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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18편
* [가정예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요19:19-30
* [가정예배] 억지로 진 십자가. 막15:21-25
* [가정예배] 스트레스를 못 박는 십자가. 히12:1-2
* [가정예배] 십자가를 지고 갑시다. 마16:24-28
* [가정예배] 십자가는 죄 사함의 증거. 히9:11-22
* [가정예배] 십자가로 돌아오는 용기. 요19:35
* [가정예배] 십자가와 삶의 변화. 갈2:16-21
* [가정예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눅9:23-24
* [가정예배] 네로의 법정에서 십자가 복음을 전한 바울. 딤후4:16-18
* [가정예배] 변화된 사람, 십자가의 길을 걷다. 약1:1
* [가정예배] 십자가 복음에 거하라. 딤후3:13-15
* [가정예배] 십자가 위의 한 강도. 눅23:39-42
* [가정예배] 십자가 피의 복음을 전파하라. 딤후4:5-8
* [가정예배] 십자가를 통해 누리는 평안. 요14:15-27
* [가정예배] 십자가만을 자랑합시다. 갈6:14-18
* [가정예배] 십자가의 능력. 요3:16-21
* [가정예배] 십자가의 의인. 눅23:50-54
* [가정예배]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 요19: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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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정예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요19:19-30
창조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 사역이 완성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를 기록하는 죄목 대신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글을 적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결백하심을 더욱 입증해줍니다. 또한 그 명패는 당시 통용되던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로 쓰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에게 구세주가 되심을 공표한 것입니다.
다윗의 시를 통한 영감적인 예언대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네 명의 군병은 그의 옷을 균등하게 나누어 갖고, 통으로 된 그의 속옷을 제비뽑아 차지합니다(시 22:18). 육신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과 수치 속에서도 주님은 십자가 아래에 있던 그의 모친과 친구들을 잊지 않으시고 자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시면서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요한에게 주어진 영광이었습니다.
이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신”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성경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구속 사업을 이루시는 데에 갈급하셨던 예수님은 영혼의 진통을 ‘목마르다’는 한 마디로 함축하셨습니다.
이에스더 목사<요나3일영성원장>
2.
***[가정예배] 억지로 진 십자가. 막15:21-25
본문 : 막 15:21∼25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 하지 않고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 구레네 시몬의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루포가 로마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루포의 어머니는, 사도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할 만큼 바울을 잘 도와준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결국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그 결과 그의 가정이 경건한 신앙의 가정이 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질 때는 그 십자가가 우리 인류 구원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대신 졌던 그 십자가가 바로 주님의 십자가, 인류 구원의 십자가였다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힘들어도 십자가를 지고 가면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는 동안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믿음도 주시고 또 축복해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성모 목사(구리주소망교회)
3.
***[가정예배] 스트레스를 못 박는 십자가. 히12:1-2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죄 없는 자가 당하는 고난은 모두 축복과 상으로 이어집니다. 의사들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질병의 71%가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사실 때 여러 사람으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을 모독한 자, 백성을 유혹한 자라면서 죄인으로 몰아세웠습니다. 그리고 거짓 증인들을 세우고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스트레스를 받고 입맛이 떨어지며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괴롭히는 일들은 이미 성경예언대로 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진 후 나타날 부활의 승리를 바라봄으로써 오늘의 고난과 수치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반석이시니 그 안에 있는 자는 원수 마귀가 손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4.
***[가정예배] 십자가를 지고 갑시다. 마16:24-28
묵상: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본문: 마 16:24∼2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은 무엇입니까?
첫째,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을 말합니다(마 26:39).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자신의 죄악된 본성과 의지를 부인하고 철저하게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면서(롬 6:6) 살아야 합니다.
둘째, 주님이 나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감사와 인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영광은 항상 결말이 아름답습니다. 처음은 초라하고 비참해도 나중은 영광의 빛이 찬연합니다. 십자가의 삶은 너무도 힘겹고 초라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면류관이 예비돼 있습니다.
김연희 목사(신생중앙교회)
5.
***[가정예배] 십자가는 죄 사함의 증거. 히9:11-22
본문 :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1∼22)
인간은 본질상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태어났고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는 곧 죽음입니다.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구약시대에는 염소나 송아지를 속죄의 제물로 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성소로 동물의 피를 가져가지 않고 자기 자신의 피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주님은 단번에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주셨습니다. 피 뿌림을 통하여 속죄가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진 인류의 구원이 완전하고 완벽하게 이루었습니다.
주님은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당시 쓰던 채찍은 쇠 조각이 붙은 가죽 끈으로 만든 것입니다. 채찍이 감길 때마다 끝에 달려 있는 뼈 조각과 쇠 조각이 예수님의 몸을 파고 들어가 박힙니다. 그리고 채찍을 다시 잡아당기면 살점이 뜯기는 것입니다. 그 고통의 자리는 원래 예수님의 자리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으로 맞지 않으셨다면 누가 맞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심판대에서 맞아야 합니다.
이 십자가는 죄인들로 하여금 아무 공로 없이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합니다.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물로 외아들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속죄 물로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그 피로 속죄제물을 삼으신 것입니다.
조태환 목사(울산 큰빛교회)
6.
***[가정예배] 십자가로 돌아오는 용기. 요19:35
묵상:“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요 19:35)
성경에는 예수님이 붙잡히시던 때에 제자들이 다 도망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마 26:56).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한은 본문 앞뒤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는 장면까지 그분의 죽으시던 순간을 세세한 필체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그분과 교제를 나누고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였습니다.
주님 곁에는 마리아와 몇 명의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그분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배신한 요한은 주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오히려 사랑하는 제자의 마음의 불편함과 고통을 모두 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7)는 말씀으로 주님은 여전히 요한이 예수님 마음속에 한 형제인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요한은 십자가 아래서 예수를 버리고 도망간 것을 깊이 뉘우치고, 마지막까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광경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다 양 같아서 주님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차이가 있다면 누가 빨리 주님께 돌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가 한때 예수님을 멀리 떠났던 것에 대해 많은 가책 받는 대신 자기에게 달려오기를 원하시며, 돌아와서 화해와 용서의 은총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김남준 목사 (평촌 열린교회)
7.
***[가정예배] 십자가와 삶의 변화. 갈2:16-21
본문: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갈 2:16∼21)
십자가는 내 저주를 대신하신 것입니다. 내가 저주를 받아 돌에 맞아,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나 대신 저주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는 것, 나를 위해서 아들을 보내주심을 믿는 것, 내 죄를 대신하여, 내 저주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은 바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저주를 대신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귀한 존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살게 하시는 사건이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가 주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 들어와 사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의해 움직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함께 살므로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는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조태환 목사(울산 큰빛교회)
8.
***[가정예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눅9:23-24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시편 86편 3절에서 다윗은 “오 여호와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날마다 주께 부르짖습니다”(우리말성경)라고 고백합니다. 또 시편 88편 9절에는 “내 눈이 근심과 걱정으로 신음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날마다 주를 부르고 내 손을 주께 뻗었습니다”라는 고백이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면서 오히려 ‘날마다 죽는 것’에 대해서 자랑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넘어지고 죽기까지 할 정도로 실패를 거듭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걸 멈추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송경호 목사(경주 좋은씨앗교회)
9.
***[가정예배] 네로의 법정에서 십자가 복음을 전한 바울. 딤후4:16-18
딤후 4: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딤후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최고의 전도자 바울이 자신의 사형 언도를 앞두고 네로의 법정에서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선포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됩니다. 바울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말씀 : 저는 평소에 국가조찬기도회 같은 데서 설교자들이 용기를 갖고 오직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발표된 설교문 요약을 보면 복음의 진수보다는 리더십이나 국가의 외형적인 문제에 관한 내용이 많아 실망한 적이 많습니다. 애석하게도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설교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네로황제의 법정에서 처음 심문을 받을 당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아무도 그를 위해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어서 곧 사형수가 될 사람의 입장에서 변호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침묵은 악의가 아니었고 당시 로마의 폭압적 정치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직 주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주께서 곁에 서서 힘을 주심으로 로마황제 네로의 법정에서 말씀을 온전히 전파했습니다. 네로 황제와 당시 제국의 지도자들은 바울이 그들 앞에 끌려 나오지 않았다면 결코 복음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 기회를 이용해 복음을 온전히 전파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며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현재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후에 다시 오신다는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사자는 네로를 가리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건짐은 반드시 육신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8절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천국소망 안에서 즐거워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디모데뿐 아니라 오늘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자 바울의 삶은 본이 돼야 할 것입니다.
임덕규 목사(서울 충성교회)
10.
***[가정예배] 변화된 사람, 십자가의 길을 걷다. 약1:1
야고보서의 저자는 야고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야고보’ 가운데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의 남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셉, 유다, 시몬이 있었습니다.(막 6:3) 처음에 그들은 가정을 돌보지 않는 예수님을 좋게 보았을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친형제들은 형인 예수를 조롱하기도 했습니다.(요 7:3∼5)
그랬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완전히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사역자가 됐고, 예루살렘교회의 기둥 같은 리더요 최고지도자가 됐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고전 15:5∼8) 변화된 예수님의 동생들은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됐습니다.(행 1:14)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을 밝힐 때 ‘예수의 동생’임을 강조하면서 어깨에 힘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변화된 야고보는 그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당시 종은 ‘노예’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인생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자신은 ‘종’으로 표현합니다. 혹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여전히 내가 주인 노릇하며 왕 노릇 하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로 온전히 모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변화’이지, ‘변장’이어선 안 됩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지,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자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딤후 3:5) 변화하지 않고 변장하면 곧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왜 흩어졌을까요. 복음을 지키기 위해 흩어진 것입니다. 흩어지고 싶어서 흩어진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고 복음의 삶을 살기 위해 흩어졌습니다. 우리 또한 복음을 위해 흩어져야 할 선교공동체입니다.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와 수신자인 ‘흩어진 열두 지파’ 모두 복음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간 이들입니다. 그들은 편한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도 변화된 사람들로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길 바랍니다.
강정웅 목사(부산 대연중앙교회)
11.
***[가정예배] 십자가 복음에 거하라. 딤후3:13-15
딤후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3절을 보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속이는 자들의 마지막 운명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에 꼭 전할 십자가 복음에 거할 것을 명합니다. 14절을 보면,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배우고 확신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건’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말합니다. 이는 곧 복음의 내용입니다. 부활보다 대속의 죽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 복음에 계속 거하라는 명령의 두 가지 근거를 말합니다. 첫째는 디모데가 그 복음을 바울에게서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 후반에서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15절을 보면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에게서 배운 것이 구약성경과 조화를 이룬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복음을 붙잡고 계십니까.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십자가, 오직 성령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임덕규 목사(서울 충성교회)
12.
***[가정예배] 십자가 위의 한 강도. 눅23:39-4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함께 고통 중에 죽어가는 강도를 향해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오늘(today)’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사실적인 표현입니다. “너는 장차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런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닙니다. ‘오늘’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이 요청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라고 말했더냐?” “그것은 바로 오늘이니라.
오늘 네가 육신의 눈을 감겠지만, 너는 바로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니라.” 바로 이 말씀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죽은 뒤에 연옥이라는 곳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혹은 모든 것이 다 소멸된 ‘무의 상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은 죽음과 함께 즉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이 강도는 그날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이 선언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소망을 확실하게 붙들게 합니다. 그러면 ‘오늘’, 즉 ‘바로 지금’ 죽어도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 강도가 가진 믿음의 특징을 보십시다.
죄 고백에서 더 나아가 구원자를 향한 확실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42절) 예수께서 한 나라의 주권자요 왕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겉으로 영광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자리, 비참한 십자가 위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기적을 행하고 있는 것도 아니요 권세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죽어가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빌라도의 재판을 뒤집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비난하고 욕하는 상황에서, 이 사람 혼자 당당하게 그는 옳은 자라고 말하고 있고, 왕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향해 위대한 선언을 하십니다. "너는 나와 함께 바로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죽음의 권세 아래에 놓인 인류에게 소망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예수님의 이 선언밖에 없습니다.
박지웅 (서울 내수동교회)
13.
***[가정예배] 십자가 피의 복음을 전파하라. 딤후4:5-8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제가 죽은 후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을 자랑하는 목회자로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최후의 때가 가까이 왔을 때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5, 6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전제(a drink offering)’란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제사입니다. 전제는 제물을 불태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때 이를 더 아름답고 완전하게 하기 위한 보조 제물로써 번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번제물이 타면서 향기가 퍼질 때 포도주를 붓습니다. 이는 바울 자신의 순교를 예고한 것입니다. 자기의 일을 모두 마쳤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자신을 본받아 그에게 맡겨진 십자가 피의 복음 전도 사명을 완수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임덕규 목사(서울 충성교회)
14.
***[가정예배] 십자가를 통해 누리는 평안. 요14:15-27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도 평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얼마 후 로마 군병들에 잡혀서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평안을 잃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 앞의 제자들은 불안했습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팔 것이고, 베드로가 배반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불안함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평안을 누리고 계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누리고 있는 평안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이 평안은 어떤 평안일까요?
27절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에게는 고통이지만 우리에게는 죄 사함을 통해 주시는 구원의 평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 맨 처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평안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권병훈 목사(상계광림교회)
15.
***[가정예배] 십자가만을 자랑합시다. 갈6:14-18
타락한 인간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모, 학력, 부와 지위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단순히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하지 않고, 십자가를 빼면 내게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만이 세상의 속박에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십자가가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세상의 풍속과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았습니다. 미신적이요 우상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삶의 목적도 출세하고 성공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없는 삶은 세상에 속박된 삶이요 죄악의 삶이고 마귀의 종된 삶입니다.
박재호 목사(대구 노변제일교회)
16.
***[가정예배] 십자가의 능력. 요3:16-21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종교적인 모습은 아무 소용이 없고 그 영혼이 물과 성령으로 완전히 변화되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당한 일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너는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죄 때문이다. 이 죄라는 것은 독사의 독과 같이 인간의 영혼을 완전히 마비시켜 죽이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의 공격을 받았다. 이들이 뱀에 물려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구리 뱀을 만들어 높이 달도록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장대에 높이 달린 구리 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살 것이라고 했다. 모세가 광야에서 죄의 형상인 뱀을 구리로 만들어 높이 단 것같이 인자도 죄의 형상이 되어서 십자가에 높이 달릴 것이다. 누구든지 이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를 바라보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양심이 깨어나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죄를 벗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정하곤 목사(열방선교회 총무)
17.
***[가정예배] 십자가의 의인. 눅23:50-54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3년간 사랑으로 섬겨준 제자인 가룟 유다로부터 배반을 당해 은 30에 팔리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군병들에게 잡히실 때 남은 11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의 재판에 넘겨졌을 때 백성들은 살인강도 바라바는 놓아주고, 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쳤습니다. 결국 하늘에서 내려오신 대제사장 예수님이 이 땅의 대제사장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한 죄목으로 사형 판결을 받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죄목으로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시신을 거둬 장사 하고 싶어도 섣불리 나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종교 지도자들의 눈총이 두려워서입니다. 이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담대히 나섰습니다. 그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최고 종교회의의 공회원일 정도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종교인들과 달리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경건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소집한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는 결정을 할 때 그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을 정도로 예수님 편에 섰습니다. 살기 가득한 회의 분위기에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고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린 후 세마포로 쌌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위해 조성한 새 무덤을 예수님께 내어드리며 그곳에 장사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한 사람은 3년 동안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받은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귀신이 쫓겨나거나 불치병을 치유 받은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아온 아리마대 요셉이, 모두가 꺼리는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도망가고 숨었습니다. 이에 비해 요셉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드러내지 않고 숨은 믿음으로 지냈으나,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는 그 믿음이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얻는 것이 있고, 누릴 것이 있을 때는 주님을 열심히 따랐습니다. 예수님께 떡을 먹기 위해 따라다녔던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십자가의 위험과 희생이 따르자 떠나갑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육신의 떡을 먹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의호 목사(용인 기쁨의교회)
18.
***[가정예배]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 요19:31-42
예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신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이후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날은 준비일이라고 나옵니다. 유월절 절기 중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었기에 그 안식일은 큰날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그때는 유월절 절기를 준비하는 날이었고, 예수께서 바로 그 제물 되심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절기를 정결하게 지키려고 예수의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장면에서 유대인의 영적인 실체가 드러납니다. 안식일의 계명을 지키는 데는 힘썼으나 더 크고 중요한 계명인 살인을 저지르는 데는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여기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형식만 지켰지, 그 정신은 상실한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따른다 하면서 형식뿐인 종교인이 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이후에도 성경의 예언은 성취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러 간 군병들은 그들의 다리를 꺾어 죽음을 맞도록 합니다. 예수께서 이미 죽으셨기에 옆구리도 찔러 봅니다. 그들은 우연히 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 일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으리라는 시편 34편의 예언과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는 스가랴 12장의 예언 성취였습니다.
이처럼 내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섭리를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이해 못하는 일이 일어날 때 잠잠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숨어있던 제자의 등장입니다. 바로 예수의 시체를 요구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등장입니다. 그는 제자임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드러나면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 더 이상 숨길 수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두려워 떨 때 그는 분연히 일어나 예수의 시체를 요구하여 자신이 제자임을 공개했습니다. 그의 결단에 용기를 얻었는지,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와서 장례에 동참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 이후 제일 먼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른 사람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보복과 따돌림을 감수할 각오를 했습니다. 공회원의 신분쯤은 던질 결단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드러내고 그를 따르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이제 그에게 아무런 희망도 찾지 못할 그때에 이제라도 내게 맡겨진 십자가를 감당하겠노라고 결단했습니다.
그들의 결단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도전을 줍니다. 부자가 천국가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요셉은 그 어려움을 이겨낸 대표적 사례로 언급될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헌신은 예수님의 장례가 왕의 장례와 같을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는 데 일조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성경의 역사 일부가 된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를 때 내 삶의 역사는 분명히 바뀔 것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오늘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가정이 됩시다.
이성준 목사(인천 수정성결교회)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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