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니is입니다.
인소닷에는 항상 연애소설로 찾아 뵙었는데, 게임 판타지 글로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꽤 많은 비축분이 있기에, 하루에 두편 이상 씩 연재를 할 생각이며, 오늘은 세편 분량입니다.
인소닷엔 연재를 못했지만 이전에 퓨전 글을 출판했다가 스스로 쉽게 생각하다 5권에서 말아먹고..
후속작으로 정신 차리고 적은 글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가면의 기사는 게임 판타지입니다.
말머리에 게임 판타지는 없어서, 판타지로 설정한 것이며, 게임 판타지라는 점! 기억하시고 읽어주세요.^^
# 1
진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여동생 은하를 바라봤다. 또 시작이었다.
‘이 계집애는 진짜 만만한 것이 난가?’
혼자 진지하게 고민을 할 때 은하가 불쌍한 표정으로 다시 설득했다.
“오빠도 라스트 월드 하자!”
“나 이제 게임 안 한다니깐?”
짜증난 목소리로 단번에 거절하는 진하.
벌써 두 달째다. 게임을 접은 자신에게, 새로운 게임을 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정말 이렇게 나오지이~?”
은하가 말끝을 질질 끌었다.
진하는 순간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움찔한 모습을 티내지 않으며 태연한 척 했다. 은하는 남들이 보면 눈을 돌리기 힘들다는 어머니의 얼굴을 꼭 빼닮았기에 참으로 예뻤지만 문제는 성격이다.
독하고 잔머리를 잘 쓰는 계집애. 그것이 진하가 생각하는 은하였다.
‘불안하게 왜 이래?’
진하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지만 의외로 은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을 질질 끈다는 것은 기분이 상했다는 뜻이었는데···
그런데 그때 은하가 정말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할 말을 끝까지 다 하였다.
“오빠. 나 정말 오빠 상처 받을까봐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아 말해도 되나? 아니다. 그냥 하지 말까? 아냐, 아냐. 오빠를 위해서라도 해야겠어. 오빠 은진이 언니 알지? 모를 리가 없겠지. 그 언니 때문에 게임도 접고 세달 째 술만 먹고 살고 있으니…”
은하의 말에 진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은진이는 진하와 동갑이었으며 은하의 소개로 만난 게임을 광적으로 좋아하던 첫사랑이었다. 그런 은진에게 진하는 첫 눈에 반하게 되었고 평소 하지 않던 게임까지 하며 은진과 커플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진하는 군대를 피할 수 없었으며 1년 2개월의 기간 중, 제대를 여섯 달 앞두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바로 이별이었다.
그 후 진하는 제대를 하자마자 은진이를 찾았지만 연락도 되지 않았고, 만날 수 없었다.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과 그리움에 한 달이란 시간동안 은진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진하는 은진을 보내주기로 결심하였다. 이미 마음이 변했다면 사랑은 끝난 것이었다.
그리고 진하는 모든 것을 체념하며 오랜 기간 분신처럼 키워왔던 캐릭터와 아이템을 다 처분하였고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술을 마시며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 다 잊어주마! 라고 생각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괴로움에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은진이라니?’
진하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은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승리를 만끽했다. 언제나 저 단순한 오빠는 자신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창회에서 찬성이 오빠랑 친한 동생을 만났는데…”
찬성이는 게임에서 알게 된 진하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다.
진하가 랭킹 2위를 하고 군대에 입대 했을 때, 찬성이는 랭킹 1위를 하고 있었고, 군 제대 후 은진의 소식을 묻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은진과 마찬가지로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걔 말이 찬성이 오빠랑 은진이 언니가 오빠랑 헤어지자마자 사귀었다고 하던데? 그런데 걔가 말한 시기가 은진언니가 아직 오빠랑 사귀고 있을 때였어. 그리고 둘이 지금 라스트 월드를 하고 있대. 고렙이라던데···”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는 말이 이럴 때 하는 것인가? 진하는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설마, 설마 했었는데…
“너… 그, 그 말이 사실이야?”
“거의 백 프로 확실해.”
진하는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여자 친구와 친했던 친구 놈이 이렇게 뒤통수를 풀스윙으로 때릴 줄이야.
“아, 아니야. 찬성이와 은진이가 정말 그랬다면 나한테 솔직히 말했겠지. 안 그래?”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진하의 말에 은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오빠다.
“오빠…? 나 같아도 그러겠는데? 오빠가 비록 예전보다는 좋아졌다 할지라도··· 여전히 성질 더러우며, 한번 화나면 앞 뒤 안 보이는 사람인데 누가 그 사실을 말하겠어?”
“내가 얼마나 착한데! 젠장. 그 자식 어디 있어?!!”
진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묻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진정시키는 은하.
“왜? 가서 두들겨 패게? 오빠… 요즘 세상이 어떤 시대인데? 지금이 무슨 2020년 인 줄 알아? 지금은 2030년이야! 사람 한번 잘못 때렸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래? 한때는 친구였어도 지금은 오빠의 여자까지 가로챈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아직도 오빠를 친구라 생각 할 것 같아? 그리고 원래 찬성이 오빠 성격이 차가운 편이잖아? 그런 사람이 맞고도 가만히 있겠다? 그리고 연락도 안 되잖아? 어떻게 만나려고?”
진하는 뛰어나가려던 육체를 힘겹게 멈추며 이를 악물었다.
만약 지금 찬성이를 만나고 이 모든 얘기가 사실이라면? 이성은 원하지 않아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을 피하기로 작정한 둘을 만나기도 힘들었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 말인가?
진하가 생각에 잠기자 은하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말한다. 예쁜 미소였지만 은하를 잘 아는 진하에겐, 소름이 끼치는 미소였다.
“오빠. 현실에서는 찬성 오빠를 패면 안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지.”
“무슨?”
“10년간 준비 과정을 거친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라스트 월드! 유저가 직접 캐릭터가 되어 게임을 플레이 하는 또 다른 세상. 현실을 최대한 반영한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닌 세계. 그곳이라면 오빠가 찬성 오빠를 때리든 죽이든 아무런 문제가 없지. 더군다나 게임 세상이지만 고통을 줄 수도, 느낄 수도 있으니··· 물론 찬성 오빠의 레벨을 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리고 은진 언니도 볼 수 있고…”
은하는 자신의 단순한 오빠를 바라봤다.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이다. 오빠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던 은하는 성공했다는 쾌감과 함께 열심히 설명을 하려다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크크크큭. 그렇군. 그래. 그렇지. 거기라면 때리고 죽여도 괜찮지.”
만화에서나 나오는 웃음소리가 진하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진하 역시 라스트 월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물론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게임을 아무리 하고 있지 않는다 해도 모를 일 없었다.
“둘의 레벨이 몇이지?”
“으…응? 200대 후반이었던가… 난 몰랐는데 찬성 오빠 후배한테 아이디를 들어보니 tv에도 나온 적이 있는 고렙이었어.”
은하는 한 걸음 더 물러서며 대답했다. 평소에는 자신의 밥인 오빠지만 지금 저런 상태일 때는 건들면 위험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크크크큭… 좋아. 감히 나를 엿 먹였겠다? 아주 둘 다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감히 나를 속여? 으하하!”
은하는 점점 광분을 넘어서 미쳐버린 진하의 방을 서둘러 빠져 나왔다.
“저 인간 완전히 미쳤잖아? 너무 자극 시켰나?”
비록 사실을 말한 것이지만 극도로 흥분한 진하를 보니 마음이 불편한 은하였다.
자신 역시 그 사실을 들었을 때 얼마나 화가 났던가··· 그렇다고 이제와 바람피운 것이라 말하며 난리치는 것도 웃겼다.
하지만 진하에게는 사실을 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했다.
“이젠 술에만 의존해서 잊으려고 하지는 않겠지…”
그런 은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하는 이불을 물어뜯으며 라스트 월드를 외치고 있었다.
라스트 월드를 플레이하기로 결심한 다음날 아침.
진하는 담배를 피우다 곧 전화기를 바라봤다. 어제만 해도 함께 술을 마셨던 후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름은 이기적. 곰과 같은 덩치와 얼굴을 소유해서 별명도 곰인 녀석이다. 그리고 전 게임에서도 진하와 함께 플레이하며 몸빵 전문 캐릭의 소유자였으며, 이름이 특이하게 이기적이 된 이유는 당시 기적이의 부모님이, 기적이를 낳았을 때 사기를 당하셨다. 그래서 자신처럼 남을 믿지 말고 이기적인 놈이 되라고 지어주셨다는… 하필 성까지 이라서 절묘한 이름이 탄생 한 것이다.
‘난 공격력 위주로 키우기에 혼자서 하는 것 보다는 몸빵을 해줄 놈이 필요하다.’
결정을 내린 진하는 전화번호를 말했고 곧 음성 인식과 함께 기적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행님!!”
“기적아 너 요즘 게임 하는 것 있냐?”
갑작스런 진하의 질문에 기적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게임예? 음… 그거 할낀데. 그 뭐드라? 라스트 월드예.”
“그래?”
진하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만약 기적이가 게임을 먼저 시작해서 렙이 높다면 파티 플레이 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나도 그거 시작할거다. 같이 하자.”
진하의 말에 기적은 깜짝 놀란 듯 외친다.
“행님이예? 행님 겜 안 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꺼?”
“자세한 이유는 몰라도 되고 꼭 해야 된다. 예전처럼 함께 하자.”
“행님이 같이 하신다면 지야 좋습니더! 그럼 라스트 월드 저희가 접수하는 겁니꺼?!”
“그래. 늦게 시작하지만 우리라면 가능하겠지. 아니, 가능해야한다. 나는 일주일 뒤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너는?”
“행님. 그럼 지도 그때부터 시작할께예.”
“그래. 그럼 일주일 뒤에 다시 연락하마.”
전화를 끊은 진하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기적이라면 자신과 비슷한 폐인이었다.
6년 전 서울에 상경을 해서 아직도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후배이며, 한번 게임을 시작하면 일어설 줄 몰랐고, 둘 다 불면증에 포기를 모르는 게임을 하기엔 최적화된 인간들. 그런 놈이 함께 한다면 나중에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 이다.
결심을 한 진하는 빠르게 움직였다. 무턱대고 게임을 시작하는 것보다 그 게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고 일주일이란 시간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진하는 가장 먼저 라스트 월드 홈피에 들어가 기초적인 것들을 보고 알아가기 시작했고, 다음으로는 실질적인 유저인 은하와 아이템 거래 사이트, 까페, 방송 등을 통해 정보를 입수했다.
진하는 감탄했다. 라스트 월드의 영상은 정말로 현실과 다를 것이 없었으며 넓은 땅과 세계들, 그리고 수많은 직업들과 유저들로 인한 금전적 가치까지 어디 하나 부족할 것이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이제 게임을 선보인지 9개월이었고, 게임 시간으로는 2년 3개월이었다.
현재 라스트 월드를 이용하는 전 세계 유저는 칠천만 명이 넘었으며, 당연히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였다. 이 짧은 기간에 이 정도 성장을 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동안 또 다른 세상 즉, 가상현실 게임을 얼마나 원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결과였다.
더 이상 게임이 무시 받던 시절은 사라졌다. 이젠 10대, 20대는 물론 어른들조차 라스트 월드로 대화를 하는 시대였고,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 정도로 또 다른 차원의 자신!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은, 게임을 좋아하던 유저들은 물론, 게임을 안 하던 이들조차 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고, 어른들 역시 판타지 책이나 영화를 보며 한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세계가 현실로 이루어지자 라스트 월드에 푹 빠져 들었다.
다른 나라의 기술적인 도움은 받았지만 핵심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후, 출시 된 라스트 월드는 방송에도 자주 나오며 시청률도 높았다.
라스트 월드가 이렇게 인기를 얻은 이유는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이란 이유가 크지만, 다른 이유로는 시간의 개념이었다.
슈퍼컴퓨터 12대와 과학의 결합으로 현실 시간의 3배가 적용되는 라스트 월드의 세계. 게임에서 세 시간이 현실에서는 한 시간이었니, 시간이 없어서 못하던 직장인들이나 학생들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고, 때로는 현실의 모임을 시간이 많아지는 게임에서 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현실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과 테스트를 통해 기존 스텟에서 +되는 형식.
같은 레벨에, 같은 스킬을 쓰더라도 얼마나 익숙하고 수련을 하였나에 따라 차이나는 위력, 스스로 발전을 통해 능력의 기본이 되는 레벨에 +힘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 등등… 정말 현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라스트 월드에 감탄하며 알아가는 동안 일주일이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것은 깨우친 진하는 그 날 저녁 집 2층에서 운영하는 도장으로 향했다.
# 2
도장은 진하의 아버지인 박하가 운영하였으며, 진하가 사범으로 있을 예정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은진으로 인해 게임에 빠졌던 진하였기에 지금은 은하가 사범으로 일을 돕고 있었다.
그래서 은하의 레벨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이었다. 원래 게임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도장에서 사범으로 일을 했기에… 시간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압!”
“으랏차!!”
도장에 들어온 진하의 눈에 아버지와 은하가 보였다.
“아버지.”
진하가 들어서자 아버지인 박하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수배자처럼 생긴 아버지의 얼굴과 덩치를 보며 엄마를 더 닮은 것이 내심 다행이라 느껴지는 진하였다.
“라스트 월드 시작한다고?”
아버지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하고 계시다면서요? 은하 말로는 벌써 2차 전직을 한 레벨 100대의 장인이라면서요?”
“하하. 어쩌다보니 하게 되었다. 어릴 때 책을 읽으며 그런 세상을 꿈꿨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놀랍더구나. 재미도 있고 말이야. 네 놈이 시작하면 100렙 까지 아이템은 내가 책임지마!”
라스트 월드에는 여러 장인이 존재했다. 그들은 보통 생산직이나 예술직으로 분류되고 그 안에서도 여러 나뉘는데 그들의 목표는 대부분 하나였다. 돈을 버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템을 만들고 옵션을 추가 시키는 장인이나 약초 등 제조를 하는 장인의 경우는 꽤 수입이 짭짤한데 진하의 아버지 박하 역시 그 중 하나였고, 그의 경우는 아이템에 두 가지 옵션을 추가 시킬 수 있었다. 물론 성공 확률이 백 프로 인 것은 아니다.
아이템에 옵션을 추가 시키는 것은 2차 전직을 하면 하나는 백 프로 성공이지만 두 번째는 성공 확률이 극히 낮다. 그리고 아이템이 높은 등급 일수록 성공 확률은 더욱 낮아진다.
“저 잠깐 몸 좀 풀고 갈게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진하는 곧 도장 안쪽에 존재하는 작은 규모의 수련실로 들어가 운동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해왔던 운동이었고 그로 인해 단련된 육체였다.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많이 변했군.”
한참 운동을 하던 진하는 실소를 흘렸다. 처음 게임에만 몰두하고 도장 운영도 안 도와주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군대를 갔다 온 후 캐릭터와 아이템을 처분한 금액을 보자 아버지의 태도는 변하셨다.
“도장이야 뭐 지금처럼 은하와 내가 하면 돼지. 넌 열심히 게임 하여라!”
절대적인 현실파 아버지였으며, 금전의 위력을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세달 동안 아무것도 안하며 술만 먹고 살았으니.’
진하는 그동안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던 아버지를 생각하다 재차 주먹을 내질렀다.
게임을 다시 시작하기로 하면서 진하는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일단 1차 목표는 복수! 그리고 두 번째는 은진을 만나는 것, 마지막은 바로 고렙이 되면서 얻게 되는 부수입이었다. 라스트 월드는 아이디와 비번으로 계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캐릭터 거래는 되지 않지만, 아이템 거래는 활발했고. 가치도 뛰어났으며 기존 게임들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진하는 그 날 저녁 밤새도록 찬성과 은진을 생각하며 몸을 푼 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을 청했다.
다음날 오후 진하는 라스트 월드 캡슐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스트 월드는 컴퓨터 앞에 앉아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닌, 최첨단 기술의 완성체인 작은 자동차 같은 캡슐에 들어가 가상현실에서 본인이 직접 캐릭터가 되어 플레이 하는 형식이었다.
그로 인해 캡슐 가격이 200만이나 하였지만 기존 게임에서 많은 돈을 벌었던 진하이기에 부담 없이 바로 신청 하였다. 그리고 한 달 정액요금 역시 15만원으로 고액이지만 게임 성능에 비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고 레벨이 된다면 나중에 정액요금 이상 벌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빨리 와라. 빨리…”
시련의 상처로 게임에서 손을 뗐던 진하이지만, 배반의 분노로 다시 게임에 욕망이 타오르자, 예전 게임을 하던 시절보다 더욱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게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이전부터 내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은 다 상관없었다. 오로지 찬성만을 생각하는 진하였다.
“기다려라. 찬성. 친구였다는 놈이… 꼭 내가 당한 아픔을 갚아주마. 그리고… 은진…”
진하는 은진을 떠올리며 잠시 두 눈을 감았다. 비록 어제는 흥분을 이기지 못한 체, 이불을 은진이라 생각하며 물어뜯는 소심함의 극치를 보였지만 그래도 사랑했던 여자였다.
‘조금만 더 살살 물어뜯는 것인데…’
어제 스스로 너무 소심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라스트 월드 회사에서 사람들이 도착하였다.
“여기가…”
“왔다! 왔어!”
라스트 월드를 설치하기 위해 온 사원들은 갑자기 달려들듯이 다가오는 한 마리 짐승을 발견한 후 깜짝 놀라며 한발 물러섰다.
핏빛 선 눈동자와 침까지 흘리며 캡슐을 바라보는 모습이 정상처럼 보이지 않았고…
“빠, 빨리 설치하고 가지.”
“그, 그러자고.”
그들은 귓속말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후, 서둘러 진하의 방에 캡슐을 설치하고 떠났다.
그 모습에 역시 잘 나가는 회사는 설치도 빠르구나! 만족하던 진하는 곧 캡슐 안에 몸을 안착했다. 캡슐은 편한 자세로 앉을 수 있었고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실처럼 얇은 붉은 빛이 진하의 전신을 체크하였다.
‘드디어 시작이군.’
곧 아무도 없는 캡슐 안에서 온화한 느낌을 풍기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라스트 월드 도우미 카르엔입니다. 이름:이진하. 나이:26. 성별:남. 신규 계정을 생성 하시겠습니까?”
“예.”
“신규 계정이 생성 되었습니다. 진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캡슐을 사용 할 수 없습니다. 캐릭터를 생성 하시겠습니까?”
“예.”
“닉네임을 선택해주세요.”
“눈류.”
진하가 이별을 선고 받기 전, 군대에서 은진을 떠올리며 지었던 닉네임이었다. 어릴 눈에 흐를 류. 어릴 때 만났지만 영원히 너의 곁에 흐르겠다는 뜻.
이미 그 전부터 광고가 시작되었던 라스트 월드가 출시되면 이 아이디를 쓰려고 했었는데…
“사용 가능한 닉네임입니다. 차원을 선택해주세요.”
라스트 월드에는 총 다섯 개의 차원이 존재했다. 무협과 판타지, 그리고 미래와 신계, 마계였다.
“판타지.”
“차원 판타지를 선택 하셨습니다. 라스트 월드는 성별을 바꿀 수 없으며, 차원 판타지의 경우 인간으로만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직업을 선택해주세요.”
카르엔의 말과 함께 진하의 눈앞에 큰 액자만한 원의 영상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기사를 시작으로 마법사, 전사, 도둑, 파이터, 정령사, 주술사, 궁수 등등… 많은 직업이 보여 지고 있었고 진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기사.”
“기사를 선택 하셨습니다. 유형을 선택해주세요.”
또 다시 영상에는 검을 든 기사, 창을 든 기사, 도끼 등등… 이 보였다.
“검.”
“검을 선택 하셨습니다. 기사에는 공격형과 방어형, 평균형이 있습니다. 선택해주세요.”
진하는 최고의 방어는 공격, 즉 데미지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 이었고 질문이 끝나는 순간 대답했다.
“공격.”
“공격형 기사를 선택 하셨습니다. 캐릭터의 외형을 선택해주세요.”
카르엔의 말과 함께 진하의 눈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고, 바로 진하의 모습이었다. 라스트 월드는 자신이 원한다면 얼굴은 물론 체형까지도 성형 할 수 있었지만 진하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기에 바꾸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나라를 선택해주세요.”
“한국.”
“한국을 선택 하셨기에 언어는 한국어가 되며, 세계 대전에서 한국의 유저로 참여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스텟을 결정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진하는 강렬한 빛의 블랙홀이 자신을 빨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텟 분배의 공간입니다.”
어지러움을 느끼던 진하는 카르엔의 목소리에 눈을 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처음 보는 곳! 마치 다른 곳으로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라스트 월드의 세계는 현실과 다를 것이 없었고 지금 현재 진하가 있는 곳은 운동 기구들이 각종 존재하는 체육관 같았다.
그런 진하의 앞에는 붉은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기른 몸매가 탄탄하며 아름다운 카르엔이 서 있었다.
‘정말 놀랍구나. 이것이 가상현실.’
진하는 앞에 카르엔도 잠시 망각한 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현실과 다를 것이 없는 움직임과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라스트 월드는 눈류님의 육체, 정신적 능력을 기본 스텟에 +되는 시스템이 도입 되어 있습니다. 정보창을 외쳐 보십시오.”
“정보창.”
“캐릭터 성향에 따라 기본스텟은 조금씩 다르며 근력은 물리 데미지를 나타냅니다. 근력 1은 물리 공격력 3을 뜻합니다. 체력은 물리 방어력을 나타내며 추가적으로 hp가 상승합니다. 체력 1당 물리 방어력 2를 뜻하고 hp가 10씩 늘어납니다. 민첩은 공격 속도와 명중률, 크리티컬, 회피 상승을 뜻하며, 지식은 마법 공격력을 뜻합니다. 물리 공격력과 마찬가지로 지식 1은 마법 공격력 3을 뜻합니다. 그리고 정신은 집중력과, 마법 저항력을 나타내며 추가적으로 mp가 10 상승합니다. 정신 1은 물리 방어력과 마찬가지로 마법 방어력 2를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재치는 마법 시전 속도와 명중률, 크리티컬과 회피 상승을 뜻합니다. 예술은 느낌과 감각, 재주를 상승 시켜주며 상술은, 계산력과 화술을 상승 시켜 줍니다. ”
진하는 이미 알고 있는 스텟이었지만 자세히 들었다.
“지금까지가 기본스텟 이었으며, 특정 레벨과 직업, 성향에 따라 2개씩의 추가스텟이 생성 됩니다.”
추가스텟이란 레벨 23을 시작으로 캐릭터의 직업과 성향에 맞게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을 말하며, 추가스텟은 포인트 없이 레벨 업과 함께 자연적으로 올라간다. 그 외에 각종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이제 테스트가 시작됩니다.”
진하는 카르엔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은하를 통해 얘기를 들은 상황이었고, 곧 육체, 정신적 능력을 테스트 하였다.
“장난인 줄 알았더니…”
진하는 테스트 과정을 들은 후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은하가 말할 때만해도 과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였다니?
“정말 펀치 볼을 치라는 겁니까?”
“네. 5번을 치시게 되며, 그 중 가장 점수가 높은 세 개를 합산하여 평균을 매깁니다.”
어이없는 테스트는 그것이 시작일 뿐이었다. 펀치 치기, 체력을 테스트한다며 오래 달리기와 기계 펀치에 두들겨 맞기. 회피 측정은 공 피하기와 1분 동안 빨리 주먹 내지르기, 목표물 맞추기… 또 지식 어쩌고 하며 아이큐 테스트와 퀴즈 풀기와 정신력으로 오래 버티기 등등 별의별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가장 정확한 측정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황당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아… 하아.”
테스트를 끝낸 진하는 지친 얼굴로 결과를 기다렸다.
모든 유저들이 캐릭터 생성과 함께 이 테스트를 거치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추가스텟이 결정된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리 차이나도, 게임 상에서는 수십 포인트씩 차이 나지 않게 설정되었고, 각 스텟마다 최소 +3에서 최대+9 까지였다.
이런 테스트로 간혹 무식한 이가 마법사를 했다가 근력이 더 높은 캐릭터가 되기도 했고, 머리는 좋은데 체력이 약한 이가 기사를 해서 마검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한다. 가상현실이기에 캐릭터의 선택을 자신의 능력에 맞게 골라야 효과가 컸다.
물론, 이것, 저것이 다 뛰어나지 않아도 초반 효과의 차이일 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레벨 업과 각자의 노력, 열정에 따라 능력은 얼마든지 상승 할 수 있기에.
정보창을 살펴보던 진하는 기막힌 표정으로 카르엔을 바라봤다. 근력 등 다른 스텟은 이해를 할 수 있다. 자신은 무도 관장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하고 살았으며 주먹 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니… 그런데 지식은 왜 하나도 오르지 않은 것인가? 최소 +3으로 알고 있는데…
“안 오르는 경우도 있습니까?”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만… 표준 미달일 때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아주 미달일 때… 눈류님은 직업을 잘 선택 하신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정말 무식, 단순하다는 것이었다.
“이제 모든 스텟 분배는 끝이 났습니다. 라스트 월드 - 차원 판타지에서 즐거운 여정 보내시기를.”
진하가 잠시 난 무식하다라는 충격에 빠져 있을 때 카르엔의 말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고무줄처럼 쉽게 일그러지더니 곧 멈추었다.
# 3
/초보자의 섬입니다. 차원 판타지의 출발인 곳이며, 레벨 25가 넘어야 벗어나실 수 있습니다.
“저, 정말 놀랍군.”
눈류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여자의 음성과 함께 재차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책으로, 영화에서만 보던 양식의 마을이 존재하고 있었고, 갑옷과 천으로 만들어진 옷, 또는 로브를 걸친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눈류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맞은 편 중앙에는 아름다운 여신상이 물 분수의 호위를 받고 있었으며, 그 주위로 무기, 방어구, 장신구, 식당, 잡화상점 등 여러 가게가 보였다. 그리고 혼잡할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볼일을 보거나, 파티를 구하고 있었으며, 물 흐르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까지 모두 현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서 준비한 게임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할 줄이야.
“레벨12 공기사 파티 구합니다!”
“각종 재료 모집하며, 초보자 무기, 방어구 팝니다! 오늘 아니면 이 가격 없음!”
“붉은 던전에 함께 갈 법사 구합니다!!”
오일장을 맞은 시장보다도 더 혼잡했으며, 나이트보다 시끄러운 광장을 둘러보던 눈류는 곧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진짜 아프네.”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경험을 하는 것은 다르기에 직접 아픔까지 느끼자 눈류는 더욱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볼을 어루만졌다.
라스트 월드는 여러 가지 강도가 있는데 일단 첫 번째로 19세 이하와 이상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선정성과 잔혹성 논란으로 실시 된 제도였고, 전 연령 고통의 강도는 현실의 20% 밖에 되지 않는다. 그 것은 당연했다.
만약 현실의 100%라면 매일 수없이 뼈가 부러지거나 다치고, 살이 찢어지거나 독에 걸리고 또는 죽음의 고통을 모두 실제와 똑같이 느끼게 되는데 과연 몇 명이나 그 괴로움을 이겨내고 게임을 할 것인가?
‘20%인 대신 원래 생각보다 5배는 더 패고 죽여주마.’
눈류는 이를 갈며 찬성과 은진을 떠올렸고 주먹을 꽉 쥐었다.
“감히 나를 속여? 흐흐흐!”
자신도 모르게 사악한 웃음이 나오는 눈류. 그런 그를 주변 황당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
“저… 저 놈 뭐야?”
“미, 미친 것 같은데?”
“처음 시작해서 저러는 것 아냐? 우리도 처음에는 좋아서 난리 났잖아. 하하.”
“아냐. 저 풀린 눈이랑 흐르는 침을 봐. 광견도 아니고…”
띵똥!
/라스트 월드에 접속 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레벨 5까지는 마을 밖으로 벗어나시면 안 되며, 인벤토리에 있는 목검을 장착 하신 뒤 광장 왼쪽에 있는 수련 공터에서 레벨 5까지 수련하세요.
혼자 분노와 망상에 빠져있던 눈류는 알림 말에 의해 정신을 차렸다.
‘레벨 5이후 사냥을 할 수 있나보군. 그럼 수련공터로 가보자.’
많은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혼자만의 망상에 빠진 눈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체, 빠르게 움직였다.
“여기인가?”
한 2분 쯤 걸었을까? 눈류는 넓은 공터를 찾을 수 있었다.
모래 바닥으로 이루어진 공터는 크기가 꽤 넓었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 시작한 듯 열심히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곳 수련공터는 유일하게 레벨 5까지 찍을 수 있는 곳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다녀간다. 그래서 자리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외형을 바꿀 수 있어서인지 대부분 미남, 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현실에서 키 182에 몸무게 75. 미인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골고루 닮아 남자답게 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눈류가 평범해 보이는 수준이었다.
“인벤토리!”
잠시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눈류는 인벤토리 창을 소환했다. 그 안에는 100라르크와 물통 하나, 목검, 낡은 천으로 만든 상, 하의, 신발이 존재했다.
라르크는 라스트 월드의 화폐단위로 10라르크는 현실에서 2원, 10:2의 비율이었다.
“잠깐… 상, 하의가 존재한다는 말은?”
인벤토리를 보다 예전 게임이 떠오른 눈류.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
입고 있는 것은 아무런 능력 없는 사각 팬티와 쫄티 하나씩.
“젠장!”
그때서야 자신의 옷차림을 간파한 눈류는 서둘러 낡은 상의와 바지, 신발, 목검을 착용했다.
상하의와 신발은 각각 방어력이 1씩 올라갔고, 목검은 공격력이 2였다.
눈류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자신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지 않았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그때 한명이 렙업을 다했는지 밖으로 빠져나갔고 눈류는 서둘러 빈자리로 향했다.
“놀랍군.”
눈류의 앞에는 짚단 인형이나, 허수아비가 아닌… 오크가 서 있었다. 살아있는 듯 노려보는 오크의 모습은 이곳이 또 다른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시켜 주었다.
“이 세계가 기대돼.”
눈류는 곧 스텟이 5남은 것을 떠올리며 모두 근력에 투자한 뒤, 목검을 쥐고 오크를 내리쳤다.
타악! 타악!
머리, 어깨, 팔, 허리, 다리.
횟수가 늘어날수록 더욱 정교하고, 세밀한 가격이 가능했고 그와 함께 레벨 업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보정스텟 근력2가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업과 함께 직업, 성향에 따라 오르는 보정스텟.
오래 지나지 않아 레벨은 5가 되었고 눈류는 목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전투를 많이 하면 간혹 랜덤 스텟이 추가 되지만 그것은 몬스터와 싸울 때나 pk or 전쟁, 혹은 스킬 수련을 할 때 수련장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고, 올리기도 쉽지 않았다. 위 경우들을 제외하면 혼자서는 아무리 휘두르고 뛰며 운동을 해도 오르지 않는다. 수련공터 역시 레벨 5까지만 가능하기에 이제 사냥을 떠날 차례였다.
그 전에 눈류는 물통을 꺼내 목을 적셨다. 이 세계는 햇빛은 조차 완벽했기에 더위로 인한 갈증이 느껴진 것이다.
“후. 인벤토리에 있어서인가? 시원하네.”
목을 축인 후, 눈류는 업을 할 때 마다 얻는 추가 2의 스텟을 마저 근력에 몰아 찍었다.
어차피 지금은 저렙. 몬스터들도 약하다. 더군다나 자신은 근력스텟을 최상으로 받지 않았던가? 단 한 번에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빠르게 렙업한다.
그로 인해 눈류의 근력은 45로 성장해있었고, 기사이기에 업을 할 때마다 hp+20, mp+10을 받아 hp도 260이었다. 거기에 1업마다 두 개씩 주어지는 스킬 포인트로 인해, 스킬 포인트도 8개였지만, 스킬은 레벨 10이 넘어야 배울 수 있었기에 바로 광장으로 향했다.
“아 제발 파티 좀 해주세요! 법사 붉은 던전 갑니다!”
“초보자 아이템! 지금 아니면 에누리 없습니다!”
“전직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광장은 조금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시끄러웠고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모두의 시작이 초보자의 섬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눈류는 곧 자신이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잡화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오세요! 손님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잡화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둘러보고 있었고, 열심히 흥정을 하며 물건을 팔던 여주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보통 온라인 게임의 npc와 다른 점은 스스로 npc란 것을 모른다는 점. 말 그대로 그들은 라스트 월드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잡화점 여주인은 20대 초반으로 보였으며 희고 맑은 피부에 금발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밝은 분위기의 미인이었다.
“저희 잡화점은 120년 전통을 유지한 명품 가게로서···”
‘이 여자 뭐야?’
“역사가 빛나는··· 애플 쥬스는 10라르크입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 역사가 빛나는···”
“아 시끄러우니 물건이나 보여줘요.”
눈류는 장사를 하면서도 가게를 하염없이 길게 설명하는 여자로 인해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표시했다. 그러자 놀란 얼굴로 두 눈이 커지는 여자.
“흐윽. 어떻게 그리 심한 말을?··· 저 레아 인생을 살면서 5311231번째 겪는 수모입니다!”
5311231번이나 겪었으면 이제 담담해질 때도 된 듯 했지만 레아는 마음이 여린 듯 눈물을 글썽거리며 물건을 팔기 시작했고 그런 눈류를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다른 사람들.
그들에게 눈류는 초보 주제에 말을 함부로 하여 자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물건을 싸게 넘겨주는 레아를 울린 악당일 뿐이었다.
주변에서 힐끔거리는 것을 알게 된 눈류는 곧 한숨과 함께 부드러운 어조로 레아에게 말했다. 원래 주변 사람들 상관 안하는 편이지만 동생 은하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
“오빠. 라스트 월드 npc들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npc라는 것을 몰라. 그러니 울컥해도 참고 잘 대해줘야 해. 그래야지 명성도 상승하고 퀘스트도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어. 그리고 명성은 호감도가 높아지거나, 퀘스트를 깨거나 하면 생기는데 낮으면 좋지 않아. 더군다나 1차 전직에 명성이 필요할지 몰라. 그러니 성질 죽이고 게임해. 아참, 초보 npc들한테 아부 떨면 명성 1 올라.”
눈류가 다가가자 새침한 표정으로 힐끔 쳐다보는 레아.
“제가 처음해서 신경이 예민해졌나 봅니다. 섣부른 제 행동이 후회가 되는군요. 아름다운 레아씨에게 사과를 하고 싶은데 받아주시겠습니까? 사과를 받아 주신다면 이 가게의 역사에 대해 다시 듣고 싶네요. 물론 레아씨의 매력적인 목소리로요.”
표정 하나 안변하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눈류의 말에 레아는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지며 얘기를 시작하였지만 주변에서 물건을 구입하던 다른 사람들은 헛구역질을 하는 등,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찌 저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잘 하는지···
/명성이 1 상승하였습니다.
‘됐다.’
눈류는 지루한 레아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눈을 맞추며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레아의 시선이 닿지 않는 허리 뒤 오른쪽 주먹은 힘을 꽉 주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아버지도 가끔 도움이 되는구나.’
항상 현실적인 아버지로 인해 눈류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물론 그 방법들이란 아부와 비위 맞추기 등등 이었다.
하지만 눈류의 성격이 다혈질인 편이었고 남 맞춰 주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 방법을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또 다른 현실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게임이 기본 바탕인 현실이다. 조금이라도 이득을 챙길 수 있다면 속이 뒤집어 지더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한 걸음 더 앞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곳이 현실이었다면 비위를 맞춰주지 않았겠지만 자신에게는 목표가 있다. 찬성을 이기는 것! 레벨도 중요하겠지만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라스트 월드는 계속 업데이트 중이며,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있다. 그렇기에 은하도 npc들 비위를 맞추라고 한 것이다. 혹시 아는가? npc들에게 잘 보여서 전직 때 레전드 급의 직업을 갖게 될 지···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4차 전직이 있었다.
50레벨 때 1차 전직을 하게 되며, 100레벨 때 2차 전직을 한다. 그리고 200레벨 때 3차, 300레벨 때 4차 전직을 하게 된다.
전직을 하게 되면 능력치가 크게 오르고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상승 차이는 더욱 컸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전직이 바로 1차인데 이때가 유일하게 레전드 급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50에서 직업과 능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케릭을 삭제하고 새로 키우고 있었고, 아직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판타지 세계에서 레전드 급 직업을 받았다고 알려진 사람들은 12명이었고, 그 중 3명만이 퀘스트를 깼으며 나머지 9명은 포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정도로 레전드 급 직업은 능력이 뛰어난 대신 다른 직업들과는 달리 전직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류의 목표인 찬성 역시 레전드 급 직업을 가진 세 명에 속해 있었다.
“오호호. 그러니깐··· 잠시만요. 체리 술은 20라르크입니다. 너무 바쁘네요. 다시 얘기해볼까요? 제가 이 가게를 물려받은 것이···”
‘젠장··· 그놈의 직업이 뭔지.’
혹시 좋은 직업이 명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류는 참으며 듣고 있었지만 레아의 수다는 정말 길었다. 그런 눈류를 바라보며 일부 사람들이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것을 보니, 눈류와 같은 생각으로 레아의 수다를 경험한 것처럼 보였다.
“자. 이제 얘기가 끝났습니다. 무엇을 사시게요?”
레아의 수다는 정확히 30분. 현실 시간으로 10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만약, 레아에게 마나가 존재한다면 심장이 아닌 입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hp를 회복해주는 달콤한 쥬스 5개와 배고플 때를 위한 하급 빵 5개를 구입했다. 그러고 나니 남은 돈은 20라르크.
“아차참! 눈류님 혹시 사냥을 하러 가시나요?”
막 가게를 빠져 나가려던 눈류는 레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띵똥!
/+초보자 퀘스트.
마법의 물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토끼 이빨 10개와, 오크의 가슴 털 10개가 필요하다. 잡화점 레아를 위해 이빨 토끼와 털 오크를 잡으러 가자.
제한:레아의 수다를 참아낸 인내심 강한 유저.
눈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초보자 퀘스트는 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보상이 조금 더 좋고 npc와 친밀도를 쌓았을 때 받을 수 있는 +초보자 퀘스트지만 기존 게임으로 인해 시간 낭비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퀘스트를 해야 추가로 받을 수 있는 명성이었다. 전직 때 과연 명성이 효과를 발휘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없는 것 보다는 여러모로 나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초보자 npc와 퀘스트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초보일 때만 가능하다. 레벨 25를 넘어서면 초보자의 섬에서 퀘스트를 받을 수 없으며, npc들에게 아무리 아부를 떨어도 명성 역시 얻을 수 없다.
결국 눈류의 입장에서는 명성 때문이라도 원하든, 원하지 않던 모두 해야 했다.
가능성이 1프로라도 있다면 포기 할 수 없기에·
··
“제가 토끼 이빨 10개와 오크의 가슴 털이 필요한데 구해 주실 수 있겠어요?”
“예. 물론입니다.”
“헤헤. 역시 눈류님!!”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기쁨에 찬 레아를 보며 눈류 역시 피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안면이 일그러지며 참고 참던 분노를 얼굴로 표현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눈류를 발견하자마자 흠칫 하며 물러섰다.
첫댓글 재밌어요..^^ㅋ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