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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술이 뭐신디?
폭탄주로 내기하지 말라
폭탄주의 제조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역사도 장구하고 특정 집단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만드는 것도 많아서, 어느 것이 옳다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 섞어 마시는 술을 칵테일이라고 하지만 폭탄주는 칵테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아는 폭탄주도 열 가지 정도 되지 싶다. 맨 처음 마셔본 폭탄주는 소사비, 즉 소주,사이다,맥주로 만든 술이다 . 유리잔에 3,3,4로 넣는 것이 기본이지만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렸다. 요즘 사이다는 빠지고 소주와 맥주로 폭탄주를 만든다.
완전 대중주가 되어 누구든지 마시는 술이 되었다. 그 다음에 막사이사이. 이 술은 막걸리와 사이다를 넣어 만드는데, 그 비율 도 각자 마음대로다. 지금도 찾는 손님들이 있다. 여기에 얼음 을 넣으면 막사빙이 되는데 관건은, 빨리 마셔야 하는 것이다.
얼음이 녹도록 있으면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휘저어서 단숨에 완샷하는 것이 원칙이다. 양주와 맥주가 기본인 폭탄주가 한 때 술꾼들 사이에서 오래 유행을 했다. 제조 방법이 여러가지인데 내가 만들어 본 것은 세 가지다.
맥주잔에 양주잔을 놓은 뒤 양주를 잘 따라서 뇌관을 만든다. 그 다음에 맥주를 붓는데 나름 기술이 필요하다. 거품을 절대로 만들어선 안되기에, 잔 가장자리에 병을 대고 천천히, 고요히 부어 뇌관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이 술도 단숨에 마셔야 한다.
특급은 뇌관을 맥주로하고 채우는 술이 양주이다. 리큐르나 와인류는 안되고 오로지 위스키다. 보드카로 만들어 마시다가 응급실로 실려간 예도 보았다. 맥주잔에 양주와 맥주를 동시에 붓는 폭탄주도 있다.
다 부은 다음에 휴지를 덮고 돌리는데 회오리가 예쁘게 생길수록 잘 만든 술이다. 회오리를 만들고나서 휴지를 던져 벽에 찰싹 붙이는데, 떨어지면 벌주를 마시기도 한다.
소백산이라고 해서 소주와 백세주를 섞은 뒤, 썬키스트오렌지 쥬스를 넣어 마시는 폭탄주도 있다. 오십세주는 쥬스를 뺀 것이 다. 맥주, 소주, 콜라를 섞어 만드는 것은 소콜라라고 불렀는데, 음주에 약한 사람들이 넙죽넙죽 잘 마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가버린다 .
칵테일, 블러드메리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토마토쥬스인줄 알고 마시게 하는 블러드메리는 남자들이 잘 사용하는 수법이다. 매실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로두꺼비를 넣어서 만드는 술도 있다. 그러니 폭탄주는 만들기 나름이다.
그럼 나는 폭탄주를 한 자리에서 맥시멈으로 몇 잔이나 마셔 보았을까? 17잔인데 내가 원해서 마신 것은 아니고 어쩌다가 내기에 걸려 그렇게 되었다. 늘 모이는 멤버들이 모였는데, 새로운 사람이 한 명 끼어 있었다. 처음부터 나와 내기를 하자고 말했다.
백만원 내기였는데 원래 나는 도전을 걸어오면 거부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말을 아주 싸가지없이 하면서 여자가 마셔봐야 얼마나...하는 어투가 나를 건드렸다. 그 때의 나는 그랬었다.
양주 뇌관의 폭탄주를 동시에 마시는데, 나는 안주를 과일과 비스킷, 초컬릿으로 했고 그는 기름진 중국 음식을 시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둘러보는 가운데 술내기가 벌어졌다. 마신 술잔을 자리에 나란히 세워 가면서 마시는데 몇 잔을 그가 매우 급하 게 마셨다. 그러니 나도 그렇게 마실 수 밖에.
열 잔이 넘어가면서 마시는 속도가 좀 느려졌다. 나는 그의 페이스대로 똑같이 마셨고 그는 좀 놀라는듯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받아주고 마시고 먹었는데, 나는 전혀 취기를 느끼지 않았다. 나의 음주사의 절정인 시절에 한 자리에서 700미리 양주 두세병 마시는 것은 예사였다.
그는 무리해서 안주를 먹는 것이 보였고, 아마 덜 취하기 위해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나 폭탄주의 안주로 중국 음식만큼 나쁜 것은 없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음식과 술을 즐기면서 먹는 것은 문제가 안되지만, 비즈니스로 마신다든지, 내기엔 중국요리 를 안주로 삼는 것은 아니다.
17잔 째의 술을 나는 마셨는데 그는 반도 마시지 못 하고 내려 놓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의 승! 테이블 위에 있던 백만원짜리 수표를 핸드백에 넣고 술자리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가야겠는데 사람이 오지 않으니 전화를 여러번 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 때 전화가 왔는데 경찰서였다. 여자들은 돌아가고 나만 따라 갔는데 기가 막힌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배동의 그 술집을 나온 그는, 대로에 세워져 있던 경찰차를 벽돌로 내리쳤고 경찰관도 다치게 했다.
연행되어 가면서도 난리를 치고 그런 행패를 부리다가 기절했고, 깨어난 곳이 유치장이었다. 폰은 잃어버리고 그가 깨어나서야 우리와 통화가 된 것이었다. 그는 술집을 나간 이후의 일을 전혀 기억 하지 못했고, 그 시절은 그래도 돈과 인맥이면 그 정도의 사건은 무마가 되었다. 그 이후 몇 번의 술자리가 있었으나 그는 나를 깍듯이 주선으로 모셨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