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12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1-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이 신종 코로나(COVID 19) '오미크론' 변이 확산 우려로 전격 취소됐다. 러시아는 즉각 자신들이 대회를 치러겠다고 나섰다. ISU는 고민에 빠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레그 마티친 러시아체육부 장관과 국가두마(하원) 일부 의원들이 최근 잇따라 러시아에서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를 열겠다고 제안했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ISU가 대회 일정을 조정해 대회를 러시아에서 치를 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마티찐 러시아 체육부 장관,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개최할 수 있다 밝혀/얀덱스 캡처
공식적으로 ISU는 "이번 시즌이 끝나는 시점 쯤으로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를 연기해 치를 수 있는지 판단하고,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ISU는 그랑프리 3차 대회 개최지인 중국 충칭이 오사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위험을 이유로 대회 개최를 포기하자, 지난 8월 이탈리아 토리노로 장소를 바꿔 지난 11월 4~7일 대회를 진행한 바 있다.
따라서 ISU가 러시아의 대회 개최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내년 2월 이후나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ISU는 지난 2일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빙상연맹(JSF)으로부터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을 계획대로 개최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JSF와 현지 조직위원회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예정대로 대회를 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외국인에 대한 입국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정상적인 대회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러시아 피겨 샛별 발리예바/@카밀라발리예바 인스타그램
셰르바코바/인스타그램
그랑프리 파이널은 매 시즌 6차례 그랑프리 시리즈를 거쳐 종합 성적 상위 6위 안에 드는 선수들만 출전하는 '왕중왕전'으로 불린다. 선수들은 6개 대회 중 최대 2개 대회에 출전해 얻은 랭킹 포인트(우승 15점, 준우승 13점 등)를 합산해 상위 6위 안에 들어야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다.
이번 시즌 남자 싱글에는 가기야마 유마, 우노 쇼마(이상 일본), 빈센트 저우, 네이선 첸(이상 미국) 등이, 여자 싱글에서는 카밀라 발리예바와 안나 셰르바코바, 알료나 코르토르나야,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 마야 크로미크 러시아 선수 5명과 일본의 사카모토 가오리가 그랑프리 파이널 출전 자격을 얻었다.
러시아가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유치에 나선 것은 러시아 선수가 무려 10명(남자 싱글 1명, 여자 싱글 5명, 페어 4명)이나 출전권을 확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티친 체육부 장관은 "최종 결정은 ISU에 달려 있지만, 우리에게도 대회를 개최할 기회가 생겼다"며 대회 유치에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원의 스베틀라나 주로바 의원 등도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취소된 세계선수권 대회를 우리가 대신 개최한 적 있다"며 "우리는 내일이라도 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시설이나 모든 면에서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위험에 대해서는 "백신 접종으로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불행한 세대. 뛰어난 러시아 피겨선수들, 그렇게 위대해질 수는 없나요?/현지 스포츠 매체 챔피온 웹페이지 캡처
코로나 사태로 지난 시즌을 거의 통채로 날려버린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협회는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취소에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현지 스포츠 매체 '챔피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시즌이 이렇게 끝나면, 셰르바코바와 코스토르나야, 알렉산드라 트루소바라는 보기 드문 '피겨 여성 3인방'이 불운한 세대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2019-2020 시즌 화려하게 데뷔한 '3인방'은 앞으로 상당기간 세계 피겨 무대를 장악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지난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리고 올 시즌에도 코로나 확진과 부상 등으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트루소바는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우승했으나, 발목 부상으로 더 이상 대회를 출전하지 못해 자칫 '비운의 선수'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3인방'의 대회 출전이 들쭉날쭉하며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는 사이, 카밀라 발리예바라는 걸출한 '천재 소녀'가 등장, 세계 기록을 뒤엎으며 '3인방'을 위협하고 있다. 그녀는 그랑프리 파이널에도 총점 1위로 진출권을 따냈다. 2위가 '3인방' 중 한명인 셰르바코바다. 코스토르나야는 6위로 간신히 턱걸리한 상태다.
스위스 동계유니버시아드,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로 취소/현지 매체 이즈베스티야 웹페이지 캡처
고민은 피계스케이팅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미크론' 변이는 올시즌 동계 스포츠 일정을 뒤흔들고 있다. 대학생들의 겨울 스포츠 축전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대회를 취소한 데 이어 국제스키연맹(FIS)도 '(스위스) 다보스 월드컵' 개최를 포기할 뻔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스위스 당국의 입국 제한 조치로 '다보스 월드컵'이 한때 무산될 위기에 처했으나 FIS와 스위스 연맹의 노력으로 엄격한 방역조치와 최소한의 규모로 11, 12일 예정대로 열린다.
그러나 유니버시아드를 주최하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은 지난달 29일 스위스 루체른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취소했다. FISU는 “코로나 사태의 변화무쌍한 진행 상황과 여행 제한으로 학생 선수들을 위한 가장 큰 국제 스포츠 행사의 개최가 불가능하게 됐다”며 “그동안 대회를 열심히 준비해온 선수들에게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루체른 유니버시아드'는 오는 11~21일 전세계 약 50개국 1,600여명의 대학생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다.
미국,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공식 발표/얀덱스 캡처
'오미크론' 확산이 더욱 거세질 경우, 내년 2월 4일로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정상적인 개최도 안심하지 못할 전망이다. 미국이 6일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선언해 ‘오미크론’ 변이 확산과 맞물려 지난 7~8월의 도쿄하계올림픽과 마찬가지로 관중 없는 ‘선수들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선수는 대회에 출전시키되, 정부 대표단은 올림픽 개·폐회식에 보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중국은 내년 2월 4~20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의 모토를 '친환경, 모두의 즐거움, 청렴, 개방'으로 정한 뒤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해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와 미국 등 서방진영의 '외교적 보이콧' 선언 등으로 대회 진행에 큰 어려움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