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거니와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17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 19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23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니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 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25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차단이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키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인간 편에서 생명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타락이며 근원적인 죄라고 합니다. 이제 인간은 평생토록 고생하고 결국은 땅의 티끌로 돌아가야 합니다. 생명나무, 생명 샘,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없기에 가짜 생명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이런 가짜들을 추구하는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추구하면 할수록 자족하지 못하고 더한 갈증만 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게 되자 어김없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광야에서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신 것을 잊어버리면 하나님께서 다시 고난을 통하여 낮추십니다.
이렇게 하심은 마시고 또 목마른 샘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명수를 주시기 위하여 낮추시고 목마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낮추심으로 생명수를 찾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서 생명수를 버립니다.
예레미야 2:13절.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짓은 먹고 배부르게 되자 여호와를 배반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왕 되심을 버리고 인간 왕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방 나라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모습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의 결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수의 근원을 버린 자는 결국 물이 없는 흙의 티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주리고 낮추시는 것입니다. 마시고 목마른 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서 낮추십니다. 그러나 주리고 낮추어진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생명수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악착같이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리고 낮추어 짐으로 자신이 그동안 헛된 것에 마음이 빼앗긴 것을 알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찾는 자가 택함을 받은 자입니다.
진짜 기근이 무엇입니까?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고 마실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어디서도 생명수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 곧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을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세상에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맛본 자들은 그 생명의 풍성함만 더 원하게 됩니다(요10:10)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 이루심으로 무엇을 주고 계십니까?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일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받습니다.
이기는 자가 누구입니까? 믿는 자가 아니면 어떻게 세상을 이기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믿는 자가 이긴 자이며 이런 자들은 생명수를 받아 마시는 자들이기에 세상에서 더 이루어야 할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믿기에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 떠날 준비를 하며 살라고 하는 자들이 생명을 마신 자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수를 여기서 마시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도 세상의 것으로 목마르다가 둘째 사망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는 생명수가 영원히 없는 곳이기에 영원히 목마른 곳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시편 119:75절.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주님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어려움을 보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성실하게 괴롭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입니다. 그러므로 근실하게 징계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손길임을 알고
오늘도 믿음의 길로 울며불며 끌려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영원한 생명수를 주셨습니다.
이 생명수를 마시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징계를 감사함으로 받으며 주님의 흠도 티도 없는 신부롤 만들어져 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