몫/ 김승혜
우리네 삶에는 정해진 방정식도, 확실한 정답도 없다고 했던가. 내남없이 평탄하고 문제거리없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주변 사람들을 이토록 혼란과 좌절에 빠뜨린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허다함 속의 나, 승산없는 싸움을 목격하며 그저 침묵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깊은 한숨, 세월 갈수록 그 소리는 깊어져만 간다. 바람이 고요히 길을 내 주어야 하듯 묵묵히 받아들이려 한다. 이젠 아무 생각도 없다. 살다보니 알겠다. 기꺼이 보내야 할 것과 내 주어야 할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 삶, 작지만 소소한 행복함을 떠 올리며 슬몃 웃음 짓는 내 노년의 삶,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다.
지칠대로 지쳐버렸다고 해야겠다. 허튼 욕심내지 않고 그러려니 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각자 물러 받은 모가치의 언급은 있어야 될 일이 아니던가. 지킬 것은 지켜야 된다는 생각, 그 생각 앞에서 서러운 날들 떠 올리면 가슴팍이 먹먹해지곤 한다. 참 많이도 울었다. 어쩌면 눈물은 나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불편한 진실들, 내게 닥친 시련들을 잘도 걷어내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기까지 왔다.
이제와서 굳이 셈하려 하지 않겠다. 새삼 뒤돌아 보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과정들이 너무나 어이가 없다. 분명한 것은 어디까지나 공평해야 했다. 태산같은 시집의 일이든, 금전이든 공평해야만 했다. 노동이 필요할 땐 어김없이 나를 찾았고 정작 나누는 금전 문제에서는 제외시켜 버린 처사들... 그들의 유산 다툼이 육박전으로 이어질 때도 나는 뒷전에서 울고만 있었다. 정말이지 못 볼 것들을 많이도 보아냈다. 이젠 내가 힘겹게 겪어야만 했던 현실들이 그때만큼 아프지도 않다. 눈물마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묻고 싶을 뿐이다.
미련과 집착, 모두 바람에 날려 보낸지 오래다. 무시로 일렁이던 내 안의 작은 소망, 굳이 욕심이었다고 고쳐 말하진 않겠다. 야무진 목적도, 촘촘하게 짜 놓은 계획도 없었기에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눈물겹도록 고맙게 우뚝 서 있는 내 두 아이들을 봐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일 아닌가. 까마득히 어렸던 나이에 어떻게 그 거센 파도를 헤치고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무시로 그런 생각 깊어 질 때면 나, 스스로 다독이며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마음 빛 바래지 않도록 내 주어진 환경에 충실하려 했다. 그러기에 나 이제 당당할 수 있다. 내 지친 심신 절대 내색 않았으며 뒷걸음 치지도 않았다. 내 소망 크지 않았고 내 좌절 깊지도 않았으니까.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 늘 비워두는 여유로움으로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지금이 오고 만 것이다. 이젠 그저 덤덤할 뿐이다. 나에게 이런 시련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갓 시집을 온 새댁 앞에 펼쳐졌던 요란한 파장들과 전국 뉴스를 탈 정도의 크나큰 충격, 그 시대 절대 권력자의 명령으로 부산에 파견 된 그 막강했던 직원들. 신분증을 내 보이며 온 집을 뒤지고 갔다. 내 부모 형제들, 내 주위의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을 겪은 이가 없다. 있는 것, 없는 것들 알뜰하게 챙겨서 찾았던 둥지, 그마저도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러려니 했었다. 절망스럽다기보다 얼떨떨하기만 했으니까.
이 세상의 어느 누구든, 어떤 일로든 한스러워 하며 살아가지 않는 사람 있으랴마는 나는 비탈에서도 꼿꼿하게 서 있었다. 나를 지탱시켜 준 것은 내가 살아 왔던 자존감과 나의 태胎를 타고 이 세상에 나온 내 두 아이들의 덕이다. 난 지쳐 있었지만 결코 쓰러질 수 없었던 이유도 내 피붙이들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치졸한 속계산을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 소유의 부동산도 사라져 버렸다. 놀이동산의 롤로코스트를 경험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닥치면 또 겨루리라 맞서며 극한 상황 잊었다. 그 때 맺힌 마음, 눈물로 지새우기도 했었지만 솔직히 절망과 원망의 늪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했다. 공정하지 못한 처사에 희생 된 내 소망, 크지 않았으니 내 좌절 또한 깊지도 않았다고 해야 맞는 말이 되겠다.
내 삶의 버팀목, 내 삶의 절대이유는 두 개의 지팡이. 두 아이들을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 훔치며 살아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 늘 비워두는 여유로움으로 양 어깨의 지팡이가 조화를 이룬다. 그러기에 나는 쓰러질 수 없었다. 절망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알게도 되었다. 세상사 어려움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란 것을... 가만히 눈이 감긴다. 혼란스럽고 벅찬 시련 속에서도 내 마음 빛 바래지 않으려 노력했던 지난 날들이 스친다. 항상 그랬다. 주어진 환경과 지극히 타협하려고만 했으며 그저 괜찮은 척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시집이 그런 것이었는지, 왜 그렇게 왁자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자기 몫을 분명히 밝혀야 하는 일, 돈 앞에서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 그들 앞에서 언제나 무심하기만 했던 남편. 이제와서 새삼 더 이상 묻지도, 셈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이젠 굳이 뒤돌아 보려하지 않으며 호들갑 떨지도 않는다. 무시로 가만가만 들려오는 내 어머니의 주문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기분 좋아지는 속삭임들이 귓전을 맴돈다. 숨 막히는 순간들이 나를 덮쳐와도 따스한 그 말 한 마디를 마음 속으로 되새기며 살아냈다.
돈 앞에 안 되는 일이 없는 세상, 돈이 잘난 세상, 모두에게 절실하다 하지만 돈 따위에 연연하긴 정말 싫다. 돈 앞에서 무너지긴 더더욱 싫다. 더구나 남의 몫까지 가로채는 일은 생각조차 않고 살아가고 있다. 과연 돈이 무언지, 돈 앞에서 눈빛부터 달라지는 사람들 심심찮게 보아냈다. 지금까지도 난 그렇다. 그렇게 어거지로 빼앗다시피 한 욕심의 돈, 종내는 하찮은 돈질로 모든 것을 잃고야 마는 현상도 보아 온 터다. 그러기에 역시 잘 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지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