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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경향에 대한 교육부 브리핑 장면. ⓒKBS News 유투브 동영상 캡처
지난주 목요일엔 2025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있었다. 대학진학 능력을 보기 위한 시험으로, 1994년부터 시작된 제도다. 이전에는 학력고사였는데, 시험 보는 과목들을 다 잘해야 하고, 암기력이 좋아야만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던지라, 통합적 사고력을 본다는 취지 아래 수리와 언어 영역 등을 평가하도록 수능을 고안하고 학력고사를 폐지했단다.
학력고사 세대였던 나는 당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상황을 파악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특히 국어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존중받기보단 괴롭힘의 대상이라,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당시의 나로선 학력고사를 통해 성균관대 등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에 가면 괴롭혔던 동료들이 더는 괴롭히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왔었다. 이를 안 가족 가운데 내 친형이 국어를 조금 도와줘 학력고사 때 국어 성적은 괜찮게 나왔다.
학원 과외한 것도 없었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자꾸 물어보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은 것 등이 전부였다. 그렇게 했는데 성균관대 화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때는 기분이 날라갈 것만 같았다.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때는 모든 것이 다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비장애 중심의 신경 전형적인 대학 사회에서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관계를 맺으려다 절교를 당하는 순간도 있었다. 대학원 때도 갈등이 발생하면 늘 소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내가 사람들과의 소통이 서투르고 배려가 부족한 관계로 내가 잘못했다고 늘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 잘못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장애 특성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며 말이다. 아무튼, 그렇지만 말이다.
과거 학력고사 만점이거나 1등이면, 뉴스에 오르면서 공부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는 뉴스를 종종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엔 ‘어떻게 공부하면 저렇게 될까?’ 했었고, 대학생활을 보냈을 때는 나는 저렇게 할 수 없는데 하는 심정도 잠깐 들어오는 등 1등 한 이들을 부러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능으로 제도가 바뀌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투브나 주류 언론에선 수능 시즌만 되면 수능에서 만점 받은 사람들과 이들이 그렇게 된 비결에 대한 소식을 자주 볼 수 있게 된다.
2022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시 한 학생의 응시원서 접수증. ⓒWikipedia
그런데 30여 년 동안 같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 장애계 인사들 등과 교류·연대하면서 내 마음에는 과거처럼 학력고사나 수능에서 만점 받은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부러워하진 않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이뤄낸 성취는 대단하지만, 많은 이들을 만나고 여러 소식을 접하면서, 입시 위주의 문화로 인한 폐해를 보게 되었기에 그렇다. 오히려 수능 시즌일수록 달갑지 않은 느낌이다.
수능이란 대학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좋은 대학으로 갈 수 있고,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지위로 연결돼 자본주의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빠르게 이룰 수 있었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게 입시 위주로 가다 보니, 정작 아동과 청소년 때 필요한 경험을 하지 못하는 폐해가 발생했다.
아동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놀면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장애와 성적 지향 등 정체성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경험들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 세상에 어려운 난제들은 늘 발생하기 마련이니, 각 개인마다 이런 것들을 헤쳐나가도록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놀이식이든 토론식이든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들을 배우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생명의 소중함을 실제로 알도록 어려서부터 이에 대해 실질적으로 배우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하지만, 입시 위주의 문화 속에 정작 이런 중요한 경험들을 사실상 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이런 경험은 거의 부재한 채 남과의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몸소 배우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이 결혼하면서 자녀가 생기면, 입시에서의 경험이 있어선지,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입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경험을 부지불식간에 주입하게 된다.
그러면 자녀들은 입시 경쟁에서 이겨야만 행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다. 그러기에 지금도 입시라는 목표 속에 노는 즐거움을 경험하기는커녕 학원 등 사교육에 강제로 내몰리는 아동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입시를 목표로 달려오다 고등학교로 접어들면서, 성적이 안 좋으면 불행하다 느끼며 성적을 비관하다 자살하는 학생들 관련 뉴스가 종종 나온다. 실제로 초중고 학생이 학업 경쟁으로 자해·자살 충동을 느낀 비율이 61%였다는 통계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학교 문화에 염증과 반감을 느끼거나, 바꿔야 한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올해 410 총선을 앞두고 아동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에서 실시했던 조사에서, 성적 및 입시 경쟁과 같은 공부를 걱정하는 아동이 72%를 차지했고, 아동들은 가장 바라는 공약으로 놀이 및 여가시간 확대를 꼽았으니 말이다(출처: 아동 72% “입시경쟁 두렵다”... 아이들이 원하는 공약은?, 오마이뉴스, 2024년 2월 27일 기사).
8년 전 수능 4수생이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는 소식을 보도한 장면 중 일부. ⓒ연합뉴스tv 유투브 동영상 캡처
입시 위주의 문화 속에 실제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선 오전 8시에서부터 밤 9~10시까지 학교에서의 학습을 강요당하다시피 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인 게 현실이다. 이들은 학교 교칙에 의해 교복, 두발 등 일상생활을 통제당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다양성은 말살되고, 이런 비인간적인 입시 위주의 학교 문화 속에서 이들의 스트레스는 쌓여간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은 학생들은 가장 힘이 약하거나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여지가 높다. 특히 장애 학생은 권리 주체가 아닌 차별과 혐오는 물론이고, 폭력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학교에 만연해 있다. 그런 문화 속에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 학생들은 학교폭력 대상으로 전락한다. 학교폭력은 범죄지만, 학교 당국의 미온적이고 솜방망이에 가까운 대응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은 정신적 충격을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현실이다.
비인간적인 입시 위주의 문화는 결국 학교폭력을 부추기는 온상이 되고, 학교폭력은 장애 학생의 통합교육을 막는 걸림돌이 된다. 이게 아니더라도,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 학생 등이 수업을 잘 따라가도록 하는 합리적 조정이 학교 내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통합학급에서 장애 학생을 지원하는 교사가 일반교사와 공동으로 수업하는 장치가 부재한 것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통합교육은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말이다.
수능을 치게 되면, 시험을 잘 보면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끔 하는 합리적 조정이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 학생에게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카톡 방에서 우리 자조모임의 한 회원이 올해 수능에 나왔던 문제 가운데, 수준은 낮았지만, 일부러 읽기 힘든 글을 문제로 낸 걸 보여주었다.
다른 회원은 이 문제를 보고선 순서대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강박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 문제를 풀지 못하게 만드는 함정으로 작용하는 문제라고 말해주었다. 그걸 들으니 수능이 오히려 자폐성 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을 차별하는 통로로 작용하지 않나 하는 의심이 저절로 들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서울 내 대학에 들어가는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인 수는 극히 낮다. 대학에 들어가도 대학교 등에서의 고등교육 접근성은 이들에겐 좋지 않다.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인의 극히 일부가 직장에 들어가도, 직장 내 비장애 중심 문화와 군대 문화 잔재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다 결국 퇴사해 평균 근속 년수가 대개 1~2년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인 등 장애인의 임금은 저임금이고, 직업 질은 좋을 리 만무하다.
공시생의 심리적 고통 등을 다룬 Netflix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은 와요' 홍보 포스터. ⓒNetflix
한편 입시 문화를 겪은 후 대학 생활하다 졸업하면 취업 활동을 하는데, 취업의 문턱이 높아, 스펙이나 경력 등을 보지 않는 공무원 시험(이하 공시) 등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공시의 경우 합격률은 낮고 경쟁률은 높기에, 경쟁이 치열하고 경쟁에서 지면, 공무원 임용기회는 사라진다.
경쟁에서 지는 게 계속되면 미취업자는 무능하다는 우리 사회의 시선 속에 공시생들은 열패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극단적인 경우로 가게 되면 자살로 이어진다. 공시생들의 자살 소식도 언론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는 슬프고도 비극적인 현실이다. 수능 등 입시 위주의 문화에서 입시가 행복을 좌우할 거라는 믿음과 무관하지 않겠지.
그러기에 수능 시즌만 되면 입시 위주의 문화와 관련된 비인간적인 문화, 학교폭력, 학생들과 공시생들의 자살 등이 생각나 마음이 별로 좋지가 않다. 그러니 수능 만점자나 최고점수를 기록한 사람들에 관해 언론들이 주요 뉴스로 다루는 게 나로선 호들갑 떠는 걸로 느껴진다. 이들을 칭찬하는 게 인지상정임에도 언론의 행위는 나로선 시험 능력주의 숭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정부에서 구성한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에선 입시 등이 불러온 과도한 경쟁 사회를 논의 의제로 했었다. 하지만, 정작 교육부는 비인간적인 입시 문화를 바꾸려는 실질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다양성을 말살하고 입시에만 매몰된 시험 능력주의가 판을 치는 이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불행을 느끼기에, 자살율 1위의 우리 사회란 불명예가 나오는 건 별로 놀랍지도 않은 느낌이다.
앞으로는 수능 등의 대학입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는 대신,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간적이면서도 인권적인 학교와 직장 문화 속에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웃고 서로를 아끼는 모습이 많아지는 그런 사회를 보고 싶다. 그런 사회일 때 자살율 1위에서 탈피할 날은 오겠지? 행복지수 1위인 사회로 향하고 진짜 그렇게 되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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