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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8(목) ◈ 창 49:1-15 메시야를 보는 야곱, 찬송이 된 유다.
창 49: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놓고서 일렀다. "너희는 모여라. 너희가 뒷날에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다.
창 49:2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는 모여서 들어라. 너희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창 49:3 르우벤아, 너는 나의 맏아들이요, 나의 힘, 나의 정력의 첫 열매다. 그 영예가 드높고, 그 힘이 드세다.
창 49:4 그러나 거친 파도와 같으므로, 또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와서 네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네가 으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창 49:5 시므온과 레위는 단짝 형제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은 난폭한 무기다.
창 49:6 나는 그들의 비밀 회담에 들어가지 않으며, 그들의 회의에 끼여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화가 난다고 사람을 죽이고, 장난삼아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
창 49:7 그 노여움이 혹독하고, 그 분노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들을 야곱 자손 사이에 분산시키고,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흩어 버릴 것이다.
창 49:8 유다야, 너의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것이다. 너는 원수의 멱살을 잡을 것이다. 너의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창 49:9 유다야, 너는 사자 새끼 같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어 먹고, 굴로 되돌아갈 것이다. 엎드리고 웅크리는 모양이 수사자 같기도 하고, 암사자 같기도 하니, 누가 감히 범할 수 있으랴!
창 49:10 임금의 지휘봉이 유다를 떠나지 않고, 통치자의 지휘봉이 자손 만대에까지 이를 것이다.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면, 만민이 그에게 순종할 것이다.
창 49:11 그는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가장 좋은 포도나무 가지에 맬 것이다. 그는 옷을 포도주에다 빨며, 그 겉옷은 포도의 붉은 즙으로 빨 것이다.
창 49:12 그의 눈은 포도주 빛보다 진하고, 그의 이는 우유 빛보다 흴 것이다.
창 49:13 스불론은 바닷가에 살며, 그 해변은 배가 정박하는 항구가 될 것이다. 그의 영토는 시돈에까지 이를 것이다.
창 49:14 잇사갈은 안장 사이에 웅크린, 뼈만 남은 나귀 같을 것이다.
창 49:15 살기에 편한 곳을 보거나, 안락한 땅을 만나면, 어깨를 들이밀어서 짐이나 지고, 압제를 받으며, 섬기는 노예가 될 것이다.
◈ 은혜가 왕 노릇하는 복음
1. 험악한 세월을 보낸 야곱은 요셉을 만나는 과정에서 언약의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된다.
1) 너는 야곱이지만은 너를 이스라엘로 부르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야곱은 이스라엘로 살고 유언을 한다.
2) 출애굽을 바로 보는 야곱은 자신을 약속의 땅 헤브론에 묻어 달라고 하고 요셉이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자 하나님께 경배한다.
2. 야곱 곧 이스라엘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믿음의 양자 삼아 하나님의 기업을 주며 축복한다.
1) 야곱은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께 복 주시기를 기도한다.
2) 요셉이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고자 하자, 영안이 열린 이스라엘은 ‘다 안다’라고 하면서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큰 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3) 이스라엘은 요셉에게 하나님은 애굽에서 함께한다고 하며 출애굽의 믿음을 전수한다.
3. 야곱은 임종 전에 아들들을 불러 “그들의 뒷날에 겪을 일을 말하겠다”고 한다.
창 49: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놓고서 일렀다. "너희는 모여라. 너희가 뒷날에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다.
1) 성경에서 “너희의 후일에 겪을 일에 대한 예언”을 한 사람은 거의 없다.
2) 평생 자아에 속한 야곱으로 살아왔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하여 선포하는 자가 된다.
3) 므낫세와 에브라임에 대한 축복과 12아들에 대한 예언은 그대로 성취된다.
4. 야곱은 육신적인 부모로서의 바램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선포한다.
1) 예수님이 아버지의 말씀을 전한 것 같이 야곱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2) 출생 때부터 야곱을 기르신 하나님은 결국 야곱을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선지자로 세우신다.
5.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후일에 당할 일”을 이르겠다며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라며 각 아들들에게 예언의 말씀으로 축복한다.
1) 야곱을 통해서 전하는 하나님의 축복은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창 49:28).
6. 야곱의 예언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 그리고 인간의 자율적인 선택에 대한 책임이 동시에 나타난다.
1) 하나님이 야곱을 통해 “후일에 당할 일을 말하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하심을 말한다.
2) “그들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는 것은 인간의 자율적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말한다.
3)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뜻대로 주권을 행사하실 때 복종하는 태도를 보인 자는 높이시고, 거역하는 자는 그 분량대로 축복이 제한되기도 한다.
7. 야곱의 예언에서의 저주는 언약 밖으로 버림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약속의 땅이 모두 허락된다. 그 부요함과 풍성함의 누림은 제한이 된다.
1) 그들의 불신앙과 죄, 분노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횃불 언약 안에 거함으로 인하여 기업을 받는다.
2) 다만 그 기업의 풍성함과 생명의 풍성함은 제한된다. 그 기업의 풍성함은 마음 눈이 열려 보는 자만이 누린다.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8.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과 부활의 능력을 누리라고 하신다.
1) 야곱의 예언에는 ‘저주를 받는다’는 표현도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축복하였고 분량대로 축복하였다”고 마무리 한다. 즉 “축복”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부분적 저주”인 것이다.
2)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심판과 저주가 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을 다 받은 축복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분량대로 받는 심판인 것이다.
9. 르우벤은 혈통적 장자이고, 유다는 장차 왕(구원자)을 배출하는 지파라는 점에서 장자이고,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야곱에게 입양되어 두 몫을 차지한 점에서 장자이다.
1) 전체적으로 왕국 차원에서 유다가, 지파 차원에서는 요셉이 강조된다.
2) 이 예언대로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10. 르우벤은 혈통적인 장자로써 야곱의 능력이며 위풍이 당당하고 권능이 탁월하였다.
1) 그러나 끓는 물과 같이 통제되지 못한 정욕으로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결과 보잘 것 없는 지파가(탁월하지 못하리니) 된다.
2) 하나님의 택하심과 죄가 더한 곳에 더욱 은혜가 넘친다고 하여서 ‘죄에 거해도 된다’고 행하는 자는 르우벤처럼 ‘그 분량 대로의 축복’을 받게 된다.
11. 르우벤의 죄에 비하면 매우 작은 저주가 집행되고, 자격없는 르우벤을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두심은 크신 긍휼과 사랑이다.
1) 직접적으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도 축복 안에서 주어진 저주다.
2)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가 강간을 당한 일로 세겜의 남자들을 모두 죽임으로 “분노, 혈기, 노여움, 맹렬한 분기”를 토해 냄으로 저주를 받게 된다.
3) 분노의 이유는 정당할지라도 도에 지나친 분노와 폭력은 저주를 자초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게 한다(7절).
4) 이 예언대로 레위지파는 각 지파에 흩어져서 각 지파가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사명을 감당한다. 저주로 인한 레위지파의 흩어짐은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 가장 복된 흩어짐이 된다.
5) 레위지파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제사장 지파가 된다.
12. 유다에 대한 긴 예언과 축복은 놀랍다. 그는 형제의 찬송이 되고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다.
1) 유다는 사자와 같아서 아무도 그를 범할 수 없고, 통치자의 홀이 있고 모든 백성이 유다에게 복종한다.
2) 결국 다윗과 그리스도가 유다의 혈통에서 나온다. 계시록 5장 5절에서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라는 말씀으로 이 예언은 성취된다.
창 49:10 임금의 지휘봉이 유다를 떠나지 않고, 통치자의 지휘봉이 자손 만대에까지 이를 것이다.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면, 만민이 그에게 순종할 것이다.
3)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가 오시면 만민이 그분께 순종하게 된다.
13. 야곱은 그리스도가 오시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예언한다.
창 49:11 그는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가장 좋은 포도나무 가지에 맬 것이다. 그는 옷을 포도주에다 빨며, 그 겉옷은 포도의 붉은 즙으로 빨 것이다.
1) 포도나무에 나귀를 맨다는 것은 더 이상 기근도, 전쟁도 없는 ‘완벽한 평화와 안식’을 뜻한다.
2) 옷을 포도주에 빤다는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더러운 죄의 복장을 정결하게 씻어 주실 ‘대속의 은혜’를 예표한다.
14. 야곱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시어 만민에게 생명을 주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한다.
창 49:12 그의 눈은 포도주 빛보다 진하고, 그의 이는 우유 빛보다 흴 것이다.
1) 이 표현은 아가서의 신부가 신랑(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의 고백과 겹친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의 눈에 대한 묘사가 있다.
2) 눈은 포도주 빛보다 진하고: 사랑과 생명력으로 불타오르는 그리스도의 눈빛이다. 포도주가 기쁨을 상징하듯,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기쁨과 자비로 바라보신다.
3) 그의 이는 우유 빛보다 희다: 성경에서 '흰색'과 '우유'는 '순결함과 완전한 무죄'를 뜻한다. 그리스도는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심판자이자 신랑으로 오실 것이다.
15. 유다는 두 아들을 잃는 고난과 다말을 속이고 언약을 저버린 실수가 있었다.
1) 그러나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고 한 이후에 베냐민을 위해 자신을 담보로 내놓은 유다에게 그의 허물을 묻지 않고, 오직 축복과 영광만 주신다.
2) 결국 유다는 그의 이름대로 언약 백성들의 찬송이 된다. 형제들이 그를 찬양하게 된다.
3) 하나님은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죽인 죄에 대하여 아무것도 묻지 아니하시고 오직 바울에게 생명과 영광과 존귀만을 주셨다.
◈ 나의 묵상
야곱은 나와 일반인과 정말 성정이 같다. 노년이 되어서야 영안이 열린 그는 실패한 인생일 수도 있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아브라함 못지 않은 언약의 조상이다. 그는 입애굽을 경험하고 출애굽을 바라보았다. 더 나아가 자손들이 이룰 이스라엘, 즉 구약의 교회를 보았고,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리스도가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보았다. 구약의 사람들이 믿고 보고 누려야 할 모든 것을 보고 누렸다. 그의 인생의 해돋이는 먹구름이 끼였고, 한 낮에는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노을에는 정말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지는 인생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유다 역시 흥미로운 인물이다. 레아의 아들이니 야곱에게 별로 사랑받지 못했고, 요셉에 비하면 차별을 받았고, 요셉을 팔자고 한 것과 가족을 떠나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여 아이 셋을 낳고 하나님께 미움을 받아 아들 둘이 죽었으니, 그의 삶과 가정의 아픔도 알만하다. 결정적으로 언약의 관점에서 다말을 속이고, 며느리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수치에서 갑자기 유다는 십자가에 참여한다. 야곱이 요셉을 만나면서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처럼 유다는 다말의 일로 인하여 새롭게 된다. 수련회에서 엄청난 은혜를 받거나, 기적을 체험하여 변화된 것이 아니라, 가장 수치스럽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그가 나보다 옳다’는 겸손으로 십자가를 경험하게 된다.
유다는 황량한 광야에서 망함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이는 노예가 되고 죄수가 된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유다와 함께하셨고, 유다가 너무 비참하여 완전히 무너진 그 시점에서 유다를 도왔음을 뜻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셨고, 유다가 그 비참함 속에서 어떻게 십자가에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로마서 7-8장의 전환점처럼 유다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는 그 때에 갑자기, 감사와 해방과 생명과 평안으로 나아간다. 물론 각 분량대로 축복을 받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에 유다가 순종으로, 겸손으로 반응했음을 알 수 있다.
각 분량대로 축복을 받았는데, 유다와 요셉이 받은 축복이 비슷하다. 굳이 따지자면 유다가 받은 축복이 더 크고 놀랍고 영광스럽다. 유다라는 이름은 이후에 너무 유명해지지만, 야곱의 아들 유다는 사실 악하고 실패한 자다. 유다 자신도 자신이 이렇게 변할 줄, 이렇게 겸손하게 십자가에 참여할 줄 몰랐다. 유다는 아내가 죽고 다말에 의해 자신이 십자가에 참여할 줄 꿈에도 몰랐다. 우연을 넘어 황당한 일, 가장 수치스러운 일로 유다는 십자가에 참여하고 겸손하게 된다. 유다의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일하심과 은혜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된다. 나도 유다가 만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항상 함께하시지만, 유다처럼 십자가에 참여하여 생명이 밝히 드러나는 그 때와 방법은 알지 못한다. 복음은 선명하나 성령님의 도움이 아니면 마음 눈으로, 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곱이지만 이스라엘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유다를 뜻밖의 사건으로 십자가에 참여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소망하고 기대하고, 기도한다.
순종하는 마음, 가난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구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실 그 때에 순종으로 반응하기를 원한다. 주님의 은혜가 왕 노릇하니 그 은혜와 섭리와 통치를 찬양한다. 그리고 이 모습 이대로 축복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사랑 안에 거한다.
◈ 교제의 기도
주님, 야곱, 요셉, 유다가 각각 다른 삶을 살고, 다른 경위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각자가 자기의 짐을 지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뜻하지 않은 시간에 요셉은 총리가 되고, 야곱은 요셉을 만나고, 유다는 십자가에 참여하게 됩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주님, 과거를 후회하거나 매이지 않게 하소서. 과거도 주님 안에서는 아름답게 됩니다. 또한 미래를 불안해하거나 염려하지 않게 하소서. 미래도 주님의 때에 아름답게 하십니다. 또한 주님과 함께하는 현재를 살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순간순간, 하나님의 나라에 임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게 하옵소서. 광야에서 나를 낮추시는 손길을 사랑과 감사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그가 나보다 옳다’는 유다의 고백이 제 중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제 에고를 치유하사 성령 안에서 안식하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정체성으로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 하나님, 성령의 법의 통치와 복음으로 생명을 밝히 드러내 주십시오. 주님이 보는 것을 보게 하시고,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저의 영과 몸과 마음을 통치하여 주십시오. 복음 들고 나가는 새 소식반을 축복하여 주시고, 말씀과 찬양으로 섬기는 하늘성희와 팀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시고, 주님이 두신 자리에서 일상을 사는 성도들이 주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경호 집사님의 장과 건강을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유누라 선교사가 이집트를 거쳐 한국으로 오는 모든 여정도 지켜 주십시오. 지방 선거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와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시고, 정치와 경제를 주관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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