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박경대
자판기에는 잔돈 몇 개가 들어있었다. 지루하던 수업이 끝나자 따뜻한 커피 생각이 간절하여 동전을 찾던 중이었다. 잔액이 남아 있다는 표시를 보자 웬 횡재인가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버튼을 누르는데 슬며시 웃음이 났다. 얼마 전에도 돈이 남아있어 한 잔 먹었던 기억 때문이다.
한 달에 두 번 교리를 공부하는 불교모임에 연세가 높은 어르신이 많이 계신다. 아마 어느 분이 커피를 마시고 거스름돈은 깜빡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한 잔에 백 원밖에 하지 않지만 어쨌든 공짜 커피여서인지 맛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잔돈은 나처럼 운 좋은 누군가가 뽑아 먹으라고 까치밥처럼 남겨두고 왔다.
며칠 전, 교외로 생수를 받으려갔다가 빨갛게 물들어가는 감나무를 보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달려있는 감을 보자 문득 가까이에 있는 시골집이 생각났다. 차로 불과 십 여분 걸리는 가까운 곳이기에 생수 통을 채우고 들러 보았다.
스산한 가을 햇볕 때문인지 집은 더욱 쓸쓸하게 보였다. 외로워 보이는 집은 나를 본 척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근처를 지나는 일이 있어야 휑하니 둘러보고 가는 주인이 섭섭했으리라. 애정을 가지고 돌봐주지 않기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감이 익을 무렵이면 한 번쯤은 꼭 들린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홍시를 몇 년 전 우연히 따먹어 본 뒤론 달콤하고 쫀득한 맛에 푹 빠지고 말았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홍시를 좋아하시기에 연세가 들면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이제 나도 중년이 된 모양이다. 그렇다고 감 농사에 힘을 쓰는 것은 아니다. 거실의 화초에도 물 한 번 주지 않는 성격이라 나무를 돌본다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을에 감이 익으면 몇 상자 따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감나무는 일 년에 네 번 정도 농약을 쳐준다고 한다. 그러나 장비도 없거니와 일부러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시골집을 장만한 이후 10여 년 동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절반가량은 검은 점이 생기는 병으로 썩어 버리지만 먹을 만큼은 충분하여 병충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평상에 앉아 올려다보니 가지마다 빨간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것들은 잠시나마 허전했던 가슴을 꽉 채워주는 듯했다. 언제 또 오겠나 하는 생각에 감을 따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을 따고 보니 큰 물통에 가득하였다. 괜찮은 것을 골라보니 세 접 가량 되었다.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높이 달려있는 나머지는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다.
다음날, 가족이 먹을 것은 떼어놓고 나머지는 다섯 개의 작은 상자에 담았다. 주위 분들에게 맛이나 보라고 보낼 참이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작년의 홍시가 아직 많이 남았으니 반 정도는 더 나눠주자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많은 것 같았으나 힘들여 딴 것이 아까워 그냥 나의 생각대로 나누어 주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시큼한 냄새가 나기에 어디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가하고 코를 킁킁대며 찾아보니 골방의 붙박이장에서 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뭔가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문을 열어보니 냄새는 감 상자에서 나고 있었다. 삭히는 약을 넣고 봉하여 두었는데, 꺼내어야 할 날짜가 지나있었다. 그러나 날짜가 지났다고 섞는 냄새가 날리는 없었다.
불안한 심정을 억누르며 상자를 열어보니 절반 가까이 썩어가고 있었다. 놀라서 살펴보던 중 검은 점이 있는 감을 버리지 못하고 몇 개 넣었던 기억이 났다. 그 서너 개의 감이 삼사십 개를 상하게 만든 것이었다.
썩은 감은 정원 구석에 파묻었다. 검은 점이 있는 것은 아깝더라도 넣지 말고 성한 감도 이웃에게 더 나누어 주자는 아내의 말이 감을 묻고 있던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엊저녁, 교리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갈려던 참이었다. 신발을 찾으면서 보니 할머니 한 분이 자판기에 여러 개의 동전을 넣고 계셨다. 커피를 드시려나보다 하는 순간 할머니는 그냥 나가셨다. 현관에서 살펴봐도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마침 관리실 근무자가 들어왔다. 관리인에게 방금 나가신 할머니가 돈을 넣고는 깜박하고 가셨다는 말을 해주었다. 다급하게 말하는 나를 보며 그는 빙긋이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 할머니는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실 때 항상 주머니의 잔돈을 몽땅 자판기에 넣어놓고 갑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큰 망치로 한방 맞은 듯 머릿속이 ‘쿵’ 하고 울려왔다. 공양과 보시에 관한 불법교리를 수업시간마다 듣고 있지만 실천 하지 않는 나와 달리 할머니는 뭇사람을 위한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누가 깜빡하고 잔돈을 두고 갔다며 웃으며 커피를 뽑아먹었던 나 자신을 생각해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무에 남겨두는 과일을 까치밥이라고 한다. 배고픈 까치나 날짐승들이 먹으라는 것이다. 먹을 게 궁하던 옛날에도 까치밥을 남겨두는 선인의 심중에는 욕심을 줄여 세상의 모든 생명들과 사랑을 나누라는 뜻이 담겨져 있으리라.
얼마 전, 책에서 본 교리가 생각났다. ‘바람이 없는 보시, 남을 위하여 개천에 다리를 놓는 공덕, 목마른 사람을 위하여 샘을 파는 공덕 등 덕 쌓는 일은 셀 수 없이 많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래, 그 많은 복 짓는 일 중에 커피공양 또한 없겠는가.’
무겁게 느껴지던 호주머니속의 동전들을 모두 털어 자판기에 넣고 돌아서자 집을 향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