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왕국세계(平和王國世界)에 미치는 현재(現在)의 정치풍토(政治風土)
<평화경p1260> 오늘날 21세기(世紀)의 새 역사(歷史)는 하나님과 인간(人間)이 참사랑을 중심(中心)으로 다시금 일체화(一體化)하는 데서 그 출발(出發)의 기점(起點)을 찾아야 합니다. 개인(個人)이나 가정(家庭), 사회(社會), 국가(國家), 세계(世界), 모두가 참사랑 안에서 하나 될 때 인류(人類)는 밝은 미래(未來)를 약속(約束)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時代)는 정치(政治)·경제(經濟)·문화(文化) 등(等), 모든 면(面)에서 국경(國境)을 넘어선 초국가주의시대(超國家主義時代)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책임(責任)지고 봉사(奉仕)해 왔던 국가단위(國家單位)의 시대(時代)는 지나가고, 이제는 세계(世界)가 하나로 협력(協力)해야 할 새로운 세계(世界)의 무대(舞臺)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세계(世界)는 불과 몇 안 되는 소수(少數)의 지도자(指導者)들에 의(依)해서 영향(影響)을 받고 이끌려가고 있습니다.
<평화경p1301> 새시대(新時代) 21세기(世紀)는 공의(共義))의 시대(時代)입니다. 새시대(新時代) 21세기(世紀)는 물질(物質)이 판을 치지 않는 정신(精神)과 영(靈)의 시대(時代)입니다. 새 시대(時代) 21세기(世紀)는 신인일체(神人一體)가 되어 사는 시대(時代)입니다. 새 시대(時代) 21세기(世紀)는 남을 위(爲)하여 사는 것이 나를 위(爲)하여 사는 것보다 더 영원(永遠)한 가치(價値)가 있음을 깨닫고 사는 시대(時代)입니다. 자기주의(自己主義)는 퇴색(退色)하고 공생(共生) 공영(共榮) 공의(共義))의 이타주의(利他主義)가 드디어 개가(凱歌)를 올리는 시대(時代), 그것이 바로 밝아오는 21세기(世紀)인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平和)의 시대(時代)입니다. 이것을 놓고 명실공(名實共)히 천국(天國)이라고 할 것입니다.(평화경p1363)
<말선28-176> 이런 관점(觀點)에서 우리가 제시(提示)하는 내용(內容)은 심정통일(心情統一), 생활통일(生活統一), 행동통일(行動統一)입니다. 물론(勿論) 여기에서 상처(傷處)받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진맥진(氣盡脈盡)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問題)가 아닙니다. 그것을 헤치고 넘어서 가지고 민족(民族)과 인류(人類)를 품고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心)의 방향(方向)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통(通)해서 역사(歷史)는 발전(發展)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힘(力)을 합(合)해 역사(歷史) 앞에 주인(主人) 됩시다.
<평화경p1292> 예수님도 나라를 세우려고 오셨습니다. 조국(祖國)이 없으면 불쌍합니다. 조국(祖國)이 없기 때문에 종교인(宗敎人)들이 비참(悲慘)했습니다. 심판(審判)하려면 개인(個人)과 가정(家庭)· 종족(宗族)· 민족(民族)· 국가(國家)· 세계(世界)가 불변(不變)의 기준(基準)에 서야 그 기준(基準)을 터로 해서 심판(審判)합니다. 조국(祖國)은 최후(最後)의 소망(所望)입니다. 조국(祖國) 안에는 민족(民族)도, 종족(宗族)도, 가정(家庭)도, 개인(個人)도, 다 포함(包含)됩니다. 이 삼천리반도(三千里半島)가 조국(祖國)이 되었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청산(淸算)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고 예수님과 성신(聖神)이 바라시는 조국(祖國)을 창건(創建)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수고(愁苦)해야 됩니다.
선(善)이란 무엇입니까? 가정(家庭)을 위하여 개인(個人)이 희생(犧牲)하고, 종족(宗族)을 위하여 가정(家庭)이 희생(犧牲)하고, 조국광복(祖國光復)을 위하여 종족(宗族)이 희생(犧牲)하는 것이 선(善)입니다. 조국광복(祖國光復)을 위해 모두가 희생(犧牲)하여 조국광복(祖國光復)이 이뤄지면 모두가 애국충신(愛國忠臣)이 됩니다. 국가적(國家的) 기준(基準) 앞에 충성(忠誠)하여 국가기준(國家基準)을 세우면 가정(家庭)과 종족(宗族)의 기반(基盤)을 닦았다는 공인(公認)을 받게 됩니다. 도(道)의 기준(基準)은 하나님을 위하여 절대적(絶對的)으로 충성(忠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과정(過程)의 모든 것을 인정(認定)받습니다.
<평화경p1295.>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다 이방(異邦)사람들이 원(願)하는 것이로되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義)를 구(求)하라!’ 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聖經)의 주류사상(主流思想)은 그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구(求)하는 사상(思想)입니다. 자기(自己) 행복(幸福)을 구(求)하는 사상(思想)이 아닙니다. 나라의 백성(百姓)으로 태어나서 남편(男便)을 가졌다면 그 남편(男便)은 나라를 대표(代表)한 남편(男便)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사랑하고 나서 남편(男便)을 사랑해야 됩니다. 아내도 나라를 대표(代表)한 아내이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고 나서 아내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내가 더 이상(以上)할 수 없다고 하는 그 자리에서 죽게 해 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해 봤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하고 나서도 바쁜 것입니다. 가고 나서도 또 가야 됩니다. 남들이 쉬는 시간(時間)에 우리는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 가야되는 것입니다. ‘사탄 세계(世界)야. 쉬어라! 사탄세계(世界)야, 넌 안일도식(安逸徒食)해라, 우리는 그 나라를 위(爲)해서 간다.’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북통일(南北統一)을 열망(熱望)하는 애국동포(愛國同胞) 여러분! 특(特)히 여성(女性)의 사명(使命)은 자녀격(子女格)인 청년남녀(靑年男女)들 및 학생(學生)들을 참된 교육(敎育)을 통(通)해 참된 자녀(子女)들로 복귀(復歸)해 내는 것입니다. 나아가 어머니와 자녀(子女)가 합(合)하여 본(本)을 세워서 남편(男便)까지도 교육(敎育)을 통(通)해 참된 하늘의 아들로 복귀(復歸)하고 참부모(眞父母)를 따라서 하나님을 중심(中心)으로 모시고 지상천국(地上天國)의 이상(理想)을 복귀(復歸)해야 됩니다.
<말선250-216> 그런데 메시아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기독교(基督敎)가 반대(反對) 방향(方向)으로 가 버렸습니다. 아시아를 중심삼고 세계(世界)를 통치(統治)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게 됨으로써 예수님의 몸뚱이를 사탄이 점령(占領)해 버렸다구요. 예수님 대신(代身) 바라바를 용서(容恕)했지요?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바라바가 해방(解放)되어 나왔다구요. 그 바라바권(權)이라는 것이 지금의 이슬람 권(權), 회회교권(回回敎權)으로 되어 있습니다.
<평화경p1292>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통일교인(統一敎人)은 개인(個人)에서 민족(民族)과 국가(國家) 기준(基準)까지 닦아 나왔습니다. 이제는 전세계(全世界)의 인류(人類)와 모든 국가(國家)를 동원(動員)해야 됩니다. 우리는 조국광복(祖國光復) 자유(自由)·평등(平等)·행복(幸福)의 날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어렵더라도 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본인(本人)이 바라보는 관(觀)이요.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기준(基準)입니다. 예수님은 그 기준(基準)을 바라보고 가다가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조국광복(祖國光復)의 과정(過程)에 있어서 고생(苦生)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韓國)은 우리가 책임(責任)져야 합니다. 내일(來日)도 변(變)함없는 조국창건(祖國創建)이라는 각오(覺悟)와 신념(信念)을 가지고 예수님의 조국(祖國), 성신(聖神)의 조국(祖國), 선지선열(先知先烈)의 조국(祖國), 하나님의 조국(祖國)을 이루지 못한 한(恨)을 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면목(面目)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국(祖國)을 찾아야 됩니다. 조국(祖國)을 찾으려면 조국(祖國)을 위(爲)해서 살아야 됩니다.
<말선28-222>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교회시대(敎會時代)는 지나갑니다. 인류(人類)가 바라는 것은 교회(敎會)가 아닙니다. 교회(敎會)는 타락권내(墮落權內)에서 복귀(復歸)의 운명(運命)을 갈 때에 필요(必要)한 것이지 새로운 때를 맞게 되면 교회시대(敎會時代)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統一敎會)는 교회활동(敎會活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先生任)도 교회활동(敎會活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敎會)의 이름을 가지고 사회(社會)에 적응(適應)하고, 사회(社會)를 개혁(改革)하고, 사회확청운동(社會廓淸運動)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나라와 그 민족(民族), 또는 세계(世界)에 살고있는 인류(人類)가 하지 못하는 개척자(開拓者)의 사명(使命)읋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지금(只今) 우리들이 가야할 길입니다.
<말선316-13> 나라를 복귀(復歸)하기 위한 교회(敎會)라구요. 나라가 복귀(復歸)되면 교회(敎會)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말선28-176> 오늘날 기독교(基督敎)가 왜 망(亡)해 가느냐? 자기(自己)들 끼리끼리 사랑하다가는 망(亡)하게 되어있습니다. 기독교(基督敎) 밖에 있는 사람들을 기독교(基督敎) 내(內)에 있는 사람들 이상(以上)으로 사랑하겠다는 운동(運動)을 해야만 절대(絶對) 망(亡)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統一敎會)도 망(亡)하지 않으려면 우리 끼리끼리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초월(超越)하여 두루두루 사랑합시다.
<말선340-85> 정치(政治)가 올바르게 남아지려면, 사랑의 정치(政治)가 되어야 됩니다. 보다 위(爲)하는 사람은 수직(垂直)이 되는 것입니다. 위(爲)해서 살지 않겠다는 사람은 뼈와 살이 붙지 않으니 그 사람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全體)에 투입(投入)하지 않겠다는 것은 제거(除去)되는 것이요, 없어지는 것입니다.
<말선340-36> 앞으로 정치정략(政治政略)이라는 것은 다 없어져요. 당(黨) 이익(利益)을 위해서 서는 것은 용서(容恕)할 수 없어요, 당(黨) 이익(利益)을 찾는 데에는 국경(國境)이 생겨나고, 하늘나라에 지옥(地獄)이 생겨나고, 지상세계(地上世界)에 비참상(悲慘像)이 벌어져요. 앞으로는 관리체제(管理體制)로서 경제유통구조(經濟流通構造)를 어떻게 평준화(平準化)시키느냐 하는 그것만 남아 있습니다.
<말선340-39> 앞으로는 정치(政治)라든가 사상적기준(思想的基準)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오는 것은 없어져요. 정치체제(政治體制)는 없어지고 관리체제(管理體制)만 남아져요.
<말선340-35> 야당(野黨)과 여당(與黨)같이 상하좌우(上下左右)가 상충(相衝)이 되어서는 안 돼요. 나라를 보호(保護)하기 위해서 둘이 좌우(左右)가 싸워서는 망(亡)합니다. 주인(主人)하고 노동자(勞動者)들은 전부(全部)다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예요.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라구요.
<말선341-214~215> 이 나라의 대통령(大統領)이 내 말만 듣게 되면 공포(公布)를 해가지고 일주일(一週日) 이내(以內)에 4천만(千萬)이 한꺼번에 천국백성(天國百姓)으로 입적(入籍)할 수 있는 거예요. 또 60억(億) 인류(人類)가 일주일(一週日) 이내(以內)에 복귀(復歸)될 수 있는 때가 왔어요. 왜 가정(家庭)만 축복(祝福)해 주면 편성(編成)은 문제(問題)가 아니라구요.
<말선28-175> 우리의 남북통일(南北統一)의 방안(方案)도 남한(南韓)과 북한(北韓) 중(中)에서 어디를 더 사랑하느냐 하면 북한(北韓)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북한(北韓)을 더 사랑하려면 그 사랑의 훈련(訓鍊)을 남한(南韓)에 있는 사람들을 통(通)해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우리가 북한(北韓)을 지배(支配)하게 됩니다.
<말선28-176> 오늘날 우리가 통일(統一)할 수 있는 비결(秘決)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부모(父母)의 심정(心情)을 따라서 열 형제(十兄弟) 중(中) 불행(不幸)한 자식(子息)을 더 사랑하는 입장(立場)에 서야 됩니다.
<참하나님의 조국광복p244> 하늘은 망(亡)한 자(者)를 또 치지는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죄(罪)를 자백(自白)하고 사죄(謝罪)하는 자(者)에 대(對)해서는 긍휼(矜恤)로 대(對)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이 있기 때문에 패자(敗者)에게 또 칼을 들어 치게 되면 친자(者)의 후손(後孫)이 망(亡)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기성교회(旣成敎會)가 통일교회(統一敎會)를 얼마나 미워했습니까? 그러나 원수(怨讐)처럼 싸워서는 안 됩니다. 서로 사랑으로 화합(和合)해야 되는 것입니다. 둘이 화합(和合)하여 가지고 대한민국(大韓民國)을 하늘의 뜻 앞에 세워 이북(以北)을 소화(消化)해야 됩니다.
해방직후(解放直後)에 기성교회(旣成敎會)와 통일교회(統一敎會)가 하나 되었더라면 모든 것이 해결(解決)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 앞에는 개인적(個人的), 가정적(家庭的), 종족적(宗族的), 민족적(民族的), 국가적(國家的)인 원수(怨讐)등과 대치(對峙)되어 오면서 싸우지 않는 조건(條件)을 세우기 위해 무한(無限)한 희생(犧牲)을 치러 나오면서 수난(受難)의 길을 극복(克復)해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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