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형의 묘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산3번지에 있다. 옆에 조성된 포은 정몽주의 묘와 나란히 쌍유혈을 맺고 있다. 이석형이 조선초에 현달함으로써 후손들이 중앙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정몽주의 증손녀와 결혼함으로써 연일정씨 선산에 자리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는 지금과 달라서 처가살이와 처가의 선산에 묻히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현재 다시 신 처가살이 문화가 되살아나는 분위기이다. 젊은 친구들이 결혼하면 처가집 근처에 집을 구해 살고 애를 낳으면 장모님께 육아를 부탁하는 모습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이석형의 후손에서 월사 이정구의 등장은 연안이문이 명문가로 자리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대제학과 좌의정을 지내며 아들 이명한과 손자 이일상이 모두 대제학에 올라 그야말로 3대대제학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후 연안이문은 조선왕조가 망하는 순간까지 권력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연안이문은 정승 9명, 대제학 7명, 부원군 6명, 공신 11명, 판서 55명, 문과급제자 256명, 무과급제자 92명을 배출하고 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이석형의 묘를 조선8대 명당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으나, 자손의 현달함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