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경 가족 나들이(2)/靑石 전 성훈
사흗날(8월 3일), 아침에 마루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서자 파란 하늘이 비친다. 하늘 높이 구름이 느긋하게 어딘가로 흘러간다. 카톡을 열어보니 서울북서쪽에 사는 친구는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서 잠이 깨어 아침을 맞는다고 한다. 마당에서 하늘을 보며 체조를 하고 초가대문을 열고 마실을 나선다. 녹색 열매가 알알이 달려있는 과실수, 배나무, 감나무, 대추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8월의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익어 가면 맛있고 달콤한 과일이 사람의 눈과 입을 유혹하리라. 마당 한가운데 소나무 아래 아담한 바위에 걸터앉아 첫 번째 시집 ‘산티에고 가는 길’을 다시 꺼내 읽는다. 구구구 비둘기가 노래를 하며 자작시를 읽은 늙은이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잠이 깨어 마당에 나온 손자가 청개구리를 발견하고 큰 소리를 지르니 거실에 있던 손녀도 마당으로 뛰어나와 풀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청개구리를 쳐다본다.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든 청개구리 모습에 아이들이 신나는 싱그러운 아침이 열린다.
오전 9시 조금 지나 신라시대 고분 23기가 모여 있는 ‘대릉원(大陵園)’을 찾아가니 65세 이상 무료입장이다. 가장 큰 고분으로 알려진 천마총에 들어가 영화로운 신라 번영의 발자취를 구경하고 나오자 하늘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어느 틈에 등허리에 땀이 나서 저고리가 달라붙는다. 당초에는 경주에서 점심을 먹고 문경으로 가려고 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곧바로 문경으로 올라간다. 문경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땡볕이더니 문경에 이르자 먹구름이 차고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식당에서 더덕비빔밥과 육회비빔밥을 주문하여 먹는다. 그 사이에 비는 그치고 햇볕이 난다. 숙소로 가기 전에 문경오미자테마터널을 찾는다. 옛 기차 터널 안에 오미자와 관련된 상품 및 볼거리를 전시하고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곳에서는 70세 이상 무료입장이다. 입장료를 징수하는 곳마다 입맛에 따라서 경로우대의 나이가 65세 또는 70세로 엿장수 마음대로이다. 차가운 터널 안에서 오미자 꽃 사진을 보니 너무 예쁘다. 암꽃과 수꽃은 다른 나무에 피는데 암꽃은 노란빛 도는 흰색이고 수꽃은 조금 붉은 흰색이다. 벽화와 미디어 장치로 만든 다양한 볼거리를 구경을 하고 나와서 숙소인 ‘산과 산 사이 펜션’에 도착한다.
산속에 자리 잡은 숙소를 보자, 오늘밤에는 별들의 잔치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황토집 독채에 거실과 방이 2개인데 구들을 놓을 때 바닥균형을 제대로 잡지 않았는지 거실도 방바닥도 약간 기울어진 상태이다. 혹시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숙소 옆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흔들 그네가 있다. 계곡 물은 차갑고 물 흐름도 괜찮아 물을 적시며 노는 손녀와 손자의 모습이 보기 좋다. 어린 시절에 부모나 조부모와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 잊지 못하는 추억거리도 생기고 혈육이라는 끈끈한 인연이 이어져가는 게 틀림없을 것 같다. 저녁이 되어 황토집 밖으로 나오니 날파리가 극성이다. 움직일 때마다 눈앞에서 난리를 피워 도저히 걸어 갈 수 없을 지경이다. 끝내는 산책을 포기하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저녁식사는 감자전에 오미자동동주이다. 과실주를 좋아하지 않지만 오미자동동주는 달콤한 맛이 좋아서 유리컵으로 네 잔이나 마시고 멸치 국물로 끓인 떡국을 먹는다. 숙소주변에 조그만 전구를 켜 놓아 야경을 즐기라고 하는데 불나방이 무서워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유리창을 통해서 밤하늘을 보려고 한다. 저녁 7시, 아직도 바깥이 환하니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한다. 밤이 이슥해지자 용기를 내어 바깥으로 나가 밤하늘을 쳐다보니 북극성,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별자리가 보인다. 숙소 주변에 조명을 환하게 켜 놓는 바람에 더 많은 별들을 볼 수가 없어 유감이다. 은하수 대신에 초승달이 밝게 빛나고 있다. ‘별 헤는 밤’을 노래한 시인도, 단편 ‘별’에서 목동과 주인집 아가씨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놓은 작가도, 생전에 지독히도 가난에 찌들면서도 황홀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던 화가도, ‘별이 빛나는 밤에’라고 목 놓아 울었던 가인도, 지금은 저 하늘 어딘가에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산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이 순간의 기쁨과 꿈을 있는 그대로 엮어가고 싶다. 깊은 산골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새벽 4시경 잠시 눈이 떠져 밤하늘이 궁금하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제 초저녁보다는 별들이 조금 더 많이 보인다. 구름이 끼지 않은 화창한 날에 불빛이 없는 황무지나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야만 잃어버린 별들의 축제를 볼 수 있으려나. 이 또한 모두 인간이 저질러놓은 놓은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나흗날(8월 4일), 아침에 ‘산과 산 사이’ 숙소를 출발하여 문경석탄박물관을 찾는다. 개미열차를 타고 광부들의 애환이 깃들은 탄광 모습을 보자, 몇 년 전에 이곳을 다녀갔던 기억이 난다. 탄광에서는 카나리아와 쥐들이 광부들의 친구라고 한다. 유독가스의 징조를 사람보다 빨리 알아차리기에 광부들은 쥐에 놀라지 않고 밥풀을 나누어주기도 한다고 한다. 광부들이 살던 광산촌 모형을 보니 옛날 60-70년대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석탄박물관 옆에 있는 ‘에코랄라’에 들어가니 좋아하는 바운드놀이에 손녀와 손자는 정신없이 빠진다. 넓고 시원한 실내에서 다른 관람객이 없는 시간에 마음대로 뛰어놀면서 돌아다닌다. 열차가 다니지 않는 문경 가은역은 카페로 변신하여 손님을 맞이한다. 이곳에는 조선시대부터 아자개장터가 열렸다가 광산이 폐광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 기능이 없어졌다고 한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계란을 부쳐 넣은 양은도시락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집으로 향한다. 가족나들이를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 탈 없이 여행을 하며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손녀와 손자의 재롱 속에 웃음꽃을 터뜨리는 것처럼 즐겁고 행복한 일은 없는 것 같다. (2022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