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매재는 윗마을에서도 걸어서 한 시간 가까이 걸어가야 하는 먼 곳이어서 우리들은 걷다가 뛰다가 하면서 그 길을 갔습니다. 한여름이었는지라 산과 들에 수풀이 무성하고 그때는 신경도 안 써서 이름도 몰랐던 갖가지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죠. 쫄레쫄레 따라오던 윗마을 형기가 갑자기 녹두에게 묻습니다.
“녹두야 그나저나 느그들 반찬이랑 묵을 거 많이 챙기왔냐?”
“쌀 허고 기본양념만 챙기왔지. 짐치 한 가지 허고.”
“반찬이 짐치 한가지라고? 먼 맛으로 밥 묵을라고?”
“우리 밭에 고추, 외, 까지, 호박, 콩, 들깨까지 천지가 반찬인디 머가 걱정이냐?”
녹두와 형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르래이도 한마디 보탭니다.
“야야~겐노랑 쪽대랑 수경도 있응께 고기 잡아서 매운탕도 끼리 묵으먼 된디 먼 걱정이냐?”
“질매재에 물고기 많드냐?”
“다른 건 모르겄지만 피리는 겁나 많고 메기도 본적 있다.”
“아, 글고 정 묵을 거 없으먼 깨구락지랑 뱀 뚜드리 잡아갖고 꾸묵으먼 된디 먼 걱정이냐?”
“글자! 글먼 되겄네!”
한참을 걸어서 녹두네 밭으로 들어가는 좁을 길이 갈라지는 곳 까지 왔을 때부터는 녹두가 앞장을 섰습니다. 녹두네 밭은 큰길에서 바로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좁은 길로 20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있었는데 좁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있고 풀숲에 작은 또랑들이 숨어 있어서 잘못하면 또랑에 빠져서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녹두네 가족이 밭일을 마치면 내려와서 점심을 먹는 큰 바위가 있는 계곡에 이르자 질매재에 처음 와보는 친구들이 감탄을 합니다.
“이야~여그 진짜 좋다. 바구가 쫘~악 깔린디 우로 물이 흐르고 물이 진짜 시언허다.”
“야~ 새재계곡 보다 더 좋다.”
질매재 계곡은 화강암 위로 물이 흐르고 계곡 양옆으로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서 작은 돌과 바위로 된 계곡과는 달리 눈으로 보기에도 깨끗하고 시원해 보이는 곳이었고 마침 여름장마가 끝난 직후라서 계곡을 흐르는 물의 양도 충분했기 때문에 누가 봐도 시원하고 깨끗한 멋진 계곡이었습니다. 으쓱해진 녹두가 숨겨진 자랑거리를 하나 알려줍니다.
“쩌그 쩌 크담헌 바구 밑에서 물이 쫄쫄 나오는디 얼매나 시언 헌지 아냐? 한번 묵어 바라.”
“어디? 어디?”
“쩌짝에 있는 크담헌 바구 말이여. 아니다. 다 와 바라. 시언헌 물 한 모금 묵고 밭에 가자.”
녹두의 인도에 따라 큰 바위 밑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이 고이는 작은 샘 앞에 모인 친구들은 그 샘에 입을 직접 대고도 마시고 손으로 물을 떠서도 마시고 나서는 다 한마디씩 합니다.
“워매~시언헌거 얼음물이다 얼음물!”
“이빨이 홀랑 빠져 불라고 근다. 워매 시언헌거.”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 샘물의 시원함을 칭찬하자 녹두는 다시 더 의기양양 해져서 숨겨놓은 자랑거리를 또 풀어 놓습니다.
“여그서 꼬랑을 타고 쩌그 우로 쫌만 올라가먼 소가 항개 있는디 나가 손을 올리고 들어가도 키를 넘어 불 정도로 짚고 물도 진짜 시언 허다. 낼 낮에 모욕가자.”
“그냐? 참말로 그리 짚냐?”
“근당께 임마! 낼 가보먼 알꺼이다. 인자 밭에 올라가서 밥 해묵을 준비허자.”
계곡에서 2분쯤 걸어 올라가자 숲 속에 녹두네 논과 밭, 그리고 산이 보입니다. 밭 입구에 있는 원두막은 녹두 아부지께서 하동정샌 아저씨와 함께 지난 늦겨울부터 초봄까지 지으신 건데 기둥은 소나무로 하고 바닥은 대나무를 깔고 지붕은 함석으로 올리신 겁니다. 밭에서 오두막까지 오르는 사다리를 타고 오두막에 올라온 친구들은 또 한번 감탄을 합니다.
“야~진짜 시헌허고 넓다.”
“이정도면 우리 항꾸내 다 자도 안 쫍겄다 야.”
“녹두 느가부지가 직접 진거냐? 진짜 좋다 야.”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있던 녹두가 짐짓 점잖은 체 하며 모두에게 말합니다.
“빨랑 밥 해묵자. 배고파 죽겄다.”
“글자. 글자. 나도 배고파 죽겄다.”
“나가 외랑 꼬치랑 까지 따오고 그런거 헐랑께 나머지는 나무 모아오고 쌀 씨꺼 오고 글자. 넉보랑 개탄이는 나 따라 와라.”
녹두는 넉보랑 개탄이를 데리고 가서 오이도 몇 개 따고 가지도 따고 고추도 따고 밥에 넣어먹을 콩도 조금 따고 쌈 싸먹을 들깻잎도 뜯어서 계곡으로 씻으러 내려갔습니다. 밥 짓기를 맡은 조르래이와 메기는 냄비와 항고에 쌀을 씻고 있었는데 녹두가 따온 콩도 넣어서 물을 잘 맞춘 다음 모두 함께 원두막으로 올라갔습니다. 밥 지을 땔감으로 쓸 나무 모으기를 맡은 친구들이 그사이 한 무더기의 나무를 모아 뒀더군요. 냄비는 돌을 주워 다가 받쳐서 불을 때고 항고는 논둑에 막대기를 꽂고 막대기에 항고 손잡이를 걸쳐서 불 땠습니다. 다들 밥 불을 때는 친구를 쳐다보고 있는데 저 아래 계곡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녹두야~바구야~넉보야~”
“메기야~개탄아~형기야~”
“어? 이거이 먼 소리 다냐? “
“쩌짝에서 누가 우리를 부르는 것 같은디?”
“누가?”
“넉보야~개탄아~ 어딨냐~”
“녹두야~ 어딨냐~”
“누구여~우리 여깄는디~”
“이짝에 우에 밭에 있어~”
잠시 후 수풀이 무성한 좁을 길을 지나 녹두네 밭에 불쑥 나타난 아이들을 보고 친구들이 깜짝 놀랍니다. 새재계곡쪽 마을에 사는 대발이와 오뚱 그리고 윗마을 꺼맹이가 왔기 때문이죠.
“어? 느그들이 여그를 어찌 알고 왔냐?
“꺼맹이 헌테 놀라 왔다가 느그들이 질매재로 야영 갔다는 말 듣고 왔다.”
“야영 감시롱 싸나이중의 싸나이인 나 오뚱을 빼 묵고 가야?”
5대독자라서 온 가족들에게 예쁨만 받고 커서 그런지 잘난 척 많이 하고 성질도 급한 오뚱이 단단히 삐쳤는지 친구들을 보자마자 대뜸 궁시렁 댑니다.
“아, 우리들은 느그가 너무 멀어서 못올꺼라고 생각했지. 역부러 뺀거 아녀.”
“글고 꺼맹이 니 헌 테는 말 허로 갔는디 니가 마침 소 뜯기러 가고 없어서 말 못한 거여.”
“글먼! 글먼! 우리가 느그를 왜 역부러 빼놓겄냐?”
궁시렁 대는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변명을 하자 다들 맞장구를 칩니다. 그러는 동안 뭔가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을 눈치 챈 밥하기 담당친구들이 황급히 냄비와 항고 쪽으로 뛰갑니다.
“워매 워매 밥 타는 갑따!”
“빨리빨리 물 찌그리! 물!”
동작 날랜 친구들이 쫘~악 물을 찌끄리자 활활 타던 불길이 죽으면서 푸시시 연기가 나더군요. 냄비와 항고 뚜껑을 열어본 넉보와 조르래이가 낭패라는 표정을 짓더니 한마디씩 합니다.
“어찌 끄나? 꼬신 밥 되부렀다.”
“솔찬히 타부렀는디...”
“어찌기는 멀 어째? 일단 묵자. 배고파 죽겄응께 일단 묵자!”
“묵고 죽기야 허겄냐? 묵자 묵어!”
항고와 냄비를 오두막에 올려놓고 빙~둘러 앉은 우리들은 매캐한 타는 냄새가 밥알에 배어든 밥을 숟가락으로 푹푹 퍼서 손으로 받친 다음 입으로 가져다가 맛나게도 먹었습니다. 김치 한가지와 밭에서 따온 오이와 가지, 고추를 고추장 된장에 푹푹 찍어 먹는 것이 전부인 빈약한 반찬이었지만 친구들과 처음으로 야영을 하면서 먹는 밥맛은 정말 꿀맛이었죠.
“야야 메기야 좀 찬찬히 묵어라. 누가 안 돌라 묵응께!”
“오뚱아 니나 찬찬히 묵어라 먼 허천병이 든 거 맹키로 그리 퍼 묵냐!”
“야 이놈의 새끼들아! 영칠라 좀 찬찬히 묵어라!”
“니미~성님 밥 묵는디 어떤 잡놈들이 버르젱이 없이 요리 떠들어 싼다냐?”
“니놈이 왜 성님이냐? 확! 수꾸락으로 빰때기를 패 불라!”
서로서로 욕도 하고 잘난 척도 하면서 떠뜰썩 하게 저녁밥을 먹는 우리들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정겹고 즐겁고 다정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노는 꼬라지를 보고 있던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넉보가 가만히 한마디 하더군요.
“멈마 새끼들이 머 이리 새살을 떨어 싸까? 이~ 학! 꼬치를 따 묵어 불랑께!”
넉살 좋은 오뚱이 지 앞에 있던 고추를 집어서 넉보에게 건네면서 낼름 받아 칩니다.
“아따~ 넉보야! 니 묵을 꼬치는 여기 많이 있응께 요놈 묵고 나 꼬치는 좀 놔또라 잉~”
오뚱이 주는 고추를 받아든 넉보가 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서 한입 베어 물더니 감상을 말합니다.
“쓰~읍! 아~따! 꼬시다!”
오뚱과 넉보가 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친구들이 밥을 먹다 말고 넉보의 흉내를 한번씩 내보고 신나게 웃습니다.
“아~따! 꼬시다! 하하하하”
- 계속 -
※탯말(토박이말, 사투리, 방언) 따라잡기
. 쫄레쫄레 -졸레졸레(작은 동물이나 사람이 자꾸 따라다니는 모양)
. 짐치 - 김치
. 피리 - 피라미, 갈겨니를 통칭하는 우리지역 사투리
. 뚜드리 - 두드려
. 꾸 묵으먼 -구워 먹으면
. 또랑 - 도랑
. 크담헌 바구 - 커다란 바위
. 항꾼에 - 함께
. 버르젱이 - 버르장머리
. 허천병 - 음식을 허겁지겁 품위 없이 먹어대는 모습을 빗댄 말
. 찌끄리다 - 끼얹다
. 솔찬히 - 제법
. 항고 - 알루미늄으로 만든 반합의 일본식 말
. 뺨때기 - 볼, 따귀
. 멈마 - 머시마, 남자아이
. 새살 - 수다
. **샌 - 남자 어른을 하대하여 지칭하는 호칭
. 역부러 - 일부러
. 영칠라 - 얹힐라
첫댓글 녹두,넉보,꺼맹이는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질매재에서의 야영생활이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지 지금은 흐뭇해하고 있겠지요?
다른 놈은 몰라도 녹두는 팔다리 짧고 대가리 큰 찐빵입니다. 하하.
이거..드라마로 만들면 대박이겠는데요? 읽는 내내 미소 떠나지 않습니다. 제가 '녹두'님 옆에 같이 앉아 꼬신밥도 먹고 꼬신 꼬치도 먹습니다^^
맛나게 잡수세요.^^
친구들 사이 비집고 저도 한자리 차지하고 꼬신 밥도 얻어 먹고 고추도 한입 베어 뭅니다. 지금 아이들은 이런 맛 짐작도 못하겠지요. 참 정겹고 재미 있습니다.
요즘은 돈 주면서 하지 않나요? ^^
요즘 아이들은 생각도 못할 좋은 추억이네요. 녹두님은 부자시네요. 좋은 추억과 그 추억을 같이한 친구들이 있어서요.
예. 시골에서 산 게 참 고마워요.^^
대단한 이야기꾼이시네요.어린시절~ 투박한 시골소년들의 흙냄새 물씬나는 생동감있는 이야기가,이 세상 그 어떤 값비싼 것보다 더 귀중한 보배처럼 느껴집니다.
추억은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니까요.^^
녹두님은 어린시절을 여한이 없이 보냈습니다. 저런 추억을 어찌 억만 금을 주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
하 참....밥 먹는 일만 가지고도 이리 떠들썩하니..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네요.
도깨비 서넛 때려잡지 않을까요?^^
엄청난 일을 벌였을지도요. 하하
아! 도깨비 잡기 놀이도 할 걸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