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
아버지와 26년을 함께 산 새어머 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용히 사라졌다. 친척 들은 하나같이 저에게 연락했다.
“빨리 가 봐. 새어머니가 집에 있는 값나가는 거 다 들고 나간 거 아니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그저 씁 쓸하게 웃음만 나왔다. 우리 집에 뭐가 그렇게 대단히 값나가는 게 있었겠습니까. 무엇보다 새어머 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새어 머니는 서른여덟에 아버지를 만 났고 그때 아버지는 마흔다섯이 었다. 그분의 인생은 참 고단했다
스물일곱에 남편을 사고로 잃었 고 이듬해에는 여섯 살 아들마저 물놀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 거렸고 그 고통을 제대로 이해해 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서른여덟에 아버지를 만 났다. 새어머니는 집안을 정말 반 듯하게 꾸려 갔다. 아버지를 살뜰 히 챙겼고 집안은 늘 반짝였다.
제가 집에 갈 때마다 상이 휘어지 도록 밥을 차려 주셨고 직접 텃밭 에서 키운 채소도 한가득 챙겨 주셨다. 특히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는 말 그대로 몸을 갈아 넣듯이 간호했다. 병원에서도 거의 혼자 모든 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대소 변 수발까지 들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라면 그렇게까지는 못 했을거다.
그래서 저는 늘 그분이 고마웠다.
우리 집에 해 준 모든 것 아버지 에게 쏟은 그 정성을 저는 다 알 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 에는 늘 걸리는 점이 있었다. 두 분이 26년이나 함께 살았지만 끝 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 실이었다.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 니라 그저 함께 산 사이였던게다.
그 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 었다.
아버지 상태가 나빠지고 병원에 오래 계셨을 때도 병상 곁은 늘 새어머니의 자리였다. 그런데 아 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 저를 조 용히 불러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 씀하셨다. 집하고 예금 4천만 원 은 다 너한테 남긴다. 유언장도 써 놨다.
저는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돌아 서 나오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솔직히 말하면 새어머니가 너무 허망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버지가 너무 매정한 건 아닐까 싶었다.26년을 함께 살게 해 놓고 마지막 정리는 그렇게 해 버리다니요.
장례를 치르고 나니 정신이 하나 도 없었다. 회사 일도 급했고 처 리해야 할 일도 한꺼번에 몰렸다.
새어머니에게도 대충 인사만 드 리고 서둘러 올라왔다. 그때는 몰 랐다. 이미 그분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아마도 아버지 가 자신 앞으로 아무런 대비를 해 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머물 이유가 없다고 느 꼈겠지요.
며칠 뒤 친척에게 전화가 왔다. 새어머니 나갔다더라. 얼른 가봐. 집에 뭐 없어진 거 없는지 확인해 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 다. 그럴 리가 없는데 가져갈 만 한 귀중품이 있는 집도 아니고 무 엇보다 그분은 그런 사람이 아닌 데.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저 는 서둘러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집 대문은 잠겨 있었고 안은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했다. 부엌도 깨 끗했고 가스레인지까지 반질반질 윤이 났다. 마치 떠나기 전 마지 막까지 자기 자리처럼 정리해 놓 고 간 사람 같았다.
이웃에게 물어보니 며칠 전 가방 몇 개만 들고 나갔다고 했다. 저 는 동네 사람들을 수소문해 결국 그분의 친정 쪽 오래된 집을 찾아 냈다. 허름하지만 작은 마당이 있 는 집이었다. 제가 들어갔을 때 새어머니는 마당에 혼자 멍하니 서 있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불렀다. 엄마, 왜 여기 와 계세요?
그 한마디에 새어머니가 깜짝 놀라 돌아봤다. 그리고는 급하게 말했다. 나, 내 물건만 가져왔어. 혹시 의심되면 직접 와서 봐도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 졌다. 그분은 끝까지 제가 자기를 의심하러 온 줄 알았던 거다.저는 다가가 손을 잡고 통장을 꺼내 그 분 손에 쥐여 드렸다. 엄마, 제가 며칠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이건 아버지가 엄마 드리라고 남긴 노 후자금이에요. 집도 엄마 드리기 로 하셨어요.며칠 안에 제가 같이 가서 명의 정리해 드릴게요.
그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눈이 순식간에 붉어졌지만 곧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하고 법적으로 부부도 아니었는데 이 런 건 받을 수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터졌다.
엄마가 엄마 아니면, 제가 앞으로 친정은 어디로 와요? 엄마가 이 렇게까지 아버지 옆을 지켰는데 엄마가 아니면 누가 엄마예요. 그 말을 듣고 새어머니도 결국 울음 을 터뜨렸다. 목이 메인 채 겨우 말했다. 나는 네 아버지 가시면 네가 나가라고 할 줄 알았어. 그 런데 그 사람이 다 생각해놨네…
내가 그 사람하고 산 세월, 헛산 게 아니었구나.
저는 그 자리에서 새어머니를 꼭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여 기 혼자 계시면 더 적적해요. 저 랑 같이 올라가요. 이제 같이 살 아요.
그분은 한참을 울었다. 정말 서럽 게 울었다..하지만 끝내 통장은 받지 않았다. 눈물을 닦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어. 돈은 네 가 가지고 있어.집은 내가 지키며 살게. 내가 죽고 나면 그때 네가 가져. 굳이 명의 바꾸느라 수고하 지 말자. 내가 여기 있어야 네 아 버지 곁도 지키고 네가 내려올 때 도 집이 남아 있지.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저에게 했던 그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 았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조심했 는지 안다. 제가 손해 볼까 봐 걱 정하셨겠지요.
하지만 저는 더 분명히 알고 있다
새어머니가 저에게 해 준 것은 단 순히 남의 집에 와서 살림한 정도 가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분은 26년 동안 아버지의 곁을 지켰고
제가 하지 못한 몫까지 다 해냈다
어쩌면 어떤 친어머니보다 더 깊 게 이 집을 지켜 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정했 다. 그분을 끝까지 챙길거다. 그 건 의무이기도 하고 우리가 그렇 게 맺어진 모녀 인연에 대한 최소 한의 도리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은 법적으로 부부였 는지 재산이 누구 앞으로 가는지 만 따질지도 모른다.하지만 함께 산 세월과 병든 사람 곁을 지킨 시간과 말없이 감당한 희생은 서 류 한 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저에게 그분은 더 이상 새어머니 가 아니다.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제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집을 지켜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는 이제 누가 뭐래도 그분을 엄마라 고 부를 겁니다.
첫댓글 가슴이 찡하네요
이렇게 반듯하게 자란것도 새엄마를닮았네요
천복을 받을 사람이네요
하나님 이 큰복을 내려주실꺼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앞이 흐려지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어버이날 보내시길요 ~^^
오랜만에 뭉클한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마음 뭉클한 사연이네요
너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군요