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진은영 시인론: 함돈균 평론 및 시인의 발언 정리]
1. 진은영, 우리 시대의 전위
함돈균 평: “시인이자 실천가이며, 시의 정치성 논의를 촉발한 탁월한 문학이론가”
『훔쳐가는 노래』와 동시에, 문학이론서 『문학의 아토포스』로 시와 정치의 연계를 실천
2. 대표시 <있다>의 시세계 특징
존재의 확인과 부재의 감각을 동시에 드러냄
“늪 위로 쏟아지는 버드나무 노란 꽃가루가 있다”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감각적 이미지로 슬픔, 죽음, 상처를 시각화
“비에 젖은 속옷처럼”이라는 구체적 비유는 정서적 밀착성과 체화된 슬픔을 표현
3. 『훔쳐가는 노래』의 창작 배경
“정치의 작전이 아닌 애정의 부름을 따라서 참여시를 썼다”
김수영의 참여시를 미학적 기원으로 수용하면서도 새로운 방향 제시
“세상과 결합하는 방법으로 예술만 한 게 없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시기”
4. 상처와 세계의 관계
“자기 상처만 들여다본다고 병이 낫지는 않는다” → 타인의 상처에 한눈팔고 정신을 빼앗기는 일의 윤리
“이번 시집은 세계로부터 내게 배달된 부고에 대한 답장”
세계가 먼저 다가왔고, 시는 그에 대한 애도의 응답
5. 용산참사 이후의 전환
“6·9 작가선언” 이후 정치적 발언의 길로 들어섬
“아직 흡족하지 않지만 많은 격려가 힘이 됐다”
‘작가행동 1219’ 활동 중: 예술과 정치의 거리 좁히는 실천 중
6. 이론가로서의 정체성
철학 전공, 이화여대 HK연구교수
『문학의 아토포스』 등 시와 감각, 정치와 미학에 대한 이론적 글쓰기 지속
예술을 *“삶 속으로 걷는 행위”*로 정의
https://www.khan.co.kr/article/201212022136195
시인 진은영 “정치적인 것과 시적인 것의 조화 실험, 아직 흡족하지는 않지만 격려는 큰 힘”
2012.12.02 21:36 입력
시집 ‘훔쳐가는 노래’ 주목
시인 진은영씨(42)가 부쩍 문단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8월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창비)를 낸 그의 시 세계에 대해 계간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 겨울호, 월간 ‘문학사상’ 12월호 등이 호평 어린 분석과 인터뷰를 내보냈다. 4대강 개발, 용산 참사,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현 정부의 일방적인 개발정책과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청년실업을 계기로 젊은 작가들의 현실 참여가 늘어난 가운데 진씨의 시들이 ‘정치적인 것’과 ‘시적인 것’의 조화를 성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평론가 고봉준씨는 ‘문학사상’에 실린 ‘2012 문학계 연말 결산-시 부문’의 글에서 진씨의 <훔쳐가는 노래>가 주목받는 이유로 “정치에 대한 시적 응답이, 나아가 시와 정치라는 문제에 대한 응답이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발화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을 들었다. 소재의 차원에서 사회·정치적 사건들을 도입한 시편들은 상당히 많지만, 진씨의 시는 ‘감각적인 것의 분배/분할’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자본주의와 국가폭력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에 눈을 돌린다는 것이다. 필자는 진씨의 신작시집에 수록된 시 ‘있다’(인용)와 ‘세상의 절반’을 예로 들면서 “있음을 통해 존재를 증언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실행한다. 망각되고 비존재로 간주되도록 우리의 감각적 분할을 강제하는 것이 권력의 효과임을 상기시킨다”고 말한다.
‘문학과사회’에 ‘희망의 심연’이란 제목으로 진은영 시집의 리뷰를 실은 문학평론가 강동호씨도 ‘있다’라는 시에 특별히 주목했다. “진은영은 담담하고도 무람하게 어떤 사태들의 있음을 이미지들의 불연속체로 병렬시킴으로써 전경화하고 있다. 있다는 사실은 그저 즉자적 현실 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시적 언어의 가난함을 간신히 드러낼 뿐이지만, (…) 일면적인 낭패감을 불러일으키게 하기보다, 그 낭패감에 스며들어 있는 어떤 견고한 의지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면이 크다”고 지적한다. 또 신작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시적 의식으로 “궁핍한 세계의 근거 없음에 머물지 않고, 희망이라는 믿음의 형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 즉 희망의 토대를 사유하는 일”을 든다.
한편 문학평론가 함돈균씨는 ‘창작과비평’에 실린 진은영과의 대담 ‘청춘의 시인, 우리 시대의 전위가 되다’에서 “지난 이삼년간 진은영은 한국시단과 평단의 가장 핫한 아이콘 중 하나였다. 그녀는 시인이자 실천가였으며, 시의 정치성 논의를 촉발시킨 탁월한 문학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소개한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여기에 네가 있다 어린 시절의 작은 알코올램프가 있다
늪 위로 쏟아지는 버드나무 노란 꽃가루가 있다
죽은 가지 위에 밤새 우는 것들이 있다
그 울음이 비에 젖은 속옷처럼 온몸에 달라붙을 때가 있다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깨진 나팔의 비명처럼
물결 위를 떠도는 낙하산처럼
투신한 여자의 얼굴 위로 펼쳐진 넓은 치마처럼
집 둘레에 노래가 있다
- <있다> 부분
진씨를 “세 번째 시집의 시들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자기 시론을 가진 드문 시인”(함돈균)으로 만들어준 글은 ‘창작과비평’ 2010년 여름호에 실린 ‘한 진지한 시인의 고뇌에 대하여’이다. 이 글에서 진씨는 “정치의 작전이 아닌/ 애정의 부름을 따라서” 참여시를 썼던 김수영을 현존하는 시의 한계를 확장하는 미학적 기원으로 끌어왔다. 함씨와의 대담에서 진씨는 “<훔쳐가는 노래>는 세상과 결합하는 방법으로 예술만 한 게 없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시기에 쓴 것들” “자기 상처만 정색하고 들여다본다고 병이 낫지는 않는다. 남의 상처나 삶에 한눈팔고 정신을 빼앗기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학동네’에서 진행한 소설가 김연수씨, 사회학자 김홍중씨와의 대담에서도 진씨는 “그전의 시집이 비명이든 선언이든 내가 즉각적으로 내지르는 표현이었다면, 그러니까 먼저 띄운 편지 같은 것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세계로부터 내게 배달된 편지들에 대한 답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금 서글픈 것은 받은 편지가 주로 부고의 형태로 나에게 날아왔다. 상처를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강해지고 치유된다”고 밝혔다.
자신의 시집에 대한 반응을 접한 진씨는 “용산참사 직후 6·9 작가선언을 계기로 문단에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시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하게 됐다. 지금의 시적 실험이 아직 흡족하지 않고 낯설지만 많은 분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철학 전공자로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의 HK연구교수인 그는 요즘 동료들과 함께 ‘작가행동 1219’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https://m.blog.naver.com/blackhole68/223584264553
"단 한 사람을 걱정하는 문학의
안간힘"...진은영 시인이 문학을
읽는 이유
"단 한 사람을 걱정하는 문학의 안간힘"..진은영 시인이
문학을 읽는 이유
진은영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한국일보 '다시 본다, 고전' 연재 엮어
시인에게 문학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진은영 시
인의 에세이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에는 세상과 불
화를 겪으며 문학에 의지해 인간애를 회복해온 시인의
시간이 담겨 있다. 진 시인이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
까지 '다시 본다, 고전'이란 이름으로 한국일보에 연재한
문학 서평을 엮었다
진 시인은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
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
장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책머리에 썼다. 문학 속 주인공
을 벗해 희망을 찾고자 한 시인의 절실함, 그것을 알아보
는 용감한 독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간절함이 느
껴지는 대목이다
진 시인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백석, 존 버거, 알베르카
뭐, 시몬 베유 등 전력으로 글을 쓴 작가들의 작품 안으
로 성큼 들어가 '지금, 여기'를 말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읽으며 여성의 글쓰기를 허락하지 않은 시대에
작가이자 피고로 살아야 했던 브론테 자매를 주목하고,
소수자성이 드러나는 순간 일상을 억압받는 한국 사회
의 소수자들로 시선을 옮긴다.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
도'를 읽으면서는 400년간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외교
관으로도 살다가 결국 시인이 되는 올랜도를 통해 모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사회를 기원한다. 진 시인
이 "한없이 다정하고, 비명이 나올 만큼 끔찍하다"고 묘사
한 문장들은 현실 세계의 고통을 직시하게 하고, 실패란
결코 어리석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시인에게 문학은 결
코 쉬운 위로가 아니다. 고통과 슬픔 속에 남겨진 사람을
지키려는 안간힘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