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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
믿는 사람의 세 가지 축복(롬5장1-11)
성경본문|로마서 5:1~11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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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박조준목사
영국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교회에서 로마서를 강해한 로이드 존스 박사는 로마서 5장을 스물 여 섯 시간 강해했고, 그것 하나로 책을 한 권 출판했습니다.
그분도 강조했지만 로마서 5장 1∼11절 까지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전체를 바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 박사 는 5장 1∼11절을 14시간에 걸쳐서 자세하게 강해했습니다.
한 구절을 가지고 한 시간 이상씩 강해 한 셈입니다.
이는 이 부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고 했습니다(1절).
믿는 사람의
첫째 복은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이 세상은 화평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화평을 찾으나 화평 없이 불안과 초조, 그리고 공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비극입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이 마음 의 평화를 위해서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약을 먹어보기도 하고, 육신의 쾌락에 빠져보기도 하며, 심지어 이단적인 집단에 끌려 다니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모두가 평화를 얻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렇게 안타깝게 평화를 찾고 계신데 그것이 사실 여러분의 제일되는 필요는 아닙니다. 정말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이 피조물이 조물주 되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할 때, 더구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과 원수가 되었을 때 그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죄를 범하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마음속에서 평화도 기쁨도 만족도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마음의 평화를 소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의 평화를 가지기 원한다면 하나님과의 평화가 우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 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화는 사람들이 어떤 어려운 문제와 고통과 시련으로 에워쌈을 당했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그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시련이나 고통, 환난과 역경을 어떻게 버티고 서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화를 얻기 전에 하나님과의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의 평화를 얻기 전에 하나님의 평화를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습니까?
그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수렁에 십자가로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이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어서 미움과 싸움의 적대 관계에 있었지만, 이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과거의 그 모든 적대 관계는 사라지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의 관계가 성립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러한 축복을 받으면 전에는 미워했으나 이제는 사랑하게 됩니다.
전에는 싸웠으나 이제는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전에는 불안했으나 이제는 담대하게 됩니다.
화평이란 필연적으로 두 인격에 관계됩니다.
어느 한 편에서 화평하기를 원한다고 해서 화평이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가까이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여기에 응하지 아니하고 각기 제 길로 갔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인간 세상은 혼란과 공포, 그리고 불안한 분위기로 휩쓸려 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범한 인간, 하나님과 원수 가 된 인간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가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공로를 힘입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원어상의 말은 부정과거형입니다.
단번에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단번에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 이 누리는 첫째 복입니다.
이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했습니다(2절).
둘째 ,하나님과의 평화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즉시 누리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은혜는 계속적으로 누리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하나의 진행 과정이 아니라 단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매일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하나의 진행 과정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은혜와 지식 가운데서 날마다 자라가는 것입니다.
저더러 목회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즐거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예수 믿는 심령이 은혜와 지식에서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점점 자라는 모습을 볼 때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우리의 심령은 이렇게 점점 성화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는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은혜 밖에 있었지만 이제는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은혜에 들어감 이란 말은 신약 성경에 세 번밖에 나타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성경학자들은 소개한다는 말로 해석합니다.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소개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소개하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심령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시고, 우리를 데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 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이 은혜입니다.
값없는 선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깊이 생각하면 역시 의미 깊은 구절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자리에 인도해 들이셨기 때문에, 우리가 전에 받을 수 없었던,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은사들과 축복들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은혜의 자리에 들어왔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분 앞에서 전혀 새 로운 방식으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보십니다.
우리를 받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받아들이기를, 기뻐하기를, 우리를 축복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우리의 신분이 이처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집 밖에서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에 들어 올 수 있는 특권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배설되는 놀라운 잔치에 참예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 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우리는 이 은혜 안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그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가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래서 우리를 영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준비하시고, 우리 위에 축복을 쏟아 부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은혜에 서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할 것이라.”
중국 선교사로 평생을 바친 바 있는 허드슨 테일러가 새 용기와 힘을 얻고 일생에 큰 변혁을 일으킨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서 있는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로 그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확고하고 견고하게 자리잡고 그 안에 튼튼히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허락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굳게 서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 있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의 자리에 있다는 것과 그 안에서 우리가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안전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놀랍고 더 귀한 축복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따지고 덤벼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분을 온전히 신뢰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긍지를 가지고 은혜 안에 서있다는 사실을 선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이 없습니다. 큰 믿음을 가지고 큰 은혜, 큰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느니라 했습니다(2절).
그런데 믿는 사람이 받는
셋째 축복은 궁극적인 축복입니다.
믿는 사람이 받는 첫째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는 순간 누리는 것입니다.
화평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둘째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누리는 계속적인 축복입니다.
날마다 담대히 하나님께 나 아갈 수가 있습니다. 은혜 안에 삽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받는 셋째 축복은 궁극적인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즐거워한다’는 말은 자랑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했는데 여기 쓰인 말과 정확하게 같은 말입니다.
즐거워하는 것 이상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하지 않고 즐거워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즐거워한다’는 말은 자축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성공했거나 무엇을 받았을 때 기쁨을 스스로 축하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축을 하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자랑하고 뽐내고 영예롭게 생각합니다.
바울이 사용한 말씀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는 말씀에서 바울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는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이 그렇게 벅찰 수 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이 말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자랑하고 있어야 합니다’하고 말입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기도 중에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스데반 뿐만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도 변화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목격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영광스런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 복스러운 비전이 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생각만 해도 감격스럽습니다.
그러면 그 영화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면 그 결과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며, 은혜 안에 서 있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되고, 그 영광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 칭의의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 사실을 기뻐해야 하고, 자랑해야 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확신 이 없이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다면 그 사실 자체가 전도가 될 것입니다.
조지 휫필드나 요한 웨슬레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그것을 보고, 그것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공을 바라볼 때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변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살기등등한 사울의 마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지금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길을 잃고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모르고 삽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 믿는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어떻게 저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수술 경험이 없어 손을 비비며 당황하는 의사에게 시험삼아 한 번 수술해 보십시오하면서 그 몸을 내맡 길 환자가 있을까요?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확신에 차고, 우리의 삶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볼 때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역경과 질고가 저희를 둘러 싸고 있는데도 그 삶과 성품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보세요‘ 하면서 우리에게 끌리게 되고, 우리에게 서 삶의 비결을 알아보려 할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바울의 처방을 보십시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 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 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현재 당하는 환난보다 저 멀리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의 구름만 본 것이 아니라 구름 위의 태양을 바라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화평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은혜 안에 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어떤 환경에서도 즐거워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다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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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