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요? 그거는 서울·수도권 얘기지요. 지방은 그런 거 없어요. 규제 해제요? 그것도 마찬가지죠. 이미 지난해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된 지역들도 조용하잖아요. 이런 것 갖고는 어림도 없어요.”
30일자로 투기과열지구·주택투기지역에서 모두 해제된 울산시 남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의 설명이다. 투기과열지구·주택투기지역에서 해제되면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지고 대출 규제도 완화된다.
그러나 남구는 조용하기만 하다. 쌓여 있는 미분양 아파트도 아직은 팔리지 않는다. 이번에 남구와 같이 투기과열지구·주택투기지역에서 해제된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다. 규제 해제 효과가 전혀 없는 셈이다.
지방 투기과열지구·주택투기지역 모두 해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는 지방 분양시장을 살리기 위한 조치로 울산 남구·울주군, 부산 해운대구 등 지방에 남아 있던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을 30일자로 모두 해제했다.
이로써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투기과열지구ㆍ 주택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한 곳도 없게 됐다.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되면 원칙적으로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이 없어지고, 5년 이내 당첨자에 대한 청약 1순위 자격 제한도 풀린다.
또 주택투기지역에서 해제되면 주택에 대한 담보인정비율(LTV)이 40%에서 60%로 높아지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40%)와 신규 주택담보대출 1건 제한 규제 등도 없어진다.
특히 이번 조치는 2월 25일 출범할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서울·수도권 일부 지역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그 효과에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상품성이 높은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최근 부산 해운대구에서 분양한 해운대 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는 바닷가에 지어지는 초고층이라는 점 등으로 순위 내 청약 경쟁률이 평균 2대 1을 보이는 등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해운대구가 30일자로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돼 계약 후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지면서 이른바 떴다방까지 몰려드는 등 과열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상품성이 좋은 데다 계약 직후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편”이라며 “이번 투기과열지구 해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개별 상품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약발 없어
그러나 일부 단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파트들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해운대구 반송동 H공인 관계자는 “돈 될 것 같은 일부 단지를 제외하고는 주택 수요자를 찾아 보기 힘들다”며 “이번 조치로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진 물량이 꽤 많지만 찾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이번에 투기과열지구·주택투기지역에서 모두 해제된 울산 울주군에서 아파트를 분양 중인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인수위가 지방 규제 지역을 모두 해제하겠다고 하면서 약간은 기대를 했었는데 규제 해제 발표 다음날이나 해제된 직후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며 “문의 전화 건수가 조금 는게 전부”라고 말했다.
울산시 남구 달동의 세기공인 김학수 사장은 “아파트 공급 과잉으로 아파트가 남아돌고 있는 상황이고, 대출 규제가 완화됐지만 대출 금리가 많이 올라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런 이유로 이번에 남구가 투기과열지구·주택투기지역에서 모두 해제됐으나 시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주택투기지역에서 해제된 충남 천안·아산시도 마찬가지다. 천안시 두정동의 U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9월 투기과열지구 해제 때도 그랬지만 이번 주택투기지역 해제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아파트값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한 부동산정보업체가 지난해 9월과 11월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된 지방 30곳 가운데 분양권 상태의 아파트가 있는 12곳을 대상으로 해제 직후부터 올해 1월 25일까지 분양권 시세를 분석한 결과 9곳이 보합세를 보였고, 3곳은 오히려 하락했다.
대구시 수성구(-0.01%), 대전시 유성구(-2.15%), 충북 충주시(-1.36%) 등은 투기과열지구 해제 후 오히려 떨어졌다. 부산 수영구, 울산 중구, 대전 동·중구, 충남 천안·아산·계룡시, 충북 제천시·청원군 등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공급과잉, 대출 금리 상승 등이 원인
투기과열지구·주택투기지역 해제에도 불구하고 지방 부동산시장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은 무엇보다 공급과잉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지방 주택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급과잉의 후유증이 심한 상태에서 또다시 대규모 분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번 규제완화가 공급과잉의 후유증을 상쇄하기는 너무나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대출 금리가 크게 오른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2% 가까이 급등했다. 이 때문에 주택투기지역 해제에 따른 대출 규제 완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방은 서울·수도권과는 달리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크지 않다. 아산시 모종동의 S공인 관계자는 “이명박 당선인이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으로 내놨던 주요 공약이 대부분이 서울·수도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며 “그런데 새 정부에 뭘 얼마나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때문에 분양가 상한제 한시 유예 등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구상공회의소는 31일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지방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한 상한제 적용 한시적 유예, 양도소득세 경감 확대 등을 인수위에 건의했다.
대구상의 관계자는 “지방 부동산시장미분양 주택 최초 구입자에 대한 양도세 한시적 면제, 지방의 공영택지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 미분양 주택 취득시 차입한 대출금 이자의 세액 공제, 미분양 주택의 임대 전환시 기금지원 확대 등 특단의 대책 없이는 지방 부동산시장을 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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