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엇갈린 연모의 대상
한편,
향기는 사정의 수련장에서 가마우지 등과 나올 때, 어떤 촉 觸이 와 땋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라 의구심 疑懼心을 누르고, 그날은 그냥 돌아왔다.
그런데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자꾸만 낮에 갔었던 수련장 내에서, 알고 있는 사람의 체취를 느낀 것만 같았다.
구체적인 것은 아닌데, 막연하게 아는 사람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수련장 내에서 만난 사람들,
그 얼굴들,
하나하나를 다시 떠올려 보아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초면이다.
이상한 느낌에 어제 데리고 온 사정 수련원의 수련생 두 명을 찾아보았으나,
임무 수행차 아침 일찍이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다고 한다.
을지소왕 소속의 담당에게 수련생들의 행선지 行先地와 복귀 復歸 일자를 물어보니, 극비 極祕 사항이란다.
천부장의 군사역을 담당하고 난 후, 처음으로 자신의 지위와 권한에 대한 한계 限界 점을 실감하였다.
자신의 권한은 천부장 부대 내에서만 통하였지, 그 이상은 자신의 권한 밖의 영역이란걸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만만하게 여기고 행동하였던 모든 것들이
‘우물 안 개구리의 짧은 식견이었다’란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하여간,
그럼, 이 느낌은 무엇을 의미할까?
스스로 자문 自問해봐도 답이 없다.
봄철이라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런가 하고, 계절 탓으로 돌리며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다음날 오히려 더 심한 현상이 나타난다.
자꾸만 사정 수련장에서 보았던 정경 情景들이 눈에 선하게 나타난다.
순간,
‘맞아, 수련장의 무술 수련 도구들과 막사의 모양새와 물품 배치 등이 조선하의 박달촌 수련장과 근사 近似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불현듯이 이중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지 중부의 체취를 그곳에서 느낀 것 같아’
중부를 보고 싶은 그리운 마음에 가슴이 저며온다.
막사에서 사정 수련장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고자, 양피지나 죽간 竹簡들을 들춰보았으나 아무것도 없다.
하긴, 천 부장 군사 직책인 자신이 모르는 죽간이 있을 리가 없다.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에 업무를 대충 보고는 말을 몰아 사정 沙井 수련장으로 내달린다.
수련장에는 가축 담당 병사 두 명만 있고 수련생들은 보이지 않는다.
병사들에게 물어보니 2박 3일간 야전 野戰 훈련을 한다며 새벽부터 자리를 비웠다고 한다.
수련생들의 이름을 물어보니,
“수련생의 이름은 모르고, 안다고 하더라도 대외비 對外秘입니다”라고
상부 上府에서 교육받은 그대로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답한다.
그러자 동방향기 책사의 어여쁜 얼굴이 실망감으로 가득 찬다.
이를 본 병사는 그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져 선심 쓰듯이 몇 가지 정보를 이야기해준다.
다만,
수련생들의 대표 이름은 ‘박지형’이라고 하며,
여자 대표자는 문주 門主로 불리는데 ‘우문씨 宇文氏’라고 한다.
향기에게는 둘 다 생소한 성명이다.
박지형의 생김새를 물어보니 곱상스러운 귀공자형으로 용모를 표현한다.
이중부와는 전혀 다른 인물임이 틀림없다.
올 때의 기대와는 다른 사실에 향기는 실망감만 한가득 말 안장에 싣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저녁에 또 생각나는 것이 오전에는 병사에게 이것저것 캐물어 보다 지나쳐버렸는데,
그곳에서 중부의 체취를 더 강하게 느낀 것 같다.
삼 일 후, 다시 수련장으로 가본다.
그런데, 병사 두 명 외에 다른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병사의 답변은 예정일보다 하루 이틀, 늦는 게 보통이란다.
수련장의 수련 도구들을 둘러보니, 조선하 박달촌의 수련장과 흡사하다.
인체 급소 타격 수련에 필요한,
고목의 가슴 높이에 말가죽을 둘러쳐, 인체의 요혈 要穴을 표식 表式하여 만든 인체 모형 人體 模型 3개는 박달촌 수련장과 거의 유사하다.
인체 모형도의 상중하 세 곳에 신축성 伸縮性 좋은 양가죽 띠로 두른 후 단단히 묶어 매듭지은 방식도 박달촌과 흡사하다.
박달촌 수련 생도 중 막내였던, 한준과 이중부가 담당 관리하였던 수련 도구였기에 같은 사람이 끈을 매듭 시킨 솜씨를 눈썰미 좋은 향기가 알아본 것이었다.
향기도 오랜만에 인체 모형의 표시된 급소 몇 군데를 눌러본다.
5 년 전, 박달촌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이번엔 막사 안까지 들어가보았다.
무기고 武器庫 쪽을 둘러보니 수많은 갖가지 무기들이 즐비하다.
여러 종류의 무기 중에 게르 안쪽에 일렬로 세워둔 창들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자루가 짧은, 눈에 익은 철창이 보인다.
일반적인 창은 길이가 8, 9자 정도이며, 일장 一丈(열 자)이 넘는 장창 長槍도 몇 개 있었다.
그런데 이 철창은 6자 (尺)정도에 불과했다.
어린이나 아니면, 아주 키가 작은 사람이 사용하는 단창 短槍이다.
성인이 사용하기에는 그 용도가 접근전에서 투창 投槍의 역할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 이 단창은 이중부가 7년 전에 십칠 선생 동방 호 즉, 향기의 백부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철창이 분명했다.
철창을 잡아본다.
새파란 창날은 살아있고, 물푸레나무 자루에는 중부의 땀 냄새가 배어난다.
창 자루 가운데에 돋아있던 나뭇가지를 자르고 다듬어 놓았는데,
그 “쐐기 형태가 창술을 시전할 때 중심을 잡는 왼손에 자꾸 걸려 짜증 난다”며
창 자루를 못마땅해하며, 한 번씩 투정 부리던 중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단창을 들고 바깥으로 나와 병사들에게 보여주며
“이 철창 주인 아세요?”
무기가 한, 두 가지도 아니고, 병사들은 당연히
“모릅니다” 라고 한다.
향기는 이중부의 용모와 특유의 행동거지를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나 병사들 눈에는 수련생들 모두가 그놈이 그놈이다.
여자 수련생 4명을 제외하면 사내가 열두 명.
어린 걸걸호루만 제외하면 모두가 비슷한 또래의 년령 年齡에 건장한 체격에 다들 무예들 단련하여 무술 고수가 된 강인한 인상들이다.
다만, 박지형은 금성부에서 오는 통지서나 물품이 모두 박지형의 명의로 단일화되어 전달되고 있으며
또, 먼 나라의 왕족이라는 소문도 있고, 무술계 고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공자다운 준수한 외모 때문에 특별히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또 수련원의 모든 사항은 비밀리에 해야한다는 상부의 엄명을 받은 병사들이다.
그러니 세밀한 것까지 알 필요도 없고, 알아도 발설 發說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향기의 마음은 답답하다.
증거물이 있는데, 이젠 철창의 주인만 나타나면 되는데, 언제 올지 모른다.
무작정 기다고 있을 수 만은 없다.
말을 몰아 수련장 뒤쪽 언덕을 멀리 한 바퀴 돌아보고는 본부로 귀대하였다.
하여튼 실종되었던 중부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확실하다.
철창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그 단창을 지금은 별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 성인이 사용하고자 한다면, 창 자루를 다른 긴 나무로 교체하여야만 한다.
그런데, 자루를 교체하지 않은 것을 보니,
중부는 추억을 간직하고픈 마음에 그냥 두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면서 매일 정성들여 창날을 닦고 관리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중부의 마음을 확인한 것처럼 반갑고 기쁘다.
자신이 창날이라 여겨진다.
그러자 중부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마음이 들뜨고 자기도 모르게 양 볼에 붉은 홍조 紅潮를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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