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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차 백두대간 산행
2013.05.26
길이 19.75km
시간 12시간 30분
02.35분 미시령
감시가 해제된 야음을 타 제빨리 금지 구역 표시를 넘는다. 설악산은 온통 게토(ghetto)다. 금지의 게토.
게토에는 게토의 法이 있을 뿐 세상은 절벽처럼 고요하다.
세상이 흔들거린다. 땅멀미에 금방이라도 쓰러질것만 같다. 팅가벨같은 불빛이 멀어지고 있었다.
설악산은 산 이전에 이미 고통이다. 멀미에 약한 나는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어지러움과 구역질이라는 복병을 만나 마치 데쳐논 씨레기처럼 허물거린다.
밤 사이 버스는 왜 그리도 사람을 흔들어 대던지. 꿈을 꾸면서도 나는 흔들거렸다.
앞으로 두시간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지옥의 어둠과 악마의 발톱을 닮은 너덜을 대항해 사투를 벌여야한다.
내게 남은것은 오직 저질체력, 아무리 데워도 달구워 지지 않는 허망한 체력. 오늘따라 달은 슬픈 결말의 소설처럼 처량하다.
04:42
너덜겅 혹은 돌서렁이란것은 암벽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바위들이 산의 비탈면에 쌓여 돌밭을 이룬것인데 지질학적 용어로 talus 혹은 애추라 부른다.
금정산이나 장산,무등산,비슬산등지에서 테일러스를 보았지만 이런 대단위의 테일러스는 처음이다. 명성 그대로 장엄하기 조차 하다. 더군다나 이런 긴 너덜겅을 일방적으로 타고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초반부터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인것은 체력에 대한 상실감이 오히려 산에대한 모호한 오기를 가져다 준 점이다. 네발로 기어서라도 오르리라는 무모한 오기. 돌아갈 길없다는 막장의 위기감. 이런 구질 구질한 잡념조차 내게는 다 힘이 되어주었다.
04:47
흙이 되지 못한 바위들이라는게 너덜겅이다.
인생이 생로병사를 거치듯 바위가 돌이되고 돌이 흙이되는 순환을 거쳐야 함에도 여기 너덜겅은 돌 그대로 세월의 붙박이가 되어버린 셈이다.
얼마나 긴 세월을 이모양으로 살아갈까? 차가운 바위를 두발로 힘겹게 올라가는 나는 어째서 저 너덜겅처럼 늘 초보이다.
반쯤 죽은 신경이 두다리를 후달거리게했다. 이미 먼저 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동이 트기만을 기다린다.
동이 트면 모든것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 어지러움도, 메스꺼움도 무기력이 없는 세상이..
05:42
해가 뜨고 세상의 빛을 보자 심신이 다소 회복되었다. 설악산은 늘 이모양이다.
정신을 차렸건만 동료들은 이미 훨씬 멀어진 뒤였다. 저들은 왜 오늘따라 저렇게 정신없이 걸어갈까?
후미가 선두의 속도를 염려할 필요는 없지만 오늘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초지일관 성실한 걸음으로 길을 걸으면 그만이다. 궁금한것은 그들을 내달리게 하는 힘이다.
괜시리 마등령에서 국공파 감시요원이 우리를 기다렸다 벌금을 물릴거라는 근심이 밀려와서일까? 아니면 하산주와 함께 먹을 숭어회 생각이 나서일까? 좌우간 가공할 속도로 그들은 우리로부터 멀어져갔고 뒤에 남은 자들의 근심은 설악산에 가득한 연무처럼 전신을 휘감았다.
황철봉을 마주하였지만 그 많은 너덜겅들을 다 지나간것은 아니었다. 너덜은 중공군처럼 파상공세를 취하며 끊임없이 나타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너덜겅이야말로 설악의 유니크한 산세의 일부란 생각에 미치자 돌과 나무가 주는 이 묘한 배치가 그렇게 아름다와 보일 수가 없었다.
아이보리빛 화강암에 덧칠된 철화빛 이끼가 오래묵은 자기처럼 은근한 가운데 털진달래와 주목의 그 견고한 색과 선의 구도가 오랜 세월을 해석해 한편의 화폭으로 남긴 로코코의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눈이 마음을 맑게했다. 세상은 덩달아 청량했다. 체력을 둘려싼 나의 힘겨운 전쟁은 끝나가고 절망의 포연은 사라져갔다. 느닷없이 찾아 온 이 전대미문의 아름다움에 산을 걷는 즐거움이 한층 더해졌다. 맑은 용기가 선혈처럼 솟아올랐다.
내 걸음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대간을 버려야한다.
소박한 한줄기 길이면 족하다.
내가 남보다 특별해야하고 잘나서 이 길을 걷는것은 아니다.
나는 길을 통해
내 마음을 가벼이 하고 싶기에 길을 걷는다.
아무나 걷지못하는 큰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간을 걸어 온 최초의 아무나가 되기 위해서.
산의 속살이야 이처럼 너덜이지만 너덜을 이기고 굳건이 숲을 지킨 대자연의 위력이 새삼 놀랍다.
대간길은 이처럼 경이로 가득하다. 걸어서 길을 채우고 자만의 시간을 넘어서는것이 대간길이 아니다.
경력을 치장하는 스팩이 되어서는 더더구나 안된다. 대간이 제 삶의 구체적인 이유가 되어야한다.
황철봉 큰 고비 하나를 넘어서자 또다시 저항령이 두터운 저항으로 나타났다.
일막이 끝나고 다음 막이 시작되는 사이에 흐르는 간주곡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은하수처럼 너덜이 숲사이로 은빛 길을 만들었다.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돌들이 열을 이루어 숲을 미끄럽게 빠져나갔다.
몸이 무거워서일까 나도 바위 속을 흘러가는 하나의 또다른 바위가 되었으면 하는 느낌이 들었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나무들이 진중한 삶을 예고하듯 열병식을 하고 있다. 나는 심봉사처럼 스틱으로 바위를 짚어가며 간당 간당 걸어가고있다.
스틱을 두드릴 때마다 통통하고 맑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육중한 바위 틈에서 울리는 신기한 울림이었다. 팬풀룻 소리같기도 했다.
마등령 능선 끝으로 공룡 능선 초입을 지키는 세존봉의 모습이 보인다.
넘지 못할 산은 없건만 오늘은 영 산을 오를 자신이 없어진다. 힘없이 헉헉거리는 내 모습이 안스러운지 일행들이 짐을 하나씩 맡아 주었다.
도시락과 물 한통을 줄인것 뿐인데도 한결 등이 가벼워졌다.
눈물나게 동료들이 고마왔다.
저 고독한 주목의 가로선이 없다면 산은 또 얼마나 무심한듯 보일까.
낙루보다 더한 슬픔을 간직한 고사목. 아름다운 풍경 위에 그으진 한편의 슬픈 포에지다.
멀고도 먼 대간길에 마치 내 슬픔과 아픔을 걸어둔듯한 풍경 하나가 날 마중한다. 아픔을 위한 위안치고 이처럼 고졸한 멋을 지닌 치유가 있으랴. 삶 중에 만나는 호사란 이런것이다. 세상으로 부터 위로받는 이 기분. 이 기분으로 나는 살겠다.
날이 점차 밝아지자 내 걸음에 다소 여유가 생겼음에도 너덜길은 한없이 계속되었다. 미시령 구간을 말하면서 선답자들이 왜 그토록 너덜길에 치를 떨었는지 알만했다.
한발 한발 익숙하게 돌을 짚으며 나아갔다. 하지만 초반에 너무 헤맨 탓에 일행과 우리는 이미 너무 멀어져버렸다.
후미대장으로 부터 은근한 압력이 들어왔다. 난처한 일이다. 산길을 일부러 늦게 걷고자 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늘 하는 말이지만 내 걸음에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정말 그렇다.
황철봉의 뒷모습
06:32
너덜길에 익숙해질 즈음 황철봉을 배경으로한 아름다운 설악의 속살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여기는 금단의 화원이다. 아무나 들어갈수가없는 곳이다. 여기를 들어서는 순간 범죄자가 된다.
그래서 여기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10만원의 벌금을 낼 각오가 된 사람들이다. 국가를 상대로 맞짱뜨는 대간꾼들. 나도 그 사람들 중의 하나다. 은근한 자부심이 생겼다.
죽은것과 산것 그리고 죽어가는것들.
스톤헨지나 피라미드처럼 고대 거석문화를 떠올리는 너덜길.
마치 저 거대한 바위무덤 아래에 절대 보안을 위한 우주의 기밀이 보관되었거나 죽음을 비밀에 붙인 역사의 인물이 잠들어 있을것 같은 미스테리한 느낌의 길.
저 암벽을 부숴 너덜을 만드는것은 결국 나무의 힘이다. 뿌리가 바위에 안착되고 그 자리 잡은 나무나 풀들의 뿌리들이 바위의 미세한 구멍을 파고들며 바위를 부수게된다.
그리고 다시 숲은 그 부숴진 바위들의 상처를 덮는다. 그 위로 흙이 쌓이고 나무는 무성히 자라 숲을 이룬다.
세상은 다시 평화의 모습이다. 파괴와 용서, 관용이 하나의 거대한 느낌으로 다가서는 평화의 아침.
06:51
저항령을 넘어가며
06:54
바위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가운데 미풍이 불어 더운 내 몸을 식혀준다. 쉬폰 케익같은 바람이다.
세상은 온통 장미빛, 달콤한 빛이다.
이 쵸콜릿같이 달디단 기분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안타까워 나는 파리를 생각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올리며 어코디언 소리가 촉촉한 재즈바를 생각한다.
오! 달콤한 미풍이여!!!
아침을 맞아 털진달래의 분홍빛이 더없이 선명한 가운데 푸른빛으로 상처를 가린 회색빛 화강암이 병풍처럼 배경을 이루고 있다.
생명이 넘치는 환상의 화원에 내가 서있다. 깊은 심호흡으로 대기를 마음껏 들이킨다.
살아있음이, 이 건강한 생명의 체험이 뜨겁다.
06:51
저항령 너머로
07:35
후회없이 걸은 길이있다. 재작년 공룡능선을 걸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두번 다시 걷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꼼꼼히 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걸을 만한 길이였고 그야말로 멋진 길이었다.
그 길이 대간길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지난번의 열성이 여지껏 남은 탓인지 공룡능선에 대한 열망은 예전만 못했지만 골목길 걷듯 걸어갈 결코 수월한 길은 아니다.
하지만 내 기억의 장난은"그 정도의 길이야"로 이제 남아있다. 기억이 나를 교만한 바보로 만들었다.
추억은 현실을 갉아먹는 흰개미와 같다. 추억은 거짓이요 아우라다.
속지 말아라. 속지 말아라. 흐린 기억에 속지 말아라.
08:15
1249.5봉의 위용
쇄석 지대를 지나며
08:49
마등령 가는 길에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09:06
마등령에서
마등령에 도착하였다. 많은 우려와 곡절이 있었지만 국공파의 검문 없이 여기까지무사히 왔다.
비선대로 내려갈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 여기다. 공룡 능선에 접어들면 일단 탈출로는 없다. 9시란 시각이 탈출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은 정해졌다. 길을 걷자. 온전한 길을 완성하자. 새로운 공룡능선을 만나자.
전의를 불태우며 용기를 북돋아 마침내 길을 나선다.
나한봉 1275봉 범봉의 위용
예리하고 빈틈없는 시크한 도시남자를 연상시키는 공룡능선. 어디선가 은은한 수수꽃다리의 향이 전해온다. 감미롭고 플로랄한 향이다.
오랜 침식으로 갈고 닦인 첨봉들 사이를 유유히 흘러다니는 이 짙고 은밀한 유혹. 산세가 주는 머스크한 느낌과 묘하게 대비된다.
아무리 바빠도 잠시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 바위에 앉아 쉬는 동안에도, 에릭 사티의 Je te veux를 떠올리는 동안에도 인간들은 무리를 이루며 지나간다.
향이 흩어진다. 사람들의 냄새가 뒤섞인다. 매케한 매연의 냄새다. 잠깐의 행복을 그들이 망쳐버린다. 엉덩이를 툴툴 털고 길을 나선다. 향이 나를 배웅한다.
큰앵초
마침 앵초가 피는 계절이라 길가 곳곳에 분홍빛 앵초가 피어있다.
잎이 단풍취를 닮아 누군가 단풍취 꽃이라 가르쳐 주셨던 그분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래도 늦은 봄날 앵초꽃을 보면 그 분이 생각난다.
용아장성과 가야동 계곡쪽 모습
나한봉
1275봉과 범봉이 보인다
09:49
별 길지 않는 구간이지만 산행 초반에 너무 힘을 소진한 탓에 걷는 길이 점점 힘이 들었다.
물도 아껴 마셔야했고 간간히 먹은 양갱은 입을 더 마르게했다.
동료들의 얼음물을 얻어마셔가며 간신히 버텨나갔다.
수려한 경관이 없었다면 얼마나 힘든 구간이었을까?
하지만 오늘은 풍경도, 풍경대한 감흥도 없었다. 오로지 이 길을 탈출하고 싶은 염원 뿐이었다. 수험 준비를 하지 않고 치루어야하는 시험같았다
에델바이스
10:00
우측에서 나한봉-1275봉-천화대-범봉
뒤 소청-대청에서 이어지는 화채능선
하늘의 경계인 서북능과 용아장성
용아장성 앞쪽이 가야동 계곡.뒤가 수렴동 계곡이다.
에델바이스
돌단풍 사이에 더문 더문 피어있는 에델바이스.
나한봉과 1275봉 천화대 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맨 뒤는 화채봉
산솜다리-에델바이스
암능 사이의 소로.
바람골
바람골에서 보는 울산 바위
1275봉
대청과 소청
신선봉 가는 길
마주 보는 봉우리야 아름다울 줄 몰라도 몸이 불편한 나에게는 갚아야 할 빚처럼 산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 또한 산인것을.
산은 있는것이요 나는 걷는것이니 본성에 본성을 얹어 걷는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길.
공룡 능선
범봉과 울산 바위
아스라이 보이는 울산 바위. 오늘은 연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상관 없다. 울산 바위는 이미 내 가슴에 들어 앉았으니.
산은 아무것도 나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모든 가르침은 내 마음 속에 본래부터 있는것이었다.
내 고통을 스스로 돌아보고
나만의 언어로 이야기 할 때
마음은 비로소 위안의 답을 준다.
대청 중청 소청 삼형제
"내려가면 뭐 할거니"
산길을 걷다 문득 이말이 떠올라 당혹스러운적이 있다.
마치 살아보자고 기를 쓰며 음식을 먹다 목이 매인것처럼 가슴 언저리가 답답했다.
산에서 내려가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산을 타듯 세상을 살아가야할터인데 산을타듯 살아가라는 말의 무게가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산길을 걷듯 마음의 무게를 줄이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속도를 좇는 자는 습관처럼 세상을 빨리 살려할것이고
누군가를 이기려 하는 자는 이기려 들것이다.
산에서 위로를 받은 자는 세상을 위로할것이고
욕심을 버린자는 그렇게 살면 될것이다.
나의 산은 과연 어떤가?
내가 걷는 바를 나 스스로가 모르고 있으니
세상에 내려가서 행해야 할바를 모를 수 밖에.
"내려가면 뭐 할거니?"
참 무거운 말이다.
천불동 계곡
천불나는 천불동 계곡, 진수성찬도 배부른 사람에게나 성찬이지 배부르면 그것도 그만이다.
아무리 우리나라 최고의 아름다운 계곡인들 내 몸이 피곤한데 어쩌랴! 다 짐일뿐, 갚아야할 빚일 뿐.
좋은 산악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
첫째,상상력을 키워라 GPS 따위는 집어던지고 소설책을 잡아라.
악보만으로 음악을 이해할 수 없듯 상상력없이 산이 주는 영적 이미지를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산은 당신이 보는 만큼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둘째,산이 그대를 좋아해야한다. 자식이 부모에게 받는 사랑처럼 산이 그대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당신도 산이 사랑스럽다.
자연으로 부터 은혜를 받고있다는 느낌. 산이 그대를 안고 있다는 느낌. 山我一體의 경지로 산을 받아들여라.
함박나무꽃(산목련)
시도 없고 마음도 없는 그런날.
함박나무 아래에서 뚝 떨어지는 꽃을 기다리면, 뚝 떨어지는 눈물을 기다리면...
날씨를 대하듯 꽃을 대하듯 상대를 대하라는 법륜 스님의 말씀은 산길에도 적용된다.
흐린 날씨는 흐린 날씨대로 맑은 날씨는 맑은 대로 대하는것이 인생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오르고 내리막이 있으면 내려서면 그만이다.
세상 이치가 다 이와 같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비선대 入口 15시 01분
- 후 기-
설악산
당신은 팔도 다리도 없기에 내가 갑니다.
내가 가 안깁니다. 행여 날 버릴까 저어되어 내가 갑니다.
내가 당신에 간다해도 전할 말 따로 없으니 내가 말이되고 당신이 사랑이 되도록 내가 가 안깁니다.
깊숙이 안깁니다.
파리의 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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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황철봉 너덜겅을 넘은지도 벌써 일년이 지났네요.
세월 참 무섭습니다.
사진으로나마 회원 여러분들의 건강한 모습 뵈오니 참 좋습니다.
저 산들을 나는 어떻게 넘었을까.....
오늘 그 때를 회상하며 후기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눈가가 촉촉해지네요.
시간이 갈 수록 산행에대한 자신은 더 없어져가고
그런 한편으로 대간길에대한 그리움은 더 간절해집니다.
진부령 졸업식에는 꼭 참석해야할텐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졸업장 받으러 가야죠.개근상까지^^*
@산마 저희 후미조야 늘 만나고 있습니다만 함께 고생하신분들 많이 보고싶습니다.
늘 후미에 떨어져 걸어 말씀도 많이 못나누었는데...
폴행님
행님사진을보고나니 33차를 함께한 느낌입니다
잘 계시지예 차안에있으면 마지막에 들어오시는 행님의모습(노란색자켓과 방울달린털모자) 아직도선합니다
행님 졸업식날 꼭오이소 뵙고십습니다~~~
졸업하기 전에 한번 뵈야지요.
소리님과 함께 소리님 좋아하는 갈치찌게 드시러 한번 넘어 오세요.
저는 늘 한가합니다^^*
폴님~같이 산행함 했으면~~~~
답답해서 어쩔려구요. ㅋ
많이 뵙고 싶습니다^^*
폴성님 오셨소... ㅋ.
깔린 음악도 넘 조코...
진도가 아니 넘어 가네..
그러니 좀 떨어져 있어봐야... ㅎ.
6월 5주차에 뵙지라.. 3:32. 지인짜 애잔하네요..
아니 한잔 하셨으요.새벽에 일어나 뭐하세요 ㅋㅋ
사랑하는 마눌님이나 살포시 안아드리세요^^*
참 좋으다.^^
답글이 왜 이리 발기 안된 자네 거시기 같아 ^^*
@poll 집약 되어 있습니다.ㅎ
간만에 poll님 글을 읽으니 백두 시작 했을 때 감흥이 전해오네요.
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매끄러운 느낌 글들은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이제는 백두 마무리 할 시간이 다가 오네요.. 시원섭섭
마지막 구간에서 뵙겠습니다.
정말 그렇죠,이제 부디 대간길 아껴서 타세요.
특히 다리 조심하시고요.
저는 마지막 몇 구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합니다.
진부령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