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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의 일각"
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의 대부분이 숨겨져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뜻하는 말.
이 때문에 억울하게(?)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 타이틀을 뺏긴 산이 있다.
누구나 꿈꾸는 환상의 휴양지, 하와이. 하와이 제도 중 가장 크고 젊은 섬, 빅아일랜드에 있는 마우나케아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빅아일랜드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마우나케아 산은 해발 고도 4205m로 해발 고도 8848m의 에베레스트 산에 비해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평균해수면을 기준으로 한 '해발'로 따졌을 때다. 하와이의 마우나케아를 산의 밑 부분인 해저부터 계산한다면 1만200m로 에베레스트 산보다 훨씬 높다. 누군가는 이 기준이 억지라며 고개를 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찰랑거리는 해수면 밑으로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마우나케아의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마우나케아에 올라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 투어 업체를 예약해 산에 오른다. 일몰을 보려면 오후 3~4시쯤이 적당하다. 넉살 좋은 가이드의 익숙한 인사를 시작으로 마우나케아 투어가 시작됐다.
"ALOHA!"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전,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 방문자 센터를 거쳐야 한다. 아직 정상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발끝으로 끝없이 펼쳐진 구름을 보고 있자니 벌써 황홀해진다. 방문자 센터에는 마우나케아를 찾아온 전 세계의 관광객을 위한 따뜻한 물과 차가 준비돼 있다. 이때 추운 날씨, 따뜻한 물을 보고 머리속으로 컵라면이 스친다면 참 한국인 인증이다.
신발까지 173cm인 필자를 훌쩍 넘는 고산 식물
따스한 차에 몸을 잠시 녹인 다음엔 방문자 센터 주위에 고산 지대에만 서식하는 식물을 관찰해보는 것도 좋다. 멀리 나가지는 못했지만, 센터 주변으로 개성 있게 자란 식물의 사진을 찍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마치 4D 체험을 하는 것처럼 울퉁불퉁한 길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그토록 그리던 곳에 닿는다. “여기가 정말 지구구나”를 실감할 수 있는 웅장한 풍경. 태초의 지구를 다시 마주한 느낌이다.
이쯤 되니 입에 붙은 마우나케아라는 이름의 뜻이 궁금해졌다. 마우나케아(Mauna Kea)는 하와이어로 하얀(Kea) 산(Mauna)이라는 뜻이다. 산의 고도가 높기 때문에, 겨울에는 산봉우리까지 눈이 덮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우나케아 정상에 오르면 거대한 천체망원경을 볼 수 있다. 해발고도가 높고 태평양 한가운데 뚝 떨어져 있는 마우나케아는 지구에서 천체망원경을 건설하기에 적합한 장소 중 하나이다. 현재 하와이 주립대학이 운영하는 천체 망원경 2기를 포함해 총 12기의 망원경이 마우나케아 정상을 지키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바뀌는 색의 온도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태양이 우리를 등지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눈앞으로 아무것도 거스를 것이 없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산. 내가 서 있는 둔각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마우나케아가 보여줄 일몰을 기다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쭉 뻗은 구름들. 원형의 지구 위에 우뚝 서 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늘과 땅을 직선으로 나누는 자연의 단호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이 풍경, 어디서 많이 봤는데” 란 생각이 든다. SF영화의 주인공이 외딴 행성에 떨어져 지구를 그리워하는 분위기다. 폭발할 것 같은 태평양의 일몰을 바라보니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벅찬 생활도, 회색빛 고민들도 모두 한 톨의 먼지로 만들어준 이날의 일몰.
마우나케아는 일몰 맛집인 걸까. 정확히 해가 지는 방향에 스마트폰을 놓을 수 있는 지지대가 3~4개 설치돼 있었다. 보다 좋은 장면을 담으려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좋은 자리 사수에 나서야 한다. 스마트폰의 타임랩스 버튼을 누른 뒤, 기계가 추억을 담는 동안 눈으로 자연을 담았다. 태양이 점점 사라질수록 내려갈 때 역시 다가왔다.
마우나케아의 정상에서 내려오면 가이드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다시 방문자 센터로 안내한다. 바로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라는 뜻에서다. 마우나케아를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목을 꺾고 하늘을 바라보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자연 앞에 참으로 순수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별자리 앱을 깔아 이건 이 별, 저건 저 별 신나게 이름을 찾으며 태평양의 밤을 만끽하는 것도 순간을 즐기는 별미이다. 2년 전의 일이라, 안타깝게도 머릿속에 그때의 풍경이 생생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폰 7으로 찍은 사진이 이 정도니, 그날 마우나케아 위에 펼쳐진 우주의 융단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하버드대 졸업생 중 최우수 학생들만으로 구성된 히든 서클 중에는 '마우나케아' 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으면서 실제로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2살, 광란(?)의 대학교 3학년을 끝내고 찾아간 마우나케아는 '세계 최고'의 풍경과 감정을 전해 주었다. 여행을 함께한 어머니를 닮은 마우나케아의 당당함과 아름답던 일몰, 별까지.
이처럼 꿈꿔왔던 여행지를 간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이다. 바라던 곳에 왔으니 이제는 바라는 어디든 갈 수 있지 않을까. 멋진 풍경과 함께 너는 이 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하와이의 산. 이것이 바로 반짝거리는 태평양 수면 밑, 내가 발견한 마우나케아의 숨겨진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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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의 일각"
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의 대부분이 숨겨져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뜻하는 말.
이 때문에 억울하게(?)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 타이틀을 뺏긴 산이 있다.
누구나 꿈꾸는 환상의 휴양지, 하와이. 하와이 제도 중 가장 크고 젊은 섬, 빅아일랜드에 있는 마우나케아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빅아일랜드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마우나케아 산은 해발 고도 4205m로 해발 고도 8848m의 에베레스트 산에 비해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평균해수면을 기준으로 한 '해발'로 따졌을 때다. 하와이의 마우나케아를 산의 밑 부분인 해저부터 계산한다면 1만200m로 에베레스트 산보다 훨씬 높다. 누군가는 이 기준이 억지라며 고개를 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찰랑거리는 해수면 밑으로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마우나케아의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마우나케아에 올라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 투어 업체를 예약해 산에 오른다. 일몰을 보려면 오후 3~4시쯤이 적당하다. 넉살 좋은 가이드의 익숙한 인사를 시작으로 마우나케아 투어가 시작됐다.
"ALOHA!"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전,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 방문자 센터를 거쳐야 한다. 아직 정상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발끝으로 끝없이 펼쳐진 구름을 보고 있자니 벌써 황홀해진다. 방문자 센터에는 마우나케아를 찾아온 전 세계의 관광객을 위한 따뜻한 물과 차가 준비돼 있다. 이때 추운 날씨, 따뜻한 물을 보고 머리속으로 컵라면이 스친다면 참 한국인 인증이다.
신발까지 173cm인 필자를 훌쩍 넘는 고산 식물
따스한 차에 몸을 잠시 녹인 다음엔 방문자 센터 주위에 고산 지대에만 서식하는 식물을 관찰해보는 것도 좋다. 멀리 나가지는 못했지만, 센터 주변으로 개성 있게 자란 식물의 사진을 찍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마치 4D 체험을 하는 것처럼 울퉁불퉁한 길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그토록 그리던 곳에 닿는다. “여기가 정말 지구구나”를 실감할 수 있는 웅장한 풍경. 태초의 지구를 다시 마주한 느낌이다.
이쯤 되니 입에 붙은 마우나케아라는 이름의 뜻이 궁금해졌다. 마우나케아(Mauna Kea)는 하와이어로 하얀(Kea) 산(Mauna)이라는 뜻이다. 산의 고도가 높기 때문에, 겨울에는 산봉우리까지 눈이 덮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우나케아 정상에 오르면 거대한 천체망원경을 볼 수 있다. 해발고도가 높고 태평양 한가운데 뚝 떨어져 있는 마우나케아는 지구에서 천체망원경을 건설하기에 적합한 장소 중 하나이다. 현재 하와이 주립대학이 운영하는 천체 망원경 2기를 포함해 총 12기의 망원경이 마우나케아 정상을 지키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바뀌는 색의 온도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태양이 우리를 등지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눈앞으로 아무것도 거스를 것이 없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산. 내가 서 있는 둔각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마우나케아가 보여줄 일몰을 기다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쭉 뻗은 구름들. 원형의 지구 위에 우뚝 서 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늘과 땅을 직선으로 나누는 자연의 단호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이 풍경, 어디서 많이 봤는데” 란 생각이 든다. SF영화의 주인공이 외딴 행성에 떨어져 지구를 그리워하는 분위기다. 폭발할 것 같은 태평양의 일몰을 바라보니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벅찬 생활도, 회색빛 고민들도 모두 한 톨의 먼지로 만들어준 이날의 일몰.
마우나케아는 일몰 맛집인 걸까. 정확히 해가 지는 방향에 스마트폰을 놓을 수 있는 지지대가 3~4개 설치돼 있었다. 보다 좋은 장면을 담으려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좋은 자리 사수에 나서야 한다. 스마트폰의 타임랩스 버튼을 누른 뒤, 기계가 추억을 담는 동안 눈으로 자연을 담았다. 태양이 점점 사라질수록 내려갈 때 역시 다가왔다.
마우나케아의 정상에서 내려오면 가이드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다시 방문자 센터로 안내한다. 바로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라는 뜻에서다. 마우나케아를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목을 꺾고 하늘을 바라보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자연 앞에 참으로 순수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별자리 앱을 깔아 이건 이 별, 저건 저 별 신나게 이름을 찾으며 태평양의 밤을 만끽하는 것도 순간을 즐기는 별미이다. 2년 전의 일이라, 안타깝게도 머릿속에 그때의 풍경이 생생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폰 7으로 찍은 사진이 이 정도니, 그날 마우나케아 위에 펼쳐진 우주의 융단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하버드대 졸업생 중 최우수 학생들만으로 구성된 히든 서클 중에는 '마우나케아' 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으면서 실제로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2살, 광란(?)의 대학교 3학년을 끝내고 찾아간 마우나케아는 '세계 최고'의 풍경과 감정을 전해 주었다. 여행을 함께한 어머니를 닮은 마우나케아의 당당함과 아름답던 일몰, 별까지.
이처럼 꿈꿔왔던 여행지를 간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이다. 바라던 곳에 왔으니 이제는 바라는 어디든 갈 수 있지 않을까. 멋진 풍경과 함께 너는 이 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하와이의 산. 이것이 바로 반짝거리는 태평양 수면 밑, 내가 발견한 마우나케아의 숨겨진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