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에 관음암(觀音庵)이라는 암자가 있다. 관음암을 오세암(五歲庵)이라고도 부른다. 설정스님은 설악산 관음암을 중수(重修)하고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과 함께 살았다. 10월 무렵 스님은 눈이 쌓이기 전에 겨울날 양식을 마련하려고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설정 스님이 물치장에 가서 장을 본 뒤, 돌아오려 하였지만 폭설로 신흥사에서 겨울을 보내게 된다. 다음 해 봄에 관음암으로 돌아오면서도 어린 조카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법당 안에 죽은 줄만 알았던 조카가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소재한 관음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을 오르면 만경대(萬景臺)에 ‘관음암(觀音庵)’이라는 암자가 있다. 관음암은 내설악의 대표적인 사찰인 백담사(柏潭寺)에 딸린 암자로, 643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 전기의 학자인 김시습(金時習)이 스님이 된 뒤에 머물렀던 곳이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도 머물렀던 곳이 관음암이다. 한편, 관음암을 ‘오세암(五歲庵)’이라고도 부르데, 오세암이라 부르게 된 유래를 설명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폭설에 살아남은 다섯 살 아이와 오세암(사진출처:한국문화원엽합회)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살아난 다섯 살 아이
조선시대 때 설정(雪頂)스님이 있었다. 설정스님은 설악산 관음암을 1643년에 중수(重修)하고,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과 함께 관음암에서 살고 있었다. 10월 무렵, 스님은 눈이 쌓이기 전에 겨울을 보낼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양양군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스님은 산중에 혼자 있을 어린 조카를 위해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외우고 있거라. 그러면 내가 내일 돌아올 것이다.”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는 설악산을 넘어 양양으로 떠났다.
설정스님이 양양 물치장에 도착해 장을 본 뒤 신흥사(新興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에 와서 하룻밤 묵었다. 그런데 밤새 폭설이 내려 어른의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다. 설악산을 넘을 수가 없게 된 스님은 하는 수 없이 신흥사에서 하룻밤 더 묵고, 다음날 산을 넘어 관음암으로 돌아오려 하였다. 그러나 폭설이 계속 이어지고, 결국 그해 겨울을 신흥사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스님은 혼자 속을 태우다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관음암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관음암으로 돌아오면서도 어린 조카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관음암에 도착할 무렵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들려 왔다. 스님은 달려서 법당의 문을 열어보았다. 법당 안에는 죽은 줄만 알았던 조카가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목탁을 치고 있는 조카를 본 스님은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물었다. 어린 조카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늘 찾아와서 젖을 주어 살아 있었다.”라고 하였다. 어린 조카의 말이 끝나자 흰 옷을 입은 젊은 부인이 설악산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어린 조카에게 ‘관음지기(觀音之記)’를 주고서는 파랑새로 변하여 홀연히 날아갔다. 스님은 다섯 살의 조카가 도(道)를 얻었다고 해서 그 후부터는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어린 아이의 순수성이 담긴 오세암
오세암 설화는 주인공인 어린 아이의 순수성이 돋보인다. 특히 감동적인 서사성으로 인해 동화, 애니메이션, 영화, 뮤지컬 등으로 창작되었다. 다섯 살 된 아이가 홀로 암자에 남아 있다가 폭설 속에서 관음보살의 보살핌을 받아 목숨을 구하였다. 그리고 득도하여 그 암자를 ‘오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폭설로 세상과 고립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상황에서 관음보살의 보살핌을 받는다. 눈은 아이에게 고립과 시련을 주는 동시에 아이가 관음보살의 현신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진실되고 거짓 없는 순수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어린 아이가 지니는 환경적 결핍은 자신을 돌봐 준 설정스님과 관음보살의 사랑으로 충족된다.
첫댓글오래전 그러니까 '67~8년도쯤 대학 졸업하고 몇 년 되지 않았을 때 금강굴 근처에서 켐핑하고 탠트와 배낭등 잔뜩 짊어지고 마등령을 지나 오세암에서 불전에 시주하고 하룻밤을 신세진적 있었습니다. 그날밤 방 구들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잊히지 않네요.ㅎ 오래전의 오세암 설화를 다시 되세기고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미션님 고맙습니다.
첫댓글 오래전 그러니까 '67~8년도쯤 대학 졸업하고 몇 년 되지 않았을 때
금강굴 근처에서 켐핑하고 탠트와 배낭등 잔뜩 짊어지고 마등령을 지나
오세암에서 불전에 시주하고 하룻밤을 신세진적 있었습니다.
그날밤 방 구들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잊히지 않네요.ㅎ
오래전의 오세암 설화를 다시 되세기고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미션님 고맙습니다.
감동~글잘봤쓰욤~^*^
" 폭설에 살아남은 다섯 살 아이와 오세암"
강원도 설화 잘 읽었습니다.
강원도 설화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