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의 사나이 릭 앨런의
왼쪽 팔과 맞바꾼 53분의 열연
데뷔 당시 평균 연령 18세로 넘치는 활력과 신선한 에너지를 최대의 무기로 등장해 소위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의 새로운 선두 주자로 떠오른 바 있는 데프 레파드Def Leppard는 1978년 릭 새비지Rick Savage(베이스), 피트 윌리스Pete Willis(기타), 토니 케닝(드럼) 등 3인의 셰필드Sheffield 고교 동창생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당시 어토믹 매스Atomic Mass라는 스쿨 밴드로 활동하다가 이내 드러머를 프랭크 눈으로 교체해 ‘Getcha Rocks Off’라는 타이틀의 3곡이 담긴 EP를 선보였으며, 다시 드러머가 릭 앨런으로 바뀌고 조 엘리엇Joe Elliott(보컬)과 스티브 클라크Steve Clark(기타)가 가세하는 5인조 진용으로 데프 레파드의 재출범이 이뤄졌다.
이들은 1979년 7월 거액의 계약금을 받으며 버티고Vertigo 레이블과 레코딩 계약을 체결했고, 2개월 후에는 첫 번째 단독 콘서트를 벌였다. 이어 새미 해이거Sammy Hagar라든가 AC/DC 등의 오프닝 밴드로 세계 순회공연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활약을 펼쳐 1979년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의 독자 투표 신인 부문에서 4위,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에서 6위에 랭크되는 화려한 출발을 보였다.
1980년으로 접어들며 첫 앨범 <On Through The Night>를 통해 종래의 헤비메탈 사운드가 지니지 못한 하모니와 팝적인 분위기를 조화시킨 신선한 사운드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1980년대를 이끌, 장래가 촉망되는 실력파 그룹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2집 <High 'n' Dry>와 ‘Bringin' On The Heartbreak’를 히트시키며 3집 <Pyromania>가 순탄하게 3연속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특히 AC/DC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로버트 존 레인지의 제작 솜씨가 돋보였던 <Pyromania>는 미국에서만 무려 600만 장이 팔려나갔던 ‘Rock Of Ages’와 ‘Photograph’를 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며 국내에서도 크게 사랑받았던 앨범이다.
허나 호사다마랄까 1984년 12월 31일 밤 릭 앨런이 교통사고로 인해 드러머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왼쪽 팔을 절단해야 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 후 데프 레파드는 긴 침묵의 휴지기에 들어간다. 오랫동안 이들의 새로운 앨범이 나오지 않자 각 매스컴과 팬들 사이에서 데프 레파드의 해체설과 드러머가 교체될 것이라는 헛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릭 앨런은 1985년 한 해를 병원에서 보냈다. 완치 후 최소한 6개월은 집에서 요양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릭 앨런이 집을 나서 스튜디오로 들어선 것은 퇴원 후 불과 28일째 되는 날이었다. 동료들은 조금 더 쉰 후 연습하자고 스튜디오에 들어선 릭을 만류했지만, 그는 차라리 날 죽이든지 아니면 새로운 작품을 연습하자고 울먹였다고 한다. 처음 얼마간은 한 손으로 치는 드러밍이 익숙지 못해 자주 스틱을 떨어뜨리는 등 주변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스태프들은 집념의 사나이 릭 앨런을 위해 정상급 드럼 제작자에 의뢰해 시먼스 전자드럼(Simmons Electronic Drums) 세트를 위시해 샤크 풋 페덜Shark Foot Pedals, 질지언 심벌즈Zildjian Cymbals 등 그의 핸디캡을 감안한 특수 드럼세트를 만들어 주었다. 이 드럼세트가 도착한 날부터 릭은 하루 8시간의 연습을 빼놓지 않고 쌓아 올려 관계자들의 눈시울을 재차 뜨겁게 만들었다. 그는 1986년 한 해 동안 타고난 풋워크와 피땀 어린 연습으로 마침내 한 손 드러머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데프 레파드 성공의 견인차였던 프로듀서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은 1987년에 접어들자 그동안 틈틈이 작곡해 두었던 신작(조 엘리엇 작사/필 콜린Phil Collen 작곡)들을 하나둘 마스터 테이프에 담기 시작했다.
<On Through The Night>와 <High 'n' Dry> 그리고 <Pyromania>에 이은 통산 4집으로 완성된 컴백 앨범 <Hysteria>는 본래 더블 앨범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데프 레파드의 앨범을 무려 4년 반 동안이나 애타게 기다려 온 팬들에게 보답하는 뜻에서 12곡 61분 54초(국내에는 10곡 수록**)라는 파격적인 러닝 타임의 단일 앨범으로 서비스하기로 제작진이 결정함에 따라 지난 8월 22일 세계시장에 일제히 배급되었다.
필 콜린의 정돈된 기타 솔로로 시작되어 릭 앨런의 대나무를 자르는 듯한 시먼스 드러밍으로 연결되는 헤드 싱글 ‘Women’(첫 번째 싱글커트)에다, 조 엘리엇의 무르익은 보컬 테크닉이 듣는 이의 가슴에 촉촉이 젖어 드는 앨범의 백미 ‘Love Bites’가 있는가 하면, 유려한 보컬 코러스와 내려꽂는 드러밍 그리고 헤비한 리듬 터치의 트윈 기타 사운드(필 콜린과 스티브 클라크)가 AC/DC의 전성기를 연상시켜 주는 2부작 ‘Don't Shoot Shotgun’ ‘Run Riot’ (금지곡) 등 수록곡 전체가 독특한 분위기와 진일보한 면모로 1987년 종반을 석권할 것으로 예상된다.
네덜란드(Wisseloord)와 프랑스(Des Dames) 그리고 아일랜드(Windmill Lane) 등 3대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녹음된 디럭스 앨범 <Hysteria>는 런던의 유명한 배터리 스튜디오에서 최종 믹스 다운되었다.
자신의 애차愛車 쉐보레 콜벳 스팅레이Chevrolet Corvette Stingray***를 벽에 들이받아 산산조각 난 상태에서 의식을 잃은 채 혼수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으며 왼쪽 팔을 절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천직인 드럼 스틱을 끝내 놓지 않은 집념의 사나이 릭 앨런. 그의 재기에 지구촌의 모든 팬들은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Congratulation!! Rick Allen!! Rock Will Never Die!!
<전영혁/팝 칼럼니스트>
(이상은 1987년 국내 레코드 성음에서 발매된 <Hysteria> 앨범의 속지 내용)
*영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주간 음악잡지로, 2001년 라이벌 관계였던 음악 평론지 NME(New Musical Express)에 인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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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A
1. Women
2. Rocket
3. Animal
4. Love Bites
5. Armageddon It
Side B
1. Gods of War
2. Don’t Shoot Shotgun
3. Hysteria
4. Excitable
5. Love and Affection
***당시에도 지금도 엄청 비싼 가격의 자동차로 사치스러움의 끝판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