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미얀마 친주에서 있었던 “대나무 기근”과 어느 용감한 청년의 모험을 회상하며
2006년 대림절 기간에 구루꿀신학교에 다니고 있던 미얀마 학생인 사무엘이 나를 찾아 왔다.
그는 자기 종족이 겪고 있는 “밤부 페미닌(대나무꽃 때문에 시작된 대기근)”을 말하면서 긴급구호를 요청하였다. 나는 당시 떠돌이 순회 사역을 하면서 ‘비전아카데미’를 운영하였는데 등록금을 너무 낮게 책정을 하여서 재정이 펑크가 난 상태였다. 그러나 성탄절에 기아 위기에 직면한 고향으로 돌아가려니 마음이 너무 무겁다 는 그의 거듭된 도움 호소에 마음이 약한 나는 성탄 나눔을 딱 한 번만 하기로 마음을 먹고 구호 헌금을 보냈다. 그는 그 돈으로 고향 가는 길목인 미조람에서 쌀을 사서 인도와 미얀마 국경선까지 가지고 가서 고향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서 쌀을 나누었다고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가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온 후, 난민 구호 사진을 보여주며 두 번째 구호를 요청하였다. 이렇게 해서 발목이 잡힌 나는 2007년에 네 차례 긴급구호를 실시하였다. 2008년 여름 전에 두 차례 기금구호를 실시한 나는 한국으로 SOS 타전을 하였다. 사무엘과 함께 마라족이 사는 미조람 국경 너머에 있는 “밤부 페미닌”에 시달리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여 지역의 상황을 리서치 할 수 있는 자원 봉사자를 찾은 것이다. 응답자가 없어 실망하는 중에 대학교를 갓 졸업한 전영현 청년이 용감하게 나타났다. 그는 미얀마 비자도 받지 않고 사무엘을 따라서 기근 지역에 들어가는 위험한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인도와 미얀마의 국경선을 넘어 미얀마로 들어가는 날, 나는 갑자기 무모한 모험을 하였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압도를 당하여 무시로 엎드려 기도하게 되었다. 일이 자칫 잘못되어 인도 국경수비대에게 발각되거나 미얀마 국경수비대에게도 붙잡히면 한 청년의 인생을 망칠 뿐만 아니라 나또한 뿌리 채 뽑힐 수가 있다는 생각에 짓눌려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가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안전하게 돌아오길 하나님께 빌고 또 빌고 또 빌었다. 그가 미얀마 여정을 마치고 인도로 돌아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1시간이 천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가 무사히 미조람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온몸이 떨렸다. 나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그가 국경을 넘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가 얼마나 많은 마을을 방문하고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났을지? 미얀마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고산족들을 대할 때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얼마나 분노했을지? 얼마나 슬퍼했을지? 얼마나 절망했을지? 얼마나 희망했을지? 얼마나 불안해했을지? 얼마나 간을 졸이며 기도했을지? 얼마나 감사했을지?
나는 그의 이야기를 목마르게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충격적인, 엄청난 경험을 했다고 하면서도 말이 없었다. 나는 새롭고 낯설고 충격적인 모든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다 듣고 싶은데 그는 여행의 경험을 나누는 일에 참으로 소극적이었다. 적이 실망한 내가 성화를 부리며 보고하라고 윽박지르자 그가 우선 경과보고서와 지출 내용을 작성해서 올리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디테일은 한국에 돌아가서 차분히 써서 보내고 싶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세계 최초로 미얀마 친주 오지에 들어간 그에게 육성으로 세세한 사연을 듣는 것을 어쩔 수없이 포기하였다.
어쨌든 우리는 그의 방문으로 “대나무 기근”이라고 불리는 대기근을 두 눈으로 확인하였다.
대나무 기근은 특별한 해에 대나무가 꽃이 피면 그 열매를 쥐가 먹으면서 쥐의 번식이 평상시보다 몇 배나 늘어남으로 시작된다. 쥐들이 먹이를 찾아 떼 지어 다니며 이파리 채소를 제외한 모든 것을 사그리 먹어치운다. 쥐들의 공격은 밤에 주로 있어 사람들이 손 하나 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 하였다. 게다가 메뚜기까지 번성하여 메뚜기가 침엽수 종을 제외한 파란 이파리를 갉아 먹어 사람들을 굶주림의 절망으로 몰고 갔다.
전영현이 확인한 대나무 기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2008년 하반기에도 계속 쌀나눔 활동을 지원하였다. 2009년 정초에도 우리의 지원은 계속되었다.
2009년 봄, 전영현으로부터 “기도한다는 것”이라는 책 한 권과 함께 후원금이 왔다.
그토록 말을 아끼던 그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28개의 제목으로 압축하고 정리해서 사진과 함께 미얀마 “대나무 기근” 지역 방문기를 펴낸 것이다.
글에 영감이 있고 카리스마가 있어서 말을 삼갔던 그의 내심이 이해되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의 생각이 지구차원의 공존과 평화를 향해 있어서 감동이 컸고 무엇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책을 편집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그를 미얀마 오지로 인도해주시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영감과 자비로운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 후로 15년 만에 다시 그 책을 찾아서 폈다.
순간 전광석화처럼 “대나무 기근”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함께 하였던 기쁨과 걱정, 희망과 불안의 시간들이 눈앞에서 빙글거리며 지나갔다. 그리고 인도 국경을 넘어 미얀마 오지로 들어간 용감한 청년 전영현이 큰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책을 펼치면서 그에게서 예수님 냄새를 맡았다. 그의 책 “기도한다는 것”으l 시작은 기근의 땅 마라랜드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 페이지에 인도 국경 너머로 들어와서 쌀을 이고지고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그 옆에 ⌜기도한다는 것⌟이란 제목의 묵상시가 나온다.
기도한다는 것
가끔은 무섭다.
피부에도 와 닿지도 않는데 ...
함부로 서약하지 말고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기도할 수도 없다.
아마도 겟세마네 언덕에서 기도했던 주님의 기도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어 주시옵소서.”
아마...
자신이 정확하게 무엇을 할지
그리고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님은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면 ...
막연하게. 손을 들고...
막연하게... 헌신하며...
서약하겠지.
보고 느끼고, 걸으며
부끄럽고
정말 빛이 된다는 것
소금이 된다는 것
마치...
커다란 어둠에 발버둥치는 나의 모습이 될 것 같은
느낌들 ...
화려하지도 멋있지도 않으며.
비굴하며... 냉정하며 ...어떠한 면에서는 매우
차갑고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소금과 빛.
잘해도 변하는 것 없고 ...
못하면 더욱 큰 죄악을 저지르는 ...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작고 무섭고 떨리는 기도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으니 ...
가히 두렵지 아니하다고 할 수 없다.
목적과 목표가 선명해지는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일까?
하루 반을 걸려 걸어온 발걸음을 뒤로한 채
축복기도만 남기고 간 그들.
“Rember us. Next time”
아마도 ... 이게 현실인가 보다 ...
왜 기도해야 하는지 ...
할 수 있는 마음을 얻기 위해서?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기도할 수 밖에 없다.
그분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다.
주여!
당신의 사람들을 움직이소서.
전영현(미얀마 해방 이후 친주 오지를 최초로 방문한 외국인)의 책,
⌜기도한다는 것⌟ 5쪽에서 발췌.
예수 닮기를 사모하였던 청년 전영현이 그리워진다.
2023년 11월 25일 토요일 축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