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기행 3]
ㅡ명사의 땅ㅡ
여행 2일째다. 어느새 일정 중반에 접어든다. 통영은 눈에 담을 곳이 많아 동분서주다. 학림섬을 뒤로하고 다시 달아항에 내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기념관으로 향한다.
기념관 뒷산에 잠든 주인공은 26년간 역작 '토지'를 집필하며 의지력을 보여준 명작가이다. 40대인 1969년 집필을 시작하여 60대 후반 1994년에 완간한 소설이다. 독자들의 영원한 우상으로 남아있어 그가 떠난 후 운명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지난 여행 때 휴관일이어서 헛걸음했는데 기회가 되어 성공적 관람이다.
기념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 청아한 생전의 모습에서 인자함이 드러난다. 편안해 보이는 작가의 얼굴은 티없이 맑고 가식 없어 보인다.
뜰앞의 감나무에서 채 익지 않은 감이 땅바닥에 뒹굴어 있다.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 소설 속의 파란만장한 삶을 대신하는 느낌이다. 그의 글마다 애환이 담긴 우리네 여정을 옮겨놓은 현실같다.
'토지'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때까지의 내용을 다룬 가족사 소설이다. 최참판 일가의 평사리 무대를 시작으로 만주지역까지 지리적 배경을 그린 작품이다. 3대에 걸쳐 펼쳐진 이야기를 언제 다 읽을까!
우리 곁은 영원히 떠났지만 하늘에서 '토지' 이상의 대작을 남길 것이다. 명작을 남기고 떠난 그는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통영은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배출한 땅이다. 작곡가 윤이상을 비롯한 정용주와 공예가 김봉룡이 있다. 서양화가 김용주와 유치환 시인과 김상옥 시조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 통영에 국제 음악당이 세워지게된 계기는 유명 예술인의 노고로 여긴다.
후대가 홀대하지 않고 명인을 기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문대학원 석사 과정 때 김상옥 시인의 시에 반해 '김상옥 시조 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되었다. 지난번 여행 때 '향남 1번가' 생가를 찾았는데 내부 수리중이어서 돌아섰다. 김작가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이 있다. 이번 단체 여행에서도 방문 일정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일제 강점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동양 최초 통영해저터널은 92년의 세월이 흘렀다. 통영 남단과 미륵도를 연결하여 자동차는 물론 우마차와 인도로 이용한 해저터널이다. 터널 굴착 공법(TBM)이 아닌 물막이로 1년 4개월에 걸쳐 완공했다.
해저터널 입구에 '용문달양 龍門達陽' 초서체가 새겨져 있다. 용문을 지나면 밝은 세상에 도달한다는 뜻이며, 당시 일본인 통영읍장의 글솜씨라고 한다. 2005년 등록문화재 201호로 지정한 483m의 해저터널이 지금은 관광객 인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통영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굴마당 맛집이다. 양념게장과 생선구이에 전煎을 곁들여 푸짐한 밥상이다. 수많은 맛집 중에 선택된 것도 행운이다.
ㅡ빛과 소리의 향연ㅡ
통영의 밤바다는 환상이다.둥근달과 별빛도 한몫한다. 다도해의 관문인 통영 앞바다는 이태리 나폴리를 연상시킨다. '충무공 유람선 별빛투어' 배를 타기 위해 도남선착장으로 향한다.
어둡기 전 통영 반도의 광경을 미리 눈에 담는다. 한 시간 가량 유람하는 동안 어둠이 깔리면서 색색의 불빛으로 펼쳐진다. 문인들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세워진 연필모양 등대의 불빛도 동참한다. 통영대교와 충무교의 조명과 디피랑(디지털테마파크) 불빛까지 가세한 통영반도는 불야성이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지역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2017년 윤이상 작곡가 탄생 100주년 기획 행사를 개최한 음악당이다. 연주 행사가 없는 날 콘서트장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면서 건축물을 감상했다. 웅장한 건축물은 국제 수준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김대진과 손민수, 김태형 외에 수많은 연주자들이 음반을 녹음한 음악당이다. 첼리스트 양성원과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도 연주할 때 녹음한 장소이다. 1309석의 콘서트홀은 연일 음악 소리가 울려퍼진다.
매년 봄이면 국제 콩쿠르 행사를 여는 예술의 도시 통영이다. 바다에서 음악당 옆모습을 보는게 매력이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를 본떠서 설계한 건물이라고 한다.
통영국제음악당을 떠올리면 윤이상尹伊桑이다. 1998년 초기 가곡을 중심으로 한 윤이상 가곡의 밤이 기획됐다. 1963년 북한 방문을 빌미로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된다. 음악가 181명의 서명운동으로 1969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난다. 1972년 뮌헨 올림픽 개막작으로 오페라 '심청' 을 작곡한다. 대작인 '광주여 영원히!' 를 국제 무대에 펼치기도 한다. 그는 통영 땅을 밟고 싶지만,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1995년 베를린에서 향년 78세에 생을 접는다. 통영은 그를 그리는 음악을 쉼없이 하늘로 흘려보낸다.
통영국제음악제 창립 멤버 4인방을 떠올린다. 마산MBC윤건호 사장과 금호그룹의 박성용 명예화장이다. 그리고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장 김승근 교수와 김일태 시인이다. 2002년 월간 '객석'(대표 윤석화)을 중심으로 마산MBC와 공동 주최로 첫행사가 열린다. 이후 이홍구 전前 국무총리가 국제 음악제를 이어받아 궤도에 올려놓는 수훈을 세운다.
밤바다의 불빛을 보기 위해 통영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통영국제음악재단 김소현 본부장은 "낮에는 섬투어, 밤에는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이 늘어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여행 마지막 밤 숙소인 오페라 하우스의 불빛이 잠을 잊게 한다. 인구 12만의 아담한 도시 통영은 하늘 나라로 떠난 인물들이 다시 파도를 타고 돌아온 도시다. 명사들이 탄생한 통영에서의 마지막날 밤은 무박이다.
202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