이 총동원 되었나보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차량 다섯 대중 세 대가, 그리고 모여 있는 신도님 열서너 분 중 일곱 명이 정초인사차 광주에서 내려온 한 가족으로 밝혀져 은거암 신도 수는 여전하도록 변함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양간 섬돌 부근에도 신발이 많이 놓여있고, 법당 마루 섬돌 부근에도 신발이 주르륵 놓여있어서 어디를 먼저 들려야하나 하다가 법당에서 사람소리가 들려와 법당으로 먼저 들어가 보자고 생각하고는 준비해갔던 공양물들을 쌓아 두 팔에 올려놓고 법당을 향했다. 모후산 한 갈래인 후덕한 산등성이가 법당 마당 앞 작은 계곡 너머로 부드러운 S자를 그리면서 기세좋게 엎드려있었고, 그 산등성이 위로 한 뻠 만큼 솟아있는 하얀 해에게서는 양광陽光한 흰 햇살이 뿜어져 도량 마당에 출렁이듯 흘러넘쳐났다. 그때 법당 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밀려나왔다. 그 가운데는 회색 장삼에 갈색 가사를 수한 스님도 계셨다. 두 팔에 공양물을 쌓은 채로 엉거주춤 스님께 합장인사를 한 후에 법당에 들어가 법단에 공양물을 올려놓고 난 뒤 스님께 다시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스님께서는 은거암에서는 사시불공을 오전11시에 드린다면서 지금부터 정초기도 입재를 시작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다행이도 정초 칠일기도를 입재부터 온전하게 동참을 하게 되어 시작이 참 자연스럽게 되었다고 속으로 무척 좋아했다.
사시불공이 끝나고 공양간과 옆방에 모여앉아 따순 점심공양을 했다. 이제 두 번째 보게 되는 회장보살님과 거사님, 우국이 아빠와 엄마 보살님, 영숙보살, 금자보살 등등 알거나 혹은 모르거나 하는 신도님들과 밥상을 놓고 둘러앉아 정갈한 산나물에 하얀 김 뜨끈뜨끈 오르는 콩나물김칫국에 밥을 말아가면서 맛나게 점심공양을 했다. 정초 칠일기도 입재도 잘 모셨고 살로 가는 점심공양까지 잘 했는지라 이제 신도님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회장님 부부와 우국이 아빠 부부도 오후2시가 넘어서자 오는 일요일 정초기도 회향식과 산신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2시20분이었다. 이제는 법당 마당에 가득차인 주황색朱黃色 살랑이는 햇살과 주지스님과 나만 남아있는 한 겨울중간 잿빛 산속의 검은 한 점 은거암隱居庵 절집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 있었다. 오후3시30분에 입재를 모신 뒤 첫 기도인 오후기도에 들어갔다. 칠정례를 하고 반야심경을 치고, 천수경을 치고는 화엄정근을 하고 축원을 하고 반야심경을 치고 나서는 기도를 마쳤다. 원래 정초기도는 신중기도를 하는 것이니 화엄정근을 하는 것이라고 스님께서 알려주었다. 관음정근보다 화엄정근은 왠지 어색하고 서툴렀으나 열심히 스님 목탁소리에 맞추어가면서 염불을 했다. 역시 기도의 백미는 정근과 축원인지라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화엄정근을 했다. 어떤 때는 내 옆에, 또 어떤 때는 법당 마당과 허공중에 화엄신중들이 빼꼭히 도열해있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숨소리를 느끼면서 화엄정근을 신중님들과 대화하듯이 하고 싶었다. 오후기도를 마치고 법당에서 나오니 오후5시가 되어있었다. 스님과 저녁공양을 하고 난 뒤에 청수물을 갈아 올리고 저녁7시가 되어 저녁기도에 들어갔다. 기도를 마치고 법당에서 나오니 저녁9시 가까이 되어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차나 한 잔 하자는 스님의 말씀에 우리는 공양간으로 향했다. 공양간 한쪽에 쌓여있는 차중에서 스님께서는 오늘은 집안 조카가 보내왔다는 홍차를 권했다. 큰 상자 안에 아홉 개의 작은 상자가 들어있고, 그 각각의 작은 상자 안에는 일회용 티백이 스무 개 가량 들어있는 아홉 종류의 홍차는 영국에 유학 중인 조카아이가 보내온 것인데 상당히 양질의 좋은 홍차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서 그 아홉 개의 작은 상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는데 그중에서 이름이라도 알만한 것은 얼그레이와 아샘이라는 글이 쓰여 있는 두 가지 정도였다. 물을 끓여 하얀 잔에 붓고 홍차 티백을 넣었더니 금세 연기가 지펴지듯 마른 장미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이 우려져 나왔다. 어느 정도 붉은 색이 찻잔 안에 가득차자 티백을 끄집어내고 후후~ 불어가면서 한 모금 마셔보았더니 홍차 특유의 텁텁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그러고 난 뒤 스님을 따라서 조그마한 티스푼으로 설탕을 두 개 가량 찻잔 안에 넣고 스푼을 서너 바퀴 돌린 후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셔보았더니 텁텁한 맛은 사라지고 부드럽고 달부드레 한 맛이 입술과 혀끝을 감싸고돌았다. 홍차 한 잔을 놓고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10시가 다가오자 내일 새벽기도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내 처소인 법당 옆에 붙어있는 차실로 향했다. 화목보일러를 가동하여 불도 충분하게 땠는데도 또 전기장판까지 가져와 요위에 놓아주신 스님 덕분에 달고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잠자는 도중에 한 번인가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 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가 두 번째 눈을 떴을 때는 새벽 네 시가 넘어가고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새벽기도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