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1회. 이씨조선과 대한제국은 중국 땅의 역사다.
명나라 이여송과 석문산
석문산(石門山)(중국고금지명대사전):
“봉천 요양현 남쪽 40리에 있다. 옛날의 석문채가 있다. 명나라 만력 중에 이여송이 조선을 구원하러 출발한 길이다.(在奉天遼陽縣南四十里. 舊有石門寨. 明萬曆中李如松救朝鮮. 道出於此.)”
(해설)
봉천요양현은 원래 감숙성인데 산서성 북쪽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신만주(동북3성) 요동반도에 이동 조작되었다. 아시다(한반도) 북쪽의 신만주는 중화민국 때(1927년) 설치한 땅이므로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는 이씨조선의 역사광역이 아니고 중국의 역사를 신만주와 한반도로 이동 조작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감숙성 서북쪽의 명나라 이여송의 명군(明軍)이 섬서성 조선의 한양(漢陽: 함양)으로 출발한 석문산은 봉천요양현 남쪽40리이고, 석문채는 창려동남 100리에 있다고 기록되었으므로 같은 지역이다. 봉천성의 최초위치는 중국 감숙성이다. 중국 감숙성에서 봉천성, 요녕성, 길림성 , 흑룡강성을 차례로 만들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동북3성(신만주)으로 이동조작한 것이 현재의 중국과 한국의 역사다.
중국감숙성 요양은 명나라 요동군 총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요동요서의 요동이 중국감숙성의 명나라 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대 선조 때의 임진왜란으로 한양(漢陽: 함양)의 궁성이 폐허가 되어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에 천도를 계획하여 22대 정조 때 화성(華城)으로 천도했다. 이씨조선 화성은 중국섬서성 대화산(大華山), 소화산(小華山)의 서쪽에 있어서 화성(華城,)이라고 한 것이다. 일제 때는 경성(京城)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씨조선이 중국대륙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 중의 하나이다. 임진왜란 초기에 이순신이 중국 낙양에 있었다는 지난주의 기록과 함께 이씨조선이 중국 땅의 역사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명, 청의 북경은 감숙성 창려다. 하북성의 북경과 강소성의 남경은 손문의 중화민국 때 만든 현대지명이다.
전한의 요동군치소는 양평인데 고구려와 연나라의 요동성이며 후한의 창평이다. 모두 중국 감숙성 서북부이다.
한국인들이 모두 일제의 조작된 역사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검토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패권시대의 역사는 패권자들의 입맛대로 조작된 것이므로 믿을 수가 없다.
현재의 한, 중, 일의 모든 역사책은 100% 조작된 가짜다. 진서(眞書)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엉터리다. (”한국사검토서“ 참조)
(그림79) 명군출발지 : 중국감숙성 요양현 동남의 석문산
✳이씨조선 지리지에는 명나라 군사나 사신단이 하북성 북경에서 만주를 거쳐 한반도 한양으로 오는 것으로 조작되어 있으나 진실은 명나라, 청나라의 북경은 지금 중국 감숙성의 창려이고 이씨조선의 한양은 지금 중국의 섬서성 함양이다. 하북성의 북경은 현대지명으로서 손문의 중화민국 도성이다.
⬤이씨조선과 대한제국이 중국 땅의 역사라는 근거는 약 30여가지나 되지만 간단히 몇 개만 소개한 것이다.
---------------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