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병이
복순이는 주막을 맴도는 들병이다.
갈 데까지 간 밑바닥 창부(娼婦)다.
술 취한 장돌뱅이와 벼락 방사를 치르고 쨍그랑 몇푼 받는다.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갓쟁이는 주막 주인인 주모가 안방으로 불러들인다.
겨울이면 주막 손님도 뜸해 복순은 주막 구석방을 싸게 빌려 동네 머슴들도 해우(解憂)해준다.
어느 겨울날 밤 모두가 잠들고 뒷산 부엉이 소리만 음산한데 부엌에서 난리가 났다.
음식을 훔쳐 먹으러 들어온 거지 아이가 주모한테 잡혀 마당에 패대기쳐진 걸 복순이 코피를 닦아주고
제 방으로 데려갔다.
복순은 일곱살 거지 아이를 안고 울었다.
제 동생 생각이 난 것이다.
심하게 기근이 든 어느 해, 피골이 상접한 다섯살 남동생과 헤어진 게 십오년 전이다.
열여섯 복순이 제 발로 화류계에 팔려 나오게 된 계기였다.
동기(童妓)가 된 것이다.
복순에게 아담한 집을 사 주고 머리를 얹어준 영감이 술에 취해서 복순이 치마를 벗겼다가
그녀 배 위에서 죽었다.
소위 복상사를 한 것이다.
복순은 그 집을 팔아 몽땅 제집에 보냈다.
세월이 가며 복순이 눈 밑에 잔주름이 지기 시작하더니 벌·나비가 찾아들지 않았다.
행수기생을 잠깐 했지만 결국 밀려나 허름한 객줏집에서 이패·삼패 기생을 거쳐 결국은 서른한살에
들병이가 돼 나루터 주막 주위를 맴도는 비참한 신세가 된 것이다.
일곱살 거지 아이 맹구는 다리 밑이 제집이지만 밤이 되면 복순 방에서 잤다.
맹구는 눈치가 빨라 하루가 파하면 삽짝문의 초롱불도 끄고 사립문도 잠근다.
눈이 펄펄 내려 무릎이 빠지는 어느 날 밤,
맹구가 막 사립문을 잠그는데 한 노인이 거적때기를 덮어쓰고 주막을 찾았다.
그날따라 설밑 대목장을 보려는 장돌뱅이들이 몰려 객방이 없는 걸 맹구가 알고
구석방에서 손님이 남긴 술을 마시고 있던 복순에게 말하고 그 방으로 데려갔다.
“으악!”
맹구가 소리쳤다.
문둥이였다. 손마디는 떨어져 나가고 코는 내려앉기 시작했다.
“영감님, 이거 한잔 마시세요.”
넉살 좋게 복순이 뜨뜻한 막걸리 한잔을 건네자 벌벌 떨면서 벌컥벌컥 단숨에 마셨다.
맹구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좁은 방에서 문둥이 영감과 맹구는 누워서 자고 복순은 벽에 기대어 밤을 새웠다.
사흘째 되는 날,
영감이 단봇짐에서 지필묵을 꺼내어 유려한 솜씨로 글을 쓰더니 맹구보고 수월사에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눈이 녹았을 때 맹구가 이십리나 떨어진 첩첩 산속 수월사에 가서 편지를 전하자 주지스님이 깜짝 놀랐다.
건장한 젊은 스님들이 사인교를 메고 나루터 주막으로 왔다.
문둥이 영감을 태워서 산속으로 사라졌다.
두해 하고도 몇달이 지났나.
그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 어느 날 건장한 젊은이들이 사인교를 메고 오더니 복순과 맹구를 태웠다.
그 사인교는 산속 절 쪽으로 가지않고 반대쪽 읍내로 갔다.
복순이 가마 문을 열고 “도대체 우리를 태우고 어디로 가는지 알려나 주시오!”
소리쳐도 가마꾼들은 들은 체도 않고 발걸음만 분주했다.
가마가 읍내를 가르더니 고래 등 같은 기와집 앞에 닿자 대문이 삐거덕 열렸다.
이 고을에서 제일가는 천석꾼 부자 고 대인(大人) 집으로 들어가 안마당에 내려졌다.
사랑방 문이 열리고 마고자를 입은 영감이 빙긋이 웃었다.
“눈이 허리짬까지 쌓이던 그날 밤 두 귀인(貴人)이 아니었으면 나는 얼어 죽었네.”
자세히 보니 그 영감이 맞았다.
고 대인의 아들, 고 진사도 들어와 복순과 맹구 손을 잡고 고맙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두루두루 덕(德)을 쌓은 고 대인이 문둥병에 걸린 것을 알고 설을 앞둔 어느 날 몰래 집을 나서
수월사로 향하다가 폭설을 맞아 나루터 주막에 들러 목숨을 구한 것이다.
고 대인은 젊어서부터 수월사주지스님의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다.
수월사에 들어간 고 대인은 주지스님의 비방약과 지극정성 간병으로 두해 만에 완치가 됐다.
복순이는 이날 이때까지 자신의 신세가 너무 비참해 부모와 동생들이 사는 고향 집을 찾지 않았는데
거의 이십년 만에 비단옷을 입고 사인교를 타고 고향 집 마당에 맹구 손을 잡고 내렸다.
부모에게 큰절을 올리고 아버지에게 귓속말했다.
“이것은 돈표예요. 문전옥답 서른마지기를 살 수 있습니다.” 라고 했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